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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2화 (32/272)

제32화. 불사왕의 몸 (1)

‘합격?’

합겨억?

순간 사고가 정지된 아이작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간만에 달팽이관이 생겼다고 잘못 들은 건가?

수백 년 만에, 마법이 아니라 청각기관으로 듣는 호사를 누린다고 뇌가 엿 먹이는 건가?

하지만 목소리는 뜻밖에도 굉장히 기뻐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에서 가장 감동한 음성이었다.

[이 중에서 진짜 성자의 자격을 가진 건 젖먹이, 너 하나구나!]

“……?”

[너는 3관에 갈 가치가 있다!]

“……??”

[이 중에서 너만 유일한 합격이야! 세상에. 경사야, 경사로다. 이런 답은 초대 이후로 처음이다! 성자가 나타났어!]

“………??????”

잘못 들은 거 아닌 것 같은데?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다른 아이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그쯤 되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잠깐, 뭐야. 지금 어떻게 된 거야?”

“합격이라니?”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쟤만 합격이라고 한 거야?”

“쟨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기 아니고, 진짜야?”

아이들의 날 선 음성에 목소리는 언제 흥분했냐는 듯 차가워졌다.

[제대로 들었다. 저 애만 3관에 갈 수 있다.]

아이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바로 발끈했다.

“왜요? 분명 우리한테 ‘통과’라고……!!”

발밑에 떠오른 이 빛의 문양이 증거가 아닌가. 통과가 아니면 이건 무엇을 위한 문양이란 말인가!

하지만 목소리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난 너희에게 ‘통과’라고 했지, ‘합격’이라곤 안 했는데.]

“예? 하지만 보내 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래. 하지만 ‘3관’에 보내준단 말은 안 했지.]

“……?!”

[너희가 가게 될 곳은 감옥이다. 그 문양은 지하 감옥으로 보내는 텔레포트 표식이고. 저 아이가 물건을 고를 때까지 거기에 박혀 있어라.]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아이들은 바로 반발했다.

“말도 안 돼! 우리가 왜?”

“이유를 알 수 없네. 도대체 왜요?”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전부 했는데 왜!

결코 납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반응에 목소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정녕 모르겠느냐? 나는 신에 대한 신앙심을 증명하라 했다.]

“예! 그래서 보였잖아요!”

“각자 석상한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헉.”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이던 아이들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와 함께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이었다.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를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난 ‘신’께 숭배드리라고 했지, ‘석상’을 향해 숭배하란 적은 없다.]

“……!!”

신께 숭배하라는 말에 자신을 가장 낮추는 정식 예법을 선보인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본래 신들이 인정한 신전이 아닌 곳에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모두 우상숭배니까.

즉 ‘석상을 향해 신앙심을 증명한 자’들만 3관에 갈 수 있단 말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석상을 향해 무릎을 꿇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정답이다.’

그 증거로 목소리가 무섭게 아이들을 지탄했다.

[너희의 신은 저 석상이냐? 신을 닮기만 하면 다 신이냐?]

아이들 사이에서 억울함과 울상 섞인 목소리가 들릴 만도 했다.

“하, 하지만…! 3관에 가려면… 그리하라고.”

[네놈들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신이 아닌 자에게도 무릎을 꿇을 놈들이구나.]

“……!!”

모든 성직자들이 그러하다만, 성녀와 성자는 특히나 그랬다. 본인의 신이 아닌 자에게 절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는 만큼, 우상숭배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금기.

[저 아이를 보아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자신의 뚝심을 지키지 않았느냐. 저렇게 어리고 작은 몸으로도 진정한 신앙심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불찰이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교황청에서도 매번 반복해서 배우는 부분이기에 몰랐다고 할 수도 없다.

정녕 성자를 노리는 자들이라면 석상 앞에서 본인의 신념을 지켜야만 했다.

그게 신성 진영을 대표하는 인도자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사하게 왜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냐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

지금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몇몇은 정곡이라는 듯,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쯧, 성자 후보 대다수가 귀족 출신이라기에 세속적인 놈들이 많을 건 알았다만. 국가 휘장의 하얀 용이 울겠군.]

목소리는 굉장히 불쾌해 보였다.

[이걸 기망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다. 성자와 성녀는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이끌며 신에게 힘을 보내는 존재. 그 때문에 마족들은 온갖 수를 써서 성녀와 성자를 꾀어내려 혈안이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신이나 그 사자의 모습으로 변해서 꾀어내는 일도 흔하다. 해골왕 정도의 최고 마왕이면 더더욱 쉽게 신으로 변신하지.]

아닌데? 그딴 새끼들로는 변신 안 하는데?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얼마나 효율성 떨어지는 짓인데?

지들은 마력이 남아도는 금수저라고 자랑질하는 거냐? 어?

[그러니 이득과 협박에 넘어가지 않도록 테스트를 한 것뿐. 앞 관에서 그리 힌트를 줬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수준 미달이군.]

말 한번 더럽게 거추장스럽게 하네.

그냥 애들 상대로 말장난 사기 친 거잖아, 새끼야.

[하여 테스트에서 유일하게 통과한 게 저 아이다. 저 아이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상의 대상까지 파괴하려고 했다. 저런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건지. 그러니 저 똑똑하고 뛰어난 젖먹이만 3관에 보낸다.]

응, 우리 드래곤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 진리지. 사기는 무슨.

[그리고 이 일은 세상에 공표하겠다.]

“!!”

