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3화 (33/272)

제33화. 불사왕의 몸 (2)

사실 아이작도 모른다.

‘내 몸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게 뭐냐.’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의 기억에서 해골왕의 육신?

신계에서 엿 되어보라고 자폭한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뭐, 엿 돼보라는 심정으로 부딪치긴 했으니, 피해가 없진 않겠지.

어쨌든 화려한 불꽃놀이로 해골왕 최후의 대미를 장식했으니,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몸이었다.

설령 운 좋게 몸의 잔해가 남아 있다 한들, 방치된 세월이 세월인 만큼 전성기 때의 힘을 뽑아먹진 못하리라.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보물고에 들어온 것이었는데…….

‘개새끼들. 보관 X나 잘해놨네!’

아이작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좋다. 너무 좋아서 도저히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딸따얅햐핰(마력의 손실도가 거의 없어)!!”

저 순도! 저 마력!

물론 성장한다면야 현재의 몸이 저런 해골보다 월등하게 강해지겠지.

하지만 저만한 물건이 앞에 있다?

저건 이미 단순한 특식이나 일반적인 영단의 수준이 아니었다.

최하급 슬라임도 단숨에 상급 마물이 될 수 있을 만한 최고급 보물!

그걸 이 몸이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최고다!

젠장, 빌어먹게 좋ㄷ…….

그러나 그때.

입꼬리를 내리지 못하는 아이작이 아이들의 눈과 마주쳤다.

“…….”

아이작을 보는 아이들의 눈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아이작을 몬스터나 악마로 보는 듯했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에 아이작은 크흠 입가를 닦았다.

‘젠장, 너무 좋아하는 거 티 냈네.’

인간의 몸을 얻게 되고 난 후엔 이게 문제였다.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는군.’

수백 년을 신경과 근육 없는 해골로 살았더니, 자꾸만 표정에서 실수를 한다.

해골일 땐 감정조차 못 느꼈으니까.

연습하지 않으면 자칫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웃게 될 수도 있다.

‘교황 앞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겠군.’

그러나 정작 드래곤은 몹시 흡족해했다.

[자, 보아라! 저 얼마나 용감한 전사의 표정이냐! 이런 두려운 힘 앞에서도 웃음으로 화답하는 모습!]

아이들의 눈은 여전히 떨렸다.

‘…전사?’

변태를 잘못 말한 게 아니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다.]

웃음 참기를 시도하자, 아이작은 데굴데굴 좋아서 굴러댔다.

[그래! 그렇지! 저거다! 진정한 강인함이란 바로 저런 것이지!]

“푸헿따야야!”

…그냥 미친 아이 아닐까?

그러나 목소리는 이제 분수를 알겠냐는 듯 말했다.

[아무튼 지금이라도 주제 파악이 되었다면 특별히 3관이 아니라, 2관의 보물을 고르게 해주지. 이곳의 보물도 충분히 좋은 물건이다.]

그러자 아이들의 얼굴이 활짝 폈다.

죽을 것이 빤한 3관보다 2관에서 보물을 골라 가는 게 성자의 자리를 위해선 차라리 이득.

‘저렇게 마기가 넘치는데, 3관에서 뭘 들고 오는 게 가능할 것 같아?’

‘2관에서 제일 좋은 걸 가져가면 유력한 성자 후보로 평가받겠지.’

그럼 그 보물로 승승장구하여 성자가 되는 건 자신들…….

“아뇨. 보물은 필요 없습니다.”

“?!”

뭐, 인마?!

아이들은 키나 베리트를 미쳤냐는 듯 보았다.

하지만 키나 베리트는 미소를 지었다.

“전원 3관에 갈 겁니다. 그리고 3관의 모든 함정을 발동해 주세요.”

“야?!”

저게 미쳤나!

지금 이 보물고에서 허탕을 치려고 작정을 했나!

그러나 키나는 그 속셈이 보인다는 듯 콧대를 높였다.

‘내가 온 목적은 성자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도 진짜 성자가 누군지 알려주고 오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해골왕의 육신은 역대 성인들도 못 가져온 물건이라죠. 그 천재였다는 성녀 멜리사 경도 불가능했다고요.”

데굴데굴 구르던 아이작이 우뚝 멈췄다.

엥, 그 녀석이 왜 못 가져왔는데?

아무리 그래도 성녀 정도면 가져올 수 있을 텐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아무튼 3관의 안전장치를 모두 풀어주세요.”

쟤 진짜 왜 저래?!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호오, 3관에 대해 알고 있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죠. 아무리 그래도 그 인자한 멜리사 성녀님이 아이들을 죽일 리도 없으니까요. 당신이란 보험이 있는 거겠죠. 당신도 저 젖먹이를 들여보내려 했었고.”

인자? 누가?

