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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화 (11/272)

제11화. 인연 (1)

마수는 크게 놀란 눈치였다.

감히 인간 따위가 서열 정리를 하려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힘!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마족의 힘도 아니었다.

‘상위 마족.’

그것도 보통의 상위 마족이 아니다.

최상위! 아니면 그것보다 위!

해골왕의 조막만 한 머리통을 터트리려 했던 마수는 당황하며 급히 물러났다.

어쩐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인간 주제에!

마수가 도리어 화가 난 듯하자, 해골왕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원래라면 방금 그걸로 끝났어야 했는데.

평소와 달리 눈깔이 있는 상태로 하니, 기합이 덜 들어갔나?

‘흠, 여기서 마력을 더 끌어 올리면 들킬 위험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성직자들 앞이었다. 그래서 힘도 일부러 절전 모드로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급 마수의 마기로 신전이 가득 뒤덮인 상황이라면.

해골왕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그러곤 전보다 마력을 아주 조금 더 끌어 올렸다.

방금이 좁쌀보다 작은 크기라면, 지금은 그래도 콩알 정도 수준으로.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

해골왕의 몸에서 강한 신성의 빛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현한 빛 중에서 가장 밝았다.

해골왕을 구하러 왔던 기사들과 사제들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구, 구마 성법……?”

당황한 마수는 그가 뭔 짓을 하기 전에 처리하려고 했지만, 해골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어디서 감히.

그 순간, 살의를 드러낸 마수를 향해 해골왕의 눈이 번득였다.

‘마력핵 놓고 썩 안 꺼져?’

-!!

쩌엉!

해골왕이 아주 약간 본색을 드러낸 그때. 마수는 얼어붙었다.

그건 영혼까지 찢어놓을 공포였다.

마침내 해골왕에게 겁을 먹은 마수가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검은 바람이 되어 신전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성기사들은 크게 놀랐다.

“마수가! 도망갑니다!”

“깊게 쫓지는 마라! 지금은 성자 후보가 우선이다.”

“명!”

황제의 명과 함께 성기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한두 명만이 마수를 쫓았다. 사제들은 수상하다는 듯,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해골왕에게 다가왔다.

“왜 그만한 마수가 그냥 달아난 거죠?”

“섀도우 리치가 아무것도 안 죽이고 달아날 리가 없는데……!”

그러자 해골왕을 성자라고 주장하는 황실 성기사들은 거의 오열할 기세로 외쳤다.

“왜 도망갔겠습니까, 당연히 공자님이 쫓아내신 거죠! 방금 그 빛, 못 보셨습니까?”

“구마 성법이 틀림없습니다!”

“예? 잠시만요! 구마 성법은 최소 5계위는 되어야 합니다!”

“저 나이에 그런 상위 성법을 어찌 쓴다고……!”

사제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자, 성기사들이 도리어 화를 냈다.

“그럼 마수가 왜 도망을 갔겠습니까!”

“성자님이니 당연히 신께서 힘을 내려주신 것이죠!”

아니 신이 내려주신 게 아니라 뺏은 거다만.

그리고 더러운 구마 성법이 아니라 그냥 겁을 줘서 쫓아낸 거다만?

하지만 마수를 쫓아낸 해골왕이 미간을 좁힌 건 다른 이유였다.

‘자식이 마력핵 내놓고 가라니까 그냥 도망가기는.’

상대에게 자결하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는 해골왕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전, 마수를 상대하면서 터져 나온 빛 때문이었다.

‘그 빛은 분명 신성력이었는데?’

하지만 이번엔 다른 사람의 신성력을 빼앗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가짜 유모나 주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위력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몸을 움직이려던 해골왕의 팔이 축 늘어졌다.

‘!’

힘이 거의 빠져버린 것이다.

‘마력이 거의 사라졌다……!’

아니 마법은 쓰지도 않았는데, 뭘 했다고 마력통이 텅텅 전부 비어버렸단 말인가!

해골왕은 바로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 새끼, 설마 마력을 신성력으로 전환한 거냐?!’

해골왕은 질린다는 듯 뒷목을 부여잡았다.

이 몸에 대해서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조사해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괜히 성자의 몸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누구보다도 마족한테 유리한 몸이어야 할 테니.’

성자는 항마(抗魔)의 상징이었다.

쉽게 말해 약점이 되는 적의 힘조차도 본인의 힘으로 바꿔버리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겠지.

‘뭐 어찌 됐건 그건 장점이긴 하다만…….’

신 따위에게 빌붙지 않아도 마력만 있으면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니 가뜩이나 마력을 채우는 것도 남들의 수백 배로 힘든 판에. 마력까지 신성력으로 퍼가게 되면…….’

도대체 마법은 언제 쓰라고!

빨리 마법 계위를 올려서 그 개 같은 놈들을 족쳐야 하는데!

해골왕이 치를 떨 때였다.

“이 꼬마가 지금 무슨 수작질이냐!”

“!”

어수선한 신전 안에서 주교의 언성이 울려 퍼졌다.

주교는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다가와 여린 해골왕의 멱살을 잡았다.

