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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2화 (22/272)

제22화. 이 정도야 쉽지 (2)

슈리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따야! 따야야(거기 아니랬잖아)!”

“따야(똑바로 안 가)?”

“따야야(뒤지고 싶냐)!”

아무리 생각해도 사촌 동생에게 처맞으면서 걷고 있는 상황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하물며 그냥 걷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따야(이쪽이라니까)!”

“따야야(말도 못 알아듣냐, 병신아)!”

…아까부터 욕을 처먹고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슈리는 아이작을 안은 채 공작가 저택을 배회하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작을 버리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망할 꼬맹이는 절대 슈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도대체 뭔 놈의 젖먹이가 이렇게 힘이 센 건지.

등짝에 매달리고, 목에 매달리고.

그러면서 제대로 안 잡아주면 또 승차감이 불편하다고 구타를 시작하고.

놀아달라는 건가 싶어 보고 있으면 뭘 처보고 있냐는 듯 어딘가를 가리키고.

그렇게 이동시켜 주면 이번엔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또 엉덩이를 걷어차고.

‘빌어먹을, 말도 이렇게 몰진 않겠다!’

졸지에 마부도 아니고 말이 되어버린 공작가 도령은 눈가에 눈물이 고일 판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아이작은 젖먹이였다.

마음만 먹으면 연못에라도 빠트릴 수 있었지만.

[왕을 옮기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아아악!”

다른 마음을 품으면 그때마다 섀도우 리치가 나타났다.

‘젠장, 역시 꿈이 아니었어!’

현실을 부정하려고 했는데, 역시 이 마수는 아이작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이 꼬마에게 해를 가하는 순간, 자신이 섀도우 리치에게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슈리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숙부님은 뭘 주워온 거야?’

해골왕을 잡으려고 하다 하다 둔갑한 마족까지 주워왔나?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그렇게 해서 아이작이 자신을 끌고 온 장소였다.

‘왜 하필 여기로 오는 건데?’

슈리는 우뚝 솟은 제2별관의 모습에 덜덜 떨었다.

‘여긴 유령의 저택이잖아!’

가문 사람들도 기피하는 그 저택이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살고 있는 곳이 아니었고, 슈리조차도 부모님에게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혼이 났던 장소.

‘분명 가문 사람들이 여럿 죽었다고…….’

소위 말하는 저주받은 장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슈리는 이 옆에 정원도 있겠다, 그쪽으로 가자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서 슬쩍 방향을 돌려봤지만.

“따야야야야(뒤질래? 똑바로 안 가냐)?!!”

업힌 동생에게 바로 처맞았다.

그러니 슈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씨이, 왜 가주께서도 금하신 장소에 오잔 거야!’

어른들한테 들키면 혼나는 걸로는 안 끝날 텐데!

반면 저택을 바라보는 아이작은 씨익 웃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공기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방치되었을지 감이 온다.

동시에 여기까지 오니 더욱 확실해졌다.

‘역시 마력핵이 쌓여 있네.’

심지어 처음에 감지했던 양보다 훨씬 많다.

십수 년, 아니 수십 년은 족히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마력이 여기에 있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여기에 수백, 수천 마리의 마족 시체가 있다는 의미지만 말이다.

‘마력핵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시체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래서 사실 놀란 부분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히 퇴마 가문이라서 쌓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쟁?

아니, 이 수준이면 솔직히 마족들이 불나방처럼 스스로 찾아온 수준이지.

하지만 성녀 가문이 먼저 마족을 불러 모으는 술법을 써서 죽였다기엔 이곳을 흉가로 방치하고 있는 게 영 이상하고.

‘마족을 처리한 장소면 진작 성소로 분류됐을 텐데.’

조금이라도 위업이 생겼다 하면, 냅다 성소와 성전을 만들어 마족을 괴롭게 하는 게 성직자란 족속이거늘.

그런데 이만한 사연이 있는 곳을 흉가 취급?

뭐 궁금한 점은 많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곳에 마력핵이 있다는 거잖아?

그걸 다 빨아먹으면 무려 수십 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마력이 들어온다는 게 더 중요한 거잖아?

그래서 아이작은 바로 붕붕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붕붕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여긴 들어가면 안 되네, 들키면 진짜 큰일 나네, 저항을 했지만 섀도우 리치 한 방에 잠잠해졌다.

들어온 별관 내부는 바깥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워서 뭐랄까…….

[마치 주인님의 더러웠던 빈곤성을 보는 것 같군요.]

야, 닥쳐.

[곤란하군요. 마력핵은 방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역시 성녀 가문. 성 전체가 봉인되어서 모든 문이 잠겨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왜 못 들어가.

잠겨 있으면 뚫으면 되지.

아이작은 슈리를 보았다.

