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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0화 (10/272)

제10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6)

해골왕이 발견한 건 유리병 3개였다.

물론 그가 보고 놀란 건 병 안의 내용물 때문이었지만.

‘거참, 다들 마른 육포처럼 생겼군.’

유리병엔 소위 말하는 건어물들이 들어 있었다.

각각 말린 손, 마른 염통, 말린 꼬리였다.

그 셋의 공통점은 모두 십자가 줄로 둘둘 감싸 봉인되었다는 점이다.

하물며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된 걸까.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단단하게 막았음에도 그 위에 봉인 씰이 일곱 장이나 더 붙어 있다.

해골왕은 저 건어물의 정체를 단번에 알았다.

‘저건 마족들의 시체다.’

쉽게 말해 잘 말린 안주는 아니고… 봉인한 마족들이었다.

보통 마수 등 마족을 처리하면 시체를 남김없이 불태워 없애 버렸다. 그리고 쓸 만한 가치가 있는 놈들은 저런 식으로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했다.

저렇게 만든 걸 보통 <토템>이라고 불렀다.

‘뭐, 하나같이 마력핵의 등급이 높은 귀한 놈들이군.’

물론 아무리 등급이 높아 봐야 결국 마족의 시체.

성직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당연하다만, 의외로 성직자들에게 더 유용한 점이 있었다.

‘미끼로 쓰면 딱이거든.’

성직자들은 의식이나 마족 퇴치를 위해 대륙 전체에 파견되곤 했다. 그리고 마족들에게 쫓길 때 봉인을 풀어 미끼로 던지면 효과가 아주 최고였다.

‘파리나 구데기 수준으로 아주 잘 꼬이지.’

마족들은 마력을 얻기 위해 동족을 죽여 마력핵과 육신까지 먹어치우는 놈들이니까.

인간의 살 몇 점을 먹을 바에야 동족의 마력을 택하는 것이었다. 상급 마족일수록 근육부터 뼈다귀까지, 육신 전체가 그냥 마력 덩어리였으니.

해골왕 역시 그 먹히고 먹히는 진영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몇몇 성직자는 그 습성을 이용해 일부러 마족을 불러들이는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그렇게 불러들인 마족들을 한꺼번에 처리를…….

‘아, 새삼 떠올리니 짜증 나네. 몰이사냥이나 하는 더러운 성직자들.’

사람을 무슨 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 성녀조차 개 앞에서 뼈다귀 흔들듯 자신을 유인하던 것이 떠올라 열이 뻗쳐올랐다.

아무리 해골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지.

그것들은 마왕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딴 걸 흔든단 말인가.

흔들려면 최소한 최상급으로 흔들어야지!

아무튼 그 외에도 마족의 시체는 든든한 노잣돈이 되기도 했다. 마력핵을 원하는 마력핵 사냥꾼이나 국가도 많았으니까.

‘그래도 저걸 들고 다니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마족 토벌을 주업으로 하는 사제들이 아니면 거의 소지하지 않았다.

근데 왜 저 귀한 걸 주교란 놈이 가지고 있는데?

외지까지 갈 일이 없을 주교가 저걸 소지하고 있다는 의미는 딱 하나였다.

‘다른 목적이 있든가. 아니면 주교도 경계할 정도로 길이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지.’

쉬운 추리였다.

호신 용품이 필요한 건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마족들이 곳곳에 출몰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정세를 바로 파악한 해골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어쩐지 주교 놈이 묘하게 황제한테 깝친다더니.’

묘하게 갑질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나, 하물며 황태자 책봉으로 협박질을 해?

아무리 교황청 본청의 사람이라도, 교황이 아니고서야 보일 수 없는 태도였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 진영에 침범하는 마족들의 숫자가 늘었다든지 하는.

‘뭐,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마족 토벌에 유리한 성직자들의 힘이 대륙적으로 커진 것 같다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역사상 한쪽에게 유리한 상황은 곧 권력이 된다.

‘그 권력의 최고봉이 될 수 있는 성자는 뭐, 황금 거위 맞네.’

뭐 그런 건 아직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마족의 시체가 해골왕의 눈앞에 있다는 것.

해골왕의 엷은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그 순간, 그가 들고 있던 순금 딸랑이가 가방 반대편에 떨어졌다.

