475화 컴퓨터가 죽었습니다.
“대체 이게 뭐지?”
하늘을 날아온 드론을 활로 격추한 티르의 신전 경비병은 자신이 떨어뜨린 물건을 살펴보러 다가왔다.
“드론이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원거리에서 대화를 나누기 위한 물건이지요. 위대한 티르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물건에서 말이 나오자, 티르의 신전 경비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보고는 드리고 결정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티르님께 진상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드론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경비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신전 경비병이지만, 신전 자체는 아직 완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혼돈의 대륙에 인적 드문 곳의 동굴에 들어와서 몰래 세계수를 키우고 있었다.
세계수가 성장하면, 그 성역을 바탕으로 신전을 세우고 티르의 거점이자 요새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오딘도 이 요새의 위치를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인간들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 보시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대한 분들의 능력과는 또 다른 형태의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나누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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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티르를 고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티르만 빼놓을 수는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원기의 질문에 조제성은 가볍게 답했다. 원기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조제성의 의도를 파악했다.
“오딘에게도 파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모처럼 좋은 카드가 들어왔으니까요.”
신성 데이모니움은 강력한 무기로 발전할 소지가 컸다. 성력을 소모한 만큼 단단해질 뿐 아니라, 보호장벽까지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적을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아닙니다. 더 위험한 일이 있습니다.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겁니다. 무기란 적에게 노획되게 마련입니다. 만약 아군에게만 지급된다면, 그들은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원기는 자신의 생각이 얕았음을 깨달았다. 신성 데이모니움을 구할 방법이 약탈 뿐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흘러갈 수 있었다.
“전쟁은 힘의 불균형에서 옵니다. 균형을 만들어주면,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못하지요. 오딘을 쓰러뜨리는 것은 도박이고,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입니다.”
신성 데이모니움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병기임에는 틀림없었다. 게다가 생산량이 사실 장난이 아니었다.
우주 공간에 만들어진 공장은 의외로 많은 장점이 있었다. 무겁고 거대한 장비들을 쉽게 배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덩치가 커져도 별 문제가 없었다.
건물을 지탱할 기둥도 필요 없었고, 우주복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넓은 우주 공간 자체가 안정적인 작업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 자체를 밝히지 않았다. 신성력을 대량으로 소모해서 소량 생산하고 있다고 알린 것이다.
신성력을 이용한 생산이라는 말에 지구쪽에서는 그걸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금속 내부에 아주 정밀하게 새겨진 패턴형 마법진을 분석하는 것은 현대 기술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루 생산 가능량은 약 수천 톤에 달했고, 이를 수백 킬로그램으로 날조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를 지구산 반신들과 아스가르드의 신들에게 팔아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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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놀라운 물건이로군요.”
“프레이야님이 신성력을 소모해 만든 특수한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해 드립니다. 형상 기억과 수복능력이 장점입니다.”
“테스트를 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입고 왔습니다.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다만 테스트에는 비용이 듭니다. 신성력을 소모하기 때문이지요.”
엘프 신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옷을 벗었다. 비키니 수영복같은 인너가 드러났다. 그 위에 망사와도 같은 금속실로 만든 가벼운 천이 보였다.
‘이거 눈이 호강하는군. 네글리제보다 얇아 보이는데. 엘프가 미의 여신이 총애하는 아름다운 종족이라더니. 패션모델들과도 비교가 안되는군.’
패션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날씬한 체형이 많았다. 가슴의 크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주로 섬나라의 인간들이었다.
“원하시는 화기를 테스트해 보시면 됩니다. 대인용 화기라면 모두 막아낼 수 있습니다.”
엘프 신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벌려보였다. 자연스럽게 사내는 그녀의 몸매를 훑어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는 미녀를 쏘는 취미는 없었다. 아니, 살인 따위는 할 필요가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부담없이 쏘시면 됩니다.”
‘무리지. 그건.’
