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3)
“뭐? 새 성자 후보가 무려 그 에슈아 가문의 아이라고? 정말?”
“미쳤네, 나 팬인데! 최고 가문 중 하나잖아!”
신성제국 헬라의 중동부 신전.
수도원은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들떠 있었다.
정숙함을 지켜야 하는 사제들은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상황도 아니었다.
무려 신이 보낸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수백 년 전에 나타난 성녀의 존재에 이어 이번엔 성자가.
비록 이곳에 잠깐 머물다 가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런 시골의 수도원이 떠들썩해지는 건 당연했다.
때문에 주교는 묘하게 들떠 실수까지 하는 사제들을 향해 크게 나무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었다.
푸르릉!
“어머, 저건 황실의 문양……!”
“폐하!”
아니, 그래서 망할 황제 놈이 왜 이곳에 있는 건데?
주교는 신전으로 들어오는 사내를 보며 남모르게 눈썹을 치켜떴다. 황제는 다섯 살쯤 된 사내아이를 안고 있었다.
주교는 언제 썩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태양을 뵙다니, 저희 사제들의 큰 영광입니다.”
황제는 상당히 의외라는 듯 노인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게 황실과 교황청은 사이가 몹시 안 좋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교황청 본청의 사람을 볼 줄은 몰랐군? 그대를 수도도 아닌 곳에서 볼 줄이야.”
“그야 귀한 성자의 일이니까요. 오히려 소인이야말로 놀랐습니다. 어찌하여 존귀하신 분께서 이런 곳에 계시는지요.”
“이상할 것도 없지. 이곳은 짐이 만든 신전이니. 그리고.”
황제는 주교를 경계하듯 달갑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성자의 일이니 오히려 직접 와야지. 교황청에 맡겨서 자칫 제국의 귀한 보물이 될 아이가 또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 나지 않겠는가. 또 후보를 아깝게 잃는 일이 생기면 안 되지.”
“!”
예상했던 말에 주교는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성자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만.’
어차피 헛걸음한 것이다.
주교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는 추기경의 명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아이작 에슈아’. 에슈아에서 성자 후보가 나타났다고 한다.
-예? 그 에슈아에서요? 그럼 큰일이 아닙니까. 저희 가문의 아이가 성자가 되는 데 큰 방해가 될 텐데요.
-이미 수를 써두었다. 자네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죽어가고 있겠지. 자네는 그 시신만 확인해오면 되는 거네.
그러니까 자신은 사실상 이곳에 장례를 치르러 온 것이었다.
‘지금쯤 그 에슈아의 젖먹이도 독을 먹었겠지.’
황실 기사단도, 황제도 까맣게 모를 것이다.
본인들이 그 소중한 젖먹이의 입에 직접 독을 넣고 있다는 사실을!
하물며 그 독을 넣은 게 황실 기사단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추기경께서는 일부러 이 장소를 택하신 거겠지.’
신성제국의 모든 기사들은 교황청과 연결되어 있는 성기사들이었다. 황실 기사단 중에서 하나를 포섭하는 건 추기경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제국의 황제란 자가 고작 젖먹이 하나를 보기 위해 직접 행차할 줄은 몰랐지만, 추기경은 분명 거기까지 짐작하고 움직인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을 독살 장소로 고를 리 없었다.
이곳은 무려 황제 소유의 신전이니까. 여기서 탈이 생기면 모든 일은 황실이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굳이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그건 교황이 지목한 아이가 성자가 되는 데 방해만 될 뿐인 아이.
‘내가 왔을 때 밥을 먹이는 중이라 했으니, 슬슬 독성이 퍼졌겠…….’
“꺄악! 공자님!”
때마침 안쪽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주교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기별이 왔나.
사제들의 드문 비명에 황제의 표정이 달라졌다.
“무슨 일이냐.”
주교가 방향을 틀었다.
“저쪽인 듯합니다.”
먼저 나선 황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모르는 체하며 뒤따르는 주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있는 곳에 들어갔을 때, 주교는 몹시 흡족해했다. 사제들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아이의 주변에 가득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신전에 있는 모든 신관들이 몰려온 듯했다.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지 않는 이상 저 정도 인파는 이상했다.
그 증거로 다들 사색이 되어 비명을…….
“꺄아악! 우리 예쁜 공자님!”
“…….”
꺄아악. 우리 예쁜 공자님?
“세상에 녹즙을 흘리시는 것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우실까!”
“……?”
…녹즙, 뭐? 뭐가 사랑스러워???
우르르 몰려와 있는 사제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체나 반송장을 보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당황한 주교가 인파를 뚫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격한 장면에 주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세요, 아기님이 이 맛없는 녹즙을 열다섯 통이나 비우셨어요!”
“아무리 수도자의 음식이라지만, 이제는 고위 사제분들도 잘 드시지 않는 것들을……!”
거기엔 젖병을 쌓아놓고 먹는 젖먹이가 있었다.
