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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5화 (15/272)

제15화. 횡재로구나 (2)

마족의 왕은 자신을 노리는 마족들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부모가 없다.

사실 그 부분은 괜찮았다.

그래도 친가의 사람이 데리러 왔으니까.

그리고 그 뒤에 숙부가 데리러 왔을 때 황제가 했던 말.

-설마 에슈아의 직계 일원이 올 줄은 몰랐는데.

그 말 한마디로 자신이 가문에서 환영받을 존재가 아니란 것도 바로 짐작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어차피 곧 자신의 것으로 삼을 가문이었다. 환영을 받든 안 받든 무슨 상관이람.

수장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런 건 의미가 없어지게 될 텐데.

그런 의미에서 그 전까지는 순진하게 자신을 데리러 온 어린 숙부와 친해져서 단물을 빼먹을 필요성이 있는데.

‘이 도움 안 되는 놈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마족 놈들이 지금 누굴 노려.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였다.

아무리 핏줄이라도, 마족에게 계속해서 노려지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면 버려지기 마련이었다.

그것도 본인들의 영지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더욱!

신성 진영이 화(禍)의 씨가 될 아이를 그냥 둘 리가 없었으니까.

늘 그래 왔듯 본인들의 안전을 위해 잘라내는 것이 당연했다. 더더군다나 부모도 없는 아이라면 더욱 고민할 것도 없겠지.

그리고 그런 신성 진영의 습성을 모를 리 없는 마족들이었다.

“그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해봐야 너희만 계속 피곤하고 골치 아파질 뿐이다.”

“마족들은 그 꼬마를 처리할 때까지 계속 몰려올 거거든.”

“그래. 그러니 그 아이만 놓고 간다면, 다른 놈들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지나가게 해주지.”

너무나 예상했던 말에 해골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 누가 가르쳤는지 참 잘도 지껄이는구나.

걸리기만 하면 목을 쳐낼…….

“이 모든 것이 위대한 해골왕의 가르침이며 뜻. 성녀 가문의 사람들이니 말귀를 더 잘 알아듣겠지. 서로 피곤해지지 말자.”

그래, 시발. 너무 잘 따라줘서 눈물 나게 고맙구나.

할 수 없지.

면식이 있는 놈들은 아니지만, 가문에서 내버리기 전에 처리를…….

그 순간이었다.

푸학!

경비병의 모습을 한 마족의 머리통이 뚫려 나갔다.

입을 통해 뇌를 뚫고 나온 검이 마치 작살과 같았다.

칼을 뽑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손놀림.

마족의 머리통을 찌르기로 뚫어버린 숙부가 서슬 푸른 눈을 번득였다.

“물로 봐도 단단히 물로 봤구나. 감히 에슈아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커헉……!”

“마족 놈들에게도 귀에 구멍은 뚫려 있는 듯하니 똑똑히 들어라. 우리 에슈아. 청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악을 멸하는 자>들.”

숙부가 칼에 푸른 성력을 실었다.

“너희가 어떤 세 치 혀를 놀리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지옥 끝까지 쫓아가 네놈들의 존재를 멸할 자들이다!”

마침내 칼이 뽑힌 순간, 푸른빛과 함께 마차가 폭발했다.

쾅!

해골왕은 기사단장에게 안긴 채 폭발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가루가 된 마차를 보고 해골왕은 질색하듯 보았다.

저 미친놈!

누가 그 성녀 가문 또라이들 아니랄까 봐.

평화주의자처럼 생겨가지고,

다짜고짜 마차까지 날리네, 저 미친놈들이!

오히려 애가 휘말려 죽겠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족을 순식간에 터트려 죽인 숙부가 살점을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봐라.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 해골왕이 범인이라고.”

아니라고, 새끼야.

아니니까 눈알부터 똑바로 하고. 기사들, 니들도 뭐라고 좀…….

