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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28화 (28/272)

제28화. 쟤 도대체 뭐야? (1)

“뜌땨땨(시벌, 이 변태 놈들)!”

아이작은 옹알이로 욕을 읊조리고 있었다.

성녀들을 보면서 참 변태 같다, 변태 같다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성직자들이 변태 새끼들일 줄은 몰랐는데!

‘이딴 곳에서 애들 돌잡이를 할 생각을 한다고?’

마왕이기에 보물고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집중하면, 대충 어떤 술식이 설치되었는지 감이 왔으니까.

그리고 이쯤 되면 보물고가 아니라 그냥 감옥이고 고문소!

물론 잔인하기로 따지자면 솔직히 마족 진영보다 신성 진영 놈들이 한술 더 뜨긴 한다만, 이건 좀 심한데.

이 정도면 이 새끼들 취향을 뒤집어 까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악! 살려줘!”

“엄마아아!”

“잘못했어요!”

쯧, 아직 아빠 엄마 찾을 나이의 애들을 저리 괴롭히다니.

역시 성직자들은 이래서 안 돼.

사실은 이 모든 게 아이작 본인이 출입 금지 구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마왕 놈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랬기에 아이작은 열심히 2관을 향해 기어갔다.

팔다리가 짧은 젖먹이라 힘겹긴 했지만, 분명 느껴졌다.

아직 희미하긴 하지만 멀리서 육신의 기운이!

곱게 키운 자신의 몸이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따따따따따따따.”

물론 그런 아이작 때문에 정작 뒤쫓아 가는 아이들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뭐지?”

“저 애는 어떻게 정답인 길을 찾는 거야!”

성자 후보들은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대자연에 가까운 1관의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인정사정없는 함정에 두 번 놀랐다.

특히 자신들을 도둑 취급하는 듯한 함정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 이런 훈련을 하시니까 성녀님들이 그리 강하신 거구나……!!’

‘돌잡이조차 실전이라니! 어느 신앙보다 대단해!’

‘역시 에슈아. 남다르다.’

실제로는 에슈아의 막내 놈이 도난 방지용 함정을 켠 것뿐이지만.

하물며 그 함정 장치를 끄려고 들어온 장로와 원로가 도리어 행방불명되긴 했다만.

어쨌든 난이도가 굉장히 올라간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가 성자를 입에 담는 아이들. 죽도록 힘들긴 하지만, 결코 도태될 인재들도 아니었다.

살아 있는 넝쿨, 폭발하는 꽃가루, 식인 동물 등 함정 쪽은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시련 쪽이다.

누가 1관이 ‘선택의 관’이 아니라 ‘꽝의 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랄까 봐.

외길인 주제에 선택이 필수인 1관에서는 징검다리 하나 걷는 것도 힘들었다.

발판부터가 이미 선택의 연속이었다.

멀쩡한 발판과 아닌 발판을 구별해서 건너야 했다. 냇가를 건너기 위한 넝쿨도 신중하게 골라야 했고 말이다.

물론 단순히 운 테스트를 하려는 건 아닐 것이었다.

‘성자의 안목을 보는 거겠지.’

성녀나 성자는 신의 대행자였다.

한마디로 마족이나 천재지변 등 위험한 일이 생기면 가장 선두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존재.

안전한 루트조차 골라내지 못하면 인도자로서 자격도 없다는 의미겠지.

즉, 시련 자체가 신의 시험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아직 어려운지,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건 방금 전 아이작이 지나간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보면 정원이지만 거기엔 가로 8개, 세로 8개의 투명한 유리 돌판이 있었다.

마치 체스판 같은 공간이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색색의 유리 돌판 밑으로는 수심이 깊어 보이는 강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돌판만 건너면 2관의 문에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1관의 보물은 전부 2관 문 앞에 보관되어 있었고 말이다. 모든 보물들은 그런 식으로 놓여 있었다.

즉, 3관까지 안 갈 이들은 거기서 보물을 골라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

그래, 참 쉬운 일이지.

문제는 어느 돌판이 정답인지 모른다는 거지, 젠장.

“체스니까 특정 말의 움직임 아냐?”

“짝수, 홀수일지도.”

“에이씨, 안목 테스트라며! 그럼 그냥 안전해 보이는 걸 고르면 그만 아냐?”

한 아이가 호기롭게 유리 돌판 위에 올라갔다.

“금이 안 간 판이… 아아악!!”

그리고 호기롭게 추락했다.

그 뒤로 몇 명이 더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자존심 구기고 이런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야! 됐으니까 추적 성법 써봐! 아까 그 젖먹이가 어디로 지나갔는지 찾아보라고!”

“뭐? 직접 안 고르고? 이것도 엄연히 안목 테스트일 텐데……!”

“맞아. 이것도 못 하면 성자로서 자존심이……!”

“알 게 뭐야! 결과가 안 좋으면 룰을 지켰다고 누가 알아주길 해? 칭찬해 주시냐고! 저기 봐! 슈리 쟤도 아이작인지 뭔지 쟤만 따라가서 벌써 2위잖아!”

