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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0화 (20/272)

제20화. 노다지로구나 (4)

“세상에, 성자 후보들을 전부 모이게 하셨다고요?”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뭔가 일이 커진 것 같다.

시종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럼 교황가부터 다른 5대 명문의 자제까지 온다는 거잖아요?”

“그뿐이겠니. 그동안 말만 오갔던 성자 후보가 다 모이는 거야.”

“황제 폐하께서도 적극 지원해 주신다고 하더라.”

“국민들도 기대하고 있대요.”

돌잡이가 나라 규모의 축제로 커지다니.

이 정도면 이미 돌잡이가 아니라, 사실상 성자 선발전이 된 것이 아닌가.

물론 아이작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나한테는 좋지.’

왜 경쟁자가 늘면 좋냐고?

“도련님. 보물고에는 후보들이 한 번에 들어가는 거죠?”

“그래.”

그렇지!

우유를 쪽쪽 빠는 아이작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작이 노리는 건 더러운 성물 따위가 아닌 해골왕의 육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뜸 해골왕의 육신으로 향하면 기이하게 바라보지 않겠는가.

그러니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면 시선이 분산되어 육신을 회수하기 편해진다.

그리고 가장 좋은 성물?

기껏해야 한두 해 산 애들이 좋은 걸 알아볼까, 아니면 수백 년을 신성 진영과 지지고 볶은 자신이 더 좋은 걸 알아볼까?

적당히 성직자들이 기절할 만한 걸 들고 가면 그만이었다.

물론 성녀 후보가 아니면 목숨을 잃는다고 할 정도로 위험한 보물고라고는 했지만, 글쎄.

‘기껏해야 애들 돌잡이하는 곳에 뭐 얼마나 위험한 게 있으려고…….’

“분명 잡아온 마족들이 내부를 지키고 있다죠?”

허, 신성력이 없으면 위험하다더니 마족 문지기가 있어서였나?

하지만 그래 봐야 마족이었다.

전직, 현직 마왕한테 마족 문지기라니. 쫄따구나 나름 없는 녀석들이 아닌가.

뭐 지금은 젖먹이 상태니 7계위 이상은 좀 버겁긴 하지만, 그런 상급들이 문지기를 할 리가 없고.

그래 봐야 6계위 이하면 [위압]으로 한 방에 처리 가능…….

“듣자 하니 8계위 마족이 있다면서요?”

“…….”

야씨… 왜 8계위나 되는 고위 마족이 거기서 문지기 짓을 하고 있는 건데?

어떤 놈이야? 누가 거기에 있어?

그보다 8계위면 힘 좀 쓰는 놈이라 약간 위험한데?

그래서 사상자가 있었다고 한 건가?

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마족이라면 감지하기도 쉬운 만큼 피하기도 쉬웠다.

그까짓 거 무시하고 육신만 찾으면 그만…….

“분명 9계위 드래곤도 내부를 지키고 있다죠?”

시발!

이 변태 새끼들은 왜 그딴 곳에서 돌잡이를 하고 지랄이야!

그도 그럴 게 드래곤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포악한 상위 종족이었다.

그딴 장소에서 젖먹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애초에 드래곤은 아이작하고 관계가 최악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표적으로는…….

-저놈이 어린 드래곤들에게 사기를 쳤다!

-어린놈들에게 뭘 판 거야!

-그 해골바가지 새끼, 역시 생긴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일단 지명수배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뒤 자신을 처리하러 온 드래곤 원로에게 또 사기를 쳐서 영원히 잠들게 하긴 했는데, 아무튼 사이가 안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래곤이면 자신의 영혼을 눈치챌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위험만 감수하면 더없이 좋은 기회인 건 맞았다.

실제로 아이작을 방으로 데려온 릴라이도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했다.

“어차피 교황청에선 아이작을 성자 후보로 인정할 생각도 없겠지.”

그래, 그렇겠지.

실제로 주교도 성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보물고에 다녀오면 더 이상 무시할 수도 없겠지.”

“맞아요, 도련님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오실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는 마족을 퇴치하거라! 아이작!”

“아, 아니 도련님. 과제는 문지기를 퇴치하는 게 아닌데요. 물건을 가져오셔야…….”

“물건은 됐으니 마족을 죽여 네 실력을 증명해 보이거라!”

“아니, 물건은 가져오셔야……!!”

시종들은 쩔쩔맸지만, 릴라이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자, 아이작! 다시 한번 이걸 들어 보자꾸나!”

릴라이가 작은 장난감 단검을 쥐여주었다. 마치 돈을 잡으라며 돈의 모양을 아이에게 기억시키는 부모와 같았다.

