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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6화 (16/272)

제16화. 횡재로구나 (3)

“커헉!”

경비병의 모습을 했던 마족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잘려 나갔다.

그들의 몸뚱이가 땅에 떨어지자, 인간의 모습이었던 피부가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마족들도 모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자에 가차 없이 끌려갔다.

먼저 끌려간 건 해골왕에게 접근하는 마족들로, 마치 어디서 감히 해골왕을 노리냐는 듯한 분노마저 느껴졌다.

어떤 의미론 성기사들과 해골왕 대신 적을 처리해준 셈이었다.

당연히 마족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정체를 눈치챈 탓이었다.

“큽! 도대체 왜! 동족에게… 크악!”

닥치라는 듯, 결국 검은 웅덩이 같은 그림자로 빨려 들어간 마족들이 비명을 질렀다.

약한 마족들은 아님에도 장난감처럼 끌려갔다.

그 광경에 해골왕은 큭 웃음을 흘렸다. 저 그림자의 정체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저건 섀도우 리치잖아.’

얼마 전 주교가 가지고 있던 토템에서 부활시켰던 그 상급 마족 말이다.

서열 정리를 당하고 도망치더니, 그 이후로 줄곧 쫓아오고 있었나?

어떻게 성직자들에게 들키지 않고 쫓아올 수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섀도우 리치는 그림자를 통해서 이동하는 놈이었다.

마기를 감추면 힘을 전혀 못 쓰는 대신, 상급 성직자들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일품의 은신력을 가졌다.

여기까지 안 들키고 쫓아올 만하다만, 괘씸하다.

저놈이 아니라, 이놈이.

‘야. 탐지 마법. 왜 저거 말 안 했냐?’

88마리를 탐지했을 때, 분명 저놈도 눈치챘을 텐데.

새끼가 일 처리 똑바로 안 하냐고 눈치를 준 것이었는데 위스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은 적을 탐지하라 하셨지, 호의를 가진 놈들을 탐지하라곤 안 하셨는데요.]

허어, 이 새끼 봐라?

기가 찼지만, 사실 위스퍼가 말한 대로였다.

저 섀도우 리치에게서는 해골왕에 대한 적의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적의보다는 오히려…….

[저 아이를 노리는 놈들은 모두 없애겠다!]

아군…….

[더러운 손으로 저 아이를 만지지 마라!]

“크악!”

음, 애정……?

[그 더러운 눈으로 저 아이를 쳐다보지도 말아라! 눈알을 뽑아 버리겠다!]

푸학!!

…애정이 너무 넘쳐서 문제인 것 같은데.

아니, 솔직히 저 정도면 집착 수준이라 무서운데.

그래서 해골왕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급 마족이 왜 저러지?

정신교육 한번 해줬더니 깊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88마리가 사라졌다더니, 그걸 없앤 것도 저놈이로군.’

어쨌든 그만한 상급 마족이었다.

그만한 놈이 왜 인간 젖먹이인 자신을 지키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뭐 덕분에 손 안 대고 코를 푼 셈이었다.

싫을 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 릴라이 도련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칼을 든 채 상황만 보고 있는 에슈아의 기사들이었다.

신성제국의 최전방 칼로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그들조차도 이 상황은 황당한 모양이었다.

땀을 삐질 흘리는 그들의 눈알이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바쁘게 굴러갔다.

“마족이 아이작 도련님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해골왕은 이게 문제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마족이 인간 아이를 지키는 건 선을 넘었다.

이 녀석들도 머저리가 아닌 이상 의심하는 게 정상…….

“지키는 게 아니라 지들끼리 싸우는 거지. 서로 먼저 죽이겠다고 저러는 거야.”

“본인이 처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단 거군요. 그래서 아이작 도련님을 지키는 건가?”

머저리구나, 이놈들.

“해골왕의 부하가 다 그렇고 그렇지.”

“하긴, 그 머리통 까진 언데드를 섬기는 것부터 제정신은 아니지.”

머저리인 건 고마운데, 혀가 좀 길구나.

그래도 이쯤 되면 오히려 행운 아닌가?

금제 때문에 신성제국 안에 마족이 있을 리 없는 상황이었다.

상급 마법을 쓰면 당연히 단번에 들킬 테니 행동에 극도로 제약이 생길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들이 인간 영지 안까지 들어와?

‘마족의 마법도 생각보다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을지도.’

물론 기사들 중 머저리가 아닌 놈도 분명 있긴 했다.

“릴라이 도련님. 마족들은 특정 인간을 지정해서 쫓아오지 않습니다. 특히 남을 따르지 않는 섀도우 리치가 이 정도로 쫓아올 정도라면 분명 아이작 도련님께 뭔가 있는 겁니다.”

주교의 팔과 성대를 날려버린 기사단장이었다.

표정이 좀 심각해서 해골왕은 눈썹을 치켜떴다.

상급 성기사니까 위험한 의심만 안 하면 좋겠는데.

“언데드조차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존재. 도련님은 아니라 하셨지만, 역시 아이작 님은 성자 후보의 자격을…….”

