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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7화 (27/272)

제27화. 뭔가 이상하구나 (4)

“아이들이 보물고에 들어간 듯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회장에 활기가 서렸다.

“오, 드디어!”

“어느 아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하하,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저 제국을 지켜줄 성자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오.”

“그렇게 말하는 귀공의 아이가 가모님의 비기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무슨 소리입니까. 그대의 아이가 훨씬 뛰어난데.”

겉으로 보기엔 성자 후보를 배출한 가문끼리 덕담을 주고받으며 제국의 앞날을 논하고 있었지만, 글쎄.

어른들의 투쟁심. 가문끼리의 경쟁심.

후보들의 성취로 투자처의 동향을 점치려는 귀족들까지.

이 모든 게 맞물려 연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터가 되었다는 걸 릴라이가 모를 리 없다.

그도 그럴 게 신성제국에서 성자는 단순한 이레귤러가 아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이고 힘이었다.

마치 지금의 교황가가 그러하듯이.

하물며 교황가와 황제가 참석한 순간부터 이미 단순한 돌잡이가 아니게 되었다.

“보물고 내부와 연결되었습니다!”

“오, 드디어.”

연회장 중심에는 눈을 감고 빙 둘러앉아 있는 기사 다섯이 있었다.

그들은 에슈아의 기사들로, 보물고 내부 상황을 전달해주는 역할이었다.

보물고 안에 사역수를 들여보내 시야 연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야 공유 (3계위)]

사역수가 후보들을 쫓아다니면 기사들이 그들이 본 것을 읊어주는 식이었다.

실제로 보물고 내부엔 그들의 눈이 되어 주고 있는 검은 고양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물고 1관의 중앙부 문이 열렸습니다!”

“후보들이 중앙부를 통과한 것 같습니다. 아직 누군지 모르겠는데, 압도적으로 빠른 아이가 딱 한 명 있어요. 제일 먼저 들어간 아인가……?”

“오오!”

귀족들은 앞다투어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

“그럼 시련을 통과했단 말이오?”

“세상에, 보물고는 상급 기사들도 몸을 사릴 만큼 험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곳에 벌써 중간까지 간 아이가 있다니. 역시 성자가 맞긴 맞나 봅니다!”

성녀의 보물고는 난이도 높은 시련으로 악명 높았다.

아마 그곳에서 부상 하나 없이 나올 수 있는 건 5대 가문의 가주인 추기경 이상과 성녀 정도일 것이다.

괜히 힘을 타고나는 어린 성녀 후보들만 들여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릴라이의 친구인 시몬은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에도 1관에서의 탈락률만 50%라고 했다.’

말이 돌잡이 장소지, 실제로는 돌잡이 물건을 가져오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다.

하물며 관을 통과할수록 탈락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그런 악명 높은 곳에서 벌써 선두인 아이가 있다니.

‘누구냐, 누가!’

자식들을 들여보낸 귀족들은 궁금하다 못해 똥줄이 타들어갈 만했다.

하다못해 시몬은 몰래 자기 수족을 부릴 정도였다.

“야야, 안에 모습 보이냐? 보여?”

시몬의 하인은 기사들이 쓰고 있는 ‘시야 공유’ 성법을 쓰고 있었다.

에슈아의 중계를 언제 받아 듣고 앉았냐며, 직접 자식의 눈과 연결해 상황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아, 막내 도련님하고 시야 연결이 됐습니다! 다행히 아직 무사히 달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으아아, 그래, 아들아! 장하다! 3관! 3관이다! 달려라, 아들아라아앍! 에슈아랑 교황가의 콧대를 눌러얽!”

거참, 백작가의 후계자가 수풀에서 똥 싸는 자세로 뭘 하는 건지.

릴라이는 흡사 경마장이라도 된 듯한 모습에 한숨을 쉬었지만 사실 이쪽도 뭐라 할 처지는 못 됐다.

“원로님… 그러니까 원로님들까지 그러시면 안 되죠.”

“닥쳐라, 요놈!”

에슈아의 원로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몰래 시야 연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상은 아이작이었다.

릴라이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로회는 전원 성녀의 수호기사였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성녀의 아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아이를 정녕 믿으시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죠. 몰래 시야 연결을 하시다니, 그거 인권침해…….”

“떼끼! 닥치지 못할까! 정녕 그러고도 네가 그 아이의 숙부냐!”

“아니. 아이작이 다치면 제가 다 알 수 있으니…….”

“떽! 그 입 다물거라!”

“…….”

“허어, 슈리는 되는데, 왜 아이작하고는 연결이 안 되지? 참으로 이상하군.”