슈리는 아까보다 더욱 몸을 떨고 있었다.

“야, 이제 이 정도 왔으면 됐잖아. 돌아가자… 어차피 여기 다 잠겨서 방에도 못 들어간다고.”

“따야!”

“아씨, 또 뭘 봤는데, 그래!”

아이작의 시선이 멈춘 건,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로비의 높은 벽.

거기에 걸린 초상화들이었다.

대충 역대 가주들의 초상화들인 듯했다.

그 초상화를 보고 있으니 이놈 보라며 슈리가 으스댔다.

“자식이, 하다 하다 가주까지 탐내네. 위대한 선조님들께 인사드리는 거냐? 그래 봤자 소용없어. 여자들만 있을 땐 데릴사위를 데려오기도 하지만, 이번 대엔 남자가 많으니까! 다음 대 가주는 바로 이 몸…….”

“따야.”

아이작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초상화들이 와장창 날아갔다.

“아악! 선조님들이!”

쾅! 쾅!

와장창!

존경하는 선조님들이 날아가다 못해 바닥에 떨어지자 슈리는 비명을 질렀다.

선조님이!

그보다, 방금 그 힘은 뭔데!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너 지금 미쳤어? 위대한 가주님들께 무슨 짓이야! 진짜 쫓겨나려 그래!”

하지만 정작 거슬린다는 듯 마력으로 초상화들을 죄다 날려버린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가주는 무슨.

어차피 저거 다 치우고 자신의 초상화를 걸게 될 텐데 뭐.

게다가 아이작이 볼일이 있는 건 초상화가 아닌, 초상화에 걸려 있는 술식이었다.

드드드득!

“아아악! 이번엔 또 뭐야!”

초상화가 떨어지자 마치 지진이 일어나듯 저택이 뒤흔들렸다.

물론 지진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집의 모든 방을 잠그고 있던 술식이 풀렸을 뿐.

쿠구구궁!

‘가문 사람들이 못 들어가도록 일부러 신성드래곤의 마법을 걸어둔 것 같은데.’

드래곤의 마법이든 마족의 마법이든, 마법이면 해골왕의 특기.

해독이야 일도 아니었다.

술식이 걸려 있는 초상화만 떼어내면 자동적으로 퍼즐 맞추듯 잠금이 풀리는 구조였다.

그런 만큼 사실은 초상화를 전부 날릴 필요는 없었지만, 거슬리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슈리는 귀신이 나타났다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이작은 그런 슈리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근처에 있는 방 앞으로 끌고 갔다.

“따야, 따야(자, 어서 열어! 새끼야)!”

“아씨! 여기 문 잠겼다니… 어?!”

아이작에게 떠밀려 손잡이를 잡은 슈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슈리에게 볼일은 끝났다는 것일까.

바로 따야따야 기어 내려온 아이작이 바퀴벌레처럼 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야! 들어가면 안 돼!”

방 안에 들어온 아이작의 눈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하나 둘 셋 넷, 어림잡아 500개!

거기에 질도 상당히 좋다!

이것만 있으면 보물고에서 몸을 되찾아오는 것도 문제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고작 방 하나를 털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하지만 아이작과 달리 바로 쫓아 들어온 슈리는 질색했다.

“야, 빨리 나가야 해. 진짜 큰일 나! 그리고 마력핵에는 손도 대지 마! 보기만 해야 해!”

그러자 아이작은 자신을 번쩍 들고 나가려는 슈리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따야!”

“엉?”

슈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작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아이작은 그사이 위스퍼를 방출했다.

[크하하하하! 잘 먹겠습니다!]

아이작의 몸에서 뻗어 나온 위스퍼가 순식간에 마력핵을 삼켰다.

마치 슬라임이 물건을 집어삼키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고개를 돌린 슈리는 화를 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 아악!!”

그는 텅 빈 바닥을 보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마력핵, 다 어디로 갔어!”

슈리의 외침에 아이작은 작은 손을 뻗었다.

“따야! 따야야야!”

그가 뭔가에 겁먹은 듯 슈리의 뒤쪽을 가리키자, 슈리의 고개가 반대로 돌아갔다.

“뭐? 저기?”

[크하하하하! 꿀이구나!]

위스퍼는 또다시 후루루룩 마력핵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 슈리가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야! 아무것도 없잖아! 도대체 뭐가 있다고… 악! 여기에 있던 건 왜 또 사라졌어!”

마침내 방에 있는 모든 마력핵이 사라지자, 슈리는 정신이 날아간 듯했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필 금지된 이 별관에 오자고 한 것도 그렇고, 잠겨 있어야 할 저택의 문이 열린 것도 그렇고!

“야. 너지! 네가 마력핵을 가져간 거지!”

