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77화 (477/497)

477화 천족의 등장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오딘의 뜻대로 티르와 싸워야 합니다. 어디에서 싸우느냐의 문제가 걸려있기는 합니다.”

오딘의 제안은 당근과 채찍이 함께 엮여있었다.

조제성에게 지구의 국가들은 아군이면서 동시에 장애물이기도 했다. 오딘에게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티르와 토르는 아군이지만 역시 자신의 세력은 아닌 것이다.

“티르를 치는 것은, 오딘의 세력을 줄이는 것이지만, 동시에 오딘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오딘은 반드시 개입해 올 것이고,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판타지 소설의 전투와는 달랐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었다. 원기는 목숨들의 무게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의 판단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될 수 없었다.

희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잘못 판단하면 열명 죽을 일이, 수백 아니 수천, 수만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기가 소극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리한 날을 가진 도구일수록 섬세한 법이었다.

조제성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했다.

인명을 아끼지 않는 과감함을 갖게 되는 순간, 인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 진심은 사라져 버린다.

물론 원기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었다.

조제성이 정말 경계하는 것은, 원기가 ‘박애’의 정신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적도 아군도 모두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순간, 정말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적어도 적의 죽음, 아니 불행이 가져오는 부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었다.

조제성은 바니걸 통신이 각성하기 전까지, 원기를 뛰어난 리더로서 단련시키려고 마음먹었지만, 바니걸 통신이 각성하는 순간 방침을 바꿨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었다.

약한 멘탈에서 강한 감정이 나오는 법이었다.

“문제는 전장을 어디로 삼는가 하는 것입니다. 티르를 끌어들여서 싸울 것인가, 쳐들어 갈 것인가가 되겠군요.”

조제성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우리 측이 쥔 카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결정적인 것이라면 프레이야 여신과 헬 여신이 되겠지요. 희연양의 능력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오딘의 영역에서도 사용 가능한 절대 소멸의 검은 오딘에게 한방을 날려 줄 필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존재가 소멸했다고 믿고있는 이상, 더욱 그러했다.

“핵은 그리 강력한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다만, 핵지뢰를 이용한 섬멸은 가능합니다. 그걸 위해선 지구로 끌어들이는 편이 좋겠지요.”

발 밑에서 폭발하는 핵탄두라면,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조제성은 이미 오딘에게 게이트를 열어주기로 한 섬에 핵지뢰를 촘촘히 배치해 둔 상태였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게이트의 섬은 어마어마한 핵폭발과 이어지는 쓰나미의 연타에 궤멸될 터였다.

핵지뢰와 핵공격에 대비한 리베로도 다수 만들어 놓고 있었다.

데이모니움 합금, 신성우주강으로 만든 콕핏을 이용해서 핵의 타격에도 조종석만큼은 보호받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핵이 터진 후에도 전투가 속행될 리는 없으므로, 조종자들의 생환만 확보되면 된다는 판단에서 만든 것이었다.

핵의 공격에도 보호받는 만큼, 현행 무기 대부분에도 충분한 생존 능력이 확보되어 있었다.

본래 조제성은 실리주의자여서, 아군의 희생같은 것은 그리 중요시 하지 않는 편이었다.

득과 실을 정확하게 천칭에 걸어놓고, 득이 많으면 아군의 희생쯤은 무시하는 성향을 가졌다.

하지만 이 손익 계산서에 프레이야가 개입이 되면서, 인명을 중시하는 방침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제성의 실리적 계산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형태로 나오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인명 중시와 대의명분 확보는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이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 진영은 프레이야의 심성을 반영한 정책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걸고 조제성의 판단을 신뢰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국가 따위는 신뢰할 수도 없고, 목숨을 걸 가치 따위는 없다고 믿는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프레이야 진영을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것은 바니걸 통신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어느 쪽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쳐들어 가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조제성은 지구를 지킬 생각은 없었다. 지구는 적이 될 수 있는 우군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도 오딘도 함께 공멸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미 달 기지와 데이모스는 거주 지역으로서 완성되어 있었다.