그가 난처해 하고 있자, 그녀는 테이블의 권총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에 대고 쐈다. 탄환은 그녀의 피부에도 닿지 못하고 찌그러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 노출된 피부라도 인마살상용의 화기는 통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정량을 몸에 두르면 전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생겨납니다.”
“보호막은 항구히 유지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본인이 비축한 신성력으로 발생하는 것이라서, 소모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엘프 신관이 손목시계를 들어보였다. 손에는 좀 투박한 스마트 웟치가 자리잡고 있었다. 디자인이 딱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엘프의 팔목을 장식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여기 나와있는 987프라나가 제 성력의 잔량입니다. 약 5의 성력이 소모된 셈입니다. 보통 신관이 가지고 있는 성력은 평균 500가량이고, 저와 같은 엘프 종족은 약 1000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능자들은 약 100프라나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시계에 측정기능이 있는 겁니까?”
“보호막 기능은 이 프라나 왓치를 이용해서 구현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성력의 총량을 측정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효과적인 성력의 활용이 가능해 집니다.”
그녀는 이어서 금속실의 특성을 보여줬다. 가는 실로 만들어졌지만, 성력을 부여하면 대단히 단단해졌다. 방검복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한 편이었다.
“성력을 부여하면 원래의 형상으로 복원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상을 기억시키는 마법진을 이용해서 새로운 형상으로 가공할 수도 있습니다.”
“무시무시하군요.”
“이건 데이모니움 분말입니다. 이 분말로 응급처치가 가능합니다. 성력이 부여되면, 결락된 부분에 분말이 자리잡고 그 형상을 유지해 줍니다. 아주 복잡한 구조가 아닌 단순 손상은 대부분 복원됩니다. 이건 그 샘플 영상입니다.”
그녀가 리모콘을 누르자, 화면에 자동차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동차에서 전선이 길게 연결된 박스 하나를 꺼낸 뒤에 그 자동차를 압축 프레스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다.
“저 박스는 전자기기들이 들어있는 박스입니다. 저 부품들까지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유리도 무리입니다.”
납작하게 된 자동차에 엘프 신관 세명이 신성력을 불어넣자, 자동차가 놀랍게도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타이어의 고무와 유리는 박살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타이어의 고무를 지탱하는 철사들이 타이어의 형상을 하면서 자동차를 지탱했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데모 영상이 끝났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군요.”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미모의 엘프 신관의 노출 심한 의상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은 바뀌려고 하고 있었다.
“신관은 이능자들만 될 수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능자들이 아니라, 세계수를 통해서 신과 연결된 자들입니다.”
“그럼 이능자가 신관이 된 경우 더 강한 성력을 갖게 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개인차이는 있습니다만, 이능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반신급의 재능을 가진 이들은 약 1000의 프라나를 가지게 되고, 일반인이라면 이능이 있건 없건 약 500을 전후한 프라나를 가지게 됩니다. 반신급 재능을 가진 이들은 신관이 되지 않아도 1000을 전후한 성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엘프들은 소수 정예로 만들어져서, 꽤 스펙이 높은 편이었다. 수인족이나 충인족, 불사족같은 이들처럼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종족도 엘프들의 성력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충인족의 여왕들처럼 인간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존재들도 존재하기는 했다.
“이능의 차이가 아닌, 본질의 차이라고 할 겁니다. 신의 그릇으로 태어난 이들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 이능자들은 신관으로 만들어도 특별할게 없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능 자체는 가장 효율적인 성력의 행사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도구를 사용할 때의 효율이 70%정도라면, 이능은 대부분 90%이상의 효율을 갖습니다. 기존의 갖고 있던 이능을 몇배는 더 잘 쓸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세계수를 통해서 받는 힘을 성력이라고 하고, 인간이 가진 본연의 힘을 영력이라고 나눌 수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힘입니다. 인간이 보통 담을 수 있는 영력은 100정도지만, 통로로 쓰일 때는 500정도의 영력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생물의 치료만 가능했지만, 이제 장비의 강화나 수선이 가능해졌다고 봐야겠군요.”