슈리는 아이작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섀도우 리치 때문에 정신없이 이곳에 끌려와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수상한 것이 많은 꼬맹이였다. 이놈이 장남의 아들인 이상, 어차피 적이긴 했지만 애초에 마족이 인간을 따른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하물며 성녀 가문에서?

“어른들한테 전부 이를 거야! 마족을 다룬다는 말을 들으시면 넌 바로 쫓겨날……!”

바로 그때였다.

“슈리!”

저택 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어른들의 발소리가 우르르 울려 퍼졌다.

“슈리!”

릴라이와 시종들, 그리고 몇몇 원로들이었다.

마력의 기운이라도 느끼고 달려온 것일까.

그들은 충격을 받은 듯 로비에서 술렁거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초상화는 전부 날아가 박살 나 있고, 저택의 봉인은 풀려 있는 데다가, 마력핵은 사라져 있다.

반면 슈리는 원로들까지 술렁거리자 때마침 잘됐다는 듯 웃었다.

전부 이르자.

무엇보다 원로들은 자신의 편이었다.

이걸로 성자 후보라고 하는 눈엣가시를 확실히 치울 수 있게 됐다.

그는 바로 아이작을 가리켰다.

“숙부님! 들어보세요! 전부 쟤가 이렇게……!”

“슈리! 왜 이런 못된 짓을!”

엥.

슈리가 한 대 맞은 듯한 눈으로 어른들을 보았다.

원로들은 괘씸하다는 듯이 슈리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슈리와 아이작이 별관 쪽에 가는 걸 시종들이 목격한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토템을 들고 사라진 슈리의 모습이 신경 쓰여 릴라이에게 사실을 고한 듯하지만.

“전부 들었다. 네가 아이작을 이곳에 데려왔다고?”

“아, 아니…….”

원로들은 슈리의 반응에 눈을 부릅떴다.

“아니라고 할 셈이냐? 네가 그 아이를 업고 이곳으로 오는 걸 하인들이 봤다고 했는데?”

어, 아니, 분명 데리고 온 건 자신이 맞긴 한데…….

“복도에는 공격 성법까지 쓴 흔적이 있고!”

“어떻게 애를 때릴 생각을 하느냐! 그러고도 네가 명예로운 성녀 가문의 자손이라 할 수 있겠느냐!”

아니, 공격한 거 쟨데!

오히려 맞은 건 난데!

“하물며 토템까지 빼앗아서 아이작을 만나러 갔다지. 이래도 아니라고 할 셈이냐!”

아니, 괴롭힐 목적으로 꼬마를 찾아간 것도 맞긴 한데!

슈리가 답답한 듯 가슴을 칠 때였다.

“도련님! 큰일입니다! 방에 있던 마력핵들이!”

“!”

마력핵이라는 말에 슈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요! 이 꼬맹이 짓이에요! 이 꼬맹이가… 뭐야, 얘 어디 갔어!”

그때 다른 방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야! 따야야!”

마치 살려달라는 듯한 다급한 목소리에 시종들은 경악해서 달려갔다.

릴라이는 방에 갇혀 있던 듯한 아이작을 번쩍 안아 들었다.

“슈리! 도가 지나치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를 가두면서 괴롭히면 되겠느냐!”

“???”

가두다니, 도대체 자신이 언제?

그러나 그사이 다른 방에서 마력핵을 흡수한 아이작은 트림을 했다.

그 미소에 상황을 깨달은 슈리는 핏대를 세웠다.

“우씨, 저 아니에요! 여기도 쟤가 오자고 해서! 초상화도, 공격 성법도 쟤가!”

“성직자가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누가 가르쳤지?”

“거짓말 아닌데!”

“그럼 아직 성법도 못 쓰는 아이작이 이런 짓을 했겠느냐!”

“그, 저 꼬마가 마족까지 다루는 걸 봤어요! 당장 가문에서 내쫓아야 해요!”

“슈리! 하다 하다 동생한테 모함까지 하고!”

결국 슈리는 억울한 듯 가슴을 쳤다. 그러고는 당장 섀도우 리치를 꺼내라며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했다.

“너 자꾸 거짓말할 거야?! 빨리 꺼내라고!”

“따야……!”

아이작이 무슨 소리냐는 듯 울먹이는 표정을 짓자, 릴라이 숙부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슈리!”

결국 울음을 터트린 건 슈리였다. 아이작은 숙부의 품에서 히죽 몰래 웃었다.

뭐 너무 그렇게 억울해하지 마라.

말만 잘 들으면 떡고물 정도는 먹게 해줄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보물고의 문지기를 어떻게 상대할까 고민하고 있던 그였다.

정말 문지기가 8계위 마족과 드래곤이라면, 자신의 육신을 찾기 위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력핵을 이 정도 먹었으면 그 작전도 사용할 수 있겠지.

돌잡이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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