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5화 (35/272)

제35화. 마땅히 해야지? (1)

‘해골왕을 처리하는 것.’

그것만이 에슈아의 사명이었고 에슈아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적어도 해골왕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에슈아는 신앙심이 부족하여 해골왕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가문.

해골왕에게도 저주를 받았다 하고.

어쩌면 신에게도 외면받은 채 쇠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가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빛!

‘해골왕의 육신!’

발견되자마자 모든 나라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아니 인간뿐이 아니다.

마물이면 마물, 드래곤이면 드래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려들었다. 해골왕의 몸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마도제국에서는 그깟 작은 뼛조각에 나라 몇 개를 통으로 넘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까지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성녀의 손에 들어갔지만 말이다. 해골왕의 몸으로 영리를 취하지 않을 유일한 자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골왕의 숙적으로서는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에슈아의 재산 중 가장 값비싼 자산일 것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아이만 들어갈 수 있는 보물고에 처박아둔 뒤, 마족의 영혼을 추적할 수 있는 술법이 개발될 줄은 몰랐지.

하지만 그걸 보란 듯이 가져온 아이작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예뻐 보일까?

물론 아이작이 저걸 어떻게 들고 왔는지, 성녀의 힘으로 마족을 처리한 건지. 도대체 보물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할 건 많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해골왕의 육신을 가모님께 가져가는…….

“아악!! 아이작!”

가져가기는 개뿔이!

“아이작! 퉤! 퉤!!”

에슈아의 사람들은 다급하게 아이작의 등을 내리쳤다.

그들은 아이작의 작은 입을 벌리고 아이가 삼킨 이물질을 꺼내려고 난리가 났다.

“어떠냐! 목에 있느냐?”

“아, 아뇨!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그 큰 게 어떻게 넘어가!”

“아이작? 착하지? 퉤!!”

어른들은 아이작을 거꾸로 돌리고, 가슴을 압박하는 둥 온갖 시도를 했지만 아이작은 또다시 트림만 할 뿐.

“끄얽(잘 먹었다).”

“세상에, 이걸 어떡하지?!”

“…….”

어른들의 소란에 슈리는 결국 그걸 처먹었느냐는 얼굴이었다.

보물고에서 나온 그의 표정이 이상했던 건 필시 그 탓이리라.

‘저거 입에 바로 넣을 때부터 알아봤다.’

아이들 모두가 뼈를 핥핥 핥는 아이를 보며 경악하지 않았던가.

경악한 그들도 이미 빼앗으려 시도했었지만, 한 대씩, 아니 망할, 한 대씩 맞으면 다행이지.

수십 대는 처맞은 듯한 슈리는 해탈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다른 의미로 절망했다.

“세상에! 그게 어떤 물건인데!”

단순히 가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려 마왕의 육신이었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핵!

아이가 쥐고 있던 것도 문제였지만, 만지는 것과 먹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인간의 몸으론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신의 가호가 있다고 해도 몸이 터질 거예요!”

고작 뼛조각 하나로 거대한 대산림을 폐허로 만들었던 물건이었다.

평범한 마력핵조차도 젖먹이에겐 위험한데, 하다못해 마왕의 마력?

이미 인간에겐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아이작? 착하지? 뱉자! 퉤! 퉤웨!!”

“땨아아앍(안 뱉어, 새끼들아)!”

이미 끝났어!

위장으로 직통시켰다고!

아이작은 손으로 스윽 입을 닦았다.

‘이 빌어먹을 놈들, 깜짝 놀랐네.’

아니 거짓말 안 하고 정말 놀랐다.

세상에, 영혼 추적이라니!

이 미친놈들이 어디서 스토킹하려고!

‘그래도 세상에 이거 하나밖에 없댔으니까 이제 괜찮겠지.’

이제 위치 추적 같은 개소리는 하지도 못할 것이다!

[애초에 그 위치 추적이 발동 안 할 확률도 있는 건데요, 주인님.]

닥쳐!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전부 없애는 거야!

그리고 오히려 몸속에 처넣으면 굳이 빠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거 아냐?

그리고 「생존」 기원은 위장에 처넣을 때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던데!

너도 벌써 승급할 것 같지 않냐!

[그렇긴 합니다만, 주인님의 힘이 좀 크셔야죠. 마왕급의 침입으로 판단해서 성자의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아니! 오히려 이런 몸이니까 기대되는데! 새로운 힘이 생길 것 같은데!

물론 이 육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몰랐다.

‘중요한 건 신성 진영 놈들이 내 몸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거지.’

아이작은 자신에게 귀싸대기를 맞고 사라진 부하를 떠올렸다.

그는 반지에 모아둔 성력까지 동원해 손에 최대한 큰 빛을 만들었다.

마력을 쓰는 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손톱만큼 마력을 방출해 뺨을 갈겼지만, 고작 그런 마력으로도 부하는 주인을 알아본 것일까.

