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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화 (17/272)

제17화. 노다지로구나 (1)

에슈아, 이 썩을 것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귀족이긴 대귀족이구나.

해골왕, 아니 이제부터 성자가 되어 신성제국을 먹어치울 예정인 아이작 에슈아는 한 저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젖먹이답지 않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호수 위에 마을을 가져다 놓았다고 해야 할까.

높게 솟은 파란 지붕의 농담은 하늘의 푸름보다 더 깊었고, 곳곳에 흐르는 수로(水路)는 이곳이 호수인지 마을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크고 길다.

하얀 대리석에 새겨진 조각이며 유리며, 감탄할 정도의 기품이 시발, 저게 다 얼마야. 아니, 건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장엄함만 봐도 신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시발, 이 새끼들 검소한 신앙 맞아? 아니, 건물만 봐도 과연 수천 년의 역사가 느껴지는…….

망할, 그러니까 더럽게 좋다는 의미다.

‘빌어먹을 신성제국!’

그렇게 마족을 쥐어뜯더니 전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었던 거냐?

저택을 바라보는 전(前)이자 현(現) 마왕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물론 신성제국이 부유한 건 알고 있었다. 다른 제국이나 나라들도 그러하다만 특히 신성제국은 대륙에서 이름을 떨칠 정도로 위세가 높았다.

바로 마족 때문이었다.

인간 진영이 마족들을 몰아내려고 신성제국에 얼마나 많은 로비를, 아니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에 비하면 마족 진영은 비렁뱅이!

부강할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해골왕이 이곳에 왔을 때는 아니었다.

해골왕이 막 이곳에 떨어졌을 땐 마족이 멸족 직전이었으니까. 오죽하면 살도 없는 스켈레톤이 개 마수에게 쫓길 정도로 굶주려 있었으니까.

괜히 금제로 걸면서까지 선공을 막고, 자급자족 성장을 꾀한 게 아니었다.

그 상태로 인간 진영에 넘어가게 되면 처맞을 게 분명했으니까.

물론 그만큼 돈이나 식량은 모이는 대로 전부 마족 인프라에 투자했다.

덕분에 자신은 비록 누더기를 걸쳤고 유리창도 없는 낡은 성에서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의 후회도 없는…….

[세상에 주인님! 구질구질하던 저희 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차원이 다르군요!]

후회 없는…….

[저저, 보십시오! 주인님! 외벽에 깐 저 신성석! 저건 저만 아는 건데, 하나만 팔아도 저택을 살 수 있는 수준입니다! 땅까지 살 수 있다고요!]

…시발, 역시 저택부터 팔고 해외로 튈까?

아이작은 푸른 저택을 슬쩍 노려보았다.

뭐, 비렁뱅이 출신들에게는 화려해 보여도 사실은 이게 검소한 거겠지.

청의 신앙은 5대 문벌 중 가장 검소하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주교와 만났던 황실의 신전만 해도 이보다는 훨씬 화려하지 않았던가.

또 하나의 왕인 교황 가문은 얼마나 금칠을 해놨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아무튼 앞으로 살게 될 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오히려 좋은 편이이다.

딱 하나만 빼면.

“봐라, 아이작! 너도 어서 자라서 저 아이들처럼 되어야지.”

아이작을 안은 숙부는 훈련장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연무장에는 아직 성인식을 치르기 전의 어린 생도들이 검술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해골왕 죽어! 죽어! 해골왕 죽어!”

“사지를 분해해도 시원찮은 해골왕!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그 원한은 사라지지 않으리! 해골왕 뒤져라!”

“똥보다 못한 해골왕, 죽어라!”

아니, 이 자식들은 생도들에게 뭘 가르치는 건데.

해골왕 모습을 한 허수아비를 두들겨 패다 못해 걷어차는 생도들의 눈이 무서웠다. 심지어 비겁하게 눈이나 다리 사이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어린 생도들의 검술 실력이 나날이 늘어서 무척 뿌듯하구나.”

아니, 저건 이미 검술이 아니잖아.

그냥 더러운 사술이잖아!

“하하, 아이작도 저렇게 돼야 하는데.”

그냥 깡패 사교들 양아치 짓이라고! 새끼야!

이놈들은 도대체 성기사들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 거야.

아이작은 분노에 찬 눈으로 훈련장을 쏘아보았다.