떠밀린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주교님!”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

주교가 딱 걸렸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확인했다! 이 꼬마가 방금 그 섀도우 리치를 불러냈다!”

“예? 정말이요?”

신전 안에 있는 모두가 크게 술렁거렸다.

황실 성기사들은 굉장히 불쾌해했다.

“공자님이 마족을 불러내다니! 공자님은 마족을 쫓아내신 것이다!”

황제 역시 황당하다는 듯 주교를 보았지만, 주교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폐하! 부디 소인을 믿어 주십시오! 이 꼬마는 틀림없는 마족입니다! 아까 전에 저를 쳤을 때의 빛도 마법이며, 토템에서 마족을 불러낸 것도 이 꼬마입니다! 분명 마족의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해골왕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뭐 주교가 자신을 수상하게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력이 실린 딸랑이로 유일하게 맞아본 놈이니까.

분명 봉인이 풀린 토템에서 딸랑이로 때렸을 때와 같은 마력을 느꼈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해골왕을 의심하는 건 당연한 수순.

주교는 결국 해골왕을 붙잡았다.

“어딜 신성제국에 마족이 기어들어 와서! 괘씸하게 성자 후보 행세를 하고 있느냐!”

“주교.”

“네놈의 본모습을 끌어내 거열형에 처할 것이다!”

젖먹이의 팔다리를 찢어 죽이겠다는 말이었다.

곧 흥분한 주교가 해골왕의 뒷목을 거칠게 끌어당길 때였다.

툭! 데구르르!

“!”

몸 씨름을 할 그때, 바닥에 뭔가가 떨어졌다.

감각이 예민한 성기사들이 그 소리를 놓칠 리 없었다.

“저건……!”

약이었다.

동그란 모양의 적색 물건이 떨어지자 황실 성기사들이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능숙하게 냄새를 맡고, 맛을 확인하던 황실 성기사들의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이건 신성독이 아닙니까!”

“!”

신성독은 신성력과 성직자의 몸을 파괴하는 독약. 한마디로 성직자를 죽이는 독약이었다.

신성제국에서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주교를 바라보는 황실 성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베리트 주교. 성자 후보를 만나러 온 사람이 왜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겁니까?”

“성자 후보를 해하려고 했습니까?”

주교는 당황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내가 그런 걸 왜!”

사실 쓰긴 썼다. 자신은 아니고, 첩자가 해골왕을 죽이기 위해 젖병에 가득 넣었으니.

하지만 신성독은 이미 다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남아 있는 게 없을 텐데!

주교는 자신도 모르게 황실 기사단에 심어둔 첩자를 쳐다보았지만, 정작 첩자도 굉장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 황실 기사단들도 아니었다.

“주교. 왜 황실 기사단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아, 아니…….”

“설마 이걸 폐하께서 가지고 계셨다는 의미입니까?”

“…아니!”

젠장!

지금은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황실이 성직자를 죽이는 독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교황청과 황실은 전쟁. 내전의 피바람이 일어난다!

주교가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이 모든 책임을 황실에 넘겨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제 본인 앞에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네 새끼들이 신성독으로 성자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냐고!

만약 자신이 여기서 말실수라도 하면, 자신의 뒤로 있는 추기경과 가문까지 싸잡힌다.

여러모로 곤란하게 되었다.

아니 그 전에, 저 독약이 어디서 나온 거지?

‘설마.’

주교는 해골왕을 노려보았다.

‘이것도 설마 저 꼬마가!’

그리고 주교와 눈이 마주친 해골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내가 만들었지.’

해골왕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주교가 가지고 있던 토템은 3개.

하나는 마수를 부활시켜 신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게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한 데에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

‘독약을 만들 시간이 필요했거든.’

신성독은 성직자들에게 극상성인 마력핵을 재료로 한다.

해골왕은 모든 이들의 시선이 활개를 치는 마수에게 향해 있을 때, 남아 있는 토템의 마력핵을 꿀꺽했다.

그렇게 나머지 하나로 몰래 신성독으로 만든 것이다.

바로 주교를 함정에 빠트리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족 입장에서 성직자들을 죽이는 신성독?

‘미안하지만 썩어날 정도로 겪어봤다, 애송아.’

그 뒤는 쉬웠다.

주교가 의심을 품으면 당연히 자신을 조사하러 오겠지.

주교가 가까이 다가오면 놈이 떨어트린 것처럼 슬쩍 흘리면 끝이었다.

물론 주교가 성인군자라 그 정도로 처맞고도 멱살 잡으러 안 온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는 일부러 마력의 흔적까지 흘려가며 주교의 이목을 끌었다.

‘함정에 빠진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해지지.’

딸랑이를 휘둘러 주교에게만 마력의 힌트를 준 것도. 같은 기운으로 토템에 마력의 흔적을 남긴 것도.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저딴 놈에게 마력의 기운을 들킬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골왕은 주교를 똑같이 빤히 바라봐주었다.

속내는 숨기지도 않았다.

젖먹이인 척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살짝, 보란 듯 입꼬리를 올려줬을 뿐.

