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5화 (5/272)

제5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1)

“세상에, 누가 이런 짓을…….”

신성제국 헬라 중동부 일대.

평소라면 인적 없이 고요할 숲 지대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범인들이 모두 이 꼴이 되다니.’

납치됐다는 성자를 찾으러 온 것은 좋은데, 납치범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한 명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다른 둘은 거품을 문 채 기절했다.

하다못해 그들 모두, 계급의 차이는 있어도 엄연히 정식 성기사들이었다.

유괴범이 성기사란 말에 당연히 잡기 까다로울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따야.”

“…….”

쓰러진 유괴범들 사이에서 혼자 웃고 있는 젖먹이의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다.

곧 긴장 어린 수색대의 시선이 군의관에게 향했다.

“어떠한가?”

“자세한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범인 둘은 정신이 붕괴되어 있고, 하나는 머리뼈가 완전히 박살이 났습니다. 이 정도 위력이면 최소 6계위 이상 술자의 짓이겠죠.”

그 말에 수색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6계위면 혼자서 왕국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영웅급의 영역.

“6계위면 상급 능력자가 아닙니까!”

“하지만 도대체 누가…….”

“따야.”

“…….”

또다시 들려오는 옹알이에 수색대는 해골왕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건 쓰러진 유괴범들과 젖먹이 아이뿐.

결국 침을 삼킨 누군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공자님이 납치범들을 이렇게 만든 건…….”

“농이 지나치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하지만 군의관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들의 상흔으로 볼 때 강력한 성법에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성력이 아이한테서도 느껴지고 있고요.”

“그럼 정말로 공자님이?”

“예. 성자님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6계위 <정신 붕괴>와 <파괴> 성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고위 성법을요?”

군의관의 말에 모두가 침을 삼키며 해골왕을 보았지만, 정작 장본인은 땀을 삐질 흘렸다.

‘아니 성력 쓴 적 없고요.’

애초에 이거 성법 아니고, 그냥 1계위 기초 마법… 응, 그러니까 니들이 마차에 박아두는 조명 마법이고요. 머리를 박살 낸 건 파괴 성법이 아니고 그냥 박치기…….

젠장, 모르겠다.

도대체 왜 마법을 성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성자의 성력이 너무 강해서 마력의 기운을 덮고 있는 건가?’

하물며 1계위 하급 술법이 상급 술법의 위력을 내지 않나.

덕분에 뭔가 단단히 착각을 산 것 같지만, 뭐 아무튼 좋았다.

지금의 해골왕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도 생존, 두 번째도 생존이었다.

때문에 신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 일단 마음이 편한 곳에서 <위장> 마법을 쓸 마력부터 모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대로 수색자들이 자신을 빨리 찾아낸 건 좋은데…….

‘왜 황실 기사단이나 되는 놈들이 찾으러 온 건데?’

수수한 망토를 두르고 있지만, 신성제국 황실 기사의 제복을 모를 리가 없다.

심지어 보통의 기사들도 아니다.

‘상급 성기사들.’

상급 성기사들은 인간 진영에서 특별한 전투 능력을 쓰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인간 진영의 중요한 병기일 텐데.

뭐, 다시 말하면 <아이작 에슈아>가 황실이 직접 찾으러 올 정도의 인물이란 거지만.

‘칫, 마법 계위만 높았으면, 멀리 있어도 어떤 놈들인지 알았을 텐데.’

남들은 마족을 죽이는 상급 성기사들이라며 좋아했겠지만, 해골왕은 놈들을 몹시 싫어했다.

왜? 천적이라서?

아니, 해골왕은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 마족 진영의 우두머리였다. 고작 이깟 성기사들을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툭하면 지들 졸업 시험에 스켈레톤만 소환하던 못돼 처먹은 새끼들.’

아니 <마족 토벌>로 실기 시험을 치르고 싶으면 마족 진영으로 넘어오든가.

‘왜 지들 구역으로 처불러, 부르기는?’

그리고 마수 중엔 해골보다 잘난 놈들도 많은데, 왜 툭하면 힘없는 스켈레톤만 처부르는 건지!

사제 놈들은 그래도 양심껏 결계만 치든가, 쫓아가면 도망가기라도 하지.

망할 놈의 성기사들은 머리에 근육만 차서 근육도 없는 스켈레톤이 만만하게 보이는 건지.

어떻게든 마력핵까지 박살 내서 존재 자체를 없애려 하는 지독한 놈들이었다.

하물며 해골왕은 납치될 때마다 살아남았던 만큼, 졸업 시험에 소환된 횟수만 수천 번 이상.

‘신성제국에서 집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는 거냐?’

지들은 소환하기만 하고,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되돌아가야 하는 건 내 몫이고!

심지어 진화할 때마다 불러대서 보답으로 어린 새싹들을 아주 골고루 짓밟고 온 기억이 있었다.

