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노다지로구나 (3)
순간 기가 차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분명 릴라이는 에슈아의 남아 중에서도 보기 드문 천재과였다.
보는 눈이 제법 있다 한들, 아무리 그래도 교황이라니?
하지만 불쾌감을 드러내는 후처와 달리 원로들은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해골왕……?”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놈을 죽일 수 있다고?”
“!”
해골왕의 이름을 듣자마자 원로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릴라이의 수많은 말 중에서 가장 귀에 박힌 모양이었다.
심지어 언제 꼬장을 피웠냐는 듯, 한순간에 피어오르는 살벌한 눈빛에 어린 아이작은 순간 컥 숨이 막혔다.
누가 무인 가문 아니랄까 봐. 마물을 잡는 토벌대라도 꾸려지면 하나같이 현역으로 뛰쳐나갈 노장들이었다.
문제는 그 마물이란 게 자신이란 거다만.
‘들키면 분해돼서 대륙에 전시되겠구만.’
마족인 위스퍼는 노장들의 신성력에 미쳐 날뛰려고 했다.
[가암히! 오늘내일할 것 같은 버렁뱅이들이 신성력을 뿜다니! 선전포고냐! 이 미물들이 죽고 싶은 것이냐! 어?!]
아서라.
너 아직 1계위밖에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해골왕을 없애겠다는 원념만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놈…! 그 관절 영양제로 만들어도 모자랄 놈!”
하다못해 빻아지겠군.
가뜩이나 멜리사도 살아 있다는 판국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의 원념이면 옛날에 직접 싸웠던 놈들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살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원로님들.”
“아.”
까칠한 후처의 목소리에 원로들은 크흠 눈치를 보며 기침을 했다. 부끄럽게도 해골왕의 이름에 잠시 이성을 잃고 말았다.
“릴라이. 네가 인정할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거겠다만, 그 정도의 아이냐?”
“예. 해골왕을 영혼까지 찢어 죽일 수 있는 아이입니다.”
또다시 원로들의 눈빛이 괴물처럼 변하자, 후처가 그쯤 자극하란 듯 눈썹을 치켜떴다.
“릴라이.”
“다음 교황은 필시 이 아이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말에 내부가 한순간에 술렁거렸다.
뭐 그럴 만도 했다.
신성제국에서 교황은 왕이었다.
그리고 왕실이라 할 수 있는 교황가가 버젓이 있는데, 친교황파 입장에선 반역이라고 침을 튀길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싹퉁바가지는 언성을 높였다.
“교황 성하가 어디 시골 동네의 촌장의 이름인 줄 아느냐!”
“!”
그는 교황의 자리를 모독하지 말라는 듯 릴라이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걸 키우고 싶어도 정도껏 해야지. 교황은 최고의 핏줄, 정통성, 힘 모든 게 갖춰줘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교황은 무슨, 저까짓 게 아무리 날뛰어 봐야 3계위가 한계…….”
“무려 토템화를 써서 마수를 퇴치했습니다.”
“그래, 그것 봐라. 토템화를… 뭐, 뭐?”
싹퉁바가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원로들은 귀를 의심하듯 입을 벌렸다.
“지금 토템화라고 했느냐?”
“성녀님과 가주께서만 쓰실 수 있는 그 성법을?”
릴라이는 아이작을 더욱 내밀어 보이며 웃었다.
“그렇습니다. 하물며 이 아이가 신전에서 6계위 마수를 쫓아내 폐하와 저하를 지켰다고 합니다.”
“구마 성법……!”
“약관은 넘어야 쓸 수 있는 기술을!”
“그뿐이 아닙니다. 베리트가의 주교한테는 신성력만으로 이빨을 날려 버렸다고 합니다.”
원로들은 더욱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까지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신성력만으로 강한 타격을 가하다니.
“설마 해골왕 시대에 소실된 성법을 말하는 것이냐!”
“전성기 성녀님들의 권파 성법?!”
“그거야 장로님들 해석하기 나름이시죠.”
그 말 한마디에 사내라 필요 없다던 원로들의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 달라졌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토템화에 권파라니, 이는 재능이고 뭐고 논할 단계가 아닌가. 계륵이 아닌 천재요!”
“만약 사실이라면 교황의 자리를 빼앗아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치가 떨리는 베리트를 골로 보낼 수 있는 것인가?!”