그깟 지갑 좀 훔쳐갔다고 마왕의 머리를 백반 가루로 빻으려고 했던 놈이?

“나중에 안전장치가 있어서 보물을 쉽게 가져왔단 말은 듣긴 싫으니까요. 원초 상태 그대로 놔주세요. 그래야 성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거든요.”

목소리는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당연히 네가 가져갈 거라 생각하는구나?]

“저는 가능하니까요.”

키나 베리트는 아이작을 힐끗 보았다.

압도적인 쟁취로 격의 차이를 보여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격의 차이를 보여줄 목격자가 있어야지.

“전원 3관에 갑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다. 뭐, 확실히 그편이 성자가 누군지 판별하긴 더 쉽겠구나.]

아이들은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가려면 너 혼자 가라고! 우린 남는 보물이면 된다고!

그렇게 소리치려는 순간, 아이작을 포함한 전원의 시야가 바뀌었다.

번쩍!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그들이 떨어진 곳은 넓은 홀.

곳곳에 돈 주고 살 수 없는 보물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눈이 돌아갔지만, 그들은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우욱……!”

틈새로 느꼈던 마기는 우스운 수준이었던 걸까.

“저, 저건……!”

모두의 시선이 쏠린 건 한 곳이었다.

[주인님! 보십시오!! 주인님의 옥체가! 옥체가앍!]

오냐, 잘 보이신다.

아이작은 보물고의 중앙에 있는 낮은 기둥을 보았다.

이곳의 보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쌩쌩한 물건이었다.

‘손뼈인가.’

신의 모가지를 조를 듯 하늘을 향해 쫙 벌린 손.

얼핏 보기엔 손목이 통으로 잘려 기둥에 꽂혀 있는 모습이었지만, 아이작은 안다.

‘다른 부분은 모형이고, 진짜 부분은 엄지군.’

게다가 역시 내 몸 새끼!

관리도 관리지만 저거 아주 이 3관에서 힘을 쪽쪽 빨아 먹고 있었네!

‘저걸 회수하면 다른 보물의 힘도 몸에 들어오겠군?’

당분간 부피 큰 다른 보물을 안 가져가도 될 정도로 말이다.

역시 자신을 뒤쫓아오는 장로와 원로를 섀도우 리치로 가둬버린 보람이 있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작은 부위란 것 정도? 부위가 클수록 마력 농도가 더 진한데.

‘아니지. 젖먹이가 먹기엔 오히려 적당한가?’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좋은 약이라도 아직 어린 몸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성장하기 전까진 저 작아빠진 무말랭이 같은 걸로 참아야지.

그러나 아이들은 오히려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아 떨고 있었다.

“…전체도 아니고, 저렇게 작은 게 이만한 마기를 뿜어내는 거야?”

고작 손가락뼈 하나로?

괜히 마왕 중에서 최강이고 최악이라고 불리던 해골왕이 아닌 건가.

지금껏 교황청에서 봐온 상급 마족의 토템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저걸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그래도 저것만 가져가면……!”

‘성자!’

‘교황!’

그렇게 아이들이 용기를 내어 다가가려는 그 순간.

쿵!

“아악!”

육신의 근처에서 돌연 검은 오라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성자로 길러지고 있는 엘리트 아이들.

살아 움직이는 그 오라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다.

“마족!”

틀림없었다.

검은 오라는 점점 생물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그걸 본 아이작은 낯이 익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놈은?’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다.

“마족은 2관 문지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냐고!”

그러자 3관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가 그러지 않았느냐. 3관의 모든 안전장치를 풀어달라고. 그래야 성녀보다 뛰어남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우리는 말 안 했는데!

아니 그 전에, 그 ‘안전장치’라는 게 설마 마족을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였던 건가?

상급 마족이 해골왕의 육신을 지키고 있는 거였어?!

아니나 다를까, 마족의 팔과 다리를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이 덜컥덜컥 풀렸다.

끼긱거리는 목. 증오와 악에 북받친 목소리가 아이들을 위협했다.

[감히 왕의 몸을 노리다니.]

아니 안 노렸는데요! 노린 건 키나인데요!

동시에 3관의 목소리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어디 한번 잘 가져가 봐라.]

이 미친놈아!

눈물범벅이 된 아이들은 모두 키나 베리트를 노려보았다.

“이게 전부 너 때문이잖아!”

“저런 걸 어떻게 가져간다고!”

그러나 키나 베리트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나만 믿어. 내가 너희 전부 보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해줄 테니.”

“!”

아이작을 보는 키나 베리트는 의기양양했다.

그는 이미 저 마족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건 교황가가 붙잡은 마족이었으니까!

‘십사육마. 해골왕이 길렀던 최측근의 부하들.’

해골왕의 육신을 지키게 해주는 대신, 신성 진영의 개가 된 놈.