“!!”

어린 성자 후보들은 먼 곳의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아이작과 슈리를 보았다.

2관의 문이 코앞이었다.

“슈리도 알고 있는 거야.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3관까지만 가서 좋은 걸 가져오면 된다고! 오히려 슈리가 머리가 좋은 거지.”

“오… 그렇구나!”

“저 집념 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저 젖먹이를 쫓아가고 있잖아. 성자가 되려면 저 정도는 각오해야 한단 거야.”

“오!”

어린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슈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시발… 놔줘…….’

슈리는 하늘만 보고 있었다.

하늘이 뿌옇다.

아니 하늘이 뿌연 건지, 눈앞이 뿌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뿌옇다.

이거는 뭐,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슈리는 사실 아이작에게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슈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하하하하, 힘이 끓어오르는구나!]

위스퍼였다.

별관에서 마력핵을 흡수하면서 2계위로 승급한 위스퍼는 기운이 넘쳐 보였다.

심지어 모습도 조금 달라졌다.

원래는 얼굴만 있는 검은 유령이었다면, 지금은 꼬리가 생겼다.

그 연기 같은 꼬리로 슈리를 묶어서 끌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이거는 무슨 연이 된 것도 아니고.’

위스퍼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슈리는 그저 눈물만 삼켰다.

이 젖먹이가 자신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지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싶었다.

방법을 알아낸다 한들 어차피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닌걸.

하지만 이것만큼은 궁금했다.

아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이 미친놈은 어떻게 함정을 다 피해 가는 거지?’

정답을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뭐, 상관없나.

지금쯤 다른 아이들도 아이작이 옳은 길을 알고 있단 걸 깨달았을 것이다.

자존심을 부릴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았겠지.

그 증거로 라이벌들도 아이작이 온 길로만 따라오는 것 같으니, 금방 따라잡히…….

쾅!!!

“아아악!”

“살려줘!”

“……?!”

…기는 무슨!

아이작이 온 길로 따라오던 아이들이 폭발에 휘말렸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연기와 아이들의 비명에 슈리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아니, 망할! 뭐야, 저거.

함정 아닌데?!

딱 봐도 술법으로 만든 폭발인데?!

슈리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쪽쪽이를 빨며 변태같이 웃고 있었다.

“땨땨따뜌야(냄새나는 병아리 성직자들. 감히 이 몸과 같은 물건을 노릴 수 있을 것 같냐).”

아이작은 까르르륵 웃었다.

자고로 백수의 왕은 병아리를 잡을 때도 모든 힘을 다하는 법.

아무리 꼬맹이라 해도 저놈들은 각 가문에서 보낸 흉수… 아니 성직자들이었다.

당연히 추적해올 걸 예상하고 자신의 발자국 위에 폭탄 마법을 설치해둔 것이다. 성력에 숨겨서 말이다.

뭐, 폭탄 마법이라고 해봐야 1계위 마법.

목숨엔 지장이 없겠지만.

‘그래도 한 명도 정답을 못 알아낼 줄은 몰랐는데.’

정답 루트가 자신이 온 길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굳이 지뢰를 밟았다는 건 그런 거겠지.

뭐, 이해는 했다.

이곳은 원리를 모르면 상급 기사들도 헤매는 공간이었다.

그럼 아이작은 마법으로 정답을 알아냈느냐?

아니, 전혀 아니다.

그딴 방법이 아니어도 통과 방법은 간단했다.

애초에 보물고에 들어오기 전, 장로가 후보들에게 힌트를 주지 않았던가.

-너희는 성녀와 같은 신의 사자. 성자란 걸 잊지 말라. 그 사실만 기억하면 가모님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하셨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

‘성녀, 성자로서 행동하라.’

그리고 그런 조건에서 1관의 공략법?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건 인류의 인도자로서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한 시련일 것이라고!

하지만 다르다.

바른길? 안전한 길?

웃기지 말라지!

그딴 길은 나이를 먹고 6계위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지식으로 판별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10계위 성직자가 될 놈들한테 벌써부터 왜 그딴 훈련을 시킨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 건 그 분야의 베테랑들한테 맡기는 게 훨씬 빠를 텐데 말이다.

성직자들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 뭘 요구하는 것이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하고 좋아 보이는 걸 택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성녀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생존 본능은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욕구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이기적인 욕구다.

하지만 성인은 그 당연한 욕구조차 허락되지 않는 신의 사자.

죽을 걸 아는 길인데, 당당하게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1관은 그 ‘공포’를 시험하는 시련관.

누가 봐도 떨어질 것 같고, 썩은 동아줄이고, 죽을 것 같은 길.

그냥 제일 불길하고 안 좋아 보이는 걸 고르면 된다.

그게 1관의 진짜 정답이었다.

뭐, 정답을 알아도 아직 애들한테는 무리일지도.

