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쟤 도대체 뭐야? (2)
슈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족.
아니, 그래. 마족 나오시겠지.
보물고에 들어올 때 릴라이 숙부가 재차 주의를 주기도 했고 말이다.
-슈리. 너도 이미 알겠지만, 2관에서는 마족이 나온다. 절대 상대를 공격해선 안 돼. 평정심을 유지하는 시련이니까.
네, 숙부님. 너무 잘 알죠.
-알았지? 상대는 8계위 마족이다. 8계위 마족이면 왕국 하나는 그냥 끝장나는 수준이야. 혹시라도 퇴치하겠다든가, 그런 위험한 생각은 말아라. 상급 기사도 자칫 죽어!
예. 잘 압니다.
대사제님이나 추기경님이 없으면 인간 수준에선 이미 벅찬 단계죠.
물론 여기에 있는 마족은 신성 진영에서 붙잡아둔 놈이었다.
룰만 지키면 다칠 일도, 문제가 생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 룰만 지키면 말이지.
슈리는 매우 못 미더운 듯 아이작을 꽉 붙잡았다.
“알았냐? 여기서부터는 상대를 절대 공격하지 마. 적이지만 공격하면 절대 안 돼!”
“따야……?”
아이작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미쳤나?
적인데 왜 공격을 안 해?
“그게 살아서 2관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아무튼 여기서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뭐가 나오든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어! 적을 공격하면 절대 안 돼!”
아이작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뭔지는 몰라도 빤하군.
마족과 직접 싸우면 뒤질 테니, 적당히 깡다구 테스트로 대체한다는 거지, 뭐.
아니나 다를까, 슈리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작을 붙잡았다.
이 빌어먹을 젖먹이는 어디로 튈지 감도 안 잡혔다.
솔직히 시련보다 이놈이 더 무섭다!
“알았지? 절대, 절대! 눈앞에 나타난 게 어떤 모습이든, 공격을 해오든! 아무튼 절대 건들면 안 돼! 무조건 네가 참아! 딱 3분만 참으면 되니까!”
아 자식, 거 되게 귀찮게 하네.
애새끼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아니, 애새끼구나, 참.
“만약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상대를 공격해 버리면! 8계위 마족이 직접 나타나! 그럼 우리 모두 끝장이야!”
음… 마왕한테 8계위 마족이면 귀엽진 않고, 듬직한 번견 수준이지만. 음. 뭐, 그래.
어차피 목적은 해골왕의 육신이니까.
“알았지? 절대 공격하면 안 돼!”
아, 꼬마 놈. 참 집요하네.
“알았다고 대답해! 못 참으면 우리 둘 다 뒤져! 진짜 죽은 사람도 있다고!”
“따야(알았음).”
어린놈이 걱정도 많다.
결국 다짐을 받아낸 슈리가 안도하며 2관의 문을 밀었다.
굳게 닫힌 문이 빛과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곳은 평정심의 관.]
[상대가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어떤 상황이든, 침묵하고 저항하지 말라.]
[참는 것이 미덕이며 차가운 이성이니, 그렇지 못하면 천벌이 떨어지리라.]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내를 고수하면, 좋게 흘러갈 것이다.]
아이작은 그 말만으로 바로 술식의 정체를 알아냈다.
예상대로 환각 계열의 시련인 것이다.
틀림없이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 등, 평정심을 흐릴 만한 상대로 변해서 나오는 거겠지.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1관에서 공포심을 테스트하고, 2관에서 평정심을 테스트한다니.
‘많이들 탈락할 만하네. 애들은 이런 거 못 버틸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애들한테나 통하는 것.
산전수전 다 겪다 못해 뼈다귀가 된 늙은이한테 가짜 따위가 통할 것 같은가?
눈앞에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안에서 사람 인영이 나왔다.
예상대로 뭔가를 보고 겁먹은 슈리가 아이작을 안은 채 이를 악물었다.
“그래. 참아! 저게 뭔 말을 하든 절대로 공격하면 안 돼! 참아…….”
쾅!!!
참으라고 하기 무섭게 상대가 날아가 버렸다.
폭발과 함께…….
사정없이 찢긴 모가지가…….
하늘로…….
[실패로구나.]
“악!! 이 미친놈앍!!!”
슈리의 비명과 함께 빛의 기둥이 검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타난 건 거대한 괴물!
[천벌을 내리겠다.]
“아아악!”
슈리는 눈을 번득이는 괴물을 보며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이 미친놈아! 내가 참으라고 했지!”
그걸 못 버티고 환각의 목을 날려버려?
“너 이 자식, 사람 말귀 알아듣잖아! 너 때문에 8계위 마족한테 뒤지게 생겼잖아!”
그러나 정작 손을 뻗고 있는 아이작은 굉장히 기분이 더러워 보였다.
‘아니, 신 새끼로 둔갑한다고는 안 했잖아.’
