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2)
착각인가 싶었지만, 확실했다.
‘이건 마력이다.’
하지만 왜 신전에서 마력의 기운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깟 이유가 뭐가 중요하랴. 중요한 건 마력이 있으면 마법이든, 부하 소환이든 뭐든 가능해진다는 거지.
그리고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은…….
주방?
해골왕은 음식을 분주히 나오고 있는 건물을 보았다.
동시에 음식 냄새가 훅 들어오자 해골왕은 좀비처럼 휘청거렸다.
‘젠장! 배가 고파서 정신까지 혼미해지네.’
수백 년 만에 느끼는 공복은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지만, 이제 한계였다!
‘이 빌어먹을 성기사들.’
이대로면 굶어 죽겠다 싶었던 그가 데구르르 굴렀다. 성기사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이불에서 탈출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자식들을 믿고 기다릴 바에야 차라리 직접 창고를 털겠노라.
이제 그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고기가 아니어도 되니, 뭐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때였다.
해골왕이 주방에 들어선 순간, 성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공자님! 설마 배고파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야! 빨리 가져와!”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최고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오오!
이 새끼들. 신전으로 데려온 건 괘씸하지만, 최고로 준비했다니 용서해주마.
“특별히 황실에서 귀한 걸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오오! 이쁜 놈들!
심지어 황실의 음식이랜다!
뭘 주든 맛있게 먹어주마!
그런데 곧 그들이 황금 식기에 담아온 음식에 해골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해골왕이 인간의 몸을 그리워한 지 어언 수백 년.
그는 죽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라면 한 그릇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미치게 매운 국물을!
야식으로 해장으로 끓여먹었던 뜨끈하고 얼큰한 녀석으로. 아니 사실은 라면이고 자시고, 그냥 뭐든 먹었으면 소원이 없었다.
그저 먹고,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100년은 웃으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년 만에 드디어!
사람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무엇이 나오든 맛있게…….
맛있게…….
하지만 그 먹을 것 앞에서 정작 해골왕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무엇이 나오든, 맛있게 먹는다고는 했지만… 나는 이딴 게 먹고 싶었던 게 아니야…….’
젖병을 물고 있는 해골왕의 얼굴이 썩어갔다. 젖병을 쥔 그의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니 그래… 애기니까 분유 좋지…….’
아직 이빨도 없으니 열심히 이거라도 먹으면서 몸을 성장시켜야지. 그래야 마법 계위도 빨리 올리지.
근데 줄 거면 최소한 우유를 내놔야지.
‘나무뿌리가 뭐야! 뿌리물, 시발!’
해골왕은 분노에 찬 눈으로 탁상을 보았다.
그 위엔 황금 식기에 가득 담긴 콩과 풀떼기들이 있었다.
심지어 이것도 성기사들이 괴기한 풀로 녹즙을 만들어 주려는 걸 뿌리치고 콩물을 택한 해골왕이었다.
정체도 모를 녹즙보단 차라리 두유가 나았으니까!
물론 이마저도 해골왕이 기억하는 두유라기보다는 콩을 삶은 맹물에 가까웠지만.
그러니 해골왕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고 있긴 하지만…….
‘정말 저게 황실이 보낸 음식이라고?’
이쯤 되자 그는 심각하게 성자로서 귀화를 택해도 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신성제국은 채식 국가인 건 아니겠지?’
물론 야채 좋다. 좋지만 황실이 보낸 최고급 양식이라는 게 이따위라니.
아무리 그래도 콩을 삶은 맹물이라니!
‘이 새끼들, 엘프 국가였나.’
그러나 곧 해골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수백 년 만에 겨우 먹고 씹을 수 있는 몸이 생긴 것이었다.
콩물이든 맹물이든, 이것이 이들의 주식이라면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겸허히…….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저희도 안 먹는 걸 공자님께 드려도?”
“고귀한 신의 대리인이자 수도자가 되실 몸이니까요. 정갈한 걸로만 준비했습니다.”
“성자 후보들에겐 반드시 해당 작물로만 먹여두라는 교황 성하의 명이 내려왔으니까요.”
“예. 과제죠.”
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교황 새끼!
그 놈팽이들은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젖병을 부술 기세인 해골왕은 눈에서 살의를 뿜어냈다.
신들을 족치기 전에, 일단 교황의 모가지부터 따 버리겠노라.
그 와중에 해골왕의 시선은 성기사들이 멘 도시락 가방으로 향했다. 가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런 해골왕의 시선을 느낀 걸까, 성기사들은 감동을 받은 듯 웃었다.
“설마 저희를 신경 써주시는 겁니까? 저희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맞습니다. 저희 기사단은 공자님을 지키기 위해 고기 특식까지 두둑하게 챙겨 먹었으니까요!”
“그러니 염려 마시고 많이 드시… 어풉! 공자님이 침을!”
“잠깐, 공자님! 그만두세요! 어풉풉!”
퉤엣! 퉷!
성기사 이 새끼들은 반드시 노예로 삼아서 굴려버릴 테다.
