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화 (3/272)

제3화. 이건 예상 못 했는데 (3)

뭐 그래, 그렇지.

분명 옛날 옛적 고리짝 성서에서 현인들이 말했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자고로 일하지 않는 새끼는 처먹지도 말라.

아니 뭐, 솔직히 놀고먹는 다이아 수저란 말에 눈이 돌아간 건 맞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죽으란 건 좀 아니지?!’

해골왕은 눈앞에서 번쩍이는 흉기의 모습에 욕을 읊조렸다.

그들이 꺼낸 건 뾰족한 스틸레토 나이프였다.

그리고 그게 흉기란 걸 인지한 바로 그 순간, 그 흉악한 검신이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콰직!

송곳과 같은 날이 옷을 가르고 어깨 옆에 꽂혔다.

“띠ㅂ……!”

놀랄 틈도 없었다.

‘망할!’

필사적으로 옆으로 돌아누운 해골왕은 쌍욕을 흘렸다. 아찔하긴 하지만 가까스로 칼날은 피했다.

아니, 사실 피했다기보다는 상대가 멈칫했다는 쪽이 맞았지만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진짜 젖먹이한테 칼을 들이대?’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손 크기만 대충 가늠해봐도 영아가 분명한데!

덕분에 당황한 해골왕은 암살자들을 다시 살폈다.

화려하거나 고급지진 않지만, 단정한 베이지 색 망토와 바지 그리고 치마.

하나같이 적대 관계인 신성 진영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던 고용인의 복장이었다.

게다가 쓰는 단어나 행동으로나, 하급 하인은 아니었다.

‘당연히 유모인 줄 알았지.’

아니 그보다 죽여?

신성제국 사람이 성자를? 왜?

당황한 해골왕은 이놈들이 지껄인 말을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뭐라고 했지?

성자 후보?

‘성자는 자기네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나?’

그러나 생각하려는 것도 잠시, 다시 칼날이 날아왔다.

그걸 본 해골왕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콰직!

또다시 칼을 피한 해골왕은 쌍욕을 내뱉었다.

‘이 싹수없는 것들은 대화와 소통이라는 걸 안 배웠나!’

날카롭게 머리를 드러낸 칼은 아이를 찌르지 못하고 다시 올라갔다.

동시에 혀를 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우리 아기님이 갑자기 왜 이렇게 움직이실까.”

왜긴 왜야. 니들이 달라는 밥은 안 주고 헛짓거리를 해서지!

“손발을 아예 묶어둘까요?”

갈수록 가관인 이야기에 해골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마법은… 쓰지 못할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몸이 바뀐 직후였다. 지식이나 기술은 있어도 그걸 몸이 따라줄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몸. 신의 축복을 받아 어떤 힘이든 담을 수 있다곤 했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지. 아직 뭘 담지도 않았거늘!

‘마력을 담으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아주 조금이라도 좋았다.

놈들을 기절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마력만 있으면!

그때였다.

“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요?”

“!”

그렇지!

세 명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시종이 난처한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래도 정상인이 있을 줄 알았어.’

아무리 그래도 신성제국 사람이 성자를 암살한다는 생각이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 어서 말려라…….’

“칼은 피가 튀기잖아요. 목을 졸라서 처리하죠.”

아니 이 자식은 한술 더 뜨고 앉았네?

해골왕은 속으로 뒷목을 잡았다.

도대체 이놈들은 어느 가문에서 왔길래 죄다 이 모양인 건지.

생각 같아선 이놈들의 가주부터 찾아내 머리를 갈기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다른 쪽이었다.

‘일단 <마력핵>부터 만들어야 한다.’

<마력핵>

그건 쉽게 말해 마법의 원동력이 되는 마력(魔力)을 담는 저장고였다.

그리고 그 마력핵이 있어야 비로소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신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마법부터 쓸 수 있어야 했다.

신들에게 들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 거지 같은 벌레에 갇히거나, 성직자들에게 들켜 소멸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마법(魔法)이 원래는 마족, 용 등 마물의 고유한 힘이었다는 것이지.’

그 때문에 마물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력핵을 심장처럼 가지고 있지만, 인간들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했다.

물론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크기와 형태가 이미 정해져 있는 마물과는 달리, 인간은 후천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한이 전혀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들인 시간에 따라 거대한 호수가 되기도 하고, 좁아터진 우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마법사들이 말하는 천골(天骨)의 재능은 거의 거기서 갈렸다.

그런 마당에 지금 당장 급하게 마력을 개통한다?

‘기껏 5대양(五大洋)을 씹어 먹고도 남을 몸뚱이를 두고, 모기 웅덩이를 만들 일 있냐?’

그뿐이 아니었다.