아이작의 앞엔 신의 얼굴을 한 모가지가 있었다.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걸로 변해서 평정심을 잃게 하는 시련이라더니.
-머저리 같은 해골왕 놈. 머리에 뇌도 안 든 뼈다귀니까 속지. 우리가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줄 줄 알았나? 하하하!
아오, 시발.
둔갑해도 신들 새끼로 둔갑해?
“너 진짜! 어떻게 3초도 못 견뎌?!”
3초면 개 많이 참아준 거 아냐?!
저놈들 면상을 봤는데?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참을성이 없는 자는 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죽어라.]
쿠구궁!
골렘 형태의 괴물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움직이자 슈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끝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모두가 노리는 해골왕의 육신도, 3관의 귀중한 보물도 전부 키나 베리트가 가져가겠지.
그리고 자신들은 여기서 죽겠…….
쾅!!
…죽겠……?
슈리는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눈앞에 자기 키보다 더 큰 골렘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렘이 산산조각 난 모습으로 쓰러진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8계위 마족은 가모님이랑 할아버지가 아니면 못 쓰러트리는데……!”
심지어 문까지 열렸다!
그러나 정작 골렘을 날린 아이작은 굉장히 불쾌해 보였다.
뭐, 성법을 날리는 척 파괴 주문을 흘려보내 골렘의 마력핵을 파괴한 건 좋았다.
이깟 꼭두각시 따위. 마력핵 위치만 알면 한 방이었으니까.
하지만.
“따야야아(뭐? 8계위이이)?”
장난하냐?
지금 마왕의 번견 무시하냐?
이딴 게 어떻게 8계위 마족인데?
이건 마족이 마법으로 만들어낸 꼭두각시였다.
문제가 있다면 이걸 만든 장본인이지.
‘이거 내 부하의 마법인데.’
해골왕에겐 최측근 마족이 있었다.
<십사육마(十四育魔)>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최강의 마왕, 해골왕이 기른다는 마왕 직속군.
총 열네 명으로 이루어진 최고 마족들이다.
신성 진영이라면 해골왕과 함께 치를 떨고 있을 놈들이었다.
아무튼 이건 그중 한 명의 고유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본인의 능력을 신성 진영에 빌려주고 있을 리는 없고.
‘설마, 여기서 에슈아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열네 명은 한 명 한 명이 마왕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
물론 최강인 이 몸 말고, 옛날의 머저리 마왕들.
그 녀석이 신성 진영에 잡힐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을 텐데.
그럼 제 발로 잡혀와 성직자들의 문지기가 되었다든가?
그런 거라면 더더욱 이유를 모르겠네.
고결한 마왕의 충신이 왜 그딴 굴욕적인 짓을?
‘설마 여기 있다는 내 몸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15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여기서 확인해보면 되니까.
에슈아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거라면 분명 이 보물고 어딘가에 있겠지.
그렇다면 반드시 놈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아이작이 힐끗 열린 문으로 향하려는 때였다.
“하하하! 에슈아 사내놈들이 도움이 될 줄이야!”
“!”
풀숲에서 아이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에슈아라면 관문 통과 방법을 알 줄 알았지!”
“제일 어려운 문지기를 대신 처리해 주다니 고맙다!”
끈질기게 아이작의 뒤를 쫓아온 성자 후보들이었다.
아무래도 줄곧 숨어 있던 모양이었다.
몸이 그을린 꼬락서니를 봐선 아이작의 술수에 겨우 살아남은 놈들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쪽쪽이를 빨았다.
‘대충 20명 정도 남은 건가?’
갑자기 늘어난 어중이떠중이들은 거의 다 앞에서 걸러진 듯하고.
아마 이놈들은 교황청에서 ‘정식’ 성자 후보로 인정받은 놈들.
24인 중 하나겠지.
그 증거로 키나 베리트 정도는 아니지만, 모두 경계할 수준의 힘. 하나같이 교황을 노린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뛰어난 똥 덩어리… 떡잎들이다.
“비켜. 2관은 우리가 먼저 들어갈 거야. 어디 성녀도 아니면서 에슈아 따위가 깝쳐?”
그리고 인성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시네.
그래, 성직자 놈들은 이런 맛이 있어야지.
아이는 국가의 미래라고. 신성 진영 놈들, 굳이 내가 멸망 안 시켜도 알아서 망하겠는데?
그러나 적색 일색인 무리가 슈리를 밀쳤다.
“우리가 괜히 이러는 거 같아? 저 꼬맹이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맞아! 또 먼저 가서 함정을 설치하려는 거지? 설마 그 에슈아가 이렇게 비겁한 짓을 할 줄은 몰랐지만!”
“슈리, 너도 한패지?”
“……!”
슈리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가담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하다못해 저런 악마 놈이랑 한패 취급이라니!
슈리는 억울한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졸린 듯 하품을 했다.