“그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해야겠군요. 그 프라나 왓치라는 물건도 판매되는 거겠지요?”
“물론입니다. 제작비만 받고 제공할 예정입니다. 물론 제공받은 기계를 분해하시거나 연구 제작하는 것도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엘프 신관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말하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지구의 기술로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주공간에서 고열의 금속 액체를 3D 프린터로 분사해서 나노 단위 수준의 세공 금속을 만드는 것은 발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중력으로부터도 완전히 차단된 완벽한 공장과 연구실은 아직 인류에게는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인류의 우주 진출은 아직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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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대들의 교역품인가?”
오딘 역시 드론을 통한 화상 회의에 응했다.
“재미있는 물건이로군. 이걸 우리에게 팔고 싶다는 건가? 진상하는게 아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딘이 바라보았다. 거대한 옥좌에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오딘은 상당한 위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오딘님께는 좋은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무사들의 세상이 아닌 상인들의 세상인가.”
오딘은 현대인들에게서 모은 정보들을 통해서 현대 사회를 파악했다. 칼이 아닌 돈이 힘을 쥔 사회였다.
장사를 위해서라면, 조국을 파는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이들의 세상이었다.
‘돈이 권력인 세상이라. 그것도 제법 재미있군.’
오딘의 본질은 투쟁의 신이었다. 또한 완력보다는 지혜의 신이었다. 칼로 싸우든 돈으로 싸우든 투쟁은 투쟁이었다.
“네 녀석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로군.”
오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무엇을 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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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잊혀진 별의 신화 - 2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환자를 다그쳐서는 안됩니다.”
“충...성! 적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적은 뿔 다섯개를 가진 남제국의 기체였습니다. 색깔은 붉은색이었습니다.”
“뭐? 너 제정신이냐?”
경비대장은 신참병사의 보고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분노의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아직 똥오줌도 제대로 못가릴 어린애가 아닙니까. 그보다 적이 쳐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듯 합니다. 빨리 보고해야 합니다.”
“그렇군. 일단 발자국으로 봐도 남제국의 리베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경비대장은 실망한 표정으로 황급히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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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소리를 했군.]
“하지만 거짓 보고를 할 수는 없어.”
머리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항변했다. 그를 습격한 기체는 그도 잘 알고 있는 기체였다.
뿔 다섯 개를 가진 붉은 색의 리베로는 남제국 최강의 기사로 손꼽히는 적룡제 손호였다.
[네 기억이 맞다면, 운이 엄청나게 좋은 거겠지.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너같은 놈이 되어버린거지? 난?]
“나도 믿기지 않는다. 너같은 재수없는 녀석이 내 전생이라고는.”
신참병 제이 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죽음 직전의 충격 탓이었을까, 제이는 주마등과 같이 전생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탓인지, 제이의 머리속에는 전생의 인격이 생겨나 버렸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이었다.
공부는 조금 잘하는 듯 했지만, 세상을 내려다보는 제잘난 맛에 사는 밥맛없는 녀석이었다.
지금의 제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그 인격이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제이는 알 수 있었다.
“세상 쉽게 사는 새끼 같으니라고.”
정확한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자신의 전생은 은수저, 아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 같은 놈이었다.
상당한 부잣집에서 태어난데다가 머리도 좋았다. 어려서부터 가정 교사들을 두고 자라난데다가, 이미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신참 병사로서 출세하고는 거리가 먼 제이하고는 너무 차이가 났다.
[머리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어떻게 세상에 대해 이렇게 아는게 없을 수가 있냐.]
‘너랑은 성장 과정이 달라서 그래. 나도 너처럼 축복받은 환경에서 자랐어 봐라. 이렇게 되나.’
[뭐, 세상 재밌게 사는 것 같기는 하네.]
전생의 자신이 하는 말은 의외로 마음에 와 닿았다. 전생의 자신은 세상 사는게 별 재미가 없는 듯 했다.
수업시간에는 이미 다 아는 내용만 구구절절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했다.