마치 놓쳐버린 듯이.

매끄럽게.

딸그랑!

“!”

순금 물질이 떨어지자 모두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딸랑이로 향하고.

“어머, 귀한 물건을.”

사제들이 딸랑이를 줍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무게 처리를 했다지만 역시 좀 무거우셨나…….”

쥐었을 땐 가벼워지지만, 떨어트린 순간 그건 무거운 금덩어리였다.

마침내 가방 옆에 있던 주교의 의식까지 그쪽으로 향했을 때.

입꼬리를 올린 해골왕이 마법을 사용했다.

파직!

찰나의 순간. 딱 0.1초만 모두의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펑!

“!”

가방 안에 있던 유리병이 터졌다.

순식간에 신전 내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꺄악!”

유리병이 깨지면서 안에 봉인되어 있던 마족이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신전 전체를 뒤덮었다.

스산한 울음소리가 인간들의 뇌를 뜯어 먹을 듯 울려 퍼졌다.

-그오오오!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유령의 울음소리인지 모를 괴기한 소리는 신전 내부를 떠돌다가 곧 악마의 형상이 되어 나타났다.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건 생기를 느낄 수 없는 뼈다귀 손과 다리뿐. 마치 후드 달린 망토를 뒤집어쓴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얼어붙은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섀도우 리치!”

“상급 마수가 왜!”

당황한 그들이 급하게 성법을 발동했다.

황제도 황태자를 안은 채 검을 뽑아 들었다.

곧 그들의 혐오스러운 눈빛이 곧장 주교를 향했다.

“신전에서 마족을 풀다니! 지금 미쳐 돈 것인가!”

황실 성기사들은 더욱 반응이 거셌다. 예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사 베리트 주교! 이게 무슨 짓인가!”

“감히 황실 기사단 앞에서 폐하와 태자 저하를 노리다니……!”

그러나 정작 주교는 당황한 듯 가방 안에서 깨진 유리병을 확인했다.

터진 건 말라비틀어진 손이 들어 있던 병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다른 이도 아니고, 추기경이 직접 잡은 마수의 봉인이 풀리다니!

아니 애초에 죽은 게 아니었나?

그런 게 어떻게……!

해골왕은 남몰래 웃었다.

‘그래,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 실제로도 죽었고.’

하지만 마족은 생각보다 더 끈질긴 종족이었다.

‘아까워도 마력핵만큼은 박살 냈었어야지.’

아무리 고위 성직자가 완벽한 방법으로 죽이고 가공한다 해도, 마력핵만 멀쩡하면 소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쉽게 말해 아직 살아 있는 화석 같은 것이었다.

물론 시체가 있다 한들, 일반적으론 살려낼 방법이 없기에 저런 것들도 안전하게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이긴 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일반적일 때의 이야기고.

‘그냥 내 앞에서 꺼낸 걸 후회해라.’

해골왕은 마족의 불사왕.

어리석은 종자 하나 소생시키지 못해서야, 어디 감히 수백 년 동안 마족을 부흥시킨 불사불멸(不死不滅)의 왕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마족 퇴치를 하고 싶어 하셨으니, 어디 실컷 해보시든가.’

고의든 실수든, 황제의 신전에서 마족이 풀린 일은 중대사다. 그 책임은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베리트 주교! 도대체 뭘 한 것인가!”

급히 진(陣)을 짠 황실 성기사들이 방어 성법을 사용했다.

푸른빛의 섬광이 마치 비상하는 독수리의 형태로 변하며 황제와 황태자를 감싸 안았다.

쿵!

하지만 보통의 마족은 아닌 듯, 버거워하는 황실 성기사들이 언성을 높였다.

“주교란 자가 정도를 잃었는가! 하물며 저런 고위 마족과 손을 잡다니! 교황청은 뭘 꾸미고 있는 것인가!”

주교는 억울한 듯 목에 핏대를 세웠다.

“모함하지 마라! 마수를 푼 게 아니라 놈이 알아서 되살아난 것이다!”

“되살아나다니, 그게 무슨……!”

“토템! 토템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것이다!”