그걸 뭐라고 생각한 건지, 붉은 머리 귀족 남아가 코웃음을 쳤다.
슈리는 그놈이 에슈아처럼 청(靑)의 신앙 소속이 아닌 다른 신앙의 가문이란 걸 안다.
‘선명한 붉은 머리. 분명 적(赤)의 신앙!’
청을 이끄는 에슈아의 상징이 은발이라면, 적을 이끄는 공작가는 타오르는 적발이 상징.
5대 신앙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만큼, 이런 시비는 예상한 일이다.
“애초에 에슈아가 성자를 내보내? 너희, 1계위 성법은 쓸 수 있냐?”
그때 아직 풀숲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그들을 나무랐다.
“직접 보고도 왜 그래! 저 애가 문지기 마족을 처리했잖아! 그 큰 놈을!”
“맞아! 에슈아니까, 저런 어린애조차도 그런 대단한 힘을…….”
“처리는 무슨! 에슈아 사람이면 함정이 절로 해제되게 설치해둔 거지!”
“뭐?”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말을 하려 할 때, 붉은 머리 남아가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거칠게 아이작의 목에서 뭔가를 채갔다. 그가 빼앗아간 건 릴라이가 준 성녀의 반지 목걸이.
“이거! 다른 애들은 다 1회용 축복 걸고 들어왔는데, 얘만 아이템으로 들고 왔잖아. 안 수상해?”
“평범한 걸로 보이는데?”
“맞아. 젖먹이라 스스로 축복을 못 쓰니까 자동 아티팩트로 걸어준 거겠지.”
누가 교황청에서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성자 후보들 아니랄까 봐, 아이템 감정까지 쉽게 하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반응에도 붉은 머리 남아는 수준 떨어진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니들이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세상에 젖먹이한테 축복 하나 달랑 걸어줬다고 이런 사지에 들여보내는 무식한 놈이 어딨냐?”
그 무식한 놈이 내 숙부 놈이다만(?)
하다못해 일가 전부가 애한테 해골왕을 죽이러 가자며 등을 떠미는 몰상식한 놈들이다만(?)
‘뭐, 성녀 가문이면 그럴 만하지. 암.’
열한 살짜리 어린애를 마왕 토벌로 보내는 미친놈들이니까.
하지만 다른 신앙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지, 붉은 머리 남아는 미소를 지었다.
“다 눈치챘다고. 이 반지 자체에 함정 해제가 걸려 있는 거. 그러니까 이 아이가 지나간 곳에선 함정이 발동 안 한 거야. 얘가 정답인 길을 알아서 간 게 아니란 거지. 그 증거로 우리가 같은 길로 따라갔을 땐 폭탄이 터졌잖아?”
응. 애치고는 제법 머리를 굴리는 것 같은데, 핸들을 완전히 잘못 꺾었구나.
잘못 꺾다 못해 아주 벼랑으로 처박고 있어.
“슈리도 그래서 얘를 뒤쫓은 거야. 그림이 이상하다 생각 안 했어? 보통은 나이 많은 쪽이 앞장설 텐데.”
아니? 그냥 끌려간 것뿐인데??
슈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은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린 듯했다.
“그래서 저 아이만 무사했구나! 2관의 마족도 저 아이의 반지 때문에 사라진 거고? 아, 그럼!”
그런 주변의 반응에 붉은 머리 남아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2관 쪽으로 향했다.
“정답. 이것만 있으면 이 앞에 있는 모든 함정을 피해갈 수 있다.”
“와아아!”
“나이저! 천재다!”
나이저라고 불린 붉은 머리 남아는 기세등등하게 2관 안으로 향했다.
아이작에게서 빼앗은 반지를 높이 드는 건 덤이었다.
“자, 성녀의 보물고여! 진정한 성자가 왔다! 어서 존귀한 이 몸을 맞이하러 와라!”
붉은 머리 아이를 선두로 적색 일색의 아이들 열 명이 우르르 따라갔다.
그들이 2관 안으로 들어섰다.
반지가 정답이었는지, 2관의 함정은 조용했다.
아이들은 됐다는 듯 환호했다.
“저기 3관 문이 보여! 바로 앞이야! 저기에 그 해골왕 육신이 있는 거지?”
“그래! 역대 성인들도 가져오지 못한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오는 건, 이 적의 공작가의 삼남! 나이저 세페트다!”
쾅!!!!
“아아악!”
“나이저!”
비명 소리와 함께 2관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함정이었다.
“왜! 이것만 있으면 함정이 발동할 리가 없는ㄷ… 아앍!”
쾅!! 쾅! 쾅!!
엄청난 굉음과 비명을 들은 슈리는 등신들이라는 듯 얼굴을 짚었다.
놈들을 일부러 먼저 보낸 아이작은 코를 후볐다.
역시, 직접 손쓰지 않아도 이 나라는 알아서 망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