이미 질리도록 본 지루한 영화를 꼼짝없이 다시보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축복받은 녀석이라고 인생이 재밌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난 대체 왜 죽은거지? 죽는 순간이 떠오르지를 않네.]
“자다가 죽었나 보지. 복상사라도 한 것 아냐? 그건 아니군. 동정으로 죽었네. 원통해서 어쩌나.”
[흥. 육체적 쾌락 따윈 관심없어. 말이 통하는 상대라야 마음도 통하는거지. 자위도구도 못되는 것들에게는 관심없어.]
‘이래서 가진 것들은 맘에 안든다니까.’
[다 들린다.]
‘들으라고 한 소리야. 멍청아. 잘난 척만 하면서 실속도 없이 산 건방진 애송아.’
[흠. 틀린 소리만은 아니군. 내가 산 세상은 내게 쓰레기의 집합체 같았지.]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그에게선 공허함이 심하게 느껴졌다.
[좋아. 내가 널 도와주지. 출세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어.]
“앗차. 삼뇽이 밥을 주러 가야 하는데.”
제이는 침상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아팠지만, 충격에 의한 근육통인 듯 했다. 심하게 뼈를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삼뇽이는 그가 기르는 애완도롱뇽의 이름이었다.
어릴 적에 우연히 마주친 존재로 처음에는 시사라의 새끼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자라질 않았다. 커다란 시사라로 키워서 자신의 리베로를 만드는 재료로 쓸 생각을 하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정도 많이 들었고, 조금도 자라지 않은데다가 사람 말귀도 알아듣는 얌전한 애완동물, 아니 반려이자 가족이었다.
[삼뇽이? 웃긴 이름이군. 누가 그런 멍청한 이름을 지은거냐?]
‘삼뇽이가 그렇게 이상한 이름인가? 음. 그럴만도 하네. 하지만 이쪽 세상에선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야.’
[우연의 일치 치고는 좀 묘한데. 하지만 바보같은 이름이야. 대체 이 세상은 어디인거지?]
“그건 그렇고, 네 이름은 뭐였지?”
[네 이름이라고 하지 마라. 너의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건 그렇고 뭐였지? 잘 안떠오르네. 내 이름은...그래. 제성! 제성이었다. 조제성이 내 이름었어.]
“맞네. 제성이 내 이름이었군.”
제이도 역시 자신의 전생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뭔가 강렬한 감정이 솟아 올랐다.
[나는 뭔가 해야 할 일이...]
“나는 뭔가 해야 할 일이...”
제이는 제성에게 존재하는 강렬한 바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도 분명 중요한 일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투는 어떻게 된 걸까.”
제이는 자신의 전생을 떠올렸을 뿐 아니라, 제성이라는 또 하나의 인격이자 말상대까지 생겨서 상당한 혼란이 온 상태였다.
일의 경중도 애매하게 느껴졌다. 남제국의 침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정보는 중요하지. 우선 정보 수집에 나서자. 그건 그렇고 여기가 지구가 아닌 건 맞지?]
“맞아. 그리고 넌 신화 이전의 지구인인것이고.”
[미친. 프레이야 여신 따윈 들어본 적도 없는데. 지구는 멸망한거야?]
“아니, 인간들을 피해서 우주로 이민을 떠난 것만 알고 있어. 그들이 어찌되었는지는 몰라.”
[사이비 종교 신자들이 우주 개척을 떠난건가.]
“그렇게 말하면, 널 악령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문명의 발전을 막는 허깨비인데? 그런 사이비 종교들을 많이 봤지.]
“문명을 원하는 이들은 이 별을 떠나면 돼. 여신님께서는 지금도 우주로 나아갈 개척자들을 따로 모으고 계시지. 그리고 나는 원하지 않아.”
