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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도 귀신을 봅니다-155화 (155/272)

155.

무려 5개월 동안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어둠의 숲은 광활했다.

초반에 망령들을 찾아다니느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걸 고려하더라도 숲의 크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오늘이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착각하지 말라는 듯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어둠밖에 없었다.

카론은 망령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짧게 혀를 찼다.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거야?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빠르게 사라졌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라도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왜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이종족들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건지, 끝으로 향할수록 망령과 몬스터들이 더 강해지는 건지, 그리고 무엇이 영혼들을 가두고 이지를 상실시켜 망령으로 만든 건지 말이다.

이런 궁금증들은 3년 전, 마지막 격전지에서 머물 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격전지 영웅들이 남긴 영혼력만으로도 벅차서 굳이 다시 망령들을 잡을 필요가 없었고, 몬스터도 식량 삼아 자이언트 뱃과 코아틀만을 사냥하면 됐기에 숲 안쪽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이번에도 여기까지 올 생각은 없었다.

원하는 것들을 이루면 곧장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망령들과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쌓이기 시작한 궁금증은 어느새 발걸음을 숲의 끝으로 향하게 했다.

지금 아니면 확인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어디 끝까지 한번 가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카론은 밀려드는 망령들과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앗!

크아앙!

망령들은 새하얀 빛으로 화해 카론의 몸 안으로 흡수됐고, 몬스터들은 두 동강이 난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며 나아가길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망령들과 몬스터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됐다.

그 광경에 카론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변화는 때론 참으로 중요한 요소로 보일 때가 있다.

어둠의 숲처럼 어디든 같은 곳처럼 보이는 장소에선 더욱더 그러했다.

스아아아아!

망령과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숲 안을 가득 채웠다.

카론은 걸음을 멈춘 채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 망령들까지 사라진 지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카론의 눈에 보이는 건 어둠밖에 없었다.

그에 모든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 순간,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며 카론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쩌어어엉!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간신히 방어했지만, 너무도 강한 힘에 카론의 몸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나무와 충돌했다.

퍼어어억!

온몸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통증에 카론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힘도 다 회복했고, 감각도 최상인 상태인데도 말이다.

지금까지 상대하던 놈들과는 다르다 이건가?

카론은 그동안 최소한의 영혼력만을 사용해 망령들과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처음엔 애를 먹었다.

눈에 훤히 보이는 망령들과 달리 몬스터들은 워낙 은밀하고 빠른 데다 어둠까지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영혼력을 사방으로 퍼트렸다면 애를 먹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무리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고 한들 놈들의 영혼이 망령들처럼 고스란히 느껴졌을 테니까.

하나 카론은 끝까지 영혼력을 퍼트리지 않았다.

퀴트이라를 상대하고 난 뒤, 그동안 영혼력들을 너무 남발해 왔다는 것과 육체의 감각들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개월 동안 영혼력을 미세하게 조절해서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연습하는 한편, 그동안 등한시했던 감각을 확대, 강화하는 데 힘썼다.

그 결과 굳이 영혼력을 퍼트리지 않아도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고, 미세한 영혼력만으로도 몬스터를 두 동강 낼 수 있게 됐다.

거기다 원하던 것들까지 이룬 상태였기에 예전보다 월등히 강해진 건 아니었지만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 건 확실했다.

그런데도 이런 꼴을 당했다면… 그냥 설렁설렁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카론이 차갑게 눈을 번뜩일 때, 뒤통수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에 카론이 그대로 회전하며 손에 든 검을 뻗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와 충돌했다.

쩌어어엉!

그 순간 카론은 자신의 검과 충돌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악귀가 펼쳤던 시커먼 촉수처럼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좀 달라 보였다.

마치 시커멓고 기다란 실타래들이 뭉쳐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정확한 확인이 더 필요했기에 카론은 땅을 박차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무언가를 뒤쫓았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으며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사방에서 기다란 무언가들이 소리도 없이 쏘아져 왔다.

카론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자신을 공격하는 무언가들을 모조리 쳐 냈다.

쩡쩡쩡!

그와 동시에 무언가의 주인을 향해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파앗!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카론의 시야로 어둠 속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무언가의 주인이 들어왔다.