부하는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떨면서 아이작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사념파는 덤이었다.

-살아서 오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살아 있진 않았지만, 인간이 되었으니 살아서 온 건 맞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곁에서 모시고 싶으나. 저는 지금… …에…….

부하는 그 말만 하며 사라져 버렸다.

뭐, 자리를 피해준 덕분에 해골왕의 엄지는 의심받지 않고 쉽게 뽑아내긴 했다만, 이놈아.

‘말을 제대로 하고 가야지.’

안 본 사이에 왜 말도 못 하는 머저리가 됐냐.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그리고 이 새끼 한 대 처맞고 가야 하는데!

아이작은 아직도 못마땅했다.

마왕의 손가락 주제에 왜 신성 진영한테 처잡혀 있는 건데?

그리고 누가 신 새끼로 변하는 인형을 만들어서 트라우마 올라오게 하래, 썅!

아, 한 대가 아니라 두 대구나. 젠장.

아무튼 부하가 사라진 후, 키나 베리트는 분명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건 교황가에서 잡아두고 있는 마족인데. 어떻게 에슈아 따위한테……!

그 말을 새삼 다시 떠올리는 아이작은 하늘을 보았다.

‘하. 하하.’

하하하하!

“따얅하하하! 땨아하핰!”

너무 웃겨서 웃음도 안 나온다.

뭐?

교황가?

이 시발놈들이 내 부하를 붙잡고 있었단 말이지?

그것도 감히 내 몸을 이용해서 부하를 교황가의 개로 부리고 있었단 거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려진다.

십사육마는 해골왕의 최측근으로 최강의 부하들이었다.

신성 진영에 절대 굴복할 녀석이 아니었다. 특히 신들의 앞잡이인 교황가라면 더욱.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을 놈이지.’

그런데 자아가 분열된 것 같은 폐인 모습이며, 척 봐도 정상인 모습은 아니지 않았던가.

충심이 깊은 녀석이니 분명 주인의 육신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을 것이다.

다른 무뢰배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혹시라도 살아 있을 자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신성 진영의 개를 자처했겠지.

‘물론 교황 측이 마족의 제안 따위를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당연히 제안은 놈들이 했을 거고…….’

생각하던 아이작은 쯧 혀를 찼다.

멍청한 녀석.

그까짓 주인의 몸이 뭐라고, 뭘 이렇게까지 미련한 짓을 했을까.

하지만 신의를 지켜준 녀석이니 찾아내서 풀어주고, 해골왕 사칭범에 대해서도 물어보자.

아, 그 전에 한 열 번쯤 죽이고.

‘감히 신의 얼굴로 변해? 콱.’

아무리 시련이라지만, 생각할수록 고얀 놈.

아무튼 교황의 손자 놈이 3관 봉인을 풀어달란 소릴 안 했으면, 녀석과도 못 만났겠지.

못 만났으면 아주 중요한 정보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리고 놈들은 어차피 이유가 없어도 조질 거였지만, 이번에 확실히 조질 생각이었다.

‘뭐, 그 전에 이놈들부터 조져야 할 것 같다만.’

아이작은 방 안을 분주하게 뒤지는 이번 생의 가족들을 보았다.

“관장약 없느냐?! 어떻게든 뽑아내 보자꾸나!”

“설사야악!”

“아니 구토약을!”

“…….”

시바. 이것들은 애한테 뭘 처먹이는 거야.

하지만 나쁠 건 없었다.

꼬맹이들이 물에 타서 줬던 구토약, 설사약엔 마력이 있지 않았던가.

‘혹시 여기 독한 약들은 마력핵을 쓰는 건가?’

그러면 이득 아닌가?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원래보다 더 강한 힘을 노리고 있었다.

부하의 일로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교황가가 아무리 마족을 싫어해도 내 부하를 쉽게 잡았을 리 없지.’

그럼 해골왕의 부하를 제압할 정도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신들의 도움이다.’

틀림없었다.

그리고 부하까지 납치한 마당에 단순 엿 먹이기로 속이 풀릴 것 같은가?

‘찢어발기려면 10계위로는 좀 부족하지.’

한계가 많은 스켈레톤이라서 결국 뛰어넘진 못했지만, 10계위 위에 있는 《초월계위》!

‘신들도 쉽게 닿지 못하는 그 영역에 내가 먼저 들어선다.’

아이작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러려면 수련 방법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었다.

‘뭐, 왜 하필 성녀 가문에서 환생했는지. 왜 하필 이놈이 아이작이란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잘됐다.

신에게 미움받았다는 성녀 가문은 오히려 놈들을 패버릴 기회.

그리고 그를 위해선…….

“릴라이! 응급 상황이니 센 약도 좋다! 가져와라!”

그래! 이왕이면 비싼 걸로!

“가모님이 오시기 전에 빼놔야 한다!”

응, 멜리사 오기 전에 지갑 들고 튈 거야!

