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뭔가 이상하구나 (3)
아이작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있다.
첫 번째가 신(신성 진영)이고, 두 번째가 신을 따르는 놈이고, 세 번째가 술 마실 때 방해하는 놈이다.
그러니까 대충 오만하고 잘난 체하고 남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놈이라는 의미긴 한데, 이놈은 그 세 개가 다 포함되네?
특히 술!
비록 먹지도, 마시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몸이었지만 술을 머리에 부어서 대리 만족을 했던 것이 해골왕의 유일한 낙.
사실 그쯤 되면 그냥 시체 소독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아이작에겐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 드디어! 취기 비슷한 것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젖먹이라고 술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는데. 이 새끼가 그걸 방해해?
‘이 빌어먹을 교황가 놈이.’
아이작의 고사리 주먹에 힘이 실렸다.
심지어 이 자식, 누가 성직자 아니랄까 봐 비겁하게 ‘무장해제’ 성법을 사용해?
‘무장해제’는 상대에게 성력을 불어 넣어 무기와 버프, 심지어 ‘상태이상’까지 무장으로 인식해 몸 밖으로 튕겨내는 성법.
성법이 발동 중일 땐 맨손이 되다 못해 굉장히 멀쩡한 상태가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비겁하게 그런 걸 쓰려고 해?
시벌 놈이, 그러면 몰래 먹으려고 숨겨놨던 독까지 빼앗기잖아!
아니 술기운이 날아가다 못해 취하지도 못하잖아!
주먹을 쥔 아이작의 눈이 이글거렸다.
선 넘기만 해봐라.
그땐 가문 싸움이고 자시고 날려주마.
곧 아이작의 눈깔을 본 슈리가 기겁했다. 그는 황급히 아이작을 집어 들었다.
“안 돼! 하지 마!”
졸개들에겐 그게 아이작을 지키려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실소를 머금었다.
“와, 같은 식구라고 챙기는 거야?”
“에슈아의 사내놈이 정말 교황가에 비빌 수 있다고 생각해? 니가 걜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
이 미친놈들아!
내가 지키려는 건 얘가 아니라 니들이야!
슈리는 매일 당나귀마냥 별관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니들은 모르겠지만, 이 자식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데!’
어린애가 맞는 건지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면 바로 응징! 협박!
하다못해 능력은 어떠한가!
그나마 슈리가 아이작보다 나은 게 배운 성법의 개수였다. 그래서 아는 성법을 총동원해 예절 교육을 시켜주려 했지만!
-따야야야(솜털이 지금 누가 누굴 가르쳐)!
벌써 자신에게 훔쳐 간 성법만 스무 개가 넘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져간 성법은 꼭 자기를 협박할 때만 쓰고.
오죽하면 어디 성깔 나쁜 마왕이 젖먹이 몸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할까.
그랬기에 슈리는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가만히 있으면 좋은 거 줄게.”
응, 붕붕아. 니가 뭘 주든 안 넘어간다.
황금을 준다 해도 안 넘어가.
그도 그럴 게 상대는 보는 것도 열 받는 교황가의 손자였다.
신들 최고 앞잡이들이 먼저 시비를 거는데, 그걸 그냥 봐줄 만큼 마왕은 호인이 아닌…….
“숙부님 몰래 초콜릿 가져다줄게.”
좋아, 까짓것, 넘어가주지.
갓난아기라고 간식을 금지당한 아이작은 바로 주먹을 내렸다.
그 모습에 슈리는 안도의 한숨을…….
퍼억!
“!!?”
쉬지는 못하고, 아이작에게 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이놈의 자식이!’
주먹을 거두는 건 줄 알았더니, 자신에게 내지르는 거였나!
젠장, 아프다. 더럽게 아픈데 이상하게 몸은 더 강해진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잉여 신성력을 불어넣어준 마왕은 손을 툭툭 털었다.
그래그래. 숙적에게 힘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붕붕이나 업그레이드해 주는 게 낫지.
그래야 붕붕이도 보물고에서 자신을 업고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이작은 키나 베리트의 앞에 퉤 침을 뱉었다.