심지어 몹시 황홀하다는 얼굴로.
그리고 그 옆에는 주교를 발견하고 어째서인지 당황하는 의문의 성기사까지.
주교는 괴물 보듯이 젖먹이를 보았다.
뭐지?
이거 왜 살아 있는 거지?
* * *
‘아, 미친. 이거 가성비 미쳤네, 진짜.’
독이 든 녹즙을 계속 마시는 해골왕의 눈이 흐흐흐 웃고 있었다.
좋다.
아주 좋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 승급 따위 금방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마력은 쭉쭉 차올랐다.
뭐,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최대치가 열다섯 통이었다는 것?
주변은 이미 놀라 기절할 수준이었지만, 정작 해골왕 장본인은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게, 수백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음식의 맛이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산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아기용이라 젖병이 좀 작긴 했어도, 성인조차 배탈로 실려갈 양이란 건 인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위장 크기가 아니긴 했다.
‘어쩌면 이것도 ⸢생존⸥ 기원 덕분일 수도.’
운 좋게 기원을 얻게 되었지만, 사실 해골일 때는 기원의 힘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미 죽은 자에게 ‘생존’이란 힘이라니.
어찌 보면 모순이고, 어폐가 있는 능력인 셈이 아닌가.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다.
하지만 이 몸은 다르다.
살아 있는 이 몸은 분명 전과 다르게 ⸢생존⸥ 기원을 100%,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쓸 수 있게 된 게 틀림없었다.
그 예시 중 하나가 먹는 행위.
위장이 늘어난 것도, 음식물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분명 이 모든 게 기원이 본래의 힘을 발휘해서 생긴 일이리라. 하물며 이것조차 전체 힘의 일부분일지 몰랐다.
‘다 못 쓸 때도 대단했는데. 본래 힘까지 쓸 수 있게 되면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는군.’
이런 걸 보면 그 망할 신들, 일부러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걸 피한 거 아냐? 힘을 못 쓰게 하려고?
물론 그 와중에 사제들의 반응은 의외였지만 말이다.
“꺄악! 아기님이 너무 예쁘게 생기셨어요! 나중에 크시면 여러 영애들을 울리시겠는데요!”
“공작님을 닮으신 건가, 어머님을 닮으신 건가!”
“…….”
여전한 사제들의 호들갑에 해골왕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젖병만 빨았다.
“성자 후보 중에서 가장 인물이 좋으세요!”
“다 크신 모습이 제일 기대되지 않나요?”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다행이지만, 이것들이 돌았나.
애한테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가 싶었지만, 글쎄.
사제들이 해골왕의 입을 닦아주려고 세안대로 데려갔을 때, 거울을 본 해골왕은 핏대를 세웠다.
‘망할. 이 얼굴까지 금수저인 새끼 같으니!’
한 번에 이해했다.
확실히 살면서 고생할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김이삭 시절일 때도 얼굴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건 그냥 차원이 다르다.
‘빌어먹을, 떡잎부터 다른 상이란 게 진짜 존재하긴 하네.’
도대체 조상이랑 부모가 뭐 하는 놈들이지?
솔직히 아기 얼굴은 다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백금발이라니.’
안 그래도 신성제국에서 금발은 상당히 귀했다.
그 색이 밝으면 밝을수록 귀인 취급을 받았다. 하물며 백금발이면 더더욱.
아마 신성제국의 시조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냥 금발도 아니고, 흰색에 상아 가루를 한 꼬집 떨어트린 것 같은 밝은 밝기라니?
“세상에, 아기님을 보면 볼수록 초대분들을 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어쩌면 지금의 교황 성하보다 훨씬 더…….”
“쉿!”
“아, 아무튼 자라신 모습이 제일 기대되지 않나요?”
해골왕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젖병을 빨았다. 어쩐지 가짜 유모들이 유난히 예뻐한다 싶었다.
‘이제 보니 성기사라서 애기를 못 죽인 게 아니라, 예뻐서 못 죽인 거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예뻐하는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괴물 보듯이 보는 사람이 있었다.
‘뭐지, 저놈은?’
노인이었다.
평범한 노인은 아니고 입고 있는 백색 옷으로 추측건대 꽤 상급 품계의 성직자.
‘주교인가?’
하지만 주교란 자가 왜 자신을 저리 질색하듯 새하얗게 질린 눈으로 보는 것이란 말인가.
‘아, 역시 열다섯 통은 너무 변태 같았나?’
하긴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아기답지 않게 행동하긴 했다.
‘그래. 아기답게 굴어야지.’
해골왕은 주교의 경계심을 떨어트리기 위해 최대한 귀여워 보이게끔 웃어보기로 했다.
수백 년간 얼굴근육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귀엽게 잘될까 모르겠지만, 그가 최선을 다해 입술에 힘을 주자 그의 한쪽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흐흐흐흐 기괴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 웃음에 주교는 더더욱 식겁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덕분에 해골왕은 미간을 좁혔다.
