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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도 귀신을 봅니다-32화 (32/272)

32.

솔직히 쉬펠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앞에 있는 학생들이 말해 줘서 겔뵈르 후작의 둘째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 전엔 아무것도 몰랐다.

아카데미를 오기 전 알아본 건 게일 제국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아카데미의 시스템과 디슘 클래스에 속한 학생들의 정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놈이다, 딱 이렇게 단정 지을 순 없었지만, 왠지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특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마음에 걸려.’

앞에 있던 학생들의 말만 들어 봐도 여자를 귀찮게 하는 게 아멜리아가 처음은 아닌 듯했다. 거기다 막강한 배경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 지금껏 어떤 사고도 저지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 놈인데 주변이 너무도 깨끗했다.

마치 어떤 원한도 산 사람이 없다는 듯 들러붙은 귀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놈만이 아니라 유페르 그 녀석도 그랬지.

유페르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집중해서 정보를 알아봤음에도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구설수도 없었고, 아카데미와 집만을 오가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사고를 안 치나 보다 하고 넘어간 건데, 쉬펠론을 보니 꼭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시해도 될 일을 일부러 더 나선 거였다.

어떤 녀석인지 확인도 할 겸, 왜 주변에 귀신들이 없는 건지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주술이나 흑마법으로 만든 토템이나 아티팩트를 가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영혼력을 내뿜어 확인해 봐도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기에 격전지의 영혼 중 한 명을 쉬펠론에게 붙일까 하다가 참았다.

이미 크림슨이 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번 알아보라고 해야겠어.

카론이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간신히 붙잡으며 차갑게 눈을 빛낼 때, 로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론 님!”

“유난 떨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제가 접시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아주 그냥 간이라도 내어 줄 기세네.

“됐고, 너나 많이 먹어라. 난 내가 알아서 풀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내가 수발들라고 했냐? 같이 먹자고 했지.”

“아! 그게…….”

“너도 귀족, 나도 귀족. 둘 다 무늬만 귀족.”

같은 처지끼리 그러지 말자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먹었는지 로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카론 님.”

“그럼 가자고.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기 전에.”

그 말을 끝으로 카론은 걸음을 옮겨 음식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멜리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추천에 따라 음식들을 담은 뒤, 함께 식사하기 시작했다.

‘호오, 맛이 제법인데?’

솔직히 뭘 먹어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음식이라도 자이언트 뱃과 코아틀 고기보단 맛있을 테니까.

그런 저렴한 입맛에도 학생 식당의 음식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앞쪽에 앉은 로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입에 맞으십니까?”

“이해가 안 될 정도야.”

“네?”

“다른 녀석들은 왜 이 식당에 안 오는 건지.”

로딘과 아멜리아는 다른 녀석들이 디슘 클래스 학생들을 뜻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에 어색한 미소를 지을 때, 카론이 아멜리아를 향해 말을 던졌다.

“음식에 진심인 거야? 아니면 취미?”

음식을 담을 때, 아멜리아는 직접 조리를 한 것처럼 어떤 요리고, 뭐가 들어갔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것에 관해 묻자, 아멜리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취미이기도 하고 조리학과이기도 해요.”

“그래? 넌 좋겠다. 요리 잘하는 여자 친구 둬서.”

“해, 행복합니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하, 하, 하.”

로딘이 로봇처럼 웃었다.

왜 저렇게 웃는 건지, 왠지 알 것 같았다.

새로운 음식들이 제법 많이 실패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저렇게 영혼 없이 웃지.

그 모습에 카론이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계속 이야기해 봤자 로딘만 난처해질 것 같아서다.

“아멜리아도 4학년이야?”

“네, 맞아요.”

“그럼 19살이겠네?”

“네.”

아멜리아의 짧은 대답에 카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동갑이네. 그렇다고 말 놓을 생각은 하지 말고.”

“저희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막 수준이 안 맞아서 말을 놓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아무리 카론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어도 30살의 정신 연령까지 어려진 건 아니다.

19살짜리들한테 반말 들으려고 카론이 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니까.

하나 카론은 이런 사실을 굳이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할 이유도 없었고 해도 문제였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테니까.

그에 카론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어디 귀족이야?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귀족은 아닐 거 아니야?”