아이들은 얼어붙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우리의 순위가…….’

아이작은 푸헤헤헤 웃었다.

뭐, 실제로는 신을 닮은 것들한테도 고개를 숙이기 싫었던 것뿐이지만, 문지기가 좋다는데, 뭐!

의도야 어쨌든 면접관만 좋게 받아들였으면 땡 아닌가?

이제 라이벌 걱정 없이 느긋하게 내 몸을…….

“이의 있습니다만.”

가져갈 수 있을 리 없구나.

아이작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예상했듯 키나 베리트였다.

‘그래, 교황가가 포기할 리가 없지.’

능력이 되는 놈이 이렇게 어이없게 실격당한다고?

납득할 리가 없다.

실제로 키나 베리트는 무섭게 석상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호오. 이 배타적인 기운에 특유의 고집불통 눈매. 베리트인가.]

목소리에서 묘한 노기가 느껴졌지만, 키나 베리트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저 아이는 젖먹이입니다. 정말 신념이 있어서 무릎을 꿇지 않은 건지,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아가 담긴 행동이 아니라, 그냥 신체적으로 반사적인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인들이 나오는 성녀 가문이라 해도, 신념을 따지기엔 너무 어렸다.

“저 아이에게 그만한 신앙심이 있었으면, 애초에 성흔이 없을 수가 없겠죠.”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잠시 키나가 하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야 했다.

그만큼 키나가 하는 말은 굉장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쟤 성흔이 없어?”

“뭐? 성자 후보가 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인들의 옷가지를 젖혔다.

손목, 발목, 허리, 목. 위치도 크기도 다양하지만 모두의 몸에는 표식이 있었다.

신이 상처를 낸 듯한 성스러운 문양이.

그리고 옷을 까본 것도 아닌데, 남의 집 자식이 성흔의 유무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싶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교황가라서 알았겠구만.’

싹퉁바가지 숙부가 그러지 않았던가.

슈리도 성흔이 나오자마자 교황청에 확인을 받으러 갔다고.

교황청은 사실상 교황가가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당연히 소식이 전달되겠지.

누가 성흔을 가지고, 어느 위치에 어떤 등급의 성흔을 가지고 있는지.

그 증거로 키나 베리트는 이를 갈았다.

‘여기까지 하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지.’

꼬투리를 잡는 행동 같아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는 게 더 중하다.

이대로 실격당하면 이곳에 자신을 보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교황 가문의 위신이 떨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오히려 짐작했다는 듯이 웃었다.

[젖먹이에겐 성흔이 안 나올 수도 있단다.]

“저는 나왔는데요.”

키나의 사자 같은 황금색 눈이 번득였다.

목소리는 같잖다는 듯 웃었다.

[그게 네가 잘해서 나온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할 텐데.]

“예?”

[다른 놈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냐?]

몇몇 아이들이 바로 나섰다.

“당연하죠! 우리가 성흔도 없는 젖먹이한테 밀릴 리가 없잖아요!”

“납득할 수 없어요!”

[뭐, 좋다. 납득할 수 없다고 하니 할 수 없지. 전원 3관에 보내주마.]

그 말에 키나 베리트와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됐다! 성공했어!

키나 베리트의 똘마니들이 으스대며 외쳤다.

“야, 니들! 잘 기억해! 누가 너희들을 3관으로 보내준 건지!”

“그래, 키나 님이…….”

[스스로 불나방 머저리처럼 죽으러 가고 싶다니 꼭 보내줘야지.]

…엥?

노골적으로 비웃는 목소리에 아이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웅!

갑자기 바닥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아이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커헉……!!”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끔찍한 마기가 한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오고 있는 곳은 3관의 문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전혀 이상이 없었는데.

지금까지는 문의 틈새까지 꽉 막는 봉인이 걸려 있었던 걸까.

문을 열기는커녕, 틈새의 봉인만 아주 살짝 풀었음에도 소름 돋는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작 그뿐인데도 아이들은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울음? 아니 그딴 건 사치일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고 사실 이쯤 되면 이 살 떨리는 마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다.

[정녕 모르겠느냐? 저 안에는 해골왕의 육신이 있다.]

“……!!”

[굳이 이런 신앙심 테스트를 한 건, 3관에 들어가면 네까짓 것들은 전원 해골왕의 육신 때문에 죽기 때문이지. 멍청하고 분수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

“……!!”

아이들은 질식할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3관은 해골왕의 육신 때문에 이미 마계화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너희가 그 해골왕의 육신을 들고나오겠다고? 기본적인 가르침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머저리들이?]

고만해라, 애들 바지에 지리겠다.

아이작은 혀를 차는 척을 했지만 눈은 푸후후후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기운, 저 힘!

틀림없는 자신의 몸!

자신의 몸을 이렇게 잘 모셔놓고 있었다니!

고마운 성직자 놈들!

그런 아이작의 반응에 목소리는 저것 보라는 듯 몹시 흥분했다.

[보아라! 신앙심을 증명한 저 아이는 저렇게 의연하지 않느냐! 이러고도 차이를 모르겠느냐?]

아이들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러나 같이 고개를 돌린 그들은 다른 의미로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따얅핰(기다려라, 귀여운 내 몸아).”

의연……?

의연이라고?

“쓰읍햐얅.”

저거 아무리 봐도 입맛 다시고 있는 건데?

“햐햫햐햐햨아앜(핰핰,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아무리 봐도 군침 흘리고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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