[글쎄. 난 북구신화에 등장하는 가당치않은 여신이 지배하는 세상 따위는 달갑지 않은데. 너도 언젠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정신 나간 놈. 제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혀를 찼다. 자신의 머리속에 든 전생은 선물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폭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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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라. 적들이 다수 매복하고 있다. 수는 약 20, 몬스터 급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적룡제 손호는 그의 파트너인 잔혼 ‘레이니’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태고적 프레이야 여신을 곁에서 모셨던 엘프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세계 최강의 잔혼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검술은 ‘사신류’였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죽음과 운명의 여신으로 알려진 헬은 최강의 검사이기도 했다.
그 헬에게서 직접 사사를 받았다고 자칭하는 그녀의 말은 너무 엄청나서 믿기는 힘들었지만, 그 강함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상대인가?”
몬스터급 코어를 가진 리베로들은 정예 기사들에게 배당되었다. 대륙 전체에 몬스터급은 고작 수천, 그리고 그 위인 드래곤급은 수십기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난 그저 준비하라고 했을 뿐이다.]
레이니는 차갑게 말했다. 손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레이니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검의 재능이 있던 보잘 것 없는 소년을 제국 최강의 검호로 만들어 준 것은 신전에서 우연히 얻게 된 잔혼인 레이니 덕분이었다.
그는 레이니를 위해 리베로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손호 역시 사신류의 검사로서 절정의 기량을 발휘했지만, 여신을 직접 호위했다는 엘프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혹시 내 선조중에 레이니가 있었던 것 아닐까?”
[미친 소리로군. 누누히 말하지만, 내가 눈 떴을 때 네 리베로 안에 있었을 뿐이야. 나도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싶어.]
레이니의 검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그리고 적의 리베로들이 깨끗하게 양단되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하군. 상대는 정예로 유명한 아이언 나이트들인데.’
그는 지난번 전투를 떠올렸다. 확실히 손에 남는 느낌이 달랐다. 아직은 레이니와 비교할 수 없었다. 몬스터급 리베로를 일도양단하는 것은 드래곤급 리베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녀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어.’
“역시 제국의 검이라 불리울 만한 솜씨로군.”
남제국의 젊은 황제 엘피온의 치하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기사단은 동서남북을 관장한다는 4성수의 색을 따서 만들어졌다. 적, 청, 백, 흑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황제와 근위기사단을 상징하는 것이 황색이었다.
황, 적, 청, 백, 흑. 오색의 기사단이 남제국의 핵심 전력이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하군.”
“그렇습니다. 적들의 대응은 우리 예상대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륙 제패가 머지 않았군.”
젊은 황제는 야심가였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륙 통일 이후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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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잊혀진 별의 신화 - 3
“적들이 예상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은기사들의 존재도 확인 했습니다.”
“알겠다. 레이님.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그러니까 로이 녀석에게 전하면 되는 거겠지?]
죽은 인간의 영혼으로 알려진 잔혼은 리베로를 조종하는 두뇌의 역할 외에도 몇 가지 역할이 가능했다. 잔혼을 이용한 통신도 그 중 하나였다.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지정된 상대에게 연락이 가능했다.
하지만 잔혼은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킹을 남겨놓은 상대에게만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로이. 은기사들이 예상 지점을 통과해서 북상중이라는군.]
군용 리베로와 탑승자인 리거를 많은 나라들이 기사단으로 편제했다.
“작전대로로군. 걸려들었어.”
남제국의 북쪽을 담당하는 흑기사단은 사방 기사단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되었다. 그들은 북제국과의 싸움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전면전은 아니라도 제법 규모가 되는 국지전에서도 패배를 반복했다. 연이은 패배로 흑기사단을 재편해왔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아군도 무능하고 적도 결코 녹녹치 않다는 사실을 파악한 남제국은 결단을 내렸다.
흑기사단을 미끼로 적의 은기사단을 괴멸시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흑기사단을 적의 수도로 진격 시켰다.
흑기사단은 아쉽지만 미끼였다. 수도를 방위하는 기사단은 근위기사단인 골드 나이츠였다.
북제국에서 인재들만 골라 만든 최강의 기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패배를 거듭해온 흑기사단이 겨룰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수도를 지키러 황급히 국경에서 빠지는 은기사단을 남은 사방기사단과 친위 기사단으로 제압하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었다.