물론 생도라 해봐야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집중력이 길지 못할 나이니 저렇게 흥미를 유발할 거리가 있는 게 좋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긴 하는데…….

“와, 정중앙! 내가 이겼다!”

아이작은 구석에서 해골왕 인형에 쉬 싸움을 하는 사내아이들을 보며 파르르 떨었다.

“와아, 단장님한테 새 더미 가져다 달라고 하자.”

“그럼 이번엔 해골왕 머리로 축구 하자.”

이 새끼들. 인권침해로 고소해버릴 테다.

아이작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래도 뭐 이해를 못 할 만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귀여운 병아리들은 해골왕과 직접적인 원념 관계를 가진 에슈아의 생도들로 보였다.

필시 자신도 모르는 원한이 있는 거겠지.

그래, 이를테면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든가…….

“곧 있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오실 거야.”

“어, 그럼 휴식 시간 끝나기 전에 정리하자! 더러운 해골왕은 네가 들어!”

“싫어! 더러워져!”

그냥 지금 원한을 만들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아이작의 눈이 이글거렸다.

‘뭐, 에슈아의 지침이 왜 이런지는 대충 예상 간다만.’

전쟁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보통의 정신과 신념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럴 때 병사들의 사기를 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증오를 넣는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그 증오 훈련이 잘되어 있으면 병사로 만들기엔 좋겠지.

실제로 해골왕을 없애겠다는 그 좀비 같은 신념, 아니 광적인 집착으로 달려드는 성기사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생각해보니 그놈들이 전부 청의 신앙이었을지도…….’

아이작은 징그럽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관없다 싶었다.

에슈아가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에슈아 사람들은 자신의 패가 되면 되었지 적이 아니었으니까.

다루기에 따라서는 떠올리는 것도 증오스러운 교황 세력, 그리고 <해골왕>이라면 치를 떠는 귀여운 견원지간들과 마주할 때도 큰 도움이 될 테지.

그러니 열 받긴 하지만 전원 부하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굳이 미워할 것도 없다.

어차피 그는 이제부터 <해골왕>의 육신을 되찾아 영단으로 꿀꺽하고, 성자가 되어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었다.

해골왕을 무시하는 풍토?

해골왕 인형에 쉬를 싸는 버러지 짓?

알 게 뭐람.

자신이 교황이 되어 황제를 구워삶고 신성제국 대신 이사악 제국으로 만들면 그만인 것을!

아이작이 꺄르륵 웃었다.

“오! 그래, 아이작. 너도 저기 있는 훈련장이 마음에 드나 보구나.”

응, 나중에 저기 있는 해골 인형, 죄다 신들 새끼로 교체할 거야.

“야드 경. 저기 훈련장에 있는 해골왕 저주 인형을 아이작에게 주게. 저주하는 법을 알려 줘야겠어.”

하나 정도는 숙부 얼굴로 놔도 상관없겠지.

물론 그 전에 잘 크는 게 급선무긴 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 에슈아>를 죽이려 했던 암살자들의 배후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가짜 유모를 붙이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놈들 말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란 거지.’

아이작은 높은 확률로 범인은 외부인이 아니라 가문 내부인이라고 봤다.

설령 범인이 아니더라도 최소 공범이 있다.

내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유모를 바꾸는 일이 쉬울 리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또 암살 위험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아이작은 서둘러 힘을 키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한 필수 요소인 마력은…….

‘좋아, 마력핵의 기운이 느껴진다.’

역시 굴지의 퇴마 가문.

필시 이 넓은 부지 안에 마력핵을 모아둔 창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물며 신성제국 수천 년의 역사답게 모아둔 게 몇 개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수백 개, 수천 개 이상.

‘이 정도면 하급 마법은 물론, 상급까지 거뜬히 개방할 수 있겠다.’

황실 대신 이곳을 택한 보람이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지낼 장소에 마력핵이 있는 셈이니 좋은 것이었다.

‘뭐, 그전에 좋은 유모가 붙어야겠다만……’

어린애에겐 암살이 쥐약이니까. 어디 암살에 신경 안 쓰고 집중하게 해줄 만한 녀석이…….

그때였다.

“릴라이 도련님!”

“!”

저택 안에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미인이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에 복장을 보니 에슈아의 기사단인 듯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형수님, 아니 성녀님의 아이인 아이작이다.”

그러자 기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해골왕을 보았다.

