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불사왕의 몸 (3)
굉장히 강한 빛이었다.
‘도대체 저 빛은……!’
지금껏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돌잡이가 치러졌던 보물고였다.
그중에는 불세출의 천재도 있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일에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에슈아 사람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다르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빛!’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더 놀랄 만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세, 세상에! 마족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뭣이? 해골왕의 육신을 지키는 그 십사육마 말이냐?”
“예! 마기 때문에 연결이 방해되어서 자세히 볼 순 없지만…! 안에 있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처리한 것 같습니다!”
뭐가 어째?
어른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성녀의 보물고에 있는 마족은 신성 진영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했다.
정확한 건 몰라도 8계위 이상의 위험한 상급 마족이라고.
그놈의 봉인이 풀린 이상 당장 돌잡이를 중단하고 구하러 가야 한다고 했건만.
그걸 아이들 중 누가 퇴치해?
아니, 굳이 누구냐고 물을 것도 없다.
누구겠는가!
어른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을 향했다.
‘키나 베리트구나.’
시선을 받는 베리트 추기경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초에 그 아이 말고는 거기서 그 마족을 쫓아낼 만한 인재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마족을 물리친 아이가 해골왕 육신을 얻어낸 것 같습니다!”
“오오! 해골왕 육신은 숱한 영웅들도 다가가기 힘들어한 물건이 아닙니까.”
“그만한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니!”
“역시 교황 성하의 핏줄인가!”
“축하드립니다, 각하. 기쁘시겠습니다.”
“아이들을 구하고 해골왕의 육신까지! 키나 공자는 인품에 실력에 명예까지, 모자란 게 무엇입니까.”
“역시 교황의 자리는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니죠.”
귀족들이 감탄하듯 추기경을 보자 추기경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맞은편 자리.
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에슈아의 자리였다.
그것도 릴라이와 눈이 마주쳤다.
‘에슈아, 너희가 뭘 원하는지 잘 안다.’
해골왕의 육신을 원하겠지.
그래서 조건까지 내걸면서 가지고 나오게 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걸 가지게 된 건 결국 에슈아 꼬마가 아니라 교황가다.
‘이제 그걸 얻으려면 우리한테 굽히고 들어올 수밖에 없지.’
주제도 모르고 교황가의 권위에 덤벼드는 청의 신앙.
고고한 척하는 성녀 가문이 언제까지 꼿꼿하게 턱을 치켜들 수 있을까?
교황가 파벌의 귀족들은 에슈아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베리트 추기경에게 붙었다.
“비록 돌잡이는 에슈아가 주최했지만, 이 보물고는 신이 내린 보물고가 아닙니까.”
“결과가 곧 신의 뜻이죠. 성자는 이미 증명된 듯합니다만.”
베리트 추기경은 릴라이를 바라보며 깍지를 끼며 조소를 지었다.
“그렇군. 참으로 좋은 증명의 시간이었던 것 같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릴라이의 친구인 시몬은 뒷목을 잡았다.
“릴라이, 들었냐? 야! 들었냐고!”
“그래, 들었어.”
“‘참으로 좋은 증명’ 같은! 개소리 하네! 와, 진짜 재수 없어. 와! 교황가는 저 표정이 패시브인가? 솔직히 치사한 거 아니냐? 교황한테 일대일로 교육받는 애를 어떻게 이긴다고!”
“시몬, 신의 사자로서 해골왕의 육신은 누가 가져오든 좋은 게 좋은 거야. 저거 봐, 장로님과 원로님들도 다들 기뻐서 포효하고 계시잖아.”
“끄아앍! 베리트!!”
“으아아앍!”
…넌 저게 기쁨의 포효로 보이냐?
다들 교황가에 굽신거리면서 육신을 받아올 생각에 초상집 분위기다만?
“그건 내가 꿇으면 될 일이니 다른 분들은 꿇을 일 없어.”
릴라이가 신경 쓰는 건 오히려 그쪽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보물고의 문 앞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거기엔 기존에 탈락한 아이들이 훌쩍이며 치료받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직까지 아이작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에슈아 사람들은 좀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직까지 안 나오는 거 보면, 슈리가 해내고 있는 거 아니냐?”
“예. 그래도 형이라고 지 사촌 동생을 잘 지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해골왕의 육신은 애초에 기대도 안 하니, 제발 3관에 있는 7대 성녀님의 성갑이나 18대 성녀님의 건틀릿만이라도……!”
“맞다! 하다못해 그나마 최근인 79대 성녀님의 목걸이만이라도!”
에슈아 원로들의 기우제에 릴라이는 깍지를 꽉 쥐었다.
‘아이작, 그딴 보물은 필요 없으니까 제발 건강하게만 나와다오.’
그 치열한 신경전에 가신들이 황제에게 말했다.
“교황가가 역시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기껏 황제가 이곳까지 왔는데, 교황가가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고 가게 될 줄이야.
그 광경을 보는 릴라이 역시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교황가에겐 명예와 부, 모두 다 챙겨간 자리가 됐다.
시몬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이 좋진 않은 게 사실이다.