“폐하께 보고 드려라. 은쥐가 독안에 들어왔다고.”
그의 지시와 함께 전서구들이 날아 올랐다. 원거리 통신은 전서구에 의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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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성공적이로군.”
“예. 이제 전투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황제의 근위기사단을 맞고있는 백금기사단의 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백금 기사단의 상징은 기린이었다.
인류의 근원으로 일컬어지는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던 신화속 동물로 알려져있지만, 지구라는 별 자체가 신화라고 할 수 있었다.
회의론자들은 지구라는 별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프레이야 여신이 쫓겨서 도망치듯 지구를 떠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이유였다.
망해가는 별에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구해낸 노아의 방주 같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지구의 역사는 대부분 잊혀졌고, 문화도 잊혀졌다.
문자는 태고 이래로 한글이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한글을 보완하기 위해서 알파벳과 영어단어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를 한국어와 한글로 여겼고, 알파벳과 영어를 마법문자와 마법언어로 여겼다.
한국어와 한글로 통일된, 영단어와 알파벳이 조금 남겨진 그런 세상이 프레이야의 세상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섬멸 작전을 개시한다. 사방 기사단에게 전투 명령을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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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제 손호는 레이니와 함께 자신의 리베로를 움직여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레이니는 순혈의 엘프였고, 드래곤 급에서도 최상위인 용황급 시사라 하트를 지닌 그의 애기는 출력이 엄청났다.
따라서 그의 기체는 다른 기체들보다 빠른 이동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적이 옵니다! 적의 속도는 통상의 2배. 적룡제입니다!”
실버나이츠만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를 향한 기습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국경을 지키는 정규군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력들은 아이언 나이츠.
철기사단이었다. 은기사단만큼은 아니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백전의 용사들이었다.
[몬스터 급들 뿐이야. 어때? 내가 나설까?]
레이니가 물었다.
“아니, 나로 충분해. 지켜봐줘. 사부.”
[음. 웬일이야. 자기 잘난 맛에 살던 꼬맹이가.]
레이니의 말에 손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과거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떠받들리면서 자신감에 넘쳐서 엉망으로 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늘면 늘수록, 레이니의 경지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너무 대단해서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사신류의 꾸밈없고 망설임없는 일격이 공간을 갈랐다.
아이언 나이트를 베었다기 보다는 공간에 덤으로 잘려나가듯 아이언 나이트가 두쪽이 났다.
“접근시키지 마라! 썬더 웨이브를 써라!”
아이언 나이트들이 거리를 벌이면서 손을 뻗었다. 손에서 강력한 전기장이 뻗어 나와서 뇌전의 그물처럼 뻗어 나왔다.
“젠장.”
손호는 적의 대응에 대처가 늦었음을 깨달았다. 썬더 웨이브를 뒤집어 쓰게 된다고 해서 기체에 딱히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기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시사라 하트에 비축된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미숙해.]
레이니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순간, 마치 땅에 깔리는듯한 움직임으로 기체가 이동을 시작했다.
‘젠장. 그런 움직임. 인간에게는 무리라고요.’
손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마치 땅바닥을 스치듯 날아가는 제비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이동하자 적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풍을 쏠 듯한 자세로 일렉트릭 캐넌을 준비하던 적의 리더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레이니의 검이 그를 수직으로 양단해 버렸다.
[사신류의 창시자는 인간이었어. 인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
레이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사신류가 완성될 즈음에는 창시자는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보조해 줄테니까, 이정도 움직임은 구사할 수 있어야 해.]
레이니의 말에 손호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스승이 있는만큼 성장할 수 있을만큼 성장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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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호위 부대들을 괴멸시키고 적을 협곡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습니다. 흑기사단은 수도 공략에 들어갔습니다. 고전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모든게 예상된 대로의 전개로군.”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폐하의 뛰어난 전략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적당히 해두게. 하지만 흑기사단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되겠지. 그건 그렇고 붉은 사신은 맹활약중이로군. 역시 제국 최고의 기사라고 아니 할 수 없겠군.”
