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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1화 (21/272)

제21화. 이 정도야 쉽지 (1)

아이작은 슈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뭐야, 내 라이벌이란 게 이 새끼야?

라이벌.

이 새끼.

두 단어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정말 충분하냐고?

첫 번째. 라이벌이라는 말을 꺼냈으니 최소한 아군은 아니겠지.

두 번째. 타인에게 이 새끼라고 지껄이는 놈한테 친절하게 대해줄 이유는 없지?

그렇게 상대를 판단한 아이작은 냅다 딸랑이를 던진 것이었다.

어차피 적이면 상관없잖아?

눈치 볼 것 없이 붕붕이로 삼으면 그만이잖아?

하지만 정작 얼굴이 갈겨진 쪽은 이야기가 다른 모양이었다.

빨개진 얼굴을 부여잡고 일어난 슈리가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누구야.

이미 상대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한 아이작은 심드렁하게 인상을 썼다.

성직자들의 면상 따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어린애가 혼자 방문을 막 열고 들어와?

그럼 대충 이 집 사람이란 거고, 하는 말과 연령, 성별 등을 분석할 때 답은 하나.

‘성자 후보.’

결정적으로 놈의 머리가 갈색에 파란 눈이었다.

방금 전까지 어디서 실컷 보고 온 싹퉁바가지와 판박이이지 않은가.

즉, 아이작과 사촌 형제라는 결론이겠지?

그리고 보자마자 쓰려 했는지, 손에 마비 성법이 걸려 있던데.

이거 보나 마나 자신을 해코지하러 온 거겠지?

맞을 이유 충분하겠지?

빠각!

동시에 슈리의 고개가 또다시 뒤로 넘어갔다.

“으악!”

묵직한 황금 딸랑이가 또다시 슈리의 얼굴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졸지에 사촌 동생에게, 그것도 초면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슈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젖먹이가 사람을 패?

아니, 그보다 뭔데.

‘저쪽으로 날아간 딸랑이가 왜 다시 이쪽으로… 푸컥!’

슈리의 뒤통수를 갈긴 황금 딸랑이가 마치 부메랑처럼 아이작에게 되돌아갔다.

“뭐, 뭐야! 왜 저게 돌아가!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슈리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그래,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겠지.

사실 딸랑이를 주워오고 있는 건 위스퍼였다. 그리고 그 도중에 위스퍼가 추가로 더 쥐어 패고 있을 뿐.

하지만 아이에겐 그냥 딸랑이가 멋대로 움직이는 걸로 보이겠지.

“뭐, 뭐야? 왜 저게 혼자 움직이는데! 뭐지? 아무도 없는데?”

슈리는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는 걸 감지하고 손으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사촌 형을 되레 신나게 패는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잡긴 뭘 잡아.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슈리가 젖먹이인 아이작을 쉽게 여긴 만큼, 아이작에게도 이놈은 쉽고 유용했다.

‘위스퍼는 10년은 더 지나야 보일걸.’

마족을 투시하며 구마 성법을 쓸 수 있는 5계위는 돼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릴라이나 다른 기사들 앞에서는 위스퍼를 이렇게 대놓고 쓰지 못했지만, 이런 꼬마?

아무리 지금은 마법 계위가 낮다 한들 해골왕은 인계에서 거스를 자가 없는 최고의 마법사였다.

‘풋내기지. 얌전히 내 붕붕이가 되어라!’

“끄악! 끄아아악!”

그래도 맷집이 좋은 게 성녀 가문 영식답긴 하네.

아무래도 용가리 통뼈 유전은 건재한 모양이었다.

‘뭐 어느 쪽이든 튼튼한 일꾼은 환영이지.’

“흐갹! 흐악! 아악!”

결국 정체 모를 공격에 계속 얻어맞던 슈리가 핏대를 세웠다.

“이게 나를 뭘로 보고!”

“!”

강력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푸른 신성력이 슈리를 보호하듯 빛의 방패가 만들어졌다.

“왜, 놀랐냐? 이건 무려 3계위의 방어 성법이다! 지금 내 나이에서 이걸 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걸!”

슈리는 아이작을 경쟁자 보듯 노려보았다.

“보아하니 너도 성법을 약간은 쓸 수 있나 본데!”

