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뭔가 이상하구나 (2)
슈리는 쪽팔렸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챱챱챱챱!
“…….”
춉춉춉춉!
“…….”
호록! 호록호록! 호로로록!
아, 새끼! 거, 그만 좀 처먹지?!
무슨 못 먹고 죽어 한이 맺힌 강아지 영이 붙은 것도 아니고!
먹는 소리가 울려 퍼질수록 슈리의 얼굴도 씰룩거렸다.
가뜩이나 ‘에이 뭐야, 에슈아 사내놈들도 들어가? 그럼 성녀 보물고도 만만하겠네! 보물은 우리가 들고 간다?’란 소리를 들은 판국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열 받아 죽겠는데, 이놈까지.
같은 에슈아 사람으로서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물론 공작가 주제에 근본 없는 거지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도 쪽팔리지.
하지만 더 부끄러운 건 그게 아니다.
“쟤… 쟤, 괜찮은 거 맞아?”
“저거 약 탄 거 아냐?”
그래.
새끼야! 그거 약 타진 거라고! 그만 좀 처먹으라고!!
슈리는 아기 걸신을 보며 끙끙거렸다.
사실 보물고에 들어가기 전, 릴라이 숙부에게 다짐을 받았던 슈리였다.
-슈리, 사촌 동생을 잘 지켜봐주렴.
물론 그럴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다.
경쟁자인데 내가 왜?
지켜보기는 하지만, 크게 지켜줄 생각은 없었다. 릴라이 숙부도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을 것이었다.
돌잡이 자체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련이었으니까.
그러니 도와주진 않겠지만 지켜는 봐주지…라고 하기 무섭게, 자식이 넙죽 약을 받아먹어?!
‘성자 후보라면 약이 타진 것 정도는 알아차리라고!’
아주 에슈아가 만만하다 못해 물로 보이는 건지. 대놓고 약을 들이미는 성자 후보들이었다.
그리고 도와줄 마음은 없었지만, 에슈아의 아이가 저딴 머저리들에게 당하게 둘 순 없었다.
‘티가 나는 맹독은 아냐. 소화계 약이겠지.’
중재를 해줄 수 있는 어른은 보물고의 문을 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결국 보다 못한 슈리가 다가가 먹지 말라고 물병을 빼앗으려 했지만,
뻐억!!
도리어 아이작에게 두들겨 맞았다!
심지어 물병에 성력을 실어서 던진 걸 맞았다.
‘이놈이 도대체 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약을 처먹었으면 아프기라도 하든가!
쓰러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을 짓밟고 가려고 하길래 슈리는 자신의 물병을 주었다.
-목마르면 내 거 줄게! 그러니까 그만해!
그 말에 아이작은 신이 나서 슈리의 물을 마셨다.
눈을 반짝인 아이작은 뭔가를 굉장히 기대한 듯 마셨지만, 계속 꿀꺽거리더니,
-따야?
되레 살벌하게 노려보는 것이었다.
왜 노려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을 의심하는 시선인 건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슈리는 억울한 마음에 약을 안 탄 멀쩡한 물이라고 했지만 도리어 처맞았다.
-따야야야(왜 넌 안타고 지랄이냐고)!!
시발, 이 미친 새끼는 왜 멀쩡한 물을 줘도 난리야!
결국 그렇게 되자 아이작은 오히려 약 탄 물을 든 아이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바퀴벌레처럼 잘도 기어 다녔다.
그쯤 되자 아이작을 해코지하려 한 아이들은 도리어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벌써 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물을 마신 상태였다.
“왜, 왜 멀쩡하지? 분명 설사약을 탔는데!”
“네 거, 그냥 물인 거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내 건 신성독인데……?”
“뭐? 너 미쳤어? 그거 먹으면 죽잖아!”
아니 그보다, 왜 먹을수록 황홀해하는 건데!
곧 아이작이 무섭게 손을 내밀자, 아이들은 흠칫 놀라 물병을 숨겼다.
“아, 안 돼. 너, 너, 더 먹으면 진짜 죽어……!”
겁에 질린 듯했다.
그걸 보는 아이작은 어째서인지 얼굴이 사탄처럼 험악해졌지만 말이다.
“뜌따(이 성직자 병아리 새끼들이)!”
“똬땨야(해코지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내장이 토할 정도로 먹여야지, 왜 겁먹는데)?”
아이…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불쾌한 표정.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이 덜덜 떨며 슈리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쟤, 왜 설사약에 환장해……?”
“에슈아, 애들 원래 저래……?”
아니, 저 새끼만 저래!
슈리는 계속되는 시선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젠 범인이 아닌 아이들도 상황을 눈치챈 듯했지만, 저런 설사약에 환장한 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기는 싫었다!
‘에슈아에 뭐 저런 이상한 놈이 들어와서!’
저게 뭔 약을 먹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성자 후보를 방해할 목적의 약일 테니 최소한 영양제는 아니겠지!
못해도 독약일 텐데.
그런데 그걸 6개나 먹고 저런 황홀한 표정이라니!
‘변태 새끼인가?’