하지만 그 유명한 십사육마(十四育魔) 중 하나라고 해봐야 저건 구속당한 망령체였다. 무서울 리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황가가 잡아서 감옥 대신 성녀의 보물고에 처박아둔 만큼, 저건 교황가 구속 아래에 있는 녀석.

상극의 신앙인 성녀가 당연히 가져오지 못할 만도 하지.

하지만 교황가인 키나는 놈을 상대할 성법을 알아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 있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었다.

훌륭하게 마족을 굴복시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보물까지 가져온다.

자신은 이 나라의 모든 걸 물려받을 교황의 손자였으니까.

성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증명의 장이 아닌가!

키나 베리트는 마족을 노려보았다.

금색 눈에 강력한 성력을 담아서.

“꿇어!”

쩌엉!

쇠가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키나 베리트와 눈이 마주친 마족은 움찔했다.

본래 최고 성직자일수록 눈빛만으로 마족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했다.

교황쯤 되면 눈짓 하나로 마족을 도망가게 할 수 있다.

성자라면 당연히 해내야 하는 덕목.

아니나 다를까. 마족이 움직임을 멈추자, 키나는 미소를 지었다.

‘됐다. 증명에 성공…….’

그러나 눈이 마주친 순간, 키나는 숨이 턱 막혔다.

[너냐?]

“?!”

끼긱거리는 마족의 눈이 살벌했다.

이깟 성력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네가 왕의 몸을 노리는 자냐?]

키나 베리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뭐지?

왜 금의 술법이 안 먹히지?

뭔데 이런… 아니, 설마 내가 지금 무섭다고 느낀 거야?

이깟 망령 따위한테?

해골왕이 기른 십사육마가 이 정도였나?

아니,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제어를 벗어났어!’

자극을 받은 마족이 마기를 뿜어냈다.

마족은 보물고에 들어온 아이들 전원을 죽이려고 했다.

“아악! 살려ㅈ…….”

그 비명과 함께 아이들의 상하좌우로 단단한 빛의 벽이 생겨났다.

쾅!

방어 성법. 마치 빛의 감옥 같았다.

그리고 그걸 누가 썼는지 확인하는 그때.

“저, 저 아이!”

성법을 쓴 아이작이 해골왕의 육신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네발로 혼자 나아가는 그 모습이 용감하기까지 하다.

“설마 우리한테만 방어 결계를 걸어준 거야?!”

“본인이 미끼가 되려고?”

아니. 내 거 넘보지 말라고 가둔 거야.

아이작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똑같진 않지만, 일전에 에슈아의 기사단장이 써줬던 방어 결계를 기억하길 잘했다.

“따따따따따(새끼야, 비켜! 저건 내 거야)!”

곧 아이작이 두두두두 해골왕의 육신 쪽으로 향하자 마족이 눈을 번득였다.

감히 성직자 따위가 위대한 해골왕의 몸을 노리냐는 것이었다.

사나운 마기가 아이작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팡!

아이작이 마기를 쳐냈다.

마기가 튕겨져 나오자 마족은 굉장히 화가 난 듯했다.

[……!]

왜 안 붙잡히냐는 듯한 반응.

그러나 아이작은 감히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는 듯 핏대를 세웠다.

“뜌땨야얅(이 새끼가 지금 주인도 못 알아보냐)!!”

뺨을 때릴 듯 아이작이 한 손을 들었다.

동시에 빛의 섬광이 뿜어져 나갔다.

쾅!!

* * *

보물고 밖은 이미 충격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지금 3관의 마족 봉인이 풀렸다고 하셨습니까?”

솔직히 어른들은 아이들 대부분이 2관에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3관의 보물을 기대했지만, 애초에 성녀들의 돌잡이 때도 3관에 들어간 아이들은 흔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3관에 들어간 것으로도 모자라, 해골왕의 육신을 지키고 있을 마족의 구속구까지 풀리다니?

그게 왜 풀렸지?

이야기를 듣는 릴라이는 어지러워졌다.

2관의 마족은 3관 마족의 꼭두각시.

설령 무슨 일이 생겨도 반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3관의 마족은 절대 안 된다.

‘아이작, 슈리!’

둘 다 위험하다.

아니 이대로면 보물고 안에 있는 모두가 위험했다. 풀려난 마족은 보물고 전체에서 성직자들을 사냥하고 다닐 것이다.

“감독관으로 가신 장로님과 원로님은?”

릴라이의 말에 에슈아 기사들은 땀을 흘렸다.

“그게, 왜 켜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보물고의 함정이 켜져서 그걸 끄러 가셨는데 그사이 행방불명되신 거 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니면 배제하는 장소이다 보니…….”

어른들 모두가 술렁거렸다.

“그럼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닙니까?”

“아직 그 아이들로는 감당이 될 리가……!”

“당장 중지해서 데려와야 해요!”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보물고 쪽에서 거대한 빛이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