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건 예상 못 했는데 (2)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은 가톨릭의 선교사셨다.
“이삭아,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쁜 아이니까 지옥에 가겠죠?”
“아니. 네 이번 달 용돈이 없어진단다.”
정말로 선교사셨다.
물론 그 아들은 훗날, 해골바가지가 되어 땅에 묻히는 게 아닌 극악무도한 악마들의 수장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그 부분은 크게 상관없었다.
그들은 아들이 악마든 수라의 길이든 상관없으니, 그저 자기 행동에 책임 못 질 짓만 하지 말라는 부모님이셨으니까.
때문에 해골왕도 지금껏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살아오며 2회 차 삶에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뼈다귀… 뼈다귀…….’
본인의 모습만큼은 수백 년이 흘러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자존심을 굽히고 적들인 신들과 고용계약을 할 정도로 인간이 되고 싶다고…….
그랬지.
그랬는데.
“어머, 아기 성자님께서 깨어나셨군요.”
뭐지? 이 개 같은 상황은?
해골왕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벌레 안에 갇혀 있어야 할 자신이 왜 이딴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성자?’
성자아아?
성자(聖子)라고 하면 자고로 극악무도하고 쪼잔하기 짝이 없는 신성 진영의 우두머리 격이 아닌가!
실제로 해골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때는 자신이 아직 하급 스켈레톤이었던 시절.
-죽여라! 마수는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버려!
인간 새끼들이 그깟 빵 좀 물고 갔다고… 아니 솔직히 빵이 좀 많이 크긴 했는데, 아무튼 그깟 빵 좀 물고 갔다고 낑낑 우는 새끼 마수한테도 성기사가 몇 마리나 붙는 건지.
-아, 저기! 스켈레톤이 데리고 도망친다! 처리해라!
새끼 마수를 구하러 갔다가 신성마법 한 방에 성불할 뻔했던 그였다.
하물며 언데드왕 리치가 된 이후에는 또 어떠했는가.
-마족의 영토를 쓸어내라!
신성 진영 놈들은 툭하면 남의 영토에 쳐들어와 귀찮게 하는 놈들이었다.
물론 대국(大國)의 사자란 놈들이 남의 땅에서 헛짓거리 하길래, 열 받아서 대충 그 대표자를 두들겨 패서 매달아 두긴 했는데…….
-마왕이 성녀를 두들겨 패서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이는 분명한 선전포고다!
조금 과했나 싶은 면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해골왕에게 있어 신성 진영은 참으로 극악무도하고 쪼잔한 놈들이었다.
아무튼 성자란 존재는 처음이지만, 아마 그가 두들겨 팬 성녀와 비슷한 존재일 것이었다.
‘성녀는 1대부터 80대까지 전부 울려서 신성제국으로 돌려보내긴 했지만 아무튼.’
성자란 것 역시 다를 바 없을 거다.
신의 이름을 앞세워 마족을 오체분시하려는 놈들일 터.
그런데 왜 자신을 성자라고 부른단 말인가.
아니, 사실 그 이전의 문제였다.
‘왜 인간이 되었지?’
뭐지?
졸지에 갓난아기가 된 해골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부족해 완전히 분석을 끝낼 순 없었지만 자신에게 날아온 <봉인>은 신성 술법. 즉, 성법(聖法) 중에서도 최고 계위 성법.
<재해진멸(災害殄滅)>
분명 신에게 대적하는 놈들을 가두는 봉인술이었다.
심지어 어디로 달아나든 영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과거 대재앙들도 벌레 따위에 갇혀 신들에게 굴복했다고 했고 말이다.
옛날 옛적에 사라졌다는 태고급 성법이 어떻게 나온 건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그만한 위력의 성법이었다.
‘마지막에 방해하긴 했지만, 그만한 술법이 내 영혼을 놓칠 리가 없지.’
그런데 구더기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 들어왔다고?
그것도 성자의 몸에?
뭐지?
뭐 하자는 거지?
해골왕은 진지하게 놈들의 의도를 고민해야만 했다.
‘설마 이것들이 부려먹은 게 미안하긴 하니까, 최소한의 양심으로 인간의 몸에 보내 줬다거나…….’
아니, 절대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새끼들이 어떤 놈들인데.’
놈들은 자급자족으로 부하들을 힘들게 먹여 살리는 자신을 보며, 툭하면 돈 자랑을 하면서 역시 마족은 빈곤한 해골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네 어쩌네, 지껄이는 놈들이었다.
물론 설마하니 이름을 건 정식 계약까지 깨버릴 줄은 몰랐지만, 끝까지 자신을 인간으로 안 만들어주려 한 것도, ‘언데드 마왕’에게 신성 약점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했던 거겠지.
오죽하면 악마보다도 신성력에 약한 게 언데드였다.