‘이딴 걸 먹는다고 성자가 못 되는 것도 아니거늘.’
그런데 다른 놈도 아니고 교황이 이걸 먹이라고 지시를 해?
‘젠장, 배고프니 일단은 먹는다.’
의외로 콩국수 국물을 먹는 느낌이 들어 맛있기도 했다.
설탕이랑 소금만 칠 수 있다면 말이지.
물론 해골왕 정도면 마법으로 조미료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글쎄?
꼴랑 1계위 마법을 썼다고 마력이 벌써 바닥이 나버렸네.
‘이게 다 성자의 몸인 탓이다.’
마력과 맞지 않는 몸이라서?
천만에,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몸은 힘을 모아두는 마법사에게는 최고인 몸이었다. 어떤 힘이든 괴물만큼 저장할 수 있는 몸이었으니까.
하지만.
‘저장력도 정도껏 좋아야지, 괴물인가.’
뭐, 이해는 했다.
인간의 몸은 신과 비교하면 작디작은 존재였다. 그럼 그 작은 몸으로 많은 힘을 다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불순물은 거르고 최대한 압축한다.’
정순하게 거르고 거른 힘을 최대한 압축하는 것이다. 일(一)의 힘으로 만(萬)의 힘을 낼 수 있도록.
하지만.
‘젠장, 성자 몸을 너무 우습게 봤다.’
압축력이 너무 대단하다 보니, 힘을 흡수해도 몇 방울을 채운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출력은 오히려 좋았다. 압축한다는 건 같은 양의 힘을 써도 파워가 강해지는 걸 의미했으니까.
즉, 마법의 파괴력도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고작 1계위 마법이 상급 마법 위력을 냈던 건 분명 이 탓이리라.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했다.
‘위력은 강해도, 이렇게 압축을 해대면 언제 마력통을 다 채워?’
신성제국에서 마력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력핵을 흡수하는 것뿐.
하지만 이대로라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마력핵만 찾아다니다가 생을 마감하겠지.
‘젠장, 얌전히 개종하라는 계신가?’
신들을 상대할 생각은 하지도 말고 놈들의 따까리나 되라는?
가뜩이나 마력이 없어서 부하도 불러내기 힘든 상황에…….
그런데 그때였다.
인생 다 산 얼굴로 콩물을 소주처럼 홀짝이던 해골왕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음?’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젖병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콩물을 마셨다.
꿀꺽.
‘…음?’
해골왕은 마치 벌레 보듯 젖병을 보았다.
‘뭐지, 이거?’
왜 콩물을 먹을수록 마력이 차오르는 것 같지?
기분 탓인가?
기이함을 느낀 해골왕이 몇 번 더 꿀꺽꿀꺽 마셔봤지만, 분명했다.
‘미친, 진짜 마력이 쌓이고 있는데?!’
해골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젖병을 노려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건…….
‘먹는 걸로도 마력을 쌓을 수 있다!’
마법을 쓸 수 있어!
그 생각에 미친 해골왕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때였다.
“어머! 공자님께서!”
“오오!”
꿀꺽꿀꺽. 꿀꺽꿀꺽.
찔끔찔끔 콩물을 마시던 해골왕이 미친 듯한 속도로 젖병을 비우기 시작했다.
마력은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좋다! 좋아! 이거면!’
마법 승급도, 이 빌어먹을 성직자들의 나라를 박살(?) 낼 수 있는 것도 금방일 터!
젖병 하나를 한순간에 비운 해골왕은 작은 손을 뻗어 다른 것도 내놓으라고 시위를 했다.
“따야! 따야야야야야(빨리 더 안 가져오냐, 버러지들아)!”
심지어 젖병으로 탕탕 탁상까지 내리치자 성기사들은 놀란 듯했다.
“세상에, 아무리 과제라지만 못 드실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른 성자 후보들도 억지로 드셨다잖아요.”
“예. 아무리 예쁜 걸로 골라 주셨다지만, 솔직히 맛으로만 보면 제일 떨어지는 하급 작물이니까요…….”
“수도자용이라지만 어느 귀족가 자제가 농민들도 안 먹는 걸 맛있다고 먹겠습니까. 상급 사제분들도 저걸 드시는 분은… 솔직히 못 봤는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엔 녹즙을 먹는 해골왕의 눈이 이글거렸다.
‘역시 있다. 식재료에 마력이!’
심지어 이번엔 상당량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해골이라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전혀 몰랐는데.
설마 음식을 먹으면 마력도 흡수할 수 있는 거였나?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혹시 내 <마력 착취> 스킬 때문인가?’
해골왕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마력을 흡수해올 수 있었으니까.
즉, 이 말은 일상적인 섭취 행위만으로도 마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 마력핵이나 수련으로 모으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뭐, 음식마다 들어있는 마력의 양이 다른 것 같다만.’
쥐꼬리만 한 것도 있고, 한 달 치 마력이 오르는 것도 있었다.
‘어느 거지? 어느 게 한 달 치 놈이지?’
