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운디네의 눈물에서 벨테르의 말을 들은 카론은 바로 크림슨에게 의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만난 크림슨에게 부하로 거둔 귀신들을 아카데미 곳곳으로 보내 감시하게 했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발견할 수 있게.
카론 역시 디카트로로 바로 가지 않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녔다.
귀신들이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곧장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쯤 돌아다녔을까.
멀리 디카트로에서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할 때쯤,
-수상한 자들을 찾았다!
크림슨에게서 의지가 전해져 왔다.
-어딘데?
-지금 호수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엘-마르를 통해 전해져 오는 크림슨의 의지에 카론은 곧장 운디네의 눈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호수에 도착한 카론은 수상한 자들을 발견하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바로 멜빈 교수와 일반 학부 학생 둘이었기 때문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호수를 향해 주먹만 한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그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함 그 자체였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카론은 일부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 공기 좋다!”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듯 목소리를 내며 평소 앉던 벤치로 향했다.
그리고 멜빈 교수 등이 어떻게 반응하나 살폈다.
“헉!”
기겁하는 소리와 함께 멜빈 교수 등이 바닥에서 시커먼 로브를 집어 들더니 부랴부랴 입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시에 세 사람의 모습이 꺼지듯 사라졌다.
스르륵.
그에 카론은 차갑게 눈을 빛낼 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사방으로 영혼력을 퍼트려 왔기에 세 사람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건지 바로 눈치챘기 때문이다.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채 빠르게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카론은 가만히 호수를 보는 척하며 영혼력을 통해 호수를 벗어나는 세 사람에게 집중하며 엘-마르에서 디알로를 끄집어냈다.
-카론 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갑작스러운 부름에 디알로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카론이 멜빈 교수 등이 호수에 무언가를 던진 걸 떠올리며 의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놈들이 운디네의 눈물에 수작을 부린 거 같으니까 네가 디카트로와 호수를 좀 지켜보고 있어.
-그런 거라면 당연히 제가 가야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된 일인지 지켜보겠습니다.
정령에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카론은 크림슨 대신 디알로에게 이번 일을 맡겼다.
그리고 세 사람이 막 호수를 벗어나려고 할 때, 셀리나와 링크해 은밀하게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자! 어디로 가는 거냐!
이미 세 사람의 얼굴은 확인했기에 지금 당장 잡지 않아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과연 저들이 어디로 가냐는 거니까.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이 따라오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에 카론은 내심 기대했다. 딱 봐도 담이 작은 이들이었기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으로 향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이나 아지트 같은 곳 말이지.
카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 멜빈 교수가 품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쯔아아앗!
잠시 후,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시커먼 입구가 나타났다.
이거 뭔가 제대로 잡은 거 같은데?
카론은 차갑게 눈을 빛내며 멜빈 교수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나 그걸 알 리 없는 멜빈 교수는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커먼 입구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스파아앗!
눈앞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지하 동굴로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던 곳이기에 멜빈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뒤따라온 학생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교, 교수님, 카론 백작님이 우릴 발견한 건 아니겠죠?”
“만약 카론 백작님한테 저희의 정체를 들키기라도 했다면…….”
“걱정할 거 없다. 우리를 전혀 보지 못한 모습이었으니까.”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정말 괜찮겠죠?”
학생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자 멜빈 교수는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순간, 뒤쪽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목소리에 멜빈 교수가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창백한 얼굴을 한 40대 중반의 남자가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제법 잘생긴 남자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인도.
세 사람의 모습에 멜빈 교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둠의 종님들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말해라.”
“예, 1호님.”
멜빈 교수가 긴장된 표정으로 창백한 남자인 1호의 질문에 답했다.
“운디네의 눈물에서 계획을 이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카론 백작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저희가 먼저 발견하고 어둠의 로브로 모습을 감춘 채 곧장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그 대답에 1호가 미간을 좁힐 때, 뒤에 서 있던 제법 잘생긴 남자인 2호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던졌다.
“그놈은 왜 디카트로에 있지 않고 싸돌아다니는 거지? 이거 가서 유인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3호 너의 생각은 어떻지?”