당장 우주로 떠날 수는 없지만, 지구가 불모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 완성되어 있었다.

지구의 존속이나 인류의 존속 같은 것은 조제성이 신경쓸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제성은 아스가르드 침공 쪽을 선택했다.

“그렇군요. 역시 지구를 전장으로 만들 수는 없지요.”

장수한은 조제성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물론 내적인 이유는 달랐다. 장수한과 조제성이 같은 의견을 보이자, 원기는 마음 편히 침공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상황이 결정되자 원기는 의욕을 보였다.

“역시, 결정권자가 없으면 일이 진행이 안됩니다. 결재를 좀 맡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전쟁 준비를 위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조제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원기의 얼굴이 흐려졌다. 원기가 원하는 것은 일선에서 싸우는 것이지, 정치가의 일은 아니었다.

희연을 돌아보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미 만족한 상태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우는게 아니라, 여신을 곁에서 지키는 것이었다.

여신의 경호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며, 긍지이자 삶의 보람이었다. 그리고 여신이 안전한 곳에 머무르면 그걸로 좋았다.

카즈키도 전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 관심사는 희연과의 경쟁 뿐이었다. 희연과 대련하는 것이, 어떤 전투보다 그녀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희연과의 대련에서는 아드레날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이들과의 전투에서는 아무런 감흥조차 못느낄 정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만 호전적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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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여신의 기술은 정말 경이롭군. 무중력 실험실에 가서 인공자궁을 테스트 해봐야겠어.’

오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왕들의 자궁을 해부한 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여왕들의 자궁은 일종의 생체 공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궁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나 다름 없었다.

거미 인간들의 경우, 인간+거미의 조합이라면, 여왕의 경우에는 인간+거미+자궁의 조합인 것이었다.

일개미나 일벌이 여왕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헬의 종족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유전자에 내재된 동물적 특성을 끌어내는 수인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오카의 취향에는 딱 맞아 떨어졌다.

‘엘프들의 개조도 가능할 것 같은데.’

오카가 생각하기에는 엘프들도 여왕 시스템을 적용할 만 했다. 엘프들은 성욕, 곧 번식욕이 없다. 그리고 동족에 대한 집착은 있지만 모성애나 부성애 같은 가족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식은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동족에 지나지 않았다.

엘프 공장이 만들어진 이후에 자연 분만된 엘프들이 하나도 없었다. 엘프들에게 있어서 번식, 임신, 분만은 사회적 의무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의 징병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남성 엘프들조차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오덕들도 무시 못하겠는걸.’

그녀는 엘리베이터 형상의 게이트 시스템이 올라타서 행선지의 버튼을 눌렀다.

판타지틱한 마법진이나 빛나는 게이트는 이미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SF를 좋아하는 장수한과 오덕들이 엘리베이터 방식으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다수의 게이트들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그 가운데에 조작 버튼을 둔 것이었다. 데이모스의 우주 기지를 누르자, 룸이 조용하게 회전한 뒤 곧 문이 열렸다. 문으로 나서자 무중력 상태로 움직일 수 있었다.

데이모스 내부의 기압은 0.9기압이라서, 잠깐 귀가 먹먹했지만 기압 변화의 영향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녀는 자석 신발로 갈아신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머리 위를 누군가가 쌩하고 날아갔다.

‘저건 부럽군.’

어린 엘프가 작은 프로펠러를 이용해서 날아간 거였다. 우주 태생 엘프들은 좁은 실내에서도 작은 추진기를 이용해서 빠르고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날아다녔다.

자석식 신발로 간신히 움직이는 인간으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험실로 향하는 도중에, 바퀴벌레들이 공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으,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는 정말 혐오스럽군.’

일본의 바퀴벌레는 크고 흉물스러워서, 그녀도 바퀴벌레에 대해서는 그리 달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손바닥을 쳤다.

새로운 종족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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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에게 날개를 다는 겁니까?”