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사제 놈들 오기 전에 다 먹어놓자!’
해골왕이 미친 듯이 먹어치우자, 성기사들은 어째서인지 몹시 좋아했다.
“역시 성자 후보들 중 이분이 성자님이신 게 틀림없습니다!”
“옛날 성인들께서만 드셨던 수도자용 음식을 이렇게 맛있게!”
성기사들의 말에 해골왕은 미간을 좁혔다.
성자 후보?
그러고 보니 가짜 유모 때부터 계속 듣기는 했지.
‘성자 후보가 더 있다고.’
성녀가 그러하듯, 성자는 인간 진영에서 제왕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일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신성 가문들이 피 터지게 세력 싸움을 하는 걸 테고 말이다.
그리고 이 더럽게 맛없는 쓰레기… 아니 정갈한 음식이라는 것도 그 성자 분별법 중 하나일 것이고.
그러니 이해는 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은 있었다.
‘왜 작물 안에 독이 있는 거지?’
심지어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이건 신성 독이다.’
‘신성한 독’이 아니라 ‘신성력을 파괴하는 독’이었다.
즉효성은 아니지만 독인 만큼 몸에 쌓이면 죽었다. 그리고 목숨도 목숨이지만, 무엇보다 신성력을 사용해야 하는 성직자들에게 더없이 치명적인 독.
‘성자한테 신성력이 없으면 그건 뭐, 죽으란 거지.’
물론 해골왕에게는 전혀 해가 없었다.
‘이 독, 마력핵으로 만드는 거니까.’
마력과 신성력은 극상극.
신성력을 죽이려면 마력으로 죽이는 게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마력핵으로 만든 독?
마족한테 마력핵으로 만든 걸 내놓으면 그건 그냥 마력을 쪽쪽 빨아 잡숴달라는 거지 뭐!
물론 독성분은 남아 있겠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설령 맹독이 들어올지라도 독까지 분해해서 마력으로 아낌없이 흡수하는 건 해골왕 정도 되는 마왕급한테는 식은 죽 먹기!
순식간에 독을 흡수하는 해골왕은 굉장히 짜릿한 듯 미간을 좁혔다.
‘미친, 이거 세 달 치 마력!’
이거 최고네!
누가 넣었는지 몰라도 가성비 돌았네!
얼마나 독하게 만들었으면 세 달 치 마력이야!
왜 교황이 과제로 지정한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성자 분별용은 아닐 것이다.
분별용이면 굳이 성직자를 병신으로 만드는 독이 아닌 다른 독을 썼을 것이고, 즉효성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 쉽게 생각하면 마력도, 독도 성자 후보를 모조리 제거하려는 적대 세력의 짓이겠지만…….
‘아, 미친! 이번엔 다섯 달 치 마력!’
해골왕은 짜릿한 듯 파르르 몸을 떨었다.
세력 싸움이고 자시고 이거 독성분이 더 센 거 없나?
맹독으로 가져와봐라, 좀.
* * *
“지금 에슈아 가문의 자식이 성자라고 했느냐?”
교황청 본청.
소식을 전해 받은 한 남자의 말끔한 눈썹이 올라갔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였다.
신성제국에서 유일하게 검은색이 허락된 건 오직 추기경들뿐.
제복에 먼지조차 허락하지 않을 듯한 남자가 불쾌한 듯 눈썹을 치켜뜨자 보고하러 온 종자가 몸을 떨었다.
‘에슈아’란 이름에 주인의 심기가 불편해진 탓이었다.
신성제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에슈아 가문의 이야기에 호들갑을 떨다가 말실수를 한 게 화근이었다.
종자는 다급히 사죄하며 말을 이었다.
“그, 황실 기사단이 에슈아 가의 성자 후보를 유괴범들에게서 구해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인근 신전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건 알고 있다.”
종자는 메마른 침을 삼켰다.
<추기경>은 교황의 대리인이자, 대륙의 모든 성직자와 성기사의 배출을 담당하는 5대 공작가의 가주들이었다.
가뜩이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성자>의 출현으로 5대 공작가는 물론, 온갖 잔챙이 가문들까지 자기네 자식이 진짜 성자라고 설치는 판국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황제의 이목까지 쏠려 있는 중요한 건이었고, 추후 제국의 패권을 좌우할 중대사였다.
그런데 하필 5대 공작가에서 또 후보가 나올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에슈아에서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아이라 저희가 중간에 처리해도 뒤처리는 쉬울 겁니다.”
“됐다. 황실의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이미 대리인을 보내놨다. 어차피 금방 죽을 파리 목숨에게 신경 쓸 것도 없지.”
각 성자 후보들에게 보내지는 작물에 독을 담았으니까.
중간에 신성독을 섞는 일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젖먹이인 만큼, 한 모금만 먹어도 반나절도 못 가 죽을 것이었다.
얼굴을 보게 될 일도 없겠지.
하지만 그러는 사이.
‘더! 더! 더 독한 걸로!’
해골왕은 독이 든 녹즙을 벌써 열 통이나 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