“그냥 놔둬도 되지 않겠어? 어차피 호수에 있었다며? 그럼 그놈이 깨어나는 게 더 잘 보일 거 아니야?”
“그렇긴 하겠네. 그리고 카론 그놈만 목표로 삼은 건 아니잖아?”
2호까지 거들고 나서자 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멜빈 교수를 바라봤다.
“정령석은?”
“마침 마지막 것을 던지는 순간 카론 백작이 나타나서 계획은 완전히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문제없이 깨어나겠군.”
“그래야지. 호수에 쏟아 넣은 불의 정령석이 몇 개인데.”
“아쉽네. 살려고 아등바등거리는 걸 직접 못 보다니 말이야.”
2호와 3호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할 때, 1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아라. 곧 질리도록 보게 될 테니까.”
“그렇지. 곧 그렇게 되겠지. 그분께서 깨어나시면.”
“정말 기대가 된단 말이야. 어떤 모습으로 깨어나실지!”
그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도 기대가 되는데? 너희가 말하는 그분이란 놈이 누군지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퍽퍽퍽!
그와 동시에 멜빈 교수와 학생들이 두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 모습에 어둠의 종들이 표정을 굳히며 각자의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1호는 마나석이 박힌 작은 완드를, 2호는 검은색 일색인 두 자루의 단검을, 3호는 무기 대신 어둠의 정령을 소환했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각자의 힘을 펼쳤다.
“혼란으로 가득 차거라! 게르미크!”
“스프라이트! 어떤 놈인지 당장 찾아내!”
주술과 명령이 공간을 울릴 때, 2호가 그대로 시커먼 연기로 화하며 사라졌다.
1호가 혼란스럽게 만들면 3호가 어둠의 정령으로 적을 찾아내 어둠 속에 녹아 있던 2호가 목숨을 끊는다.
이게 지금까지 그들이 해 왔던,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던 사냥 방식이다.
하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사냥감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것을.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녹아들었던 2호가 나타났다.
고통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나온 시커먼 손을 내려다본 채로.
그에 1호와 3호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2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피라크 아투라!”
“스프라이트! 어둠의 장막!”
2호의 발아래에서 어둠이 피어오르더니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커먼 박쥐처럼 생긴 어둠의 정령이 거대하게 변하며 날개로 회오리치는 공간을 그대로 감싸 안았다.
콰드드득.
살과 뼈가 조각나는 소리가 동굴을 울릴 때, 1호와 3호의 뒤에서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해 놔. 그래야… 죽어서도 쉽게 입을 열 수 있을 테니까.”
우드득!
3호의 목이 그대로 꺾이며 바닥으로 허물어지자 1호가 이를 악문 채 주술을 펼쳤다.
“피르카레아!”
1호의 몸이 그대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마치 그림자처럼 시커먼 형체만이 존재하는 이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윽!”
“그렇게는 안 되지. 어떻게 찾았는데.”
“네놈은… 누구냐.”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누군지.”
시커먼 존재, 아니 카론이 바닥에 박힌 1호의 몸을 그대로 끌어 올리며 심장에 손을 박아 넣었다.
푸우욱.
“쿨럭.”
1호가 붉은 피를 토해 내며 카론을 노려봤다.
“무의미한 짓을 하는구나.”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너희들이 왜 죽었는지.”
그렇게 말하며 가슴에 박아 넣었던 팔을 빼자,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푸아아악!
동시에 1호의 머리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놈을 처리한 카론이 곧장 손에 영혼력을 집중해 1호의 몸에서 영혼을 끄집어냈다.
-끄으으으.
아직 죽음의 고통이 남은 걸까.
1호의 몸에서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영혼이 딸려 나왔다.
그런 영혼을 바라보며 카론이 차가운 표정으로 의지를 보냈다.
-너희가 말했던 그분이란 자가 누구지?
그 질문에 1호의 영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론을 바라봤다.
그리고 섬뜩한 미소를 베어 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크크.
비릿한 웃음까지 흘리는 놈의 모습에 카론이 미간을 좁힐 때였다.
파아아앗!
손에 쥐고 있던 영혼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에 카론이 얼굴을 굳히며 2호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하나 어찌 된 일인지 2호는 물론이고 3호의 시신에도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로 돌아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