크르르르!

자신이 들켰다는 걸 눈치챈 건지, 무언가의 주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번쩍!

세 개의 회색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카론을 향해 아가리를 한껏 벌린 채 포효했다.

크아아아아!

어둠의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의 주인은 이곳까지 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이 잡았던 최상급 몬스터인 다크 카이샥이었다.

아니, 저걸 카이샥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지금까지 상대했던 카이샥의 크기는 대략 2, 3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한데 눈앞에 있는 놈은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거기다 다른 카이샥들은 눈이 한 쌍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놈은 눈이 총 세 개였다.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 뻗어 나온 털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했던 무언가들이 바로 저 털들이란 걸 깨달을 때, 카이샥이 포효를 멈춘 채 땅을 박찼다.

스르륵!

거대한 몸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짐과 동시에 카론은 본능적으로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에 빠르게 뒤로 물러나자, 시커먼 빛을 띤 거대한 발과 발톱이 카론이 서 있던 공간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듯 땅이 터지며 흙먼지가 솟구쳐 오를 때, 카론은 이미 카이샥의 머리 위로 이동한 뒤였다.

카론은 그대로 떨어져 내리며 역수로 쥔 검으로 놈의 대가리를 내리찍으려고 했다.

모든 게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놈에겐 통하지 않았다.

겉모습만 다른 카이샥과 다른 게 아니라는 듯 귀신같이 카론의 존재를 눈치채곤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는 털들을 쏘아 보냈다.

털들이 서로 뭉치며 송곳처럼 변해 소리 없이 날아오자, 카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쉴드!”

몸 주변으로 마나들이 몰려오며 순식간에 투명한 막을 형성했다.

예전엔 의지를 이용해 마법을 비슷하게 흉내 낸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쩌저저저정!

하나 쉴드로 놈의 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카이샥의 몸을 두 동강 내 버리는 검까지 막던 털들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카론 역시 예측했던 결과였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진짜 원한 건 털들을 막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버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털들이 쉴드를 부수느라 잠시 멈칫거릴 때, 놈의 머리에 도착한 카론은 그대로 검을 쑤셔 박았다.

쩌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 나오려고 하자 카론이 손에 힘을 주며 영혼력을 더 불어넣었다.

우웅!

나지막한 울림과 함께 카론이 다시 팔에 힘을 주자 검이 놈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푸우우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카론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익스플로전!”

지이이잉!

주변의 마나들이 놈의 머리에 박힌 검끝으로 몰려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불꽃으로 화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머리 반쪽이 날아가자 놈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거대한 몸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아아!

고통 가득한 신음을 내뱉는 놈의 모습에 카론이 머리에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스파앗!

검에서 새하얀 빛의 칼날이 쏘아져 나와 놈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푸욱!

빛의 칼날이 목 속으로 사라졌다가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놈의 목이 절반 이상 잘린 채 아래로 기울어졌다.

카론은 땅에 내려선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놈의 머리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머리와 목에서 피 한 방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놈은 뭐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할 때, 괴이한 소리와 함께 반쯤 박살 난 머리와 덜렁거리는 목이 빠르게 본래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한 놈이 살기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카론을 노려봤다.

이것 봐라?

그에 카론이 차갑게 눈을 빛낼 때,

-크르르! 죽여 버리겠다, 인간.

뇌리로 강렬하고 난폭한 의지가 전해져 왔다.

카론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이샥을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말이야.”

지금까지 의지를 보내온 몬스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최상급 몬스터인 트윈 오우거와 레드 와이번조차 그냥 흉포함에 찌든 생명체에 불과했는데, 눈앞의 몬스터는 너무도 또렷하게 자신의 의지를 보내왔다.

그에 더욱 짙어진 궁금증을 고스란히 드러내자, 카이샥이 거대한 이빨을 한껏 드러냈다.

-네놈은 절대 그분께 갈 수 없다!

그분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의지에 살짝 미간을 좁힐 때, 카이샥이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아!

그에 카론 역시 검에 영혼력을 밀어 넣으며 그대로 땅을 박찼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우우웅!

칼날 위로 오러 블레이드와 같은 새하얀 빛의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아앙!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던 숲에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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