“따야……?”

성법 아닌데. 그냥 패대기인데.

“장차 교황이 될 성자의 힘을 보여주마!”

허이고, 교황?

슈리는 방어막 안에서 손가락으로 뭔가 기호를 그려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의 모양새를 보니 저건 성호.

마법은 술법을 시전할 때 스펠을 이용하지만, 성법은 기호학을 이용한다.

그리고 손가락 모양과 흐름, 순번을 볼 때 저건…….

‘4계위 공격 성법 폭성(爆星)?’

무려 지정한 상대의 몸을 폭발시키는 공격 성법이었다.

요새나 무장한 기사도 한순간에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위력인 만큼, 젖먹이에게 쓰기엔 명백히 살의가 담긴 성법.

위스퍼 역시 불쾌한 듯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허이고, 성자 후보라더니, 간덩이가 부었네요. 죽여 버리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저런 꼬마가 4계위 성법을 쓸 수 있다고? 최소 15년은 수련해야 나올 수 있는 경지를?

아무리 시간이 지나면서 술자들에 의해 술법이 발전하고, 후학들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150년 사이에 이 정도로 상향되었다고?

“우이씨! 이거 아닌 거 같은데…! 순서 틀린 거 같은데……!”

아. 까먹어서 우연히 나온 거구나.

“에이씨, 몰라! 3개 포기!”

뭔지는 몰라도 새끼를 치려다 실수한 거군.

곧 슈리가 포기한 듯 빛의 구 2개를 쏘았다.

그건 3계위 공격 성법 <광성>이었다.

뭐, 기본적으로 추적 기능이 있고 신성력과 컨트롤 능력에 따라 위력도 올라간다.

고위 성직자들도 종종 쓰던 기본 공격이다만…….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번쩍!

“으악!”

돌연 슈리가 쏜 빛의 구가 튕겨져 나왔다.

쾅!

갑자기 공격당한 슈리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따야.”

아이작의 앞에 낯익은 빛의 방패가 떠올랐다.

그건 슈리가 방금 전에 썼던 방어 성법!

방어 성법을 발동한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안 그래도 숙부 놈이 성법도 안 알려주고 튀어서 어쩌나 싶은 참이었는데.

“따야야(이놈이 대신 알려주네)?”

젖먹이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반면 그 광경을 보는 슈리는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뭐야! 저놈은 저걸 어떻게 쓰는 건데?

심지어 반사라니?

‘저게 왜 반사까지 하는 건데!’

아니, 그 이전의 문제였다.

“아악!”

슈리는 아이작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빛의 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광성(光聖)> (3계위)

방금 전 슈리가 썼던 공격 성법이었다.

하지만 개수가 전혀 다르다.

“헉, 20개?!”

말도 안 돼!

주변의 어른 성직자들도 10개 만들어내는 게 고작인데!

반면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이 거지 몸뚱이가 드디어 밥값을 하네.’

아이작의 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력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녀 가문답게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신성력은 채워지고 있었고.

술법 레시피는 저놈이 쓴 시점에서 파악했겠다, 못 쓸 이유가 없지?

하물며 비록 저놈은 실패했지만, 개수를 늘리는 것도 보았다.

더더욱 못 쓸 이유가 없지?

그 순간 빛의 구가 사납게 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쾅쾅쾅!

“아악!”

슈리는 엎드린 채 비명을 질렀다. 매서운 폭격이 벽과 바닥을 무차별적으로 부쉈다.

처음으로 아이작이 공격 성법을 쓴 순간이었다.

그 광경에 위스퍼는 짜릿짜릿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황홀해했다.

[아아, 역시 주인님! 우매한 성직자들의 기술 따위,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마스터하시는군요!]

뭐, 그래 봐야 3계위.

인간들이 쓸 수 있는 성법이야 눈 감고도 따라 할 수 있었다.

[잠깐이나마 젖먹이 모습이라 우습게 본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새끼, 우습게 봤었냐?

[이 정도면 지금 당장 신계에 쳐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신계에 쳐들어가 쓸모없는 남신은 모조리 쫓아내고, 여신들만 남겨 이사악 왕권을 세우죠!]

너 혼자 많이 세워라, 새끼야.