“지금 교황이 문제입니까? 해골왕을 미래 영겁 소멸시킬 수 있다잖습니까!”
“어쩌면 성자라서 성녀님들의 성법도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것만 부활된다면 에슈아도 명예를 되찾을 수 있소.”
“복을 가져올 아이구나!”
릴라이는 계획대로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물론 부정하는 여론도 있었다.
“못 믿겠구나. 그 아이한테선 신성력이 조금도 안 느껴지니.”
사나운 가주 대리의 말에 잠자코 있던 장로 측도 혐오스럽게 아이작을 보았다.
“맞습니다. 그 정도로 빼어난 실력이면 벌써 신과 계약을 했겠죠. 신성력이 안 느껴질 리가 없습니다.”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으니 화를 부르기 전에 혈연을 끊는 건 어떻습니까.”
아이작을 해하려는 일파의 말에 릴라이는 어디 더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무려 토템화를 쓸 줄 아는 아이입니다. 그 정도는 숨길 수 있겠죠.”
심지어 조카의 능력치를 맘대로 상향시켜 버렸다.
반면 싹퉁바가지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쫓아야겠네요. 그렇게 마족처럼 비겁한 능력을 누가 좋아한다고.”
하지만 원로들은 오히려 눈을 번득이며 탐을 냈다.
“신성력을 숨길 수 있다니!”
“사실이라면 해골왕도 죽일 수 있는 빼어난 암살자가 될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키울까요?”
“어디서 가로채! 우리 거야.”
하! 변태 새끼들, 아니 못돼 처먹은 성직자 새끼들.
이래서 신성 진영은 안 된다.
뭐, 성녀들의 기술은 물론, 수백 년 전의 성법까지 직접 봐온 해골왕이었다. 그러니 성법만 익히면 잊힌 옛 성법에 신들의 성법을 쓰는 건 일도 아니다만.
결국 아군이 되어줄 줄 알았던 원로들 중 몇몇 여론이 바뀌자, 싹퉁바가지가 눈을 부릅떴다.
이쯤 되자 릴라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고엘 형님이 그러셨죠. 집안에 성자 후보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요.”
모두가 놀랐다.
“성자 후보? 고엘, 그게 무슨 말이냐?”
날카로운 목소리에 싹퉁바가지는 입술을 깨물며 릴라이와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그걸 왜 여기서 말하냐는 얼굴.
하지만 싹퉁바가지는 곧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교황 성하께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저희 아이의 몸에 성흔이 발현되었습니다.”
“뭣이?”
“성흔?”
성흔은 신이 내린 축복의 표시다.
그래서 성자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그럼 최근에 자리를 비운 것도……!”
“예. 가모님이 안 계셔서 교황청에 먼저 다녀왔습니다. 성흔은 성자라는 둘도 없는 증표죠. 하지만 저 아이는요? 성흔이 있습니까?”
“릴라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성자라고 우기려면 증거를 가져와야죠. 최소한의 자격도 없으면서 무슨 성자? 천재는 저희 애겠죠.”
그제야 아이작은 싹퉁바가지가 자신을 배척하려 했던 원인을 깨달았다.
‘저 싹퉁바가지가 지 자식을 성자 후보로 내세우려고 했구만.’
그쯤 되자 원로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릴라이를 못 미덥게 보았다.
“그리고 너는 성흔도 없는 아이를 성자라고 생각하는 거고?”
“예. 분명 가모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
무려 역대 최강의 성녀였던 가모한테 인정을 받을 정도라고?
황제와 추기경도 애송이 취급 하는 가모한테?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아이작은 심드렁했다.
가모면 멜리사잖아.
나 죽이려는 녀석한테 인정을 받아서 뭘 하는데.
그보다 만나면 뒤질 텐데 미쳤다고 얼굴을 보나?
그러나 싹퉁바가지가 같잖다는 듯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정도로 자신만만하면 그걸 해봐도 되겠구나.”
“예?”
“<성물 보물고>.”
그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그곳은 다른 나라에서조차 탐내는 에슈아의 특별한 보물고.
수천 년의 비전과 성물이 쌓여 있으며 대대로 에슈아에서 태어난 여아들이 돌잡이를 하는 보물 공간이었다.
아이만 들어갈 수 있으며, 가지고 나오는 물건에 따라서 아이의 능력치를 점칠 수 있다.
가지고 나온 물건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그 꼬마를 인정받게 하려고 이 소란을 피울 정도니, 그곳의 시험을 거치게 해보는 것도 나쁠 것 없지 않느냐?”