하지만 그걸로도 주교에겐 충분했다.

그 업신여기는 미소에 주교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악마의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냐!”

주교는 해골왕의 멱살을 잡았다.

기사들이 당황해서 주교를 붙잡았다.

“지금 아이한테 무슨 짓입니까!”

“아이? 지금 아이라고 했나? 이딴 게 애라고?”

“따야야?”

“폐하! 이 독도 이 마족 꼬마가 만든 것입니다! 저 마가 낀 얼굴이 안 보이십니까! 아까 그것도 자기 부하를 불러낸 것입니다!”

주교를 붙잡고 있는 기사들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황제도 기가 찬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주교의 말은, 지금 저 젖먹이가 이미 죽은 마족을 되살렸다는 건가?”

“예!”

“마왕이 와도 못 살리는 걸?”

“예!”

“신성독까지 즉석에서 만들었고?”

“예!”

“…상급 마법사도 만드는 데 한 달은 족히 걸릴 신성독을 즉석에서?”

“예! 그러합니다! 폐하!”

주교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일그러졌다.

사제들조차도 주교를 괴이하게 보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지금 본인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황제의 표정이 불쾌하게 변했다.

“끌고 가라.”

“폐, 폐하!”

“얄팍한 변명을 해도 설마 젖먹이한테 뒤집어씌울 줄은 몰랐군. 그게 주교라는 자가 할 소리인가.”

“아, 아니 변명이 아닌 사실입니다! 저 아이가!”

그러나 주교는 말을 잇지 못했다.

황실 성기사들이 주교를 질질 끌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토템의 부주의한 관리. 그로 인한 성자 후보와 황가에 위해를 가한 혐의. 거기에 신성독을 반입한 혐의까지. 조사가 길어질 겁니다. 결과는 뻔하겠지만요.”

“주교가 그렇게 바라던 이단 심문이 열리겠군요. 교황청에는 기별을 보내둘 테니 후임이나 미리 정해두시죠.”

억울했던 주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황해서 생각도 않고 말이 먼저 나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해도 모두 변명으로 느껴질 터.

그래도 억울해서 이것만큼은 말해야 했다.

“속지 마라! 저건 마물이다! 한 번만 구마 성법을 쓸 수 있게… 아니, 너희라도 좋다! 한 번만 써보면 저 악마가 바로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보통 인간으로 둔갑한 마족은 구마 성법을 쓰면 본모습이 나온다.

그러니 저러는 거겠다만…….

‘응, 안 드러나.’

변신한 게 아니라 환생한 거니까.

해골왕의 천사 같은 눈이 아기 돼지를 발견한 늑대처럼 휘었다.

아무리 지랄해도 이건 인간의 몸이다. 구마 성법을 쓴다고 새삼 악마로 변하고 그럴 줄 아나?

해골왕은 계획대로라는 듯 낄낄 웃었다.

이걸로 자기 목숨을 노리던 귀찮은 놈은 떨궈냈고.

‘그러니까 교황한테 끌고 가네 마네, 헛소리도 정도껏이지. 혀가 뭐 이리 길어?’

괜히 자신을 죽이려고만 안 했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 놈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 벗어나려고 해도 힘들 것이었다.

원래도 황태자의 책봉 건으로 황실을 도발하던 놈이었으니까.

황제가 곱게 보고 있을 리도 없는 마당에 건수까지 잡혔다?

황제가 의심을 품은 이상, 첩자의 존재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일을 벌인 곳이 황실의 신전이 아닌가.

재수 없으면 황실에게 이번 사건을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이유로 처형이겠지.

더 재수 없으면 교황청까지 전부 싸잡히거나.

주교 역시 그걸 알았던 걸까.

‘최소한, 에슈아의 아이만큼은 죽이고 간다!’

교황 가문의 오랜 숙적인 에슈아만큼은!

그래야 교황이 자신은 죽여도, 가문의 일원은 살려줄 것이었다.

곧 주교가 손가락으로 성 부호를 만들자, 살벌한 살의가 피어올랐다.

그건 공격 계열 성법.

마침내 그의 발밑에서 금색의 늑대가 튀어나왔다.

컹!

금색의 늑대는 젖먹이 해골왕의 목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해골왕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저 새끼가 경우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용 신수를 소환해?

‘아씨, 마력도 넉넉한 게 아닌데.’

물리면 죽나? 치명상인가? 아니 버틸 정도는 되나?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펄럭!

해골왕의 눈앞에 고결하게 푸른 청(靑) 빛이 흩어졌다.

푸학!!

늑대의 목이 칼날에 잘려 나간 듯,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푸른색을 몸에 감은 기사들이 해골왕을 보호하듯 나타났다.

가장 앞에 있는 건 푸른 영대를 두른 한 여자였다.

“누가 감히 에슈아의 직계에게 손을 대는가!”

분위기가 남다르다. 사제들도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처, 청(靑)의 신앙!”

“에슈아다!”

해골왕은 눈을 끔뻑거렸다.

아무래도 집에서 데리러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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