“자! 검이다! 네겐 해골왕을 없앨 피가 흐르고 있으니, 성검을 가져와라! 그 검으로 해골왕의 대가리를 때려 부수는 거다!”

성검은 개뿔이!

네 머리를 때려 부숴버릴라.

아이작은 확 한 대 치려다 말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릴라이가 상당히 쓸 만한 녀석이라서였다.

젖먹이인 자신을 가문에서 띄워주고, <보물고>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그랬지만…….

“이 숙부가 이제부터 성법을 속성으로 가르쳐주마.”

“도련님!”

숙부 놈은 직접 손까지 쓰며 성법까지 알려주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성직자들의 술법 따위, 관심도 없었지만 이곳은 성직자들 소굴.

평소엔 마법 대신 성법을 주로 쓰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속성 강의가 반가운 것이었다.

성법을 익히려면 단식을 하며 성전과 찬양가, 성법 개론서를 연구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미쳤나?

‘굶기는 왜 굶어. 고통을 즐기는 변태 새끼들.’

하물며 찬양가나 성전엔 그 이야기 자체에 힘이 있어 마족에겐 쥐약이었다.

만약 읽다가 재수 없게 해골왕이 공격당한 이야기라도 읽으면?

‘젠장, 정신 고문이다.’

뭐 애초에 인간이 쓸 수 있는 성법 따위, 해골왕 정도면 한번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듣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반으로 단축될 테니 지금은 이걸로도 만족…….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갸악! 이 빌어먹을 성기사 놈아! 지금 주인님의 육신에 뭘 주입하는 거냐!]

“!”

마력인 위스퍼는 밀려들어 오는 신성력에 거품을 물었다.

아이작은 강한 신성력에 움찔했지만,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 녀석. 설마 알려준다는 게 귀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익히게 해주는 거였나?

얼핏 보면 방어 성법을 써주는 걸로 보였지만, 아이작은 단번에 눈치챘다.

‘신성력 순환!’

몸 곳곳에 신성력이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말이다.

“도련님이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가 있을까요. 신성력 소모가……!”

“별거 아니다. 적응 훈련이니까. 본격적인 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시작도 안 하긴!!

“따야야야(아싸 심봤다)!”

아이작은 쾌재를 질렀다.

애초에 신성력을 움직이는 법을 몰라서 이론 강의를 듣겠다고 한 거지, 감만 알면 순식간이다.

결국 불을 움직이느냐, 물을 움직이느냐의 차이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릴라이는 갓난아이를 물에 적응시키듯 물에 넣어준 것뿐이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자, 흐름이 느껴지느냐, 아이작.”

오냐, 숙부야. 더럽게 잘 느껴지신다!

잘 느껴지다 못해 이 정도면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겠다!

이거면 신성력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성법?

그거야 보기만 하면 어지간한 건 따라 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기술을 훔친다.

생존 기원에는 술법 분석 특성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릴라이는 단순한 ‘적응 훈련’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도 어느 정도 고수가 아니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6계위 기사단장이 믿음을 보였던 걸 봐선, 거의 7계위에 다다르는 천재 성기사란 거겠지.

자, 그러니 능력 있고 예쁜 숙부야.

어서 계속해!

신성력은 됐으니까, 이제 성법을 보여줘!

“첫 성법은 공격 성법을 알려주면 되겠군.”

“예?! 방어 성법이 아니고요?”

“해골왕을 없애려면 역시 공격이지. 그 괴물 놈한테는 공격 외엔 그 무엇도 사치야.”

옳지!

그거야!

최고의 공격이야말로 최상의 방어!

그러니까 어서 더 보여줘!

공격 성법을 익히는 순간, 일단 숙부 네 머리부터 갈겨버릴 테…….

“아이에게 부담이 갈 테니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아씨! 야!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난 훈련에 가야겠다. 아이는 슬슬 재우자꾸나.”

“예.”

야! 거기 안 서!

보여주고 가!

그러나 릴라이는 아이작을 꼭 안고 침대에 눕혔다.

“아, 이건 위험하니까 가져가마.”

심지어 토템으로 변한 섀도우 리치까지 작은 손에서 빼앗아갔다.

“아이작이 처음으로 만든 귀한 토템이다.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보관해둬라.”

“예.”

야! 그거 부활시켜야 하는데 가져가면 어떡해!

쪽쪽이랑 바꿔서 가져가면 어떡해!

“그럼 잘 자려무나. 며칠 뒤에 있을 돌잡이 때까지 얌전히 있거라.”