“고엘. 헛소리 말아라. 거긴 성녀가 아니면 위험하다. 지난번에도 사상자가 나와서 폐관된 곳이 아니냐.”
그러나 싹퉁바가지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글쎄요. 그렇게 대단한 아이면 안의 시련도 이겨내고, 위대한 멜리사 성녀님이 가져오셨던 물건을 가져오겠죠.”
“그러면 인정하시겠다고요?”
아니, 니들 인정 필요 없으니까 별관에나 보내달라고!
“왜. 불만 있느냐?”
“아뇨. 해볼 만하군요. 고위 성법도 쓰는 아이니까요.”
자신만만한 숙부의 말에 아이작은 땀을 삐질 흘렸다.
믿어주는 건 좋은데 숙부야.
나 아직 신성력 못 다뤄. 이놈아!
그보다 세상을 살아온 지 수백 년이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고작 뭔 돌잡이야.
귀찮아 뒤지겠네.
애초에 신의 힘이 담긴 성물 따위, 아이작에겐 전혀 흥미 없는 것들이었다.
‘돌잡이고 나발이고, 별관이나 보내달…….’
“하지만 그곳엔 해골왕의 육신이 있어서 위험할 텐데.”
아이작의 눈이 뒤집혔다.
시벌 놈들아, 돌잡이하게 해주세요!
* * *
신성제국 헬라에서 서북부로 계속 나아가면 인간은 절대 살 수 없는 숲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마족 진영과 바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무인(無人) 지대.
검은숲.
식물도 흙도 흑색 일색, 마물이 들끓는 무법 지대였다.
인간들은 사형수나 필요 없는 인간들을 처분할 때 숲에 던져 넣기도 했다.
숲에 던지면 순식간에 뼈만 남는 무법 지대였다.
그리고 본래라면 취객조차 얼씬도 못 하고 입구를 보자마자 도망쳐 나올 곳이지만, 이곳에 기이한 인영이 있었다.
“키엑!”
“키에엑!”
검은 성직자복에 특별한 푸른 영대를 어깨에 두른 중년의 사내였다.
사내의 주변엔 마물들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마족들은 겁도 없이 마족 진영에 쳐들어온 사내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사내의 몸을 감싼 검푸른 기운에 바로 몸이 썰리며 쓰러졌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내의 은발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아니 마물의 피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사내는 지금 마물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
“말해라. 해골왕은 어디에 있지?”
사내의 물음에 마물은 미친놈 보겠다며 신음을 흘렸다.
‘이것이 추기경.’
교황을 보필하는 최고위 성직자들.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역시 일개 성직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교황이 신성 진영의 킹이라면, 이들은 퀸.
성자만 없다면 차기 교황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슈아의 가주인 일라이 에슈아가 눈을 번득였다.
“어디에 있냐고 물었을 텐데.”
[소용없다. 우리의 위대한 왕께서는 네놈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곳에 계시…….]
푸학!!
순식간에 마물의 얼굴이 터져 나갔다.
“여기도 꽝이군.”
들을 가치도 없었다는 가주가 돌아섰다.
그는 점점 세력이 커지는 마족군을 막기 위해 위험한 땅을 도행하며 마족 진영의 허파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동시에 그는 150년 전, 신들에게 패하고 자취를 홀연히 감춘 해골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특별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새 마왕이 즉위한 낌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골왕은 역대 마왕 중 최고라 불리는 마왕. 그 뒤를 이을 놈이 그렇게 빨리 나올 리도 없다.
하지만 마족 중에 해골왕을 사칭하는 존재가 있는 건 확실했고, 그놈들이 해골왕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도 맞았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상황 자체가 해골왕이 꾸미고 있는 짓일지도 몰랐다. 괜히 성녀를 농락하며 인계를 장악하던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해골왕 찾아서 없애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 주님을 뵙습니다!”
일라이 가주의 앞에 청을 두른 기사가 무릎을 꿇으며 나타났다.
가문과 가주를 연결하는 직속기사였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탈진해서 쓰러질 것 같은 모습.
“무슨 일이냐.”
“그……!”
숨을 몰아쉬는 기사는 피가 묻지 않다 못해 옷이 정갈하기까지 한 가주를 보고 정녕 인간이 아니라 생각했다.
상급 기사인 자신도 단순히 이곳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폐인이 될 지경이건만.