확실한 건 제정신인 놈은 아니란 거다.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작 다른 후보들은 아이작을 다르게 보고 있었다.
“독 내성이 엄청나구나……!”
“그래. 그래서 멀쩡한 거야!”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어…! 성력을 수련하면 자동으로 독을 해독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맞아! 고승들은 맹독도 물처럼 마신다며?”
“뭐? 쟤는 그럼 벌써 그런 경지라고?”
모두가 아이작을 동경하듯 바라봤지만, 정작 아이작은 꺽 물 트림을 했다.
뭐? 내성?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냥 마력을 흡수한 것뿐인데?’
아무래도 이놈의 신성제국은 신성독뿐 아니라, 모든 독에 마력을 섞어 쓰는 모양이었다.
뭐, 이해는 갔다.
마력은 신성력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니까.
그래서 성직자와 마법사가 사이가 나쁜 것이고 말이다.
신성력은 수련할수록 다양한 걸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몸의 자가 치유와 해독.
성녀나 9계위 성직자쯤 되면, 칼날이 박힌 그 순간부터 자체 재생을 할 정도였다.
아니, 칼로 베는 것보다 재생이 더 빠를 수준이다.
그러니 그걸 억누르기 위해 필히 마력 성분의 독을 쓰는 거겠지.
해독하려는 성질의 신성력을 억누르고 약효를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몸 내부까지 단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이유로 아이작이 먹은 설사약, 아니 모든 약에는 약한 독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마력을 신성력으로 전환하는 게 아이작의 몸이었다. 마력 한두 방울도 소중한 그에겐 마력이 독이 아니라 생명수!
그런데 신성제국에서 쓰는 모든 독이 마력 성분이라니. 이 얼마나 미친… 훌륭한 별미식인가!
뭐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독이긴 독이라서 해독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좋아지고 감각은 살짝 둔해지는데, 발음은 좀 꼬이고 상쾌하게 알딸딸해지는 게… 어, 그러니까 이거, 취기네.
아무튼 이게 몇백 년 만에 느껴보는 알딸딸함인지!
‘그러니까 더 내놔, 새끼들아!’
아이작이 이제 범인이 아닌 아이들의 물병까지 노리려 하자, 슈리가 붙잡았다.
“아, 좀! 그만하라고! 걸신이 들었나!”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그런 아이작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호, 혹시 네 거에도 독이 있는 거 아냐? 왜, 아까 소지품 확인할 때 누가 넣었을지도.”
“뭐? 설마 얘, 독을 탐지할 수 있는 거야?”
“아! 그럼 지금까지 여러 애들 것을 먹은 게……!”
“다른 애들이 위험해지지 않게 조사하려는 건가? 먹어서 없애려고?”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역…역시 에슈아!”
“성자다.”
“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아니!
그것만큼은 절대 아냐!
핏대를 세운 슈리가 허공에서 헤엄을 치는 아이작을 붙들고 있을 그때였다.
“그래? 그 아이가 그런 자기희생을 했다고?”
“!”
그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보물고 입구에 들어온 건 다섯 명 정도의 어린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순백의 백발에 금안.
4세 정도의 아이였다.
그 아이의 존재에 공기가 바뀌었다.
심지어 슈리마저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자,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야?”
뭔데, 저거?
그러나 방금 전까지 아이작을 보고 감탄하던 아이들은 절망하듯 보았다.
“키나 베리트잖아.”
“저놈도 여기에 온 거야……?!”
“교황가가 온단 소리는 없었는데!”
아.
누군가 했더니 그거구나.
사실상 성자라고 기정사실화됐다던 아이.
‘뭐 그렇게 불릴 만도 하네.’
신성제국에서는 흰색에 가까울수록 고귀함의 상징이다.
상급 성직자로 올라갈수록 제복 역시 흰색의 비율이 커졌고 말이다.
그런 신성제국에서조차 저런 밝은 머리 색은 보기 힘들 정도다.
마치 본인의 모습 자체가 타고난 성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솔직히 아이작도 수백 년을 신성제국과 씨름했지만, 저 정도 밝은 색은 성녀밖에 못 봤다.
‘이상하네. 베리트에서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색은 아닌데.’
하지만 슈리는 이까지 악물었다.
“…씨. 그사이 성력이 더 늘었어.”
어이구, 이놈은 하다 하다 교황 손자한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네.
야망이 넘쳐.
“아, 키나 베리트가 있으면 이 돌잡이도 의미 없잖아.”
“쟤가 제일 좋은 거 가지고 나올 게 뻔한데…….”
“애초에 교황가가 왜 성녀 보물고에 온 거야?”
“이상할 것도 없지.”
“!”
키나 베리트가 당당하게 웃어 보였다.
“지금이야 성녀 보물고라고 불리지만, 여긴 원래 신성제국 교황가의 물건. 성녀들에게 이곳을 지키게 하면서 권한을 준 것뿐이니까. 당연히 가져가야 할 내 물건을 가지러 왔을 뿐인데?”
슈리는 이를 갈았다.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유명한 놈 같았다.
하긴, 이 중에서 아이작 본인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도 신성력만 놓고 보면 제일이었다.