‘하여간 고용계약도 무시하고 보수나 떼먹는 악덕 업주 새끼들 같으니.’
그래서 더욱 이상했다.
놈들이 왜 굳이 하찮은 벌레 따위에 자신들을 봉인하려 했겠는가.
지들만 잘나고 오만한 놈들의 성격상, 자신을 벌레에 가둔 뒤 평생 고문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술법이 빗나간 거지.’
가능성이 있다면 딱 하나.
-우리들의 왕, <이사악>이시여!
-소용없다. 여기에 이름이 적힌 자는 그 누구도 꼼짝할 수 없으니.
‘그래, 이름!’
자신의 이름은 이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백날 고쳐주어도 여기서 알아먹는 이름은 어째서인지 <이사악>이었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때문에 허점이 생긴 거구나?’
이름을 적은 장소에 영혼을 봉인하는 술법인데, 애초에 전제가 틀려 버렸으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왜 이 몸으로 들어왔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지만.
도대체 왜?
‘설마 이 애새끼의 이름이 이삭이라든가…….’
그러나 곧 해골왕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 없…….’
그런데 그때였다.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마구 흔들었다.
“까꿍, 아이작 님, 여기 보세요! 울면 사악한 마왕 놈이 잡아간답니다, 아이작 님 까꿍!”
“어머, 아기 성자님의 이름을 막 부르면 어떡해요!”
“아, 죄송합니다. 울려고 하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당신 얼굴 때문이잖아요, 비켜요!”
동시에 해골왕은 역시 그것 보라며 비웃었다.
‘봐, 아이작이라잖아. 이름이 같을 리 없…….’
아니 잠깐.
…아이작?
아이작(Isaac)?
‘그거 그냥 이삭(Isaac)의 다른 발음 아냐?’
해골왕은 당황스러웠다.
설마 진짜로?
물론 <감정(鑑定)> 마법을 쓰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발, 하필 들어와도 버러지 같은 신성 진영 인간의 몸뚱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뭔 개 같은…….’
때문에 해골왕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와 인간 모미야 개조타!”
자신도 모르게 옹알이를 한 해골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이 헛나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냐, 아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명색이 마왕인데 신들 앞잡이의 몸에…….’
“손바닥에 감촉이 있써, 후각도 어ㅏㅁㅇㄴ 엄으앵 뼈가 아니야!!!”
다시 침묵한 해골왕은 기침을 했다.
‘그래도 시발, 남자가 자존심이…….’
“시발, 이걸로 찌킨도 먹을 수 있써! 한으님 갑ㅁ사합니다!”
생각과 말이 따로 노는 해골왕의 모습에 유모와 시종 추정자들이 놀라며 웃었다.
“어머, 아기 성자님은 옹알이도 잘하시네.”
“뭐? 말도 안 돼, 벌써? 역시 성자님이라 다르신 건가?”
“…….”
남들에겐 그냥 옹알이로 들리는 모양이었지만 해골왕은 크흠 기침을 했다.
‘애새끼라 머리랑 몸이랑 따로 노네.’
결국 해골왕은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평소엔 찾지도 않던 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신들 새끼 빼고 그냥 다 감사합니다.’
해골왕은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게 수백 년 만에 느껴보는 시력과 냄새, 촉각이었다.
‘병신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그깟 봉인도 실패하고! 꼴좋다!’
그렇게 치졸하게 계약을 파기할 정도로 인간으로 만들어주기 싫어하더니!
죽어버린 신경에 슬픔의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상한 것이었다.
‘왜 해골로 안 변하지?’
그도 그럴 게 그의 영혼에는 저주가 걸려 있었다.
⸢생사반전(生死反轉)⸥(절멸급)
이 세계로 넘어올 때 붙은 저주인지, 신들도 경외시하며 제거하지 못하는 최고 계위 저주였다.
대충 살아 있는 모든 걸 죽음으로 바꾸는 것인데, 자기 자신조차도 죽음 속성으로 바꾸기에 해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 증거로 이 몸도 자신의 영혼이 닿자마자 즉시 살가죽이 벗겨지며 시체로 변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왜지?’
설마 신도 제거하지 못한 저주를 누르고 있는 건가?
이상해진 해골왕은 잠시 눈을 감고 몸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뭐야, 이거!’
대마도사라 불리며 마법과 감지에 있어선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몸이 아니다.’
괜히 성자라 불리는 게 아닌 걸까.
고작해야 어린아이지만, 체질적으로 그 어떤 힘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무제한으로!
해골로 변하지 않은 것도 분명 이 축복성과 연관이 있으리라.
‘도대체 축복을 얼마나 때려 박았길래.’
게다가 놀랍게도 이 몸의 주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숱한 영혼들이 이 몸에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유일하게 안착한 게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안 들어왔다면 육신 자체가 죽었을지도.’