“그것이…! 실은 가주께 기물의 사용 허락을 맡으러 왔습니다. <성물의 보물고>입니다.”
가주는 관심 없다는 듯 뒷짐을 진 채 맨손으로 마물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득.
해골왕의 이름을 거론한 마물들은 어째서인지 더 끔찍하게 해체되었다.
“성물 보물고라. 지금은 사용할 아이가 없을 텐데.”
“그…….”
쾅!
“말하지 않았느냐. 보물고의 기회는 한 명에게 한 번뿐.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두 번은 없다고.”
“그게! 쓰고자 하는 게 성녀가 아닙니다!”
가주는 더욱 미간을 좁혔다.
그곳은 선천적으로 신성력이 강하게 태어나는 성녀 후보들이 아니고서야 다 죽어 나가는 공간.
그런 곳을 성녀가 쓰지 않으면 누가 쓰는데?
“실은 도련님들이 어느 아이가 성자인지 확인하고 싶으시다고…….”
성자?
그제야 가주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내 집에 왜 성자가 있어.”
“그, 그러게 말입니다.”
가주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교황이 말했던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정말 나타났다는 건가?
심지어 성녀 가문에?
아무튼 보물고를 쓰고 싶다는 이유는 알겠다만.
“불허한다. 애초에 거긴 성녀 후보가 아니면 죽는 장소다. 에슈아의 사내놈들한테는 허튼 기 싸움 하지 말라 해라.”
“예.”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쾅!!
어디에선가 집채만 한 마물들이 포탄처럼 날아왔다.
피하기 힘든 마물이었지만, 가주는 슬쩍 몸을 틀어 피했다.
쿵!!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기사는 정신이 나갈 뻔했다.
인간이 잡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마물 시체들이었다.
오직 가주만이 누가 이만한 걸 맨손으로 잡았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멜리사. 빨리 끝났군.”
“잔챙이였다. 그나저나 아들놈들이 보물고를 사용하고 싶다 했다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은발의 여자가 손을 털며 걸어왔다.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바로 에슈아의 가모인 멜리사였다.
“하라 해. 못 하게 할 것도 없지.”
가주는 놀란 듯 보았다.
“보물고의 입장 권한은 본래 가모의 것이니 네가 좋다면 상관은 없다만. 이런 응석을 받아주다니 어쩐 일이지?”
“아이작이라고 했던가, 그 나이에 마수를 토템으로 만들었다니 떡잎이 푸르잖아. 기회를 박탈할 순 없지.”
“!”
“단, 조건이 있다. 이왕 문을 여는 거 모든 성자 후보를 집어넣어 보는 것도 좋겠군.”
가주는 마치 마왕이라도 보듯 얼굴을 찡그렸다.
“왜 죄 없는 아기들을 전부 죽이려고 해.”
“설마 죽을까. 꼴에 성자 후보라는 것들이. 성흔도 있다고 했잖아.”
“…교황이 뭐라 할 텐데?”
“왜? 언제는 지 손자가 성자라고 지랄하더니? 그 집 꼬맹이는 평범한 창고에서 물건 하나 가져오는 것도 못 한대?”
“…….”
사람이 죽는 장소를 평범한 창고라 하지 않는다만.
가주는 한숨을 쉬었다.
“안에 있는 ‘그걸’ 가져올지도 모른다. 소중한 걸 뺏겨도 괜찮은가?”
“글쎄, 이젠 오히려 누가 좀 가져와 줬으면 좋겠는데.”
“!”
가모의 긴 속눈썹 밑으로 짙은 그림자가 슬프게 드리워졌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역대 성녀들, 그 누구도 가져오지 못했지.”
“멜리사…….”
처연해 보이는 가모의 눈이 괴물처럼 번득였다.
“그것만 있으면 어쩌면 해골왕을 단번에 추적해서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
“그러니 그걸 가져오게 하려면 보상을 걸어야겠지.”
기사가 놀랐다.
“그, 그럼 설마!”
“전해라. 그걸 가져오는 아이에겐 교황도 줄 수 없는 보상을 주겠다고.”
“!”
“그리고 에슈아에 전해져오는 성녀의 가보도.”
“하물며 내가 직접 도맡아 비전을 알려 주겠다고.”
“가모님!”
“모든 걸 아낌없이 주겠다고 전하라.”
그 무렵 아이작은 재채기를 미친 듯이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