물론 괜히 다들 성자 후보가 아니라고, 이곳에 모인 아이들도 뛰어났다. 일곱 살을 넘는 아이는 안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하급 사제인 수준.
충분히 천재로 불릴 범주겠지.
하물며 교황청에서 인정한 25명에 속해 있는 걸까. 몇몇 기운들은 이미 열다섯 살은 돼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신에게 처맞아서 그렇지, 슈리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저놈?
그런 수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혼자만 다른 세계였다.
‘주교는 벌써 뛰어넘었겠는데.’
물론 스스로도 그 대단함을 잘 알고 있는 듯, 키나 베리트는 물병을 든 아이들을 경멸하듯 보았다.
그는 물병에 뭘 넣었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주최자를 욕보이려고 천한 수를 쓰다니. 그러고도 너희가 성자 후보냐?”
“……!!”
아이작을 해코지하려 했던 범인들은 황급히 물병을 숨겼다.
키나 베리트는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수준 떨어지는 놈들. 이런 어린아이를 괴롭혀서 남는 게 뭐가 있다고.”
아이들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래, 부끄럽고 분하겠지.
척 봐도 교황가한테 잘 보이려고 수작질하려 한 건데, 도리어 잘 보이려 한 상대한테 욕을 들어먹다니.
키나 베리트가 한심하단 듯 성자 후보들을 보았다.
“아직 이렇게 어린 아이가 독 내성을 다룰 수 있을 린 없고. 분명 이 아이를 지키려 한 성녀님의 힘일 거야.”
“!”
그 말에 다른 아이들은 물론, 슈리도 미간을 찌푸렸다.
짐작 가는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과 싸우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성법을 썼던 건, 본인이 아니라 전부 모친의 힘이었던 건가?
하긴. 사고로 사라지기 전, 보호 성법을 걸어둔 것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도 그럼 그렇다며 혀를 찼다.
“하긴, 저런 젖먹이가 고승님들만큼 신성력을 다룰 리 없잖아.”
“해독은 무슨…….”
“역시 에슈아의 사내놈들이지.”
키나 베리트는 아이작을 안쓰럽다는 듯 살폈다.
“발작하듯 돌아다닌 것도 독을 대신 찾아주려 한 게 아니라, 독에 중독된 영향이야. 흥분제의 반응이겠지.”
키나 베리트는 아이작과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가엾게도. 내가 해독을 해주지.”
곧 그의 손에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 강력한 빛에 모두가 놀랐다.
“잠깐, 쟤 벌써 해독 성법까지 쓸 수 있는 거야?”
역시 성자로 인정받은 아이라는 듯, 아연실색한 표정들이었다.
“그보다 저 성력 크기 봐! 5계위는 되겠…….”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철썩!!
“?!”
키나 베리트의 뺨이 거칠게 돌아갔다.
아이작이었다.
그것도 꽤 세게 때렸다.
슈리도, 다른 아이들도 기겁해서 아이작을 보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게 아니었다.
“사, 사라졌어. 성력이……!”
모두가 키나 베리트의 손을 주목했다.
방금 전까지 모두를 기죽게 했던 강대한 성력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마치 아이작이 상대의 성법을 상쇄한 것처럼!
“……!”
그리고 그게 가능한 건 최소 같은 계위이거나, 그 이상일 때만 가능하다.
키나 베리트는 당황한 듯 자신의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내 힘을 상쇄했어?’
뺨을 맞은 것도 어이없었지만, 이런 꼬마가 자신의 성법을 없앴다고?
그러나 키나 베리트와 함께 온 아이들은 아이작에게 화를 냈다.
“에슈아는 예절을 모르나?”
“해독해 주려는 은인의 뺨을 갈겨?”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란 건 그들도 알았다.
트집을 잡아 에슈아에게 빚을 달아두려는 속셈이라는 걸 슈리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아이작은 한심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떴다.
‘아직 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놈이 어디서.’
키나 베리트.
확실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지만, 마왕의 눈으로 보기엔 한참 같잖은 애송이에 불과하다.
남들 앞에서 잘난 척이 하고 싶으면 컨트롤 능력까지 익히고 오든가.
저렇게 정제도 안 된 힘을 젖먹이에게 들이대려고 하다니.
강대한 힘 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상대를 해칠 거라는 걸 모르는 건가?
물론 아이작이 분노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지만.
‘뭐어? 해도오오옥?’
이 눈치 없는 병아리 놈이 뒤지려고!
“따야야야(술기운 날아가! 필요 없어)!”
“아악!”
“따야(몇백 년 만에 느끼는 취기인데, 이걸 그냥 해독한다고? 콱씨)!”
아이작은 물병에 성력을 실어 졸개들에게 던졌다.
“아아악, 그만!”
졸개들은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작 키나 베리트는 불쾌한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성력을 쓸 수 있는 모양이지만, 저런 아이가 자신의 힘을 상쇄하다니 믿을 수 없다.
“!”
아이작은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키나 베리트를 보고 혀를 찼다.
아. 어린놈이 말로 하니까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따야.”
아이작은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