원래도 수백 년간 적대 가문이었으나, 최근엔 아이작의 부모 문제로 교황가에서 얼마나 자신들을 괴롭혔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오! 마지막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슈리다!”
“!”
그 이름에 릴라이의 고개가 자석처럼 훽 돌아갔다.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인원수와 얼굴을 보건대 분명 3관에 들어갔다는 아이들이다!
릴라이는 급히 누군가를 찾았다.
하나, 둘, 셋, 넷… 열!
아이들이 거의 다 나오고 있는데도 아이작! 어린 조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급히 조카에게 달려갔다.
“슈리!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아이작은?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
숙부의 걱정 어린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슈리는 어째서인지 땀만 삐질 흘렸다.
“그, 그게요, 숙부님.”
뭐지?
이건 무슨 반응이지?
왜 전원 다 나왔는데, 아이작만 나오지 않은 거지?
도대체 왜?
“아이들이 3관에서 보물을 들고 나왔어요! 보물고에 들어간 아이들 중 유일해요!”
“오오!”
“지금 당장 보물부터 확인하죠!”
한 줄로 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다가갔다.
모두의 동경 어린 시선은 당연하게도 키나 베리트에게 향해 있었다.
이미 축제의 영웅과 주인공은 그였다.
베리트 추기경도 흐뭇한 얼굴로 아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들을 본 추기경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키나. 해골왕의 육신은 어디에 있느냐?”
“그.”
“손에 든 물건은 뭐고?”
누가 봐도 잡템이라고 할 만한 낡은 브로치가 키나의 손에 들려 있다.
“누가 이딴 걸 들고 오랬느냐?”
키나 베리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키나?”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띌 젖먹이는 어디에…….
그리고 그 순간.
“세상에, 저기!”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보물고의 문 위로 빛이 쏟아졌다.
번쩍!
모두를 내려보는 위치에 은색의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늑대가 물고 있는 고기 뭉치가…….
“아이작?!”
“아이작 도련님!”
젖먹이가 따야따야 편안한 자세로 뭔가를 빨고 있다.
아이작의 유모 아실리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작 도련님을 물고 있는 저것, 드래곤 아닙니까?”
“……!”
맞다!
저건 보물고를 지키고 있는 어린 수호룡……!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릴라이. 아이작이… 뭔가를 빨고 있는데, 저게 무엇이냐?”
“뭐긴요. 뼈다귀입니다.”
“그래. 뼈다귀구나.”
“예. 뼈다…….”
뼈다귀?!
에슈아 사람들은 모두 새하얗게 질렸고, 그곳에 있는 모두가 제 눈을 의심했다.
저 마력도 그렇고, 보물고에 있을 뼈다귀는 그것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설마 해골왕의 육신?’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거 빨아도 되는 겁니까?!”
“저게 해골왕의 육신일 리 없잖아요! 들어갔다 죽은 도둑의 것이겠죠!”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귀족들은 술렁거리며 추기경을 보았다.
베리트 추기경은 싸늘한 얼굴로 눈알만 굴려 키나 베리트를 보았다.
“키나. 네가 해골왕의 육신을 저 아이에게 준 것이냐? 그리고 그 잡스러운 물건을 들고 온 거고?”
목소리가 금속처럼 차갑다.
“그, 그게…….”
“폐하를 의식한 거냐? ‘성자’라면 주최 측의 명예를 생각한 연출도 나쁘진 않으나, 썩 머리가 좋아 보이는 방안은 아닌 듯하구나.”
추기경이 진상을 알리려는 듯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연출? 넌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앉았냐?]
“!”
목소리를 낸 건 아이작을 물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은색 늑대로 변해 있는 어린 드래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해골왕의 육신을 가지고 나온 건 이 아이다.]
“…예?”
[아씨, 그러니까 십사육마 마족을 퇴치하고, 해골왕의 육신을 얻고. 다른 아이들에게 보물까지 얹어준 건 전부 이 아이라고. 새끼야!]
뭐?
“뭐라고요!”
놀란 건 다른 이들이었다.
“에슈아의 젖먹이가 그걸 했다고?”
믿지 않기엔 상대는 드래곤이다. 신성드래곤과 연이 깊은 에슈아의 가모가 보물고에 불러들인 어린 드래곤이었다.
무슨 연유로 그 귀한 헤츨링이 보물고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아무리 어려도 인간보다 마법에 뛰어난 드래곤이 상황을 잘못 볼 리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놀라는 상황에서도 릴라이만큼은 드래곤에게 지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십사육마의 봉인을 풀어버린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감당할 마족이 아니란 걸 알 텐데……!”
[왜 나한테 그러지. 베리트가의 아이가 봉인을 풀어달라고 했는데.]
“!”
귀족들은 기겁해서 키나 쪽을 보았다.
시선을 받은 베리트 추기경은 실소를 흘렸다.
“어린 드래곤이여, 거짓말하지 마라. 너희가 성녀 가문과 연이 깊은 걸 모를 것 같은가.”
그러나 바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에요! 키나가 3관의 모든 함정을 발동해 달랬어요!”
“맞아! 우린 안 가겠다고 했는데, 억지로 3관에 끌고 갔어!”
