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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8화 (18/272)

제18화. 노다지로구나 (2)

20대 초반의 표독스러운 남자가 저택의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안에 얼굴을 비쳐서 소란을 피운다는 게 고작 애새끼 문제냐?”

심지어 말투도 고약했다.

“어디서 해골왕보다 더러운 뼈다귀를 주워와서는.”

졸지에 다시 뼈다귀가 된 아이작은 눈을 치켜떴다.

뭔데.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아직 백 살도 안 먹었을 놈이 누구길래 어디서 건방지게 눈알을 부라리고…….

“형님.”

아, 숙부 놈이시구나.

아이작의 천사 같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닮은 꼴은 아니었다.

일단 릴라이는 은발이었지만, 저 버르장머리 없는… 그래, 눈매 사나운 숙부는 갈색 머리였다.

닮은 구석이 있다면 둘 다 푸른 벽안이라는 것 정도.

그뿐이 아니었다.

릴라이는 가만 보면 성녀 멜리사를 닮은 구석이 있었지만, 저 싹퉁바가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닮았다면…….

‘…교황?’

물론 아주 조금이긴 했지만, 아이작은 내심 심기가 불편해졌다.

교황과는 단순히 적대 진영의 수장이란 이유로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싹퉁바가지도 조카가 못마땅한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그거 내려놔. 별관으로 보내게.”

고압적인 어조에 릴라이의 곧은 눈빛이 살벌해졌다. 마치 해골왕의 이름을 들었을 때와 같았다.

조카를 ‘그거’라고 부른 시점에서 변한 듯했다.

정작 ‘그거’는 싹퉁바가지 쪽을 응원했지만 말이다.

‘옳지, 잘한다.’

둘 중 고르라면 자신을 데리러 와준 릴라이 쪽이 낫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별관으로 보내주려 하는 고마운 놈이었다.

‘그래. 차라리 날 빼앗아서 별관에 처박아!’

어서!

그래야 이 또라이 숙부를 치우지!

하지만 싹퉁바가지는 조카에게 손끝 하나 대기 싫은 듯 코웃음을 쳤다.

“아주 쇼를 해라. 사물 분간도 못 할 애새끼한테 그런 거나 쥐여주고.”

정작 싹퉁바가지는 아이작이 쥔 물건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는 아이작이 가진 백청의 보석 장식이 몹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아니, 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지.

저건 시샘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보석은 릴라이가 쥐여준 물건이었다.

희소성 있는 색이라 팔기에 따라선 평범한 황금보다 값을 더 받을 수 있을 물건이라 좋아했던 광물.

하지만 그래 봐야 또라이 숙부가 애한테 준 물건이었다.

무려 공작가 영식이 시샘할 이유가…….

“세상에 단 1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한 백화석을 쥐여주기나 하고. 다른 조카가 없는 것도 아닌데, 큰형님의 아이라고 그렇게 귀여웠냐?”

또라이라고 한 거 취소.

아이작의 휘둥그레진 눈이 보석을 향했다.

그도 그럴 게 백화석!

세계에서도 가장 귀한 3대 광물이 있는데, 백화석은 그중 하나로 특성적으로나, 미적으로나 희소성으로나 모든 부분에서 전설적인 광물이었다.

그리고 신의 눈물이라 불리는 백화석은 유명세에 걸맞게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이작이 눈이 뒤집힐 효과가 있었다.

신성 진영에서는 그다지 필요 없는 능력일 수 있지만, 아이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건.

단순히 가격만 놓고 봐도 가문 하나는 살 수 있을 수준이다.

릴라이가 어떤 경로로 이걸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싹퉁바가지가 시샘을 낼 만했다.

‘금반지 수준이 아니잖아, 이 정도면.’

또라이 숙부에서 또라이 숙부님으로 격상시킨 아이작은 보석을 입안에 텁 숨겼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귀한 걸 그냥 쥐여줬나 싶었지만, 집안사람들에게 빼앗길 순 없지.

곧 보석을 입안에 넣자 흠칫 놀란 싹퉁바가지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려는 게 보였지만, 도로 팔짱을 낀 그가 더욱 못마땅한 듯 눈을 치켜떴다.

“애초에 그 쓰레기는 왜 데리고 온 거냐? 심지어 본저택에 들여? 누구 마음대로?”

저게 성직자야, 양아치야.

릴라이 쪽은 지나치게 성기사 같아서 싫었는데, 이쪽은 그냥 양아치라서 별로다.

어디 그뿐인가?

[어우, 이 빌어먹을 성직자들. 감히 주인님 앞에서 신성력을 뿜어대? 둘 다 성녀처럼 매달까요?]

내가 매달릴 것 같으니 관둬라.

아이작 정도의 고수면 손톱만 한 힘이라도 단숨에 감지할 정도로 예민했다.

솔직히 이쯤이면 서로 뿜어내는 게 신성력이 아니라 살기다.