실제로 한번은 마왕이 된 뒤였나?

하도 어린 스켈레톤들이 낑낑 분해되어 오는 바람에 부활시키기도 열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질리지도 않고 또 소환을 해대서는.

-뼈다귀가 그렇게 만만하냐, 새끼들아!

덕분에 짜증 나서 일부러 졸업 시험장에 소환되어, 생도들의 졸업 시험장을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만든 적도 있었다.

뭐 당시 교황한테 ‘또 우리 애들 졸업 시험에 처부르면 그땐 전원 그 대가리 가죽을 뽑아버릴 것’이라고 말한 이후엔 졸업 시험에서 아예 사멸된 듯하다만, 뭐 그거야 다 옛날이야기고.

아무튼 해골왕은 성직자란 족속을 썩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원래도 이것들을 싫어했지만, 이제 싫다 못해 증오스럽게 된 이유는 방금 생겼다.

꼬르륵! 꼬르륵!

‘젠장, 이 새끼들은 도대체 애를 언제까지 굶길 셈이지?’

배고팠다.

너무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해골왕은 죽겠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웠다.

“수백 년 만에 생긴 귀한 위장이라고! 뚫리면 니들이 책임질 거냐, 이 버러지 놈들아!”

해골왕은 분노를 담아 사자후를 날렸다.

“따야! 따야!”

그러자 눈치 빠른 성기사들이 바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렇게 보채지 않으셔도 곧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봐? 뭘?

밥을? 고기를? 상다리가 부러지는 만찬을?

“쨘! 저희가 특별히 희귀한 딸랑이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자! 여기 보세요, 딸랑딸랑!”

“아, 공자님. 입꼬리가 씰룩거리시네요. 딸랑이가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우르르 까꿍!”

해골왕의 볼이 씰룩거렸다.

자신이 자라고 나면, 우선 이것들부터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해골왕이었다.

* * *

해골왕은 수백 년 만에 꿈을 꾸었다.

망할 놈의 성직자들과 신들을 모두 갈아버리고, 이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먹어버리는 꿈이었다.

그리고 수백 년간 그렇게 자고 싶었던 단잠을 만끽하며 일어난 건 좋은데.

“확실합니다. 마법사를 처리한 건 공자님이십니다.”

마법사?

뭔 개소리야.

잠에서 깨니 황실 기사단이 이상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요, 실은 공자님을 찾았던 곳에서 7계위 <흡혈> 마법이 사용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하. 아무래도 유괴범에 대해 조사 중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법을 쓴 걸 두고 드디어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추리해낸 모양인데.

난데없이 <흡혈> 마법이라니.

거기서는 그런 상급 마법을 쓴 적이 없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풀과 나무가 그런 식으로 말라버릴 리가 없죠.”

뭔 말을 하나 했더니.

마력 착취를 흡혈로 착각한 거였나?

뭐, 마력 착취는 해골왕만이 가진 고유 마법. 주변에서도 흡혈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헷갈려 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상급 성직자들인 만큼 그 정도 오류는 금방 잡아낼…….

“<흡혈> 마법이라면 역시 《흑천사》일까요? 마도제국의 7계위 마법사요.”

“하긴, 흡혈은 그 더러운 놈의 주특기죠.”

아니, 새끼들아. 그건 마법이라기에도 민망한 기본적인 마력 흡수라니까?

그런 상급 마법 아니라니까?

“안 그래도 성자 탄생 예언은 다른 나라에도 알음알음 퍼져 있습니다. 분명 마도제국은 신성제국의 숙적이니 공자님을 노린 거겠죠. 더러운 놈들.”

“그럼 공자님은 유괴범들에 이어 마도제국의 마법사까지 쫓아내신 거군요?”

아니 흑천사인지 흑당인지 여기 온 적 없다니까?

“세상에, 폐하께 바로 고해야겠군. 신성제국의 숙적까지 쫓아내셨다니. 나라의 큰 보배가 될 분이십니다.”

그 마법사는 도대체 뭔 죄냐!

뭐 아무래도 좋았다.

“공자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성기사들에게 안겨 도착한 곳은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인근 마을의 저택이었지만 정원은 화려했고, 곳곳에는 은은한 신성력이 넘쳐흘렀다.

‘본가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에슈아 소유의 별장인가?’

무엇보다 해골왕은 성기사들의 대화에서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제일 먼저 알고 싶었던 게 자신의 상황.

-지금은 언제인가?

‘아마 내가 봉인된 때로부터 시간이 엄청 많이 지난 것 같진 않은데.’

대충 들어보니 인계 최악의 마왕인 해골왕은 신들과 싸워 패했고, 신들에겐 평화가 왔다고 한다.

마족 진영은 마왕의 부재로 혼란 상태라고 했다.