‘머리론 알아도 썩은 동아줄을 일부러 잡는 게 쉽진 않지.’

놀라울 만큼 단순하지만, 그래서 아이작은 솔직히 유쾌하지 않았다.

이곳은 재물신과 재앙신이 만든 보물고일 테니까.

마치 아랫것들은 이래야 한다고 주입시키는 것 같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본인들이 원하는 이상형을 세뇌시켜 만들려는 듯이.

괜히 성녀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골왕을 향해 자폭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물론 그만큼 뜯어먹을 생각이지만.

뭐, 슈리를 데리고 온 건, 그럼에도 가끔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쾅!!

“아악!”

방패로 삼으려는 것뿐이지만.

아이작은 마지막 선택의 길에서 슈리를 척 밟고 착지했다.

폭발에 휘말린 슈리는 바닥에서 끙끙 앓았다.

“너, 이게 진짜……!”

아이작은 그런 슈리의 어깨를 수고했다는 듯 토닥였다.

역시 성녀 가문의 순혈. 괜히 축복받은 육체가 아닌지라 용가리 통뼈로군.

“따야따따(좋다, 붕붕아! 같이 가는 대신 너도 좋은 거 하나쯤은 먹게 해주마)!”

아이작은 1관의 보물은 눈길도 주지 않고 2관 문으로 향했다.

끌려가는 슈리는 물기로 눈앞이 흐려졌다.

아니, 뭐. 1관의 보물보단 2, 3관의 보물이 더 좋긴 한데.

그 와중에 저 새끼, 영약으로 보이는 건 슬쩍 챙겨 먹은 것 같은데.

심지어 남은 건 기저귀에 슬쩍 숨기는 걸 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설마 3관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함정에 휘말릴 때마다 왜 몸이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이래야 해?

“따야야야(가자)!”

“너 혼자 가, 시발……!”

한편 그 무렵.

난장판이 된 1관의 광경을 보면서 탄식하는 무리가 있었다.

키나 베리트와 그 무리였다.

그들은 아직 출발선에 있었다.

1위와 2위가 2관 문에 도착하자 불안의 목소리가 나올 만했다.

“괜찮나요? 이대로면 에슈아, 아니 다른 놈들한테 해골왕의 육신도 좋은 보물도 다 빼앗길 텐데!”

그러나 키나 베리트는 쯧 혀를 찼다.

“한심하긴. 일부러 후보들을 먼저 보냈다곤 생각 못 하나?”

“예?”

“1관은 선택의 관이야. 정보가 쌓이기 전까진 필연적으로 몸이 고생하지. 체력 낭비야.”

“!”

하지만 경쟁자들을 앞서 보내면 함정은 다 발동할 테고,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도 금방 알 수 있다.

“초행길을 파악하는 건 고기방패들이나 하는 짓이야. 멍청한 짓이라고.”

“하, 하지만… 저희가 제일 뒤인데…….”

“잊은 거야? 2관의 문지기가 누구인지?”

“!”

순간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성녀 보물고는 원래 교황가가 관리하던 곳. 키나는 당연히 그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관 입구는 8계위 마족이 지키고 있어.”

“아!”

“어차피 먼저 출발한 애들도 거기서 다 발목이 잡힐 거란 거죠?”

“그래. 1관에서 절반이나 탈락하는 건, 단순히 길 때문이 아니란 거지. 뭐, 그것도 운이 좋을 때의 확률이고, 상황에 따라선 성녀들도…….”

그때, 뭔가를 본 키나 베리트가 미소를 지었다.

2관 문 앞에 빛의 기둥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문 앞에 거대한 괴물이 형체를 드러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졸개들은 겁에 질렸다.

“나, 나왔다! 마족……!”

“아, 슈리는 참 운이 없네. 내 옆에 있었으면 2관까지는 통과했을 텐데. 저게 나온 이상 2관은커녕 목숨이나 건지면 다행이지.”

“저 정도면 다른 가문 애들도 망한 거 같은데요? 하긴, 키나 님 외에는 모두 쓰레기지!”

“맞아요. 키나 님도 아닌데 성자라니요. 다신 주제넘은 생각 못 하게 저기서 전부 불구나 됐으면 좋겠네요.”

“그만둬. 천박하다. 다른 가문을 함부로 무시하지 마.”

말은 그리하지만 키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여기서 저걸 처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걸.

교황인 할아버지한테서 진물이 나도록 성법을 배웠다.

다들 키나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일부러 천천히 가는 게 더 영웅다워서 좋을 것 같다.

대충 다른 아이들이 본인들의 무능력함과 분수를 깨달을 때쯤에.

“그러니 천천히 가도…….”

그런데 그때였다.

쾅!

소환된 마족이 쓰러졌다.

“…….”

…어?

쓰러져? 8계위 마족이?

덜컹! 끼이이익!

“키나 님. 2관의 문이 열렸는데요.”

그래, 2관의 문이 열렸…….

“…….”

…잠깐! 문이 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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