동시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몸만 있으면 신의 힘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천재…….
해골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아냐.’
아무리 그릇이 좋아 보여도 자존심이 있지.
성자면 어쨌든 신성 진영일 것이고, 놈들은 모두 신들을 섬기며 강하게 해주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앞잡이가 되라고?
‘돌았냐?’
마지막 순간에 자폭해서 엿을 먹이긴 했지만 고작 그걸로 속이 시원할 것 같은가.
‘일단 나랑 계약한 주신 새끼들은 가만 안 둘 거고.’
그런데 마왕이 그 더러운 사기꾼들의 앞잡이 육신 따위를…….
그때였다.
“폐하께서도 이번 계시로 내려온 성자님을 찾아 귀하게 모시라고 하셨으니, 분명 이목이 쏠릴 것입니다.”
폐하?
제국의 황제?
해골왕은 눈알을 또르륵 굴렸다.
‘음… 뭐 그래. 귀빈 취급이라면 잠깐은 있어도 되겠지.’
어차피 당장 여기서 나가봐야 돌아갈 수 있는 몸도 사라졌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오래 있을 몸은 아니다.’
그러니 그사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그래도 한편으로는 가엾네요. 굳이 성자로 점지받지 않으셨어도, 출생부터 존귀하신 공자님이시니 분명 부족함 없이 자라실 텐데.”
…음? 공자? 공자?
“하긴, 신성제국 5대 명문 공작가의 도련님이시니까요.”
그 말을 들은 해골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공작가 아들?
귀족?
…그러니까 다이아 수저?
“그런 분이시니 더욱 조심해야죠. 아기 성자님을 노리고 어디서 달려들지 모릅니다.”
“특히 마족들이 노리고 올지 몰라요.”
해골왕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성자 최고지. 금수저 최고지. 알아서 지켜 주기까지 하시네.’
“어머, 성자님이 웃으세요. 뭔진 몰라도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아기 마왕은 낄낄낄낄 웃었다.
애초에 성자 성녀가 무엇인가. 위급할 때 신들을 먹여 살리라고 만든 놈들 아닌가.
신의 대행자 아닌가!
그럼 그냥 자신만 입만 다물고 탱자 탱자 즐기면, 신들이야 알아서 굶어 죽을 것이 아닌가!
봉인한 줄 알았던 마왕이 지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성자 안에서 신성제국의 양식을 축내며 잘 먹고 잘살고 있었다고 하면?
혈압이 올라서 뒷목 잡겠지!
‘아니지.’
신성제국은 신들을 먹여 살리고 부흥하게 하는 일종의 신들의 자국가였다. 그것도 유일한.
그럼 오히려 신성제국을 멸망시키면 신들도 같이 멸망하는 거 아냐?
“어머, 아기 성자님이 정말 방긋 웃으세요.”
“왜 이렇게 기분이 좋으시지?”
그래, 굳이 신들을 직접 찾아가서 귀찮게 힘을 소모할 필요도 없지.
‘일단 나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자.’
안 그래도 여기 있는 세 명의 시종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마족들이 성자를 노리고 있다고.
그럼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알아서 부하들이 오는 것이 아닌가?
만일 여기가 신성제국 근처라면 마족 진영은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부잣집에서 배부터 채우며 기다리자.
‘유일한 문제는 목도 가누기 힘든 애새끼라는 것뿐이군.’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지금 옆에 있는 이 시종… 아니, 유모인가.
상황을 보아하니 저택으로 가는 길인 건지도 몰랐다. 실제로 함께 마차를 탄 그들은 하늘을 보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어요.”
비가 오면 삭신부터 쑤시는 해골왕은 잘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래. 어서 가자, 유모. 배고파서 힘도 안 나온다.’
그런데 그때였다.
자신을 안고 있던 여인이 아쉽다는 듯 쓰다듬었다.
“그럼 마음이 아프지만, 슬슬 시작해야겠네요.”
“예. 성자 후보인 이상 역시 죽일 수밖에 없죠.”
…엥?
해골왕은 움찔했다.
죽여?
뭔가 이상했다.
“아쉽네요, 이렇게나 잘 웃는 예쁜 분이신데.”
“어쩔 수 없지, 성자는 우리 가문에서 나와야 하니까. 그래서 이 핏덩이를 굳이 납치해온 것이 아니겠어.”
이야기가 점점 뭔가 묘하게 흘러갔다.
“가주는 이 아이에 대해 눈치챘고?”
“아뇨. 그 전에 데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계획대로라는 듯 단검을 뽑아 들었다.
자신을 향해 번쩍이는 칼을 보며 해골왕은 하얗게 굳었다.
…아니 잠깐.
얘들, 유모 아니었어?
“잘 가라. 꼬마야.”
번쩍!
시발! 암살자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