“땨. 뜌따야(짜식,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
그리고 매정하게 휙 돌아서 기어갔다.
“뜌땨땨땨(니 할배 놈들하고 붕어빵처럼 생겼으면 이걸로 안 끝났어).”
“???”
키나 베리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아이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뭐지, 쟤?
곧 아이작이 졸개들에게도 퉤퉤퉤 침을 뱉고 가자, 졸개들이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에슈아는 예의범절을 어떻게 가르치길래!”
“야! 얘는 여기 묶어둬! 보물고에 못 들어가게 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그만!”
“!”
벽력같은 일갈에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아이들만 있던 보물고 입구에 어른들이 나타났다.
에슈아에서 나온 장로와 원로였다.
그들은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왜 후보들끼리 붙어 있는 거지? 싸웠나?”
졸개들은 서둘러 아이작을 안아주는 척을 했다.
“그럴 리가요! 그,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상대는 에슈아의 원로와 장로들이었다. 같은 에슈아 사람을 건드리려 했다는 게 밝혀지면 괜히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지 모른다.
에슈아의 장로는 척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였지만,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자고로 성자란 성녀와 같이 성인이 될 존재.
누군가가 도와줘서도, 도움을 기대하게 해서도 안 된다.
물론 슈리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나섰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작에게는 원한이 없으나, 아무 힘이 없는 아이작보다는 슈리가 위로 올라가야 한다.’
아니 애초에 젖먹이라 보물을 가지고 나올 확률도 없으려나?
그런데 괜히 보물고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에슈아의 체면만 떨어질 테고.
‘계륵이군.’
어쩌면 지금이라도 핑계를 잡아서 아이작은 들여보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온 원로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커헑.”
이 새끼가 똑바로 안 하냐는 듯, 가래침을 모으며 장로를 노려본다.
“…….”
시선을 받은 장로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노인네들. 어째서인지 아이작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것 같더니만.
‘누가 성녀의 최고 수호기사들 아니었다랄까 봐.’
팔이 안으로 굽어도 적당히 굽어야지. 아무리 그리 나와도…….
“커허어어어어어어어헑!!”
“…….”
결국 장로는 얼굴근육을 꿈틀거리며 졸개들을 보았다.
“후보들 간에 선의의 경쟁은 좋지만,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우면 바로 쫓아내겠다.”
졸개들은 웃었다.
“네, 에슈아의 어르신께서 봐주신 만큼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봐준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
“예?”
장로는 질책하듯 미간을 좁혔다.
“너희는 제일 마지막 입장이다. 알았으면 저 뒤로 가라.”
“예?!”
“성자 후보가 되어 약자의 멱살이나 잡다니. 반성하라.”
“!”
졸개들은 억울한 듯 본인들의 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작 키나 베리트는 무시하고 아이작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본인의 힘을 상쇄한 듯한 아이작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저기가 너희가 들어갈 곳이다.”
철컹!
“!”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벽인 줄 알았던 곳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로 이어진 듯한 높은 벽은 마치 살아 있는 퍼즐 조각처럼 갈라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떨리는 시선과 함께 원형으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보이는 건 보물의 산.
아이들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저 안에 성녀의 보물이.’
키나 베리트도 아이작에게서 관심을 뗐다.
그래, 자신의 힘을 상쇄한 것도 그냥 우연이었겠지.
분명 성녀의 보호 성법일 것이다.
어차피 중요한 건 보물고의 물건이었다.
“어디, 가장 좋아 보이는 물건을 가져와 보아라. 성자의 안목을 기대하겠다.”
그들의 말에 성자 후보들은 경쟁하듯 눈을 번득였다.
안목이라고 해도 그들이 노릴 물건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물을 가져오면 에슈아의 가모님께서 특별한 비전을 주신다 했지.”
“그래. 교황 성하께서도 줄 수 없는 보상!”
모든 아이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하지만 그 눈빛들에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멜리사가 뭔가를 걸었다더니.’
뭔지는 몰라도 모두 노리는 게 같은 보물인가 보군?