오카의 말에 프레이야 여신은 당혹스런 모습을 보였다.

“오, 그거 정말 멋지네요.”

“원기야. 이건 꼭 이뤄야 해.”

“그렇습니다. 이건 로망입니다.”

프레이야는 엘프라는 종족을 수호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딱히 그들을 개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역대 프레이야는 끊임없이 엘프들을 개량해 왔다.

“날개를 갖는다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을텐데요?”

“무중력 상태에서는 다릅니다. 날개가 없는 이들과 날개달린 이들간의 격차는 굉장히 큽니다.”

오카가 영상을 틀었다. 데이모스에서 공사를 하는 각 종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퀴벌레들의 경우에는 사실 비행이 불가능했다.

체격이 커지면서 무게는 세제곱으로 증가하는데, 날개의 면적은 제곱으로 증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달랐다. 진공이라면 날개가 의미가 없지만 무중력에 공기가 가득한 내부에서는 전혀 달랐다.

날개짓 몇번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네 손과 발을 이용해서 벽에 의지해서 간신히 움직이는 인간들과 달리 그들은 허공에서 날개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여섯개의 손을 이용해서 빠르게 작업을 해나갔다.

“바로 저것 입니다. 날개달린 엘프. 그것이 우주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진공을 유영할 때, 날개는 그리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무중력이지만 우주선 혹은 우주 정거장 내의 공기가 있는 환경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지상에서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인간의 체중을 생각하면 날아다닐 수 없을 텐데요? 조류처럼 텅 빈 뼈를 만들 수도 없고.”

“물론 상시 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날개를 펴서 활강하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신성력을 이용해서 일시적으로 비행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라는 계산입니다. 약 1분간 비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1분간이나.”

엘프 성전사들은 신성력으로 강화되어 약 6-7미터의 수직 점프가 가능했다. 날개를 펴고 활강하거나 비행할 수 있다면, 이동 거리나 능력은 확실히 증가할 터였다.

엘프 성전사들은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무사히 착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활강용 날개가 있다면, 그 활용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할 터였다.

“부유석을 이용하면, 장거리 이동도 쉬워질 겁니다.”

장수한이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천공성의 파편인 부유석은 아직 다량 보유되어 있었다.

“그래서, 논의한 끝에 두가지 모델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는 곤충형 날개입니다. 장점은 수납이 편하다는 것이군요. 내구성은 좀 약하지만 이중으로 접어서 눈에 안띄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카가 보여준 화면에는 네장의 투명하고 큼지막한 날개를 달고 있는 엘프의 모습이 등장했다. 잠자리의 날개와도 비슷했지만 형상은 나비의 날개와 비슷했다. 엘프의 귀에 곤충의 날개는 요정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조류의 날개입니다. 방온에 뛰어나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 노숙할 때 좋은 장점이 있습니다. 내구력이 강하지만 비행하지 않을때 거추장스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날개가 달린 엘프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천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귀가 길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천사하고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날개를 단 다고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가요? 날개를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이미 성인이 된 이에게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만, 뇌라는 것은 생각보다 유연성이 있습니다. 신경이 연결될 경우에 그것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여러 다른 종족들을 통해서 증명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수술로 잘라 내버리면 됩니다. 실제로 다지증이라는 질병을 앓고있는 환자들 중에는 자유자재로 여섯개의 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미 인간이나 바퀴벌레 인간들의 경우에도 뇌 자체는 인간의 뇌와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난 요정이 좋을 것 같아.”

“요정보다는 천사형이 좋지 않을까?”

“둘 다 맘에 드는군.”

호철은 천사형을, 찬균은 요정형을, 그리고 장수한은 양쪽 모두 좋다는 쪽의 의견이 나왔다.

원기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면, 에인페리아의 새로운 육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일단 천사형으로 만들어보는게 어떨까요?”

원기는 내구력이 약한 곤충 날개를 보면서 다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 큰 고통을 동반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래서 천사의 날개 형을 택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종족, ‘천족’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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