마력핵은 파괴될 경우 마물은 즉사, 인간은 식물인간이 되는 절대 급소였다.

적들도, 신들도, 당연히 제일 먼저 노리겠지.

그런 만큼 마력핵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경도로 만드는 게 무조건 좋다.

‘뭐 지금은 그런 최상급은커녕, 평범한 마력핵도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약한 아기의 신체는 마력핵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서 죽기 때문이었다. 괜히 잘나가는 마법사들조차 3세 미만의 영아들은 쳐다도 안 보는 게 아니다.

즉,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세 살까지는 마법을 못 쓴다는 이야기지만…….

‘그건 딴 놈들 이야기지.’

해골왕은 마법의 신도 경계하는 대마도사였다.

마법의 대가라는 드래곤들조차 정밀성 문제로 기피하지만, 해골왕은 완벽하게 설계해낼 수 있었다.

이 몸도 아주 갓 태어난 핏덩이는 아닌 것 같으니, 닷새만 시간을 주면 충분할 것 같지만… 5일은 개뿔.

‘그 전에 성직자들한테 걸리든가, 이 가짜 유모들한테 죽겠…….’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

“네?”

“내려놔봐라. 이상하게 아이한테 마기(魔氣)가 느껴지는데.”

“!”

순간 해골왕의 심장이 덜컥하고, 하인들은 어째서인지 해골왕을 급히 내려놓으며 표정이 변했다.

“성자 후보가 마기라니요. 설마 마족이 보낸 가짜인 건……!”

“잠깐,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가주께서 성자 후보의 눈과 심장은 반드시 챙겨 오라셨는데…….”

“상관없다, 명령이니 뜯어간다. 모두 입은 막고 있어.”

“네.”

푸욱!

‘시발! 이거 아동 학대야!’

의자에 눕혀져 있던 해골왕은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쿵!

이마가 바닥을 찍었다.

눈물이 핑 도는 건 덤이었다. 물론 수백 년 만에 감각을 느끼는 건 좋지만, 하필 제일 처음 만끽하는 감각이 통각이라니!

‘감격스럽네.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철철 나고 있네.’

바닥에 폭신한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았으면 눈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부잣집 마차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턱!

고사리 같은 손이 기다렸다는 듯 마차의 바닥을 짚었다.

동시에 아기 해골왕의 붉은색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쿠구궁!

해골왕이 마차의 바닥을 짚는 그 순간, 마차의 바닥에서 빛이 터졌다.

당황해서 아이를 주우려던 유모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악!”

터져 나온 빛은 마차 안을 뒤덮었고, 거친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마차의 천장까지 치솟아 오르며 하인들을 위협했다.

“뭐 해! 불부터 꺼!”

“안 꺼져요!”

“뭐?!”

해골왕은 불길 속에서 난리가 난 하인들을 보며 킬킬 입꼬리를 올렸다.

‘나한테 마력핵이 없으면, 남의 걸 쓰면 그만이지.’

어느 진영이든 생활 마법은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을 정도로 고급 마차다?

‘마법이 반드시 설치되어 있다.’

이를테면 조명이나, 보온, 항마의 기능이 있는 생활 마법 말이다.

즉, 이를 상시 발동하고 있으려면 연료를 지급할 마력핵도 함께 마차에 설치해야 했다.

이 마차도 마찬가지. 아무리 아기의 몸이라도 핵의 위치를 찾는 건 그에겐 눈 감는 일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약간의 시간과 마력만 있으면 폭주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그 증거로 보온 마법이 거칠게 폭주하며 암살자들을 위협했다.

화르르륵!

그리고 마차같이 비좁은 밀폐 공간에서 큰불이 날 경우, 보통의 인간이라면…….

벌컥!

‘그래, 그래야지.’

마차 문이 열리자 해골왕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제 활로부터 찾기 마련.

아무리 교육된 인간이라도 생존과 직결된 돌발 상황 속에선 본능적으로 마차의 문을 찾을 것이었다. 탈출을 위해서든, 연기를 빼기 위해서든 말이다.

실제로 문이 열리자 처음부터 그걸 노렸던 해골왕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낑낑 문 쪽으로 기어갔다.

폭주시킨 게 자신이니, 불길이 자신에게 안 오도록 다루는 건 일도 아니었다.

‘탈출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 꼬마 놈이.”

“?!”

푸학!

날카로운 감각이 등을 후벼 파고들었다.

‘큭!’

검이었다.

검날이 여린 피부를 가르고 지나간 듯,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 작렬했다.

뭔가 흐르는 감촉은 틀림없는 피.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자 화상을 입은 하인들이 보였다.

동시에 해골왕은 아차 싶었다.