도저히 형제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형제 사이인데 도대체 왜? 저럴 이유가 있나?

“왜 다들 가만히 있는데 거의 막내인 네가 설치냐고.”

“그럼 에슈아 피를 이은 아이를 내버려 둡니까?”

“네가 안 갔어도 시종을 보낼 예정이었다.”

“예, 방계로 보내려 하셨겠죠!”

“그래서 문제 있냐?”

“문제 많죠! 우리의 조카이고, 이 가문 장남의 아들입니다!”

“장남? 염병하네.”

아, 이제 알겠다.

얘들 콩가루 집안이구나.

아이작은 현실을 외면하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지금이라도 황실로 돌아갈까?

내가 콩가루로 만들기 전에 지들끼리 알아서 날아가겠네.

‘뭐, 나야 내 육신만 꿀꺽하면 그만이다만.’

물론 지들끼리 바람에 날아가든, 태풍에 날아가든 상관없다 이거였다.

문제는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이것들이 내 가족이고 보호자란 거지.

하지만 그래서 또 묘하게 열 받았다.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장남의 아이에게 이런 취급은 도를 넘는…….

“그래, 장남의 아이 좋지. 그 장남 때문에 집안이 망할 위기다만.”

“뭐요?”

“왜, 아냐? 장남이 가문을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지원도 끊기고 가문이 망할 뻔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아이?”

도를 넘은 건 부모 놈이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사생아 취급받는 이유도 알겠구나.

“애초에 어느 씨인지도 모르는 천박한 계집한테서 나온 그 아이를 우리가 왜 받아줘야 하는데?”

그리고 이 새끼가 슬슬 선을 넘는 것도 알겠네.

아실리도 눈을 부릅떴고, 릴라이도 같은 생각인 듯 눈을 번득였다.

“입조심하시죠. 집안이 망할 뻔한 적도 없고, 형수님은 이번 대 성녀님이십니다.”

“허, 그래. 너는 큰형님과 성녀를 유독 따랐으니까 그 쓰레기한테 애정을 품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

“결국 그 반려가 낳은 게 또 아들? 결국 성녀로서도, 장남으로서도 본분을 전혀 못 한 것 아니냐? 뭐 정실, 아니 성녀의 자식들이 그렇고 그렇지.”

“형님.”

“그 꼬마도 성녀의 핏줄답게 얼굴은 쓸 만해 보이니, 또 에슈아의 씨내리로 팔면 되겠구나. 그래, 그렇게라도 가문에 도움이 되어야지.”

그 말과 함께 릴라이가 아이작의 눈을 가리게 했다.

동시에 릴라이의 주먹이 형의 얼굴에 날아갔다.

“지금 말 다 하셨습니까?!”

“꺄악! 어서 말려!”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헉!”

[감히 더러운 성직자들이 주인님을 모독해! 전원 죽여 버리겠다!]

주먹질 싸움이 시작되자 시종들과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하다못해 듣고 있던 위스퍼까지 주인을 모독했다며 달려들려 했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또다시 푸른 하늘을 보았다.

아, 이놈들을 데리고 교황이 되는 것보다 그냥 교황 목을 혼자 따오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별관에 있는 마력핵을 죄다 부활시켜서 튈까?’

“왜. 그 아이를 성자 후보로 밀려고 데려온 걸 모를 줄 아느냐? 이미 집안에 성자 후보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우리 덕분에 에슈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거라!”

“형님!”

바로 그때였다.

“그만 안 해?”

“!”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푸른 번개가 둘 사이에 떨어졌다.

멀리서 낯선 얼굴의 노인이 아이작을 보았다.

“가주께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신다.”

* * *

“뜌아(시벌 놈들).”

“뜌야야야야(왜 콩가루인가 했더니).”

아이작은 어딘가를 보며 욕을 읊조리고 있었다.

가주가 부른다는 말에 시종들에게 끌려가 욕탕에 던져지고, 그 뒤에 벅벅 씻긴 뒤 회의실에 내던져진 아이작이었다.

물론 씻는 건 좋다 이거였다.

비록 시종들이 무슨 사주를 받았는지 씻는 게 아니라 무슨 탈곡기를 탈탈탈 돌리는 줄 알았다만, 상관없었다.

그래, 가주를 본다는데 더러운 모습으로 조우할 수는 없지.

자신이 금방 먹어치울 자리긴 하지만, 일단은 집안의 최고 서열이었다.

무려 인계에 군림하던 <해골왕>과 유일하게 맞대결할 수 있던 성녀의 가문이자, 제국의 5대 가문 수장이면 분명 보통 놈은 아닐 터.

최소한 지금은 예의를 차리고, 어떤 놈인지 확인을…….

“쯧, 또 사내놈이구나.”

“에잉, 아무짝에 쓸모없는 입만 또 늘었어.”

하기는 개뿔이.

아이작은 눈앞에 있는 늙은이들을 보며 핏대를 세웠다.