“토템? 이미 죽은 마수가 어찌 되살아난다는 말인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는 눈빛에 주교는 오히려 본인이 더 답답하다는 듯,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죽은 마수가 스스로 추기경님의 봉인을 풀고 빠져나올 수 있을 리도 없고. 도대체 무슨…….’

바로 그때였다.

가방을 노려보는 주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가방에 남아 있는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의 기운?’

틀림없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마력이 아닌, 마족의 마력이…….

순간 살벌해진 주교의 눈이 바로 해골왕을 향했다.

‘설마 저 꼬마가!’

아까도 같잖은 성법 행세를 하며 몰래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더니!

이번엔 방법을 모르겠지만 마수를 부활시켜?

주교의 눈이 험악해졌다.

‘반드시 교황청에 넘겨야 한다!’

이대로 그냥 넘어갈 것 같은가.

고문관을 동원하든, 교황 직속의 기사들을 동원하든 반드시 조사를 해봐야 했다!

‘오장육부를 꺼내서 화형에 처하겠다. 이 건방진 마족 놈의 새끼!’

사적인 감정까지 담은 주교는 바로 해골왕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때였다.

-오오오!

성기사들의 방어 성법에 달아오른 마수가 차가운 울음소리를 냈다.

신전이 뒤흔들리고, 오싹한 검은 마력이 멀리 있는 주교까지 위협했다.

쿠궁!

“커헉!”

그 광경에 사제에게 안겨 있는 해골왕의 입꼬리가 흐흐흐 사정없이 올라갔다.

꼴좋다! 힘 못 쓰는 꼬라지 하고는!

이게 다 저 마수가 제 역할을 해준 덕이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5, 6계위쯤 될까.

신전 내부에서 저 정도로 움직일 정도면 꽤 쓸 만한 상급 마수였다.

당연히 저걸 토템으로 만든 녀석도 상당한 고위 성직자겠지. 마족을 소멸시키는 것보다 저렇게 토템으로 만드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고 되살아나자마자 저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성직자들에 붙잡힌 원한이 상당히 큰…….

-성자를 죽인다. 성자를!

…네?

마수가 내뱉는 목소리에 해골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깐, 누굴 죽여요?’

그 순간이었다. 분노를 표출하며 두리번거리던 마수와 해골왕의 눈이 딱 마주쳤다.

‘!’

마수는 드디어 찾았다는 듯, 후드 안 그림자에서 붉은 안광을 번득였다.

놈이 살의를 뿜으며 날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성자를 죽여라!

시발! 어그로가 또 왜 나한테 튀는데?

“공자님!”

얼굴이 굳은 황실 성기사들이 해골왕에게 달려왔다. 해골왕을 안은 사제는 급히 마수를 피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역시 저놈이 성자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 간사하고 치사한 해골왕! 역시 부하들에게 성자님을 죽이라고 명했군!”

야씨, 나는 그런 명 내린 적 없거든?

이제부터 성자가 되어서 이 나라부터 접수해야 하는데, 시발, 내가 나를 왜 죽여!

내가 자살왕이냐? 아니 애초에 애한테 손대는 취미는 없거든?

해골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어떤 머저리가 성직자에게 붙잡힌 뒤 이상한 말을 실토했다고 했던가.

분명 ‘해골왕께서 모든 마족에게 성자를 죽이라 명을 내리셨다’라고.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떤 놈이 감히 내 사칭을.’

부하의 짓은 아닐 거다. 그랬다면 절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성자를 죽여라! 붙잡힌 왕을 구하라!

마수가 자신을 없애기 위해 손을 뻗자 해골왕은 한숨을 쉬었다.

주제에 뻗댈 장소도 구분 못 하고 덤벼오다니.

어리석은 놈.

한순간에 해골왕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홍혈의 보석과 같은 눈이 마치 마안(魔眼)을 개안하듯 섬뜩하게 빛났다.

마법은 아니었다.

‘눈(眼)’은 세상을 제일 먼저 받아들이는 통로라고. 그저 눈을 통해 상대에게 마력을 흘려보낸 것뿐.

그리고 그걸 통해 어느 쪽이 우위인지 확실하게 인지시킨다.

마족끼리 우위를 판별하는 일종의 서열 정리 같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쩌엉!

-?!

마수가 뭔가에 놀란 듯 크게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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