“아! 페롤 왕국에서 왔습니다.”

페롤 왕국은 대륙 북쪽에 있는 나라 중 한 곳으로 대부분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가 얼마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영지가 없었군.

워낙 척박한 나라인 탓에 귀족 중 영지와 영지민을 가진 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단순히 영지가 없어서 무시당한 게 아니었네.

페롤 왕국 자체가 약국이었다.

워낙 외지인 곳에 있고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국력을 키울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에 카론이 고개를 끄덕일 때, 로딘이 말을 이었다.

“풀 네임은 로딘 마르텡입니다.”

“…마르텡?”

“성이 특이하단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 로딘의 모습에 카론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조상님 중에 활 잘 쏘던 분 있었냐?”

“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희 조상님들 중에 활로 상급 몬스터는 물론이고 전쟁까지 멈추게 만드신 분이 계셨다고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근데 전 믿지 않습니다.”

“왜?”

“그분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죠.”

“진짜 유령이 되긴 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혼잣말이니까 신경 쓸 거 없어. 밥이나 마저 먹자고.”

“아, 예.”

로딘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시를 비워 갈 때쯤, 누군가 테이블로 다가오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말씀하신 음료 가지고 왔습니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테이블 위에 세 개의 잔을 내려놓았다.

아까 음식을 고를 때 주문했던 음료였다.

다른 음식들은 다 뷔페처럼 직접 가져가야 하는데 이 음료만은 직원이 가져다준다고 했다.

“참고로 카론 님은 원하시는 만큼 드실 수 있으니 필요하실 때 말씀해 주시면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디슘 클래스라서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좋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시기 바랍니다.”

직원이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가자 카론은 자신의 앞에 놓인 음료를 바라봤다.

물처럼 투명한 액체에서 작은 거품들이 쉬지 않고 올라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카론은 작은 미소를 베어 문 채 음료를 마시려고 했다.

순간 앞쪽에 앉아 있던 로딘이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더니 거하게 트림을 내뱉었다.

“꺼어억!”

하나 로딘은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이나를 마시고 트림할 때마다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음료의 이름은 사이나였다.

1년 전, 갑자기 대륙에 등장한 사이나는 대부분 과일의 즙을 내서 물에 타 먹는 게 전부였던 기존 음료와 달랐다.

완제품으로 유리병에 담겨서 나오는데, 한 모금 마시면 가장 먼저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거품들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톡톡 터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상큼하고, 상쾌한 향기가 콧속을 시원하게 뚫어 준다.

이런 신기한 맛과 향기는 1년 만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렸다.

오죽하면 사이나를 못 마셔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셔 본 사람은 없을 거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상한 문화도 생겼지.’

사이나를 마시면 트림이 자동으로 나온다.

하나 사람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비싼 음료인 만큼 당연히 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보다 크고 길게 트림을 하려고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사이나를 먹고 트림을 하는 게 마치 관습처럼 굳어져 버렸다.

“꺼어억.”

아멜리아마저 트림할 정도로.

그 모습에 카론이 피식 미소 지을 때, 로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론 님도 어서 드시죠. 사이나는 빨리 안 마시면 기포가 다 날아가서 맛이 덜해집니다.”

“또 시키면 되지.”

“아, 그렇네요. 하. 하.”

로딘이 어색한 웃음을 내뱉었다.

사이나는 워낙 고가의 음료라 일반 학생들에겐 한 잔씩밖에 제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에 로딘이 부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카론이 사이나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던졌다.

“부러워할 거 없어. 너도 곧 이렇게 될 거니까.”

“예?”

의아한 표정을 짓는 로딘을 뒤로한 채, 카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다른 음식들도 조지러 가 볼까?”

그리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음식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거 다음에 올 땐 몇 명 꺼내 줘야겠는데?

엘-마르에 있는 영혼들을 떠올리며 음식을 담으려고 할 때,

-이 잡귀 새끼는 뭐야! 당장 안 꺼져!

식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오직 카론만이 들을 수 있는 귀신의 목소리가.

카론이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거구의 영혼이 왼손에 국자를, 오른손엔 식칼을 든 채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가 인간 몸에 들어가서 음식 처먹으래! 당장 안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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