“예. 차기 백금기사단의 단장 역시 그가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아직 젊어. 자네같은 백전노장의 용사가 아니라면 내 안전을 믿고 맡길 수는 없지. 그때까지 자네가 잘 이끌어 주게.”
“알겠습니다.”
“슬슬 도착하는 모양이군. 우리도 적을 맞이하러 가보세.”
황제 전용 리베로, 가슴에 사자의 머리가 새겨진 황금의 리베로가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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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이제 은의 기사단이로군. 동료의 원한을 갚아주지.”
적룡제 손호가 전투의욕을 불살랐다. 붉은 사신이라는 이명을 전장에서 떨칠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잠깐 기다려.]
레이니가 급히 막았다.
“무슨 일이지?”
[아니,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레이니는 침묵을 지켰다. 손호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전의를 끌어올렸다. 긴장감을 올리고 주의할 필요성을 다졌다.
그리고 은의 기사에게 검을 휘두른 순간, 그는 섬칫함을 느꼈다. 상대가 너무 쉽게 검을 막은 것이었다.
상대는 지휘관의 장식도 없는 평기사였다.
[역시...]
“역시?”
[상대는 사신류야. 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신류를 상대해 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듯 하군.]
손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사신류 검사가 자신 뿐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손호는 이를 악물었다.
레이니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지만, 손호는 자신의 힘으로 싸우고 싶었다. 손호는 상대방의 참격을 가까스로 피하면서도 반격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상대방에게 일격을 날렸다.
“봤지! 나도 할 수 있어.”
[그래. 상대방의 기량은 너보다 높지 않은 듯 하네.]
레이니는 안도의 음성으로 말했다. 은의 기사단은 모두 사신류를 사용하는 듯 했다. 사신류의 검격을 막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량 자체는 손호가 위였다.
어려서부터 레이니가 기른 사신류의 정통 검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 맡기는게 좋겠어.]
은의 기사들이 모여들자, 레이니가 나섰다. 손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레이니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사신류는 인간이 창조한 검술이지만, 엘프를 위해서 완성된 검술이다. 그걸 내가 가르쳐주지.]
레이니는 대담하게 말하고, 은의 기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은 일격에 상대방을 침몰시켰다. 이격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레이니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불안은 손호에게도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요?”
[상황이 별로 좋지않아. 녀석들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어. 내게 패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있어.]
은의 기사들은 레이니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것으로 보였다. 분명 전투불능에 빠진 것은 맞았다.
하지만 리베로의 조종자, 리거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레이니가 봐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유도당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승리를 믿고있다고 해야겠지. 그렇군. 온다.]
레이니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호는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서 계기류를 살폈다. 그리고 센서를 확인했다.
“뭐지? 이 비정상적인 반응은?”
드래곤급보다 명백하게 강력한 반응이었다. 용황급으로 분류되는 최상급을 명백하게 뛰어넘는 반응이었다.
[뇽급이야. 상대방은 뇽급이다.]
레이니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뇽급은 또 뭡니까?”
[신화를 그려넣은 표지를 본 적이 있지 않나? 프레이야님 곁에 있는 여덟마리 용들의 모습. 프레이야 여신님의 딸들이라 불리우는 용신들을 그렇게 불러. 전부 여덞마리가 있지.]
손호가 그 말에 당황했다. 신전의 성화에 종종 등장하는 용들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의 모습을 담은 성화에 그려진 여덟 마리의 성스러운 존재였다.
용신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의 하트를 사용한 리베로라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손호의 앞에 은색의 아름다운 여성형 리베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투구를 들어올리자, 그 안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존재하고 있었다.
“거인? 리베로급의 거인인가?”
[생체 리베로야. 그것도...]
레이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은색의 여성형 리베로가 검을 들어올렸다. 레이니는 그런 상대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그리고 여성형 리베로의 입술이 움직였다.
[오랜만이군. 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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