“세상에, 이분이 그분의 아드님……!”

성녀에 대한 동경의 시선과 아이작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진심 어린 표정이었다.

릴라이는 본인의 유모의 딸이자, 함께 자라온 기사에게 말했다.

“갑작스럽지만 아실리. 앞으로 이 아이를 돌봐줬으면 한다. 지금 믿을 만한 게 너밖에 없구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기사의 눈빛이 바로 굳세게 바뀌었다. 그녀는 훈련용으로 묶은 머리를 풀어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제 목숨을 바쳐 아이작 님을 모시고 지키겠습니다.”

해골왕은 납득했다.

그러니까 대충 이 여자가 내 유모라는 이야기군.

하물며 얼핏 느껴지는 기세를 보니 역시 성녀 가문. 결코 낮은 계급의 기사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행여나 암살자가 들어와도 도리어 상대가 당하겠지.

아주 좋았다. 이제 성장과 훈련에 집중하면 된다.

동시에 소식을 듣고온 에슈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들었습니다! 마족들이 아이작 도련님을 노려왔다면서요?”

“그런데 아이작 도련님이 전부 퇴치하셨다고……!”

“소식이 빠르구나.”

“마족이 일부러 노려올 정도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거죠.”

“에슈아의 검이 되실 분이십니다!”

모두의 환영에 릴라이가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반가운 건 알겠다만, 일단 아이 숨부터 돌릴 수 있게 해주자꾸나.”

“아이작 님을 어디로 모실까요?”

“그래, 급하게 데려왔으니 일단 빈방을…”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집사와 남녀 시종들이 릴라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은 아이작 님께서 오신다는 말에, 형님분께서 미리 별관을 준비해두라 하셨습니다.”

음… 별관?

해골왕은 조금 불안한 듯 미간을 좁혔다.

좋아 보이는 단어와는 별개로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증명하듯 숙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형님께서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하셨구나. 본관으로 갈 것이니 따라와라.”

음, 싸하다.

참으로 싸해.

아이작의 눈썹이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싸함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본관이라니…! 설마 아이작 님을 직계분들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역시나.

아이작의 느낌대로 시종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집사는 난처한 듯 릴라이의 눈치를 살폈다.

“도련님, 실은… 아이작 님을 별관에서만 보필하라는 마님 명이 있었습니다.”

“사리 분별이 안 되시는구나. 사람이 죽어 나가고, 저주받고, 심지어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의 집에서 애를 지내게 하라고?”

숙부는 되레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이는 에슈아 직계, 그것도 장남의 아들이다. 애초에 유배용으로 쓰던 별관에서 지내게 하는 게 우습지. 됐으니 첫째 형님이 쓰시던 방을 준비해놔라. 가주께는 내가 직접 말해두겠다.”

“예!”

하녀들은 바로 사라졌다. 하지만 묘하게 걱정하는 집사의 표정에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니, 뭔데?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별관행인데?

설마 이거 그 귀족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집안싸움이냐?

텃세 문제냐?

아니, 그런데 보통 이런 건 사생아들한테 터지는 거 아닌가?

직계라며?

사생아도 아니라며?

심지어 지금 알았다만, 무려 장남의 아들이라며?

그럼 정통성은 제일 아닌가?

하지만 뭐, 사실 상관 없었다.

[주인님! 별관 쪽이 훨씬 더 마력핵이 많습니다! 노다지입니다!]

그사이 탐지를 끝낸 위스퍼의 말에 아이작은 웃었다.

사실 아이작도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별관으로 보내다오!

“아이작은 일단 내 방으로 데려가겠다. 조카 혼자 저런 곳에 둘 수 없다.”

아니, 숙부야.

거기 아냐. 괜찮으니까 보내줘!

“그래그래, 자장가로 역대 성녀님들께서 해골왕과 싸운 성서를 읽어주겠다.”

필요 없다고!

그보다 그거, 나한테는 퇴마서라고!

들으면 진짜 성불해!

“성서를 다 읽으면 해골왕 전용 퇴마법도 알게 될 것이다.”

숙부가 조카를 죽이네!

젠장,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콱 때려눕혀?

아씨, 어쩌지?

곧 숙부가 아이작을 데리고 움직이려 할 때, 발버둥 치는 아이작의 귀에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는 분명 별관으로 보내라 했을 텐데.”

구원의 목소리에 아이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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