“고통 없이 보내주신 게 아깝군요. 해골왕의 부하들이라면 사지를 잘라가며 영겁의 고문을 맛보여줬을 텐데요.”

하, 이 또라이들.

단체로 눈 돌아갔네, 눈 돌아갔어.

진짜 집 잘못 찾아왔어.

니들 영지 파괴되는 건 신경도 안 쓰지.

해골왕은 포기한 듯 하늘을 보았다.

아무래도 해골왕이란 이름이 에슈아가의 발작 스위치인 듯했다.

정체를 들키면 자신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당황해하는 마족들을 보았다.

해골왕의 눈빛은 이미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사실 해골왕이야말로 이 상황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족이 자신을 노려와서?

아니, 그딴 이유가 아니었다.

‘분명 인간 진영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금제를 걸었을 텐데.’

이곳은 이미 인간의 땅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해골왕은 인간 진영 절대 불가침 원칙을 세웠었다.

마족 진영을 지키기 위해 접경 지역에서는 싸울 수 있지만, 먼저 영역에 쳐들어가 분쟁의 씨앗을 제공하지 말란 의미였다.

그건 해골왕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하던 것이었다.

‘선제 침공은 또 다른 문제니.’

침공은 전쟁에서 훌륭한 빌미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선제 침공 대신, 접경 지역에서의 수비전을 택했다.

뭐 정말 선을 넘은 놈들은 직접 나서서 뿌리를 뽑아 버렸지만 말이다.

마족이 인간을 기호품으로 잡아먹고 선공하는 멍청한 짓거리?

그것만 막아도 쓸데없는 전쟁을 막을 수 있어 마족 부흥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인간이었다.

그래, 인간.

사람.

비록 신경까지 다 죽어서 감정조차 못 느끼는 해골이어도 그는 사람이었음을 포기하기 싫었다.

그래서 원칙으로 삼았다.

-침공하지 말라.

-인간을 잡아먹지 말라.

공존의 길을 택하기 위해 명령도 아닌, 금제로 걸어놨었다.

심지어 천 년의 금제였다.

기간 동안 모든 마족들은 절대 거역해서는 안 되는 절대 서약.

그런데 이 새끼들이 왜 내 말을 무시하고 인간 진영 한복판까지 들어와?

‘생김새를 보니 저놈들 담당자는 서쪽 사령 지부일 텐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여기서 더럽게 먼 곳에 사는 새끼들이란 의미다.

‘요즘엔 바다 놈들이 내륙으로 표류질 하는 게 유행인가 보지?’

금제까지 어기고 들어와 여기서 왜 지랄하냐는 의미였다.

‘심지어 나 아닌 다른 놈한테 명령이라도 받고 온 모양인데.’

마족 중에 간덩이가 부은 반역자가 있단 의미였다.

그랬기에 해골왕은 스읍 입술을 다물었다.

아니 뭐, 그래.

봉인된 지 150년이라 했으니까.

그사이 나 말고 다른 해골왕이 새로 왕위를 차지했을 수도 있지.

성자를 죽이라는 명령도 그 옆집에 사는 해골왕이 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 그러면 이해해야지.

새로운 시대에 맡겨야지, 그래.

꼰대같이 그러면 안 되지.

“간악한 해골왕. 감옥에서 탈옥하고 싶어서 자기 부하까지 인간의 땅에 보내다니. 썩을 대로 썩었구나.”

“인간 주제에, 이사악 님을 욕보이지 마라!”

“모든 것은 왕의 부활을 위해!”

…아무래도 새로운 해골이 들어선 것 같진 않구나.

해골왕의 눈썹이 경련을 일으켰다.

뭐 알고는 있었다.

금제를 없애기 위해선 새로운 왕이 전대를 압도하는 힘으로 금제를 깨야 한다는 것을.

자신이 그렇게 했듯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깨졌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으니까 이놈들이 일방적으로 어겼다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자기 이름을 이용하는 미친놈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지.