…어. 역시 웃는 게 좀 이상한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주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해골왕을 보고 있었다.
‘뭐지, 이 꼬마?’
웃어?
맹독을 열다섯 병이나 먹었다면서 지금 웃어??
추기경이 매수한 기사가 넣은 독은 거의 즉효성이었다.
기사는 해골왕이 새 녹즙을 먹을 때마다 독약을 넣었다고 했다.
하물며 먹어도 먹어도 반응이 없어서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결국 마지막 병에는 자신도 모르게 맹독을 열 배나 넣었다고.
그런데 지금 웃어?
당장 괴로워하며 피를 토하며 죽어가도 모자랄 마당에 아주 보란 듯이 더 처웃어??
흡사 악마 같기까지 한 미소에 주교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건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자신은 이것의 시체만 확인하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주교는 다시 한번 성기사의 얼굴을 보았지만, 매수한 성기사는 이제 더 이상 남은 독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광경에 해골왕은 뭔가 눈치챈 듯 여우처럼 웃었다.
‘아. 혹시 그건가?’
음식에 신성독 말고, 또 다른 종류의 맹독이 있긴 했는데.
그것도 마력핵으로 만든 놈이라 냠냠 맛있게 먹긴 했다만, 존재감이 너무 약해서 안중에도 없던 건데, 혹시 그걸 넣은 놈들인가?
그때였다.
“마지막 성자 후보는 머리 색이 상당히 독특한 아이구나.”
“!”
황제가 어째서인지 흐뭇한 얼굴로 해골왕의 머리 색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골왕은 저 귀티 풀풀 나는 재수 없는 새끼는 또 누구인가 싶었지만, 곧 표정이 바뀌었다.
“폐하!”
“사제들이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사제들도 놀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놀란 건 해골왕이었다.
뭐? 폐하?
‘신성제국이 황제면 인간 진영의 3대 패왕?’
무려 황제가 이런 곳에 직접 나타난 것도 대단하지만, 해골왕이 당황한 건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웅웅!
해골왕의 마력핵이 북을 치듯 크게 울렸다. 마력핵에 각인된 <생존> 기원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로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반응한다는 건 저 녀석이 <생존>에 연관될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는 건데.’
그의 <생존> 기원은 죽음을 모면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득까지 얻게 해주었던 중요한 능력이었다.
해골 시절엔 빈도 수가 적어 아쉬웠을 정도로.
그런데 이게 황제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아니, 뭐. 그야 긍정적일 수밖에 없겠지.
‘황제쯤 되면 대륙 최강의 봉… 아니 봉! 아니 좋은 놈!’
물론 이게 워낙 포괄적인 감지 능력이라 가리키는 대상이 황제 본인인지, 황제가 가진 물건인지, 아니면 그의 배경인 황실 쪽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돈줄!’
빈곤한 스켈레톤과 마왕 시절의 본능이 남아 있는 그의 눈빛이 한순간에 변했다.
애초에 저만한 인물이 나타났다?
이건 아군을 넘어서 포섭을 해두는 게 무조건 좋았다.
곧 황제가 해골왕을 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에슈아에서는 언제 찾으러 올 것 같은가?”
“기별을 넣었으니, 오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 에슈아의 핏줄이니 이곳에서 극진히 돌보고,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도록 하라.”
황제가 얼굴을 봤으니 이제 됐다는 듯 돌아서려 하자, 해골왕은 아차 싶었다.
아, 기원이 반응했으니 이대로 보내긴 아까운 놈인데. 하지만 지금은 말도 못 하는 처지라 황제의 관심을 끌 방법도 없고.
그런데 그때, 주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젖먹이가 에슈아 가문에 돌아가게 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하물며 이대로면 황실과 에슈아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 그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폐하. 저 아이는 가족이 아니라, 이단 심문관에게 먼저 보내야 할 것입니다!”
“!”
돌아가려던 황제가 우뚝 멈춰 섰다. 사제들은 놀란 듯 술렁거렸고, 기사들도 당황한 듯 주교를 보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곳에서 처분해야 할 수도 있으니 정을 나눠주지 마시옵소서.”
해골왕을 이곳까지 데려왔던 황실 기사단들도 당황해서 반발했다.
“처분이라니요! 공자님을 왜!”
곧 황제가 언짢은 듯 미간을 좁혔다. 그는 주교가 이리 나오자 오히려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다.
“성자 후보를 처분하다니, 교황청 사람이 꺼내도 되는 말이오?”
그러나 주교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부분이라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성자는 이미 다른 아이로 확정됐고, 이 아이는 확실하게 성자가 아니니까요.”
“!”
“이 아이를 납치했던 유괴범들을 치료하여 심문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마법을 쓴 것 같다는군요. 마족의 아이일 수도 있는데 가만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는 처분해야 한다고, 주교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사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 상황에서 괘씸하다는 듯 웃는 건 젖먹이 한 명뿐이었다.
어쭈, 이놈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