“아직 젖먹이라 그런가?”

에슈아의 원로들은 대륙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9계위 성기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아이작을 상대로 낑낑대는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만, 뭐 현역에서 물러나신 지 오래되었으니까.

‘그보다 너무 기대를 하게 해드린 것 같은데.’

분명 아이작이 특별한 아이라고 공언한 것 때문에 저러시는 거겠지.

가문에 들이기 위해 과장을 좀 많이 섞은 건데.

물론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아이작은 아직 너무 어렸다. 사실 이번 보물고에서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기만 해도 본전.

실망하실 걸 생각하니 좀 죄송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아이작이랬나. 그렇게나 조카에게 거는 기대가 큰가 보군?”

“!!”

릴라이는 화들짝 놀랐다.

말을 걸어온 건 베리트 추기경이었다.

그가 릴라이를 찾아오자 귀족들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어깨에 금색 영대.

창백한 피부에 교황가 특유의 날카롭고 뾰족한 이목구비. 언제나 불쾌해 보이는 표정의 고압적인 남자였다.

일찍이 가주 자리를 넘겨받은 베리트 추기경은 성녀 가문을 비웃었다.

“전대 성녀께서 욕심이 너무 지나치셨어. 성녀면 성녀 자리로 족해야지, 성자의 자리에 눈이 멀어 그 위험한 보물고로 후보들을 불러 모으고. 하다못해 해골왕의 육신을 조건으로 걸다니. 노망이 드신 건 아닐 텐데 말일세.”

추기경의 말에 귀족들은 마시던 술을 뿜어낼 뻔했다.

성녀를 저렇게 대놓고 공격하고 폄하할 수 있는 것도 교황가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부터 교황과 성녀는 견원지간이긴 했지만 말이다. 건수만 생기면 존경받는 성녀를 깎아내릴 정도로.

아무튼 엮였다간 괜히 피곤해지니, 여기서는 조용히…….

“뭐, 그런 성녀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자식들을 사지로 넣은 부모들도 우습긴 마찬가지다만.”

“?!”

아니, 저 새끼는 왜 난데없이 광역기로 두들겨 패는데?

시몬은 물론, 부모들 모두가 베리트 추기경을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욕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한다.

교황가인 베리트 추기경이라면 사실상 교황대리.

신성제국의 왕 같은 존재들을 무슨 수로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걸 모르지도 않는 베리트 추기경이 조소를 머금었다.

“보물고에 있는 해골왕의 육신은 과거 성인들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악물. 그런 걸 가져오라고 한 부모들이나 성녀나, 어느 쪽이든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만.”

부모로서 개념이 없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귀족들 모두가 분하지만 입을 다물…….

“에잉, 저 교황가의 새깽이 새끼가.”

…진 못하고 에슈아 원로들이 눈을 번득였다.

성녀 모독에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기세였으나, 릴라이가 재빨리 막았다.

하지만 그 역시 추기경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러는 각하께서는 어떠하시고요? 보물이 탐나서 자제분을 똑같이 위험한 보물고에 넣으시지 않았습니까?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추기경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허, 똑같다?”

추기경은 불쾌하니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는 듯 금색 눈을 번득였다.

“착각 말게. 해골왕의 육신은 몰라도 성녀 보물고의 보물 따위, 교황가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네. 애초에 그 아이에게 보물고는 애들 놀이터에 불과해. 해골왕의 육신도, 성녀 보물고의 최고 보물도 손쉽게 가져오겠지.”

“!”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알겠나? 교황가에서 그 아이를 보낸 건 똑똑히 알려주려고 한 걸세. 예언을 기회 삼아 어떻게든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알량꾼들에게, 진짜 성자가 무엇인지. 성자 후보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은 아이들과 급이 어떻게 다른지.”

한마디로 모두의 앞에서 압도적으로 밟아 주겠다는 것이다.

키나 베리트가 성자란 걸 증명해 애초에 성자 후보란 것 자체를 없애 주겠다고.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들어 주겠다고.

“해골왕의 육신도, 최고 보물을 가져오는 것도 우리 키나일 걸세. 왜 교황가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군림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겠지.”

다들 침을 삼켰다.

베리트 추기경의 아들, 키나 베리트는 확실히 천재라 불리는 아이다.

교황이 인정하고, 3세 때 이미 해골왕의 부하를 잡은 성자 아이…….

바로 그때였다.

“오오, 연결되었다!”

“!”

에슈아 원로 중 하나가 외쳤다.

릴라이는 추기경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란 듯, 바로 달려갔다.

“아이작과 연결이 되신 겁니까?”