뜬금없이 왜 성자 후보들을 불러 모았나 싶었더니. 가져오게 하려고 한 물건이 있어서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가장 좋은 거?
망할 멜리사가 건 보상?
알 게 뭔데?
‘중요한 건 내 육신이다.’
처음부터 그것 때문에 이 버러지 같은 돌잡이에 어울려준 것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보물고 안에서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에휴. 어린놈들. 저것들이 시선을 끌고 있을 동안 이 어르신은 내 몸이나 찾으러 가련다.’
돌잡이는 병아리들끼리 잘해보시지.
“참. 말하는 걸 잊었구나.”
“해골왕의 육신은 제일 끝 방인 3관에 있단다.”
아이고, 친절한 에슈아 놈들. 어서 가져가라고 위치까지 알려 주는구나.
“가모님이 가져오라고 하시긴 했지만, 해골왕의 육신은 위험하니 주의하도록.”
그래그래, 가모님이 가져오라 하신 해골왕의 육신은 3관에…….
잠깐 뭐……?
“3관! 3관이랜다!”
“들어가자마자 달려!”
“해골왕의 육신만 가져오면 가모님께서 보상을 주신다고 했다!”
“?!”
아니, 아니아니, 잠깐, 아니 시발!
멜리사가 가지고 오란 게 내 몸이었어?!
아이작은 뒷 목을 잡았다.
‘이 빌어먹을 성직자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애초에 그 녀석은 애들한테 뭘 시키는 거야!
“비록 에슈아의 가모님께서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만한 보상에는 이유가 있는 법. 죽을 수도 있으니 추천은 하지 않는다.”
“해골왕의 육신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으로 생각하고, 멀쩡한 성물을 우선시하거라.”
그래! 그렇지! 다른 거! 더 좋은 거나 가져가!
그거 그냥 뼈다귀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아이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닥거렸다.
“너도 해골왕의 육신을 노릴 거야?”
“응. 3관에 있다며. 어차피 제일 좋은 보물은 3관에 모여 있지 않아?”
“음, 그럼 나도 일단 그걸 노릴까?”
“응. 우리 가문에서도 꼭 그걸 가져오라고 하더라.”
이 더러운 성직자들아!
니들은 그냥 더러운 성물이나 먹고 떨어지라고!
하, 이러면 할 수 없지.
곧 아이작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장로가 아이들을 집중시키며 주의 사항을 말해주기 시작할 때.
“야!”
아이의 울음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장로와 원로는 무섭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쏘아보았다.
“또 무슨 일이냐!”
아이작이 졸개들 옆에서 울고 있었다. 마치 졸개들에게 맞은 것처럼.
실제로 졸개들은 아이작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원로와 장로가 눈썹을 치켜뜰 만했다.
“또 너희냐! 후보들끼리 싸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새 그걸 못 참고 아이를 괴롭히다니! 그러고도 성자를 논하는 아이들이더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물며 상대가 교황가의 가신 가문쯤 되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강한 라이벌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반면 졸개들은 억울해했다.
“아니, 제가 안 했어요! 장로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꼬마가 제 다리를 공격해서… 어? 얘 어디 갔어?”
방금까지 옆에서 울고 있던 아이작이 사라졌다.
“아, 저기!”
아이작은 열린 보물고 안으로 이미 쏙 들어가고 있었다.
“따따따따(그냥 내가 먼저 들어가고 만다).”
아이가 기어가는 속도가 아니었다.
[고속활보(高速闊步) (1계위)]
슈리는 그게 단번에 자신에게서 훔쳐 간 부스터 성법이라는 걸 눈치챘다.
어째서인지 자신이 아는 활보 성법보다는 훨씬 빠른 것 같지만.
“…저기, 장로님?”
성자 후보들은 먼저 출발해버린 아이작을 가리키며 장로와 원로를 보았다.
반칙이 아니냐, 성자 후보가 저래도 되냐는 눈빛이다. 몇몇은 젖먹이가 성법을 쓰는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장로와 원로 역시 말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본 건가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아이작! 그쪽은 출입 금지 구역이다!!”
“거기로 가면 보물고 전체에 함정이 발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