거칠게 타오르던 불길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공급하고 있던 마력핵이 깨진 탓이었다.

‘젠장, 여기 마력핵이 너무 싸구려라 그걸 못 버티네!’

마차에 설치된 마법 설계를 조작해 마법을 폭주시켰건만, 힘을 너무 줬다.

쉽게 말해 가장 낮은 1계위 마법을 일시적으로 2계위 수준으로 올려버린 것이지만, 그걸 감당하기엔 설치된 마력핵이 너무 저급이었다.

‘감안해서 올렸건만.’

10계위 마법사인 그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마족 진영에서 쓰던 마력핵은 아무리 최하급이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인간 진영과는 질의 차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물론 신성 진영이니까 마력핵이 발달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쳐도…….

‘젠장, 더 이상 이 근처에 마력핵은 없는데.’

마법은 쓰지 못한다.

그 순간 하인이 억센 손이 해골왕의 팔을 붙잡았다.

턱!

젠장.

해골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성술은 아직 쓸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신체 부담과 양질의 상급 마력핵을 포기해서라도 마력의 즉시 개통을…….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헉……!”

해골왕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터져 나왔다. 해골왕을 붙잡으려 했던 하인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빛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성력……!”

아니 단순히 신성력을 뿜어낸 것이 아니다.

‘성법(聖法)?’

마법이 마력을 활용한 마(魔)의 술법이라면, 성법은 신성력(神聖力)을 활용한 신성한 술법.

그리고 이건 틀림없었다.

‘신체 강화 성법?’

그래서 해골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은 술법의 정체에 대해 아직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해골왕은 달랐다.

‘이건 신체를 강화하고 자가 치유력을 올리는 술법.’

대충 2계위 수준으로, 이미 하급 성직자로 인정받는 수준의 술법이었다.

실제로 등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기쁘면서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성법은 분명 신과 계약을 해야만 쓸 수 있는 성직자와 성기사들의 기술일 텐데.

설마 이미 신과 계약된 몸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그랬다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

‘비록 하급 술법이긴 하지만, 신과 계약하지도 않았는데 성법을 쓸 수 있다고?’

괜히 자신이 신성력은 아직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위장도 없이 마왕의 영혼으로 신과 계약 따위를 했다간 당연히 곧바로 들킬 테니까.

그래서 사실 고민하긴 했었다.

일정 시기까지는 성법은 못 쓰는 무능력한 베짱이 도련님으로 지내야 하나 말이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계약을 안 해도 성법을 쓸 수 있다는 소린가?’

이미 축복을 잔뜩 받고 있는 몸이라서?

아니 뭐, 성직자들의 신앙 선서나 계약 자체가 신의 종이 되는 대신, 신의 축복을 받겠다는 의미니 일리는 있지만.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여기서 <신체 강화>를 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체내 마력핵 제작에 닷새나 잡은 건, 부러질 듯한 애기 몸의 수준을 감안한 수치였다.

하지만 몸이 터지지 않는다면야!

‘오 분!’

하물며 <신체 강화> 성법 정도면 일반적인 날붙이 공격쯤이야 잠깐은 버틸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손을 뻗을 그때, 하인들이 갑자기 검을 버렸다.

쨍그랑!

“!”

그 광경에 해골왕은 흠칫 놀랐다.

뭐야, 검은 왜 버리고 다가오는데.

설마 진짜 목을 졸라 죽이려고?

아니 뭐. 저들 입장에서 이 몸은 성법을 쓰는 듯한 미지의 상대였다.

혹시라도 <무장해제> 같은 성법을 쓸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 전에 압도적인 체격 차이로 어린애 목을 부러트리는 게 확실하긴 하지!

‘젠…….’

그때였다.

“말이 다르시잖습니까. 그냥 성자 후보라고 하셨으면서……!”

“맞습니다. 세례도 안 받고 벌써 성법을 쓰다니, 성자라는 증거입니다!”

하인들의 당황한 듯한 반응에 해골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얘들 딴엔 신성제국의 사람이라고 이거 좋은 방향으로 가는 건가?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뭐, 원래는 마법을 써서 이놈들을 처리하고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이런 방향이면 이번 일은 눈을 감아줄 의향도 있었다.

물론 용서가 아니라, 손과 발의 대용품이었다.

애초에 이런 아기 몸으로 어딘지도 모르는 자택을 찾아간다는 건 굉장히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나름 신성제국의 성자의 몸에 들어온 것이었다.

슬슬 힘이 아닌 논리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이 아기는 죽이지 않는다.”

암살자들의 말에 해골왕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그래. 불필요한 싸움은 좋지 않지.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죽이지 않고, 유괴한다.”

응, 그냥 전부 죽이자.

해골왕의 몸에서 빛이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