교황도 마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 중이라고.

그런 상황인 만큼 <위장>은 필수였다.

뭐 마왕이라면 좋다고 꽁무니를 쫓아올 놈들이 많기는 하다만…….

‘일단 교황 놈에겐 정체를 들키면 진짜 귀찮아지지.’

해골왕과 역대 교황들은 원래도 철천지원수 사이였지만, 교황은 무엇보다 신과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리고 놈에게 정체를 들키면?

‘개인적인 원한으로 소멸당하든가, 최악의 경우엔 신들에게 끌려간다. 그럼 끝장이지.’

물론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이번엔 놈들을 압도할 수 있는 몸을 얻었으니까.

자신이라면 이 몸을 입맛대로 키워 최고신도 능가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일을 신들이 깨닫게 되면 망했다고 생각할 만큼.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아직 젖먹이인 이쪽이 절대적 약자란 게 문제지.

하지만 그것도 원래의 힘만 되찾으면 모두 해결될 일.

‘그런 의미로 부하부터 불러내자.’

부하를 통해 마력핵을 수급 받으면 마법 계위를 올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이번 생의 그는 마법만 익힐 생각이 없었다.

‘마법과 성법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상극의 힘.’

비유하자면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였다.

그런데 만약 두 힘 전부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것들이 잘난 척하는 절대 방어벽도 그냥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왜 해골왕이 신들에게 당했겠는가.

신성력에 취약한 언데드였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계를 난공불락으로 만드는 신성 결계 때문이었다.

신성 결계의 출입 조건은 신성력을 가진 자.

애초에 아무리 강해도 접근 자체를 할 수 없으니 문제인 것이었다.

하지만 성자의 몸이라면?

‘그야말로 검문도 없이 신들 안방을 드나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신을 즉사시킬 수 있는 마법의 힘까지 가졌다면?

‘어디 권속 천사라도 한번 내려와봐라, 바로 암살해주지!’

해골왕의 입꼬리가 낄낄낄 귓가에까지 걸렸다.

‘이딴 성직자들의 나라 따위, 내부에서부터 없애주마.’

지들이 등쳐먹은 놈이, 지들 덕분에 놀고먹으며 신계의 힘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뭐, 당분간 신전만 조심하면 된다.’

거긴 더러운 성직자들의 총본산.

신전은 마기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마족을 처분하기 위한 온갖 살상 도구들이 다 갖춰진 곳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야지. 아무리 성자의 몸으로 환생했다지만, 정신적으로는 괴로우니까.

그렇기에 호화로운 저택에 들어가는 해골왕의 눈이 흡족하게 초승달을 그렸다.

‘여긴 부자 냄새가 풀풀 나는 게, 아주 최고군.’

이곳이라면 들킬 위험도 없이 여유롭게 부하를 불러낼 수 있을 것이었다.

성기사들을 죽도록 싫어하는 해골왕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와준 사람들이었다.

이번 생에서는 굳이 이놈들을 싫어할 필요도 없겠지.

‘그래. 이 정도면 성기사들도 쓸 만하고 예쁜 녀석들…….’

앞으로 타락시켜서 고기방패로 만들 녀석들…….

그러나 곧 저택의 정체를 깨달은 해골왕의 표정이 변했다.

‘시발! 왜 집이 아니라 신전인 건데?!’

그랬다. 성기사들이 도착한 이 저택은 별장이 아니라 신전이었던 것이다!

정원이 호화로워서 귀족의 저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귀족이 만든 사유 신전인 듯했다.

실제로 정원을 지나자, 호화롭지만 신전의 낯익은 건축양식이 드러났다.

때문에 해골왕은 자신을 보며 좋아 죽는 성기사들을 보며 치를 떨었다.

집이라며!

‘이놈의 성기사 놈들은 기어코 나를 암살하려 하는 건가?’

<위장> 마법을 쓰기도 전에 냅다 신전으로 끌고 오다니! 암살자 유모에 이어 이번엔 암살방 인가!

“신전이라면 벌써 성법을 쓰시는 공자님께 큰 도움이 되겠죠.”

“성자로 인정받으실 겁니다.”

성자는 좋지만, 신전은 됐거든?!

‘젠장. 아무리 그래도 신전은 좀 위험한데.’

물론 앞으로 성자가 되어 복수할 예정이었다. 그런 만큼 신전은 반드시 친해져야 할 곳이지만, 문제는 도통 친해질 수가 없다는 거지.

그도 그럴 게, 신전은 마력이 존재할 수 없는 곳.

‘신성력은 마력을 배척한다.’

그리고 부하?

애초에 마력이 없으면 소환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젠장, 신전에 마력만 있었어도 이런 고민은 안 하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

주변에서 낯익은 힘이 느껴졌다.

‘마력?’

해골왕은 눈을 반짝였다.

마력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