아니 가주가 데려오라고 하더니, 왜 연관도 없는 늙다리들이 눈앞에 앉아 있는데?

“사내놈을 낳아서 뭐에 써먹는가.”

게다가 난데없이 아들로 태어났다고 구박을 하는데?

“천한 걸 성녀로 받아줬으면 본분을 다해야지. 또 아들을 낳다니, 성녀의 자격이 없어.”

이 빌어먹을, 이게 무슨 혼종이야.

남아 선호든 여아 선호든 하나만 해주겠냐?

아이작은 소집된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꿈틀거렸다.

자신을 까고 있는 건 <에슈아>의 가주를 보좌하는 기둥들.

쉽게 말해 장로와 원로들이었다.

그리고 에슈아 정도의 명문이었다. 가주의 옆에 보좌들이 앉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릴라이. 그 아이는 방계에서 키우고 방생하기로 했다. 왜 본가의 땅을 밟게 했느냐.”

왜 가주도 아닌 놈들이 난리인데?

“방생이라니요, 누가 들으면 저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온 줄 알겠습니다.”

심지어 동물 취급은 기본에, 왜 가주의 자리에 추기경이 아니라 후처가 앉아 있는 건데?

그리고 같은 생각인지, 릴라이가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 여인을 지그시 보았다.

“아버님은 자리를 비우셨군요.”

“출타하셨다. 성자 후보 문제로 여기저기서 시끄럽지 않느냐.”

동시에 싹퉁바가지가 불만이냐는 듯 톡 쏘아붙였다.

“왜. 우리 어머니가 가주 대리로 앉아 계신 게 그렇게 불만이냐?”

불만은 없지.

불만이 있는 건 네 싹퉁머리 없는 말투지.

아이작은 못마땅하게 보았지만, 나불거리는 싹퉁바가지는 입을 멈출 줄 몰랐다.

“불만이면 가모님께 가서 딸이라도 낳아달라고 엉엉 빌어보든가.”

“혀……!”

“이곳 에슈아에서는 성녀를 배출한 자들만 입을 열 수 있는 거 몰라? 정 발언이 하고 싶거든 너도 나가서 딸이라도… 푸컥!!”

“꺅, 도련님! 코피가!”

싹퉁바가지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싹퉁바가지의 얼굴에 황금 딸랑이를 집어 던진 아이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새끼. 거, 딸 아니라 서럽네, 진짜.

애초에 성녀?

내가 할 말은 진짜 아니지만 해골왕도 못 잡았으면서 뭔 유세야, 유세는!

하지만 맞은 게 열 받았던 건지, 싹퉁바가지는 바로 아이작을 집어 들었다.

“망할 쓰레기가 어디서! 푸학!!”

아이작은 바로 숙부의 얼굴에 침을 거하게 뿌렸다.

침 범벅이 된 싹퉁바가지는 굉장히 불쾌해했지만, 그래서 뭐.

젖먹이를 때릴 거냐?

때려봐. 때려보라고, 등신아.

“이 예의도 근본도 없는 놈이!”

결국 때리진 못하고 파르르 떨기만 했다.

뭐 잠깐 열 받아서 숙부 얼굴을 후려갈기긴 했다만, 사실 이놈이 이렇게 기고만장한 이유는 있었다.

‘누가 성녀 가문 아니랄까 봐. 사내놈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일 줄이야.’

간단한 이야기였다.

성녀를 배출하는 가문이니, 여자아이가 귀하다.

여자아이를 낳은 자의 입지가 커질 정도로.

무엇보다 성녀의 특별한 전투 능력은 사내아이에게 발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도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건 잘 알았다.

“보십시오, 저놈이 장남의 아이라고 데려온 게 하는 짓을!”

“고엘 도련님!”

“하는 짓이 천박한 걸 봐선 분명 에슈아의 핏줄도 아닐 겁니다! 어디 비렁뱅이의 씨일지 알 게 뭡니까? 사실 별관도 아까운 놈입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대로 당장 내쫓으시죠!”

그리고 자신의 몸을 찾기 전에 저 싹퉁바가지의 입을 닥치게 해야겠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예, 별관이 정말로 아까운 아이죠.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릴라이의 말에 원로들이 미간을 좁혔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그러자 릴라이가 눈을 반짝이며 아이작을 번쩍 집어 들었다.

“예. 이 아이는 재능이 있습니다. 고엘 형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능이요.”

“뭐가 어째?”

싹퉁바가지가 눈을 부릅떴지만, 아기 사자처럼 허공에 높이 들려 있는 아이작은 히죽거렸다.

그래, 노친네들 표정 완전 바뀌었다.

조금만 더 하자.

“들어 주십시오, 이 아이는 성자가 될 아이입니다!”

옳지!

조금만 더!

“그뿐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분명 교황도 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잘한다! 그거지!

그래, 계속해!

“아니, 해골왕을 죽일 아이입니다!”

잠깐 숙부야.

마지막은 빼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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