아씨! 역시 성법이고 자시고 그냥 마법 써서 죽여버릴까?

아이작의 눈에 분노가 서렸지만, 곧 괜찮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뭐 그래.

오히려 전부 나가주면 이쪽이야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여기서 탈출해서 별관으로 간다.’

어차피 거기에 쌓인 마력핵을 흡수하러 갈 생각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때였다.

시종이 나가고 마지막으로 숙부까지 문을 닫고 나간 그 순간.

침대에서 탈출한 아이작이 뾸뾸뾸뾸 문 앞으로 기어왔다.

큰 문을 바라보는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이깟 문고리, 위스퍼를 실체화해서 열면 그만…….

찰칵.

…찰칵?

문을 열려던 아이작의 미간이 좁혔다.

…찰카악?

[문을 잠갔군요. 숙부 놈이.]

시벌 놈이!!!

그사이 문을 잠그고 나가?

아이작의 작은 주먹이 살의에 파르르 떨렸다.

“따야(열어).”

[잠금장치가 밖에 있는데, 성법이 걸려 있어서 제가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알 게 뭐야, 부숴 새끼야!

[습격인 줄 알고 우르르 몰려올 텐데요.]

아오, 망할!

아이작은 얼굴을 구겼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 집은 공작가 저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식하게 넓어서 별관까지 더럽게 멀다는 의미다.

젖먹이 발걸음으로 얼마나 걸릴지.

‘부유 마법은 5계위는 돼야 하고.’

달리 다른 이동 수단이라도 없는 이상…….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달칵!

“!”

닫혔던 문이 열렸다.

숙부 놈이 되돌아왔나 싶었는데, 뜻밖의 얼굴이 서 있었다.

“뭐야. 내 라이벌이란 게 이 새끼야?”

아이작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 * *

슈리 에슈아.

에슈아의 직계 자손인 그는 얼마 전 굉장히 기분 나쁜 소식을 접했다.

“나 말고 또 성자 후보라고?”

성녀와 비교하면 대부분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는 에슈아의 사내들이었다.

물론 능력을 인정받아 가업을 물려받는 놈들도 있지만 매우 극소수.

하여 나이가 차면 대부분이 정략결혼으로 출가를 하게 되고, 그게 싫어 성기사가 되려고 하나 대다수가 3계위가 한계.

괜히 유전자만 좋은 씨내리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하지만 슈리 에슈아는 달랐다.

슈리는 에슈아의 사내아이 중에서도 유독 머리가 좋았고,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남들은 열다섯 살은 되어야 다다를 수 있는 3계위를 세 살에 넘어섰고, 다섯 살이 된 지금은 4계위를 앞보고 있다.

하물며 얼마 전엔 성흔까지 나타나 성자 후보가 확실하다며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저주받은 에슈아를 탈출해 교황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성녀의 아들이라고?’

하물며 릴라이 숙부가 성자 후보라며 데려왔다고?

슈리는 몹시 불만이었다.

더 불만인 건, 시종들이 젖먹이가 만든 토템을 보관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주께서도 보시는 가장 좋은 장식장에 보관해 놓다니!

-이거, 토템이잖아. 왜 여기에 넣어?

-예? 아, 이거요? 이게 이번에 새로 오신 아이작 도련님이 성자의 힘으로 만드신 거래요. 대단하지 않나요? 그래서…….

-됐고. 왜 토템을 전시해? 가주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니들이 책임질 거야?

-예? 아니, 릴라이 님이…….

-내놔!

그래서 빼앗아왔다.

애새끼가 토템은 개뿔이. 나도 못 만드는데 지까짓 게 무슨 토템을 만들어?

보나 마나 해골왕 잡이에 미친 릴라이 숙부가 선물로 준 거겠지.

모든 게 불만이었던 슈리는 그렇게 토템을 들고 젖먹이 사촌을 만나러 왔다.

만나서 확실하게 서열을 가려주고…….

아니지.

공격과 치료를 번갈아 쓰면 유용한 성법 실전 인형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말도 못 할 테니 이르지도 못할 테고.

그렇게 슈리는 웃으면서 숙부의 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생각보다 더 어린 아이가 문을 열려는 포즈로 앉아 있었다.

이놈이 왜 문 앞에서 이러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뭐야. 내 라이벌이란 게 이 새끼야?”

“따야?”

“너… 푸커헉!!!!”

슈리는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쿵!

아이는 상대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황금 딸랑이를 던져 상대의 면전부터 냅다 갈겨버린 아이작이 눈을 번득였다.

“뜌아야 따야(찾았다. 내 붕붕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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