옳지 그렇지, 핀트는 좀 나갔지만 좋다.

성자 후보가 아닌 성자라고 했으면 더 완벽했겠지만 훌륭하다.

해골왕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가문에서 입지가 약할 걸 짐작한 그였다.

다름 아닌 황제의 행동 때문이었다.

아무리 욕심이 난다지만 감히 공작가의 자식을 황실이 데려가겠다고 제안한다?

그건 에슈아에게 중요한 아이가 아니란 걸 알고서 제안한 것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성자라고 띄워주면 해골왕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성자인 만큼 초호화 대우를 받으며 이 공작 가문을 꿀꺽할 수 있겠지.

그 즐거운 생각에 해골왕이 음흉하게 웃었지만,

“성자가 아닌 평범한 꼬마 아이다. 성자 후보만 되어도 성녀처럼 신성력을 숨 쉬듯이 내뿜을 수 있을 텐데,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해골왕은 정곡이 찔린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시 성녀 가문.

뭐, 그래.

부끄럽지만 신성력을 직접 꺼내는 법은 아직 모른다.

성법은 무의식의 영역이지만 워낙 두뇌가 마법 전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그 문을 의식적으로 뚫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성녀 가문이라 눈치가 제법 빠르다만. 그래도 설마 마왕이라서 아직 성법 운용법을 모르는 거라곤 상상도 못 하시겠지!

그러나 숙부는 안쓰러운 듯 해골왕을 보았다.

“무엇보다 에슈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에게 성녀만큼의 특별한 힘이 있을 리 없지 않느냐.”

“!”

그 발언에 기사단장은 어째서인지 말문을 잇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눈에서 살의를 뿜어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마족들은 해골왕의 명령만으로 저렇게 우르르 몰려온 겁니까?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인데요? 그 해골왕은 도대체 어디까지 잔인하고 치졸한 겁니까?”

졸지에 치졸한 놈이 된 해골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았다.

하지만 숙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해골왕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졸렬하고 옹졸한 놈이다.”

와, 숙부 이 자식은 한술 더 뜨네.

해골왕은 숙부를 노려보았지만, 숙부는 대답 대신 해골왕의 몸을 빤히 보았다.

은발 아래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마님! 또 에슈아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예의 저주 때문입니다.

-젠장, 그 지독한 해골왕의 저주가 또……!

-도대체 해골왕의 그 지긋지긋한 저주는 언제 사라지는 건가!

“릴라이 도련님?”

기사단장의 목소리에 생각에 잠겨 있던 숙부가 칼을 번쩍 들었다.

“아이에게 잘해주는 건 좋지만, 너무 정을 주진 마라.”

“예, 예?”

“어차피 오래 못 살 거다.”

“…예?!”

그 순간 숙부가 검기를 마수에게 날렸다. 그 신호에 맞춰 성기사들도 성법을 발동했다.

그리고 숙부의 말에 기사단장이 제일 당황한 듯했지만, 사실 가장 당황한 건 해골왕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숙부 이놈 새끼야!

난데없이 시한부를 선고하는 건 또 무슨 경우인데?

설명은 해주고 가야지!

하지만 그 전에 에슈아의 푸른 성법이 일정 구역을 감쌌다.

결계로 보였다.

숙부는 해골왕의 부하를 멀쩡하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직 숨통이 붙은 것들은 눈을 파내서 전부 심문해라! 이미 죽은 놈들도 반드시 지옥에서 끌고 와라! 감히 해골왕의 이름을 에슈아 영지에서 지껄인 값을 치르게 해주겠다!”

새끼야!

대신 심문해 주겠다는 건 좋은데, 오래 못 산다는 것부터 해명하라니까!

“아이에게 피해가 안 가게끔 지켜보고 있어라!”

해명이나 하라고!

곧 숙부의 공격 성법이 섀도우 리치의 머리 위로 작렬했다.

강력한 기운에 해골왕을 지키던 섀도우 리치가 사납게 마기를 뿜어냈다.

[신들의 개들이. 감히 저분을 더러운 곳에 가둬놓다니!]

섀도우 리치가 분노한 듯 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아무래도 성기사들이 해골왕을 납치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빛의 벽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섀도우 리치를 가두었다.

쾅! 쾅쾅!

“잡았습니다!”

“이대로 포박을… 컥!”

분노로 가득 찬 섀도우 리치의 몸부림에 빛의 벽이 크게 흔들렸다.

둥!

밀려난 에슈아의 기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섀도우 리치는 객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 6계위의 상급 마수였다.

도시 단위를 넘어 나라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놈인 만큼, 만만한 놈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놈은 그 객체 중에서도 훨씬 더 강한 놈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섀도우 리치의 마력이 점점 올라가자 기사단장이 급히 외쳤다.

“도련님, 6계위 이상입니다! 일반 성법으로는 안 먹힙니다!”

“할 수 없군. 산 채로 잡는 건 포기하고, 마력핵째로 없앤다.”

눈을 번득인 숙부가 자신의 능력을 발동하려고 했다.

⸢기원⸥

그런데 그때였다.

쨍그랑!