“전부 죽여! 성자는 시체로 가져오고, 다른 놈들은 잡아먹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심지어 금제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 우선 명령인 <인간 섭취 금지> 조항까지 당당히 어기실지는 몰랐지?

기사단장은 그런 해골왕의 표정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이작 도련님, 괜찮습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저희, 아니 특히 도련님의 숙부님은 강하십니다.”

아니, 그 탓은 아니다만.

“증오스러운 해골왕의 부하들은 마력핵도 남기지 않고 불살라 버리겠습니다.”

아니, 마력핵은 좀 빼줄래?

니들이 강한 건 알겠는데, 그거 하나 구하기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부하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이긴 하다만.

해골왕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마족이 여기에 나타난 다섯 명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 있군.’

하물며 그 숫자가 꽤 많았다.

스물… 아니, 마흔.

필시 이놈들의 동료일 것이었다.

‘수비대도 눈치 못 챌 정도로 힘을 억누르고 이동 중인 듯한데.’

보통이라면 감지도 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해골왕은 어린 몸이라도 해골왕이었다.

다가오는 놈들 중에 특히 유독 강한 개체가 있었다.

‘이놈들을 보낸 장본인인가?’

전부 잡아 배후를 잡아낼 수 있는 기회였지만, 1계위 수준으로는 구체적인 숫자도 감지할 수 없다.

관련 마법을 활성화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6계위급의 상급 성기사가 계속 안고 있는 이상은 좀…….

그런데 그때였다.

“아이작 도련님. 죄송하지만 정말 잠시만 이곳에 계셔 주십시오.”

“!”

기사단장이 손을 겹치며 특별한 문양을 만들어내자 바닥에 성법진이 그려졌다.

방어 결계였다.

기사단장은 해골왕을 그 안에 넣어주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상대가 약하지 않다고 파악한 듯, 기사단장이 바로 숙부 쪽에 합류했다.

그녀가 사라지자, 각종 주문이 새겨진 막이 해골왕의 위로 생겨났다.

‘이 몸으론 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상당히 단단한 결계군.’

괜히 최전방의 칼을 논하는 게 아닌지, 해골왕도 감탄할 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뭐 이 정도면 외부에서 들어올 틈도 없이 완벽한 결계지만…….

해골왕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외부에서 들어올 틈이 없다는 건, 반대로 내부의 것도 새어 나갈 일이 없단 거지.

그 순간, 해골왕이 생존 기원을 발동시켰다.

⸢기원: 마법 개방⸥

생존 기원을 가진 해골왕의 마법은 남들과 사용 방식이 조금 달랐다.

팟!

해골왕의 깊은 내면. 원초 세계 속에서 거대한 마법의 전개도가 펼쳐졌다.

그건 하나의 우주 세계였다.

익힌 마법, 아는 마법, 존재조차 모르는 마법, 다양한 것들이 별자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직 사용할 수 없거나 존재를 모르는 건 빛이 나지 않았다. 그저 높은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전체 맵을 볼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 대신 반드시 조건이 채워져야 활성화되는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아무리 아는 마법이라도 발동시키려면 조건부터 달성해야 했다.

그 말은 반대로 조건만 만족시키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거지만.

그리고 하위 마법들의 개방 조건은 대체적으로 몸에 쌓인 마력의 총량.

그 순간 해골왕의 마력핵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화륵!

그와 함께 빛나지 않던 별 하나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해골왕의 기원이 섞인 해골왕만의 오리지널 마법이 열린 것이다.

번쩍!

<감시하는 자(Whisper)>

그 순간 해골왕의 몸에서 꿀렁거리는 검은 기체가 얕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검은 기체는 다름 아닌 마력이었다.

그리고 마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말까지 했다.

[주인이시여!]

‘그래, 오랜만이다. 아, 나오진 말고.’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은 마력이 쑥 들어갔다.

하지만 오열하며 황홀해하는 듯한 목소리는 해골왕의 귀에 계속 들려왔다.