하지만 위스퍼는 정말 괜찮겠냐는 듯 쓰러진 슈리를 보았다.

[직계를 죽이시다니. 마력핵을 흡수하기도 전에 쫓겨날 것 같은데요.]

그러자 아이작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비웃었다.

‘죽이긴 뭘 죽여. 공격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예?]

‘애초에 내가 노린 건 저놈이 아니야.’

[그게 무슨…….]

아이작은 씨익 웃으며 어딘가를 보았고, 그와 함께 슈리가 일어났다.

“이 자식이! 사람 놀라게 하기는!”

[!]

슈리가 흉악한 눈빛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는 치욕을 느낀 듯이 사촌 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자신이 쓴 성법을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었다.

아니 따라 한다는 수준이면 차라리 귀엽지, 오히려 수준을 올려서 쓰고 있었다.

마치 성자 후보는 자신이라고 하는 것처럼.

‘젠장, 이대로는 안 돼.’

성자, 더 나아가 교황은 자신이 되어야 했다.

이 저주받은 에슈아에서 탈출할 방법도, 아버지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다.

하다못해 저딴 젖먹이한테 질 것 같으냐!

“니가 아무리 공격 성법을 써봐야 성자 후보인 나한테는……!”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스산한 기운과 함께 슈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그때.

“아아악!!!”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섀도우 리치의 모습에 슈리는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교황의 자리를 노린다는 말이 허풍은 아닌 듯, 슈리는 꼬맹이임에도 마수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섀, 섀, 섀도우 리치가 왜! 나라를 없앴다고 하는 해골왕의 수하가 왜! 으아앙!”

아니, 단순히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유명한 놈인 건가.

사실 아이작이 슈리에게 공격을 가한 건 섀도우 리치의 부활 때문이었다.

슈리가 토템을 가지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숙부 놈이 빼앗아간 걸 어떻게 되찾아 와야 하나 싶었는데, 설마하니 배달까지 하러 와줬을 줄이야.

아무튼 아이작은 일부러 공격을 가해 주머니에서 토템을 떨어트린 뒤 부활시켰다.

비록 기질이 포악한 종이지만, 말은 잘 들을 것 같으니 풀어놔도 괜찮겠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섀도우 리치는 슈리를 향해 흉악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감히 왕을 공격하다니.]

“잡아먹힌다!!”

기가 센 꼬맹이가 섀도우 리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심지어 엉덩방아를 찧으며 엉금엉금 기어갔다.

“해골, 개가튼 해골왕의 부하, 으앙!!”

아니, 내 부하 중에 저런 놈 없다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잘됐다는 듯 쪽쪽이를 빨았다.

“따야(돌아와)!”

그 말과 함께 섀도우 리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흐엉, 흐어엉?”

스산한 기운이 사라지자 슈리가 주변을 살폈다.

섀도우 리치가 사라졌다?

그것도 아이작의 말에?

슈리의 시선은 아이작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저게 없앤 건가?’

슈리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지만, 곧 얼굴을 찡그렸다.

‘아냐.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섀도우 리치는 추기경이 직접 나서서 봉인했을 정도의 상급 마수였다.

어떻게 감히 섀도우 리치를 다룰 수 있어?

애초에 마족이 인간의 말을 따른다는 말은 듣도 보지도 못했다.

분명 환각이었거나, 아니면…….

‘혹시 내가 없앴나?’

내 힘인가?

그런 건가!

역시 나는 성자인 건가!

역시 나는 이 저주받은 에슈아의 희망이었던 건가!

슈리가 눈을 반짝일 때, 묵직한 것이 그의 몸뚱이에 올라탔다.

“컥!”

아이작이었다.

뻔뻔하게 올라타길래 황당해서 밀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돌덩이처럼 꼼짝도 안 했다.

“따야. 따야(어서 날 이동시켜)!”

심지어 황금 딸랑이로 슈리의 머리를 퍽퍽 치며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따야야야(별관이다, 붕붕아)!”

졸지에 마부가 된 공작가 아들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확 그냥…….”

창밖에 던져 버려야겠다 싶던 그때.

[왕을 이동시키라고 하지 않느냐.]

“아아아아악!!!”

또다시 옆에 등장한 섀도우 리치에 슈리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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