그 불길한 소리와 함께 숙부가 당황한 듯 해골왕을 보았다.

“아이작!”

해골왕을 지키고 있던 보호 결계가 사라진 것이다.

‘설마 섀도우 리치가!’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 섀도우 리치를 가둔 결계까지 산산조각이 났다.

쨍그랑!

“!!”

해방된 섀도우 리치가 기사들을 스쳐 해골왕에게 무섭게 돌진했다.

“도련님!”

“놈이 도련님을 노리고 있다!”

모두가 해골왕을 지키기 위해 급히 달렸다.

[왕이시여!]

섀도우 리치가 해골왕에게 도착했다.

말은 못 하는지, 사념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왕이시여! 저 더러운 성직자 무리로부터 탈출하게 해드리겠…….]

그러나 섀도우 리치와 눈이 마주친 해골왕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성인군자와 같은 성스러운 미소와 다르게 눈에는 광기마저 어린 이채가 떠올랐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듯이.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

거대한 빛과 함께 섀도우 리치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사라지진 않고…….

“유, 육포?”

섀도우 리치가 건어물로 바뀌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골왕이 엉금엉금 기어 육포를 집어 들었다.

“따야.”

마치 딸랑이를 집어 든 듯한 그 광경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달려오던 기사들도, 숙부도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상급 마수인 섀도우 리치가 퇴치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의미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토템화가 아닙니까!”

상급 사제들만이 쓸 수 있다는 상급 봉인 성법이었다.

“지금 아이작 도련님이 마족을 토템으로 만드는 고위 성법을 쓰신 겁니까?!”

“성녀나 추기경급 이상만 쓸 수 있다는 그 성법을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에슈아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자, 기사단장이 힐끔 숙부를 보았다.

“저, 도련님께서는 분명 아이작 님이 평범한 분이시라고…….”

“…….”

숙부도 굉장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반면 토템을 획득한 해골왕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놓친 상급 마력핵이 제 발로 돌아오셨네.’

사실 해골왕은 섀도우 리치를 발견한 순간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머저리 성기사들이 영약이나 다름없는 마력핵을 박살 내게 두고 볼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미쳤다고 자신이 살려낸 놈이 남의 손에 죽는 꼴을 보고 있겠는가.

‘뭐, 이놈은 나를 구하러 왔으니 부하로 삼을까도 싶다만.’

토템 상태였던 터라 일시적으로 힘이 약화된 듯하지만, 최소 7계위 이상의 강한 마족이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마족 진영의 정보도 필요했으니까. 감히 금제를 어기고 자신을 사칭한 놈이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물론 기사들이 놀란 대로 토템화 성법을 쓴 건 아니었다.

벌써 그런 상급 성법을 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 어떻게 했냐고?

애초에 토템 상태였던 섀도우 리치를 본래 모습으로 부활시킨 게 해골왕이었다.

그럼 당연히 반대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미 부활을 시킬 때 해골왕의 손을 탔기 때문에, 놈의 마력핵에는 해골왕의 마력이 섞여 있었다.

이미 마킹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손짓만 해도 토템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손을 타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술법이란 거지만.

뭐,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아이는 에슈아의 이름을 드높일 아이다.”

숙부가 다가와 해골왕을 번쩍 안아 들었다.

기사들 모두가 웅성거리며 환호하고 있었다.

“토템화를 쓰셨다는 건 역시 성자라는 증거겠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이만한 나이에 그걸 쓸 수 있는 건 성녀님뿐이셨어! 희대의 천재가 에슈아에서 나온 거야!”

이어지는 찬사에 해골왕은 스스로 몹시 도취하듯 눈을 감았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어서 더해라, 이 저주스럽고 더러운 성기사 놈들아!

사실 그는 이걸 위해서 섀도우 리치를 이용한 것도 있었다.

성녀와 추기경 급만 쓸 수 있는 토템화를 이 몸이 사용한다?

당연히 성자 취급!

초호화 우대 취급을 받게 되겠지!

이유식에도 송로버섯이 잔뜩 깔려서 나오겠지!

“아이작, 집으로 가자꾸나. 숙부가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마.”

기사들은 정말 괜찮은 것이냐는 듯 놀라서 숙부를 보았지만, 해골왕을 안은 숙부는 기분이 좋은 듯 말에 올라탔다.

“이 숙부가 멋진 성기사가 되도록 키워주마. 네겐 자질이 있다!”

해골왕도 웃었다.

응, 성기사는 됐으니까 집에 가면 내 육신부터 내놔라, 애송아.

“설령 네가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이 숙부가 어떻게든 해보마. 어떻게든 네 이름이 이 대륙에 퍼질 수 있게 해주마!”

아씨, 그러니까 이 새끼는 왜 자꾸 지 조카를 죽이는 건데?

해골왕이 눈을 부릅뜨고 숙부를 보자, 숙부가 화답하듯 웃었다.

“하하. 집에 가면 이 숙부가 졸렬한 해골왕을 저주하는 법부터 알려주마. 하나부터 백까지 매일매일 익혀 보자꾸나.”

…에슈아, 이 시발 것들.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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