“아니, 하도 안 되어서 성령을 보냈다!”

“!”

아니 성령이라니, 그 귀한걸.

도시의 전복 위기 수준에서나 한두 번 겨우 소환하는 신성 정령이었다.

그만한 걸 고작 이런 곳에서…….

아니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이작은 무사합니까?!”

“그래. 1위, 2위가 중앙을 통과했고… 1, 2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참 뒤에 있다. 쫓고는 있지만 격차가 좀 압도적이구나.”

귀족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1위는 보나 마나 키나 베리트일 테지만, 2위는 도대체 누구지?

“3위는 시몬의 아들…….”

“아들아아앍!”

“2위는… 슈리인 것 같다.”

“예?!”

멀지 않은 곳에서 고엘이 좋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내 아들!”

시몬은 시무룩해졌다.

주변에서도 모두 비슷하게 상황을 전달받은 듯했다.

확실한 정보란 의미다.

“1위는 당연히 키나 공자일 거고, 슈리 공자가 뒤따르고 있는 건가?”

추기경이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슈리면 충분히 키나의 뒤를 따라올 만한 재목이지.”

그 미소에 시몬은 이를 으드득 갈며 릴라이에게 속닥였다.

“와! 저거 꼴에 외가라고, 슈리는 또 반겨주는 거 보소.”

릴라이는 좀 씁쓸해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작은 아마 출발선에 있겠지.

추기경은 그런 릴라이를 보며 웃었다.

“차라리 출발선에 있으면 다칠 위험은 없으니 안전하겠군. 뭐 너무 걱정하지 말게. 키나가 제일 먼저 보물을 얻으면 데리러 가줄 걸세. 성자로서 약자를 구출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그러나 추기경은 말을 잇지 못했다.

“1위는… 아이작… 엥? 아니 젖먹이가 왜… 아, 아니! 아무튼 1위는 아이작 에슈아 님입니다!”

“……?”

뭐? 누구?

추기경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귀족들도 크게 술렁거렸다.

“잠깐, 그러면 지금 1위, 2위 모두 그 에슈아라고?”

“아니 어떻게 제일 약골들이… 아니 그 둘이 거기에 있어!”

“이상하다, 신의 보물고라 속임수가 통할 곳이 아닌데.”

“나머지는 따라가고 있지도 못하고 있단 게 무슨 소리야!”

“키나 베리트는? 순위에도 없는 건가?”

뜻밖의 상황에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추기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금방 전해졌다.

“아무래도 1관의 시련이 발동했고, 다들 1관의 시련에 고난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속 시원한 답이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나?

시련이 발동했는데, 어떻게 젖먹이가 1위인 건데!

그때 원로가 릴라이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이 고얀 것. 조카라고 그새 유용한 성법을 써놓다니. 성녀 가문의 사람이 그래도 되는 것이냐.”

분명 나무라는 말인데,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숨길 수 없다.

그러나 릴라이는 오히려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저 아닌데요.

그런 거 걸어준 적 없는데요.

계속되는 원로의 허리 찌르기에 릴라이는 땀만 삐질 흘렸다.

* * *

쾅! 쾅!

보물고 1관.

1관은 이미 폭발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아악! 보물이 폭발한다!”

“으앙! 바닥에서 손이!”

본래라면 발동되어서는 안 될 함정들이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원로들이 멈춰놓은 함정들이었다.

애초에 그건 도난 방지용이었고, 성자 후보들에게는 시련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이 하필 출입 금지 구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모든 보물고의 함정 기능이 켜진 상태였다.

하물며 이미 한 명이 들어간 이상, 모두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도 못하는 상황.

-아이자앍! 거긴 안 된다!

결국 원로와 장로가 아이작을 쫓았다. 그리고 그 뒤를 키나 베리트가 멋대로 따르고, 결국 모두가 보물고 안에 들어가면서 돌잡이가 시작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성자 후보들은 1관의 시련까지 겪고 있었다.

[선택의 시련]

“젠장, 어느 게 올바른 길인지 알 게 뭐야!”

“다 똑같이 생겼잖아!”

1관의 시련은 길 찾기였다.

징검다리, 넝쿨, 건널목 등 다양한 통로가 있었지만 그중 안전한 길은 단 하나.

성자의 안목으로 올바른 길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에슈아 가주 외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잘못 밟으면 바로 독이나 폭발, 가스 등에 휘말렸다.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그리고 장로와 원로도 못 뚫는 이 지옥을 태연하게 뚫고 가고 있는 것이 바로…….

“따따따따따.”

어느새 중앙 문까지 열고 2관을 향해 홀로 질주하고 있는 아이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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