[아아, 위대하신 주군이시여! 살아 계셨군요. 이번에야말로 그 귀한 존체를 두 번 다시 못 뵈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양심 없이 아이의 몸을 강탈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놈은 좋아하는 거야, 놀리는 거야.

해골왕은 쯧 혀를 찼다.

이건 마력에 지능을 부여한 <탐지 마법>이었다.

쉽게 말해 마력이 인격과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면 되었다.

싸우는 중간에 일일이 감지 마법을 쓰며 분석까지 하는 게 귀찮아서 만든 놈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해골왕의 마법이며 분석 쪽 권속이었다.

그리고 주인의 몸 상태를 살피던 충신 위스퍼가 캬악 비명을 질렀다.

[…이놈의 더러운 신들 새끼가 감히! 아무리 주인님이 구질구질해도 그렇지! 이딴 더러운 애새끼 몸에 집어넣다니,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이 새끼가.

‘됐으니까 적의 탐지.’

[현재 마력 수준으로 탐지 가능 범위 100m.]

[주변에 적의를 품은 대상자 총 88마리, 마수입니다. 위대하신 주인님한테는 상대도 안 될 놈이지만요.]

해골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다행이다만, 88마리?

돌았나, 진짜.

마족은 무리를 지으면 계위가 올라간다.

도시 하나가 날아갈 수 있다.

설령 등급이 높지 않더라도 마족이 무리를 지으면 영지의 경계 등급이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더 재수 없으면 성기사들이 쓸데없이 경비를 선답시고 진을 칠지도 모르고.

‘그럼 괜히 귀찮아진다.’

경계가 강해지면 자신도 의심을 사고, 부하들을 불러내는 건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쓸데없이 나대기 전에 전원 몰래 처리해야지.’

정보 수집용은 한 놈만 납치하면 충분했다.

그래서 해골왕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귀찮다.

전원 처리하려면 단순한 1계위 마법으로는 턱도 없으니, 최대한 위력을 증폭시켜야 한다.

다행히 위스퍼가 감지한 놈들의 종족을 떠올리면 현재 수준으로도 단번에 놈들을 처리할 수는 있었다.

‘직접 공격은 안 되고, 함정 같은 걸로.’

하지만 그러려면 모아둔 마력을 전부 쓰게 된다.

가뜩이나 마력도 모으기도 힘든 몸뚱이건만. 기껏 모은 소중한 마력을 고작 이깟 머저리들 처리에 때려 박아야 한다는 말이다.

젠장, 아까워 죽겠네!

수족이라도 있었으면 대신 시킬 수 있을 것을.

하지만 의심받지 않으려면 아까워도 할 수 없지.

‘모아둔 마력을 전부 써서 직접 처리…….’

[아니요, 주인님.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나서실 것도 없는데요.]

위스퍼의 말에 해골왕이 눈을 부릅떴다.

‘뭔 소리야. 1마리도 아니고 88마리면 성직자들이 몰려와. 골치 아파지니 당장 여기서 처리를 해놔야…….’

[아, 그게요.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엥?

해골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있었는데 없어진 건 또 뭐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굉장히 강한 마력이 해골왕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빠르게 다가오는 마력의 기척에 마족들을 처리한 성기사들의 시선이 해골왕과 숙부를 향했다.

“릴라이 도련님!”

“이놈들의 배후인가.”

높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경비 모습을 한 마족들이 웃었다.

“그래, 왔구나. 동포여. 너희도 함께 성자를 죽…….”

말을 하던 마족들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해골왕을 해하려던 마족들이 잔인무도하게 썰려 나갔다.

“커헉! 너는 누구냐……!”

“인간도 아닌 놈이 왜 우리를 공격… 커헉!”

순식간에 마족들이 분해되어 쓰러졌다.

귀한 마력핵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떨어졌다.

그 위로 본 적 있는 그림자가 꿀렁거렸다.

그리고 범인의 정체를 눈치챈 해골왕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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