“쟤 때문에 우리 다 마족한테 죽을 뻔했어요!”
3관에서 나온 아이들의 부모들은 경악해서 베리트 추기경을 보았다.
‘지금 교황가가 제정신인가?’
‘마족의 봉인을 풀라고 했다고?’
곧 화가 난 귀족들이 추기경에게 향했다.
동시에 그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귀족들은 오히려 다른 의미로 놀라워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키나가 푼 마족을 에슈아의 아이가 처리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설마 그 에슈아의 사내아이가 교황가의 아이를 이기다니……!’
‘이 사실이 오늘 참석 안 한 이들한테까지 전해지면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귀족들의 떨리는 시선이 에슈아에 쏠렸지만, 정작 에슈아 가문은 그딴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다름 아닌 아이작 때문이었다.
“자, 아이작! 착하지! 쪽쪽이 여깄네! 그건 지지란다! 지지! 이거 놓자꾸나!!”
응, 안 놔, 새끼들아!
쪽쪽쪽쪽쪽!
해골왕의 엄지를 사탕 빨듯 빠는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달았다.
간만에 맛보는 질 좋은 마력은 몹시 최고였다!
‘캬, 생존 기원 때문인가. 빨아 먹으니까 흡수가 바로 되네.’
원래는 이만한 마력을 다 흡수하려면 짧아도 100년은 폐관 수련을 하며 흡수해야 했다.
하지만 먹는 걸로는 즉각 흡수!
아이작은 점점 줄어드는 해골왕의 뼈를 신나게 빨아댔다.
쪽쪽쪽쪽쪽!
그리고 그걸 빼앗으려는 실랑이가 계속되던 그때.
“오, 오오오! 역시 아이작이 해냈구나!”
“원로님!”
보물고에서 행방불명되었다는 장로와 원로가 거지 몰골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어디에……!”
“마족의 이상한 함정에 걸려가지고, 찢어 죽이려고 했더니 갑자기 사라졌더구나. 망할! 어디로 갔는지!”
뭐, 섀도우 리치에게 잡고 풀어주라고 지시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아이작은 계속해서 뼈를 물고 빨았다.
춉춉춉춉춉!
그들은 뼈를 빨아대는 아이작을 보며 자기 일처럼 몹시 기뻐했다.
“베리트가 아닌 이 아이가 가져오다니!”
“그래, 그래! 이거면 가모님도 몹시 기뻐할 것이다. 아니 에슈아 모두가 기뻐할 일이야!”
응, 그래. 계속 기뻐하렴.
니들이 기뻐할 동안 난 이걸로 힘을 키워서 이 가문과 나라를 빼앗을 거지롱.
하지만 릴라이는 원로에게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빼앗아 보라는 듯, 뼈를 잡아당겼다.
“예, 어머니도 숙원이 풀리겠다며 기뻐하시겠죠! 이거면 드디어 놈도 추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좀 도와주시죠!”
순간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음. 추적이라니?
뭘?
「생존」 기원을 가진 능력자는 본능적으로 등골이 싸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멜리사는 왜 남의 육신을 가져오라고 한 건데?
심지어 말도 안 되는 큰 보상을 걸 정도로?
왜지?
그 녀석, 변태인가? 시체 성애자였어?
“해골왕의 육신만 있으면 추적 술법을 걸어서 해골왕의 영혼을 추적할 수 있다더구나.”
아하, 그렇구나.
육신만 있으면 해골왕의 영혼을 추적할 수 있… 시발, 뭐라고?!
[허이고, 저놈들 말대로라면 주인님 위치가 뜨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솔직히 성자 몸이고, 종족이 달라서 발동 안 할 확률도 있겠죠.]
그러나 아이작의 귀에는 이미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150년 동안 어디에 숨었길래 찾을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혼 추적이면 해골왕도 찾을 수 있겠지.”
뭔 추적이야, 시체 모독이야!!
“멜리사 가모님이 오시기만 하면 바로입니다. 그러니 아이작! 그걸 어서 다오! 쪽쪽이는 이걸로 하자. 드디어! 해골왕을 찾아내 죽일 수 있는 기회다!”
아니 시벌!! 150년이나 못 찾았으면 포기해라, 좀!!
“자, 아이작! 해골왕의 위치를 파악하게 어서 이리 다오! 해골왕의 육신은 이제 세상에 그것밖에 없단다! 위치 추적 걸자!”
아니! 위치 추적 걸 필요 없다고!
해골왕, 이미 니들 눈앞에 있다고!
시발, 이 변태 새끼들, 다 눈 돌아갔어!
“아가, 하나 남은 거라 정말 귀한 거란다! 망가지지 않게 이리 주렴!”
곧 릴라이도 한숨을 쉬며 아이작을 높이 들었다.
“자! 아이작! 애초에 그건 너무 강력하고 위험한 물건이다!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니 어서…….”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꿀꺽!
“…어?”
순간 에슈아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아이작이, 해골왕의 뼈를 입에 넣고 꿀꺽…….
…꿀꺽?!
어, 어어? 어어어?
“꺼얽.”
“아아악!”
그건 먹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