반면 에슈아의 손님들은 다른 의미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에슈아의 젖먹이가 유력한 성자를 누른 것도 모자라, 해골왕의 육신을 삼키고도 살아 있는 게 신기한 상황인데, 뭐?

“이것으로 다 모인 것 같군.”

황제가 에슈아를 대신하여 베리트 추기경을 불러? 그것도 3관에 있던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귀족들은 아이작이 있는 옆방에서 항의 중이었다.

“정말 댁의 아들이 3관의 마족을 풀어달라고 하였습니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오!”

“이 자리에 아이를 보낸 적(赤)의 공작가나! 성자 후보를 낸 가문들이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만히 있진 않을 것입니다!”

“어찌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면서 성자라고 할 수 있소!”

“에슈아의 젖먹이가 아니었으면 어찌 될 뻔했습니까!”

“듣자 하니 에슈아의 젖먹이를 암살하려 했다던 주교도 베리트 사람 아니었습니까?”

베리트 추기경은 눈썹을 치켜떴다.

설마하니 에슈아의 젖먹이, 그것도 사내놈이 이리 인기가 높아질 줄은 몰랐는데.

아니, 오히려 에슈아를 못 미더워하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망할 황제가 자연스럽게 이 자리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 것들 같아서 특별히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소. 에슈아는 지금 작은 사고가 생긴 것 같아 짐이 대신 맡았다만, 축제가 끝나기도 전에 갈 만큼 바쁜 추기경을 붙잡은 것 같아 미안하게 됐구려.”

베리트 추기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놈이 대놓고 에슈아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는.

그러나 곧 베리트 추기경은 고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폐하. 소신이 응당 마련했어야 할 자리를 대신 만들어 주셨으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리?

원래라면 교황가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 놈들 따위를 신경 써서 무얼 하나.

설마 에슈아의 젖먹이가 해골왕의 육신을 먹어버릴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기회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성녀 가문의 축복받은 육체니 바로 죽진 않겠지.’

원래는 해골왕의 육신을 아이작의 몸에서 꺼내줘서 에슈아와 다시 한번 규약을 맺을 생각이었다.

이번 일을 운 좋게 해결한 것으로 성녀 가문이 성자랍시고 기어오르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아직 젖먹이에 불과한 아이가 마족도 멋지게 퇴치하고, 다른 후보들에게 보물까지 쥐여주다니. 역시 에슈아가 아니오.”

황제의 말에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베리트가를 바라보는 눈초리를 보아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빤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슈아의 사내아이는 저주받았다던데. ‘소문’과 다르게 성녀 가문이 건재해서 교황가가 걱정을 덜겠구려. 그렇지 않소?”

과연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그리 묻는 황제의 눈빛에 추기경은 눈 대신 입꼬리만 올렸다.

“예. 그렇습니다. 똑같이 불려와서 경쟁전을 벌였을 뿐인데,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아들도 부끄러워 당분간 나오지 못하겠군요.”

적당히 자숙시킬 테니 이제 끝내자는 말이었는데, 황제가 웃었다.

“아이는 그럴 수 있다만, 부모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

저 자식이?

“옳소! 아이가 죽을 뻔했는데, 어찌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이가 에슈아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베리트 추기경은 목소리를 높이는 부모들을 보았다.

‘기껏해야 지방의 소귀족들이.’

이번 일로 3관에 있던 아이들의 가문들은 에슈아에 붙으려는 게 보이지만, 저런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 저 중에 한두 가문.

놓치기 굉장히 아까운 가문들이 있긴 하지만 또 기회는 온다.

“좋습니다. 저희 키나 때문에 힘들어했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사과하고 위로할 겸, 각 가문에 마땅한 보상을 보내겠습니다.”

“오오.”

“이제 이걸로 이야기가 끝나셨으면 저는…….”

“아직 안 끝났다만.”

뭐, 인마?

추기경이 황제를 보자, 황제는 마치 지금부터가 진짜 본론이라는 듯 방긋 웃었다.

“주최 측에 해를 끼칠 뻔하지 않았나.”

뭐? 주최 측?

“만약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돌잡이를 주최한 에슈아가 지지 않아도 될 책임을 지게 되었을 것이오. 그러니 에슈아와-”

“!”

“무엇보다 그대 아들의 행동을 수습해준 에슈아가의 ‘젖먹이’한테도 마땅한 보답을 해줘야지.”

“……!”

우득.

베리트 추기경의 이마에서 핏대가 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 누구한테?

원래라면 주최인 에슈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떠나려고 했던 그였다.

그리고 황제가 아이작 에슈아를 마음에 들어 한 건 알겠고, 그 꼬맹이에게 한몫 챙겨주려는 것도 알겠는데.

“왜, 싫은가?”

“…아닙니다.”

추기경은 멀리서 들려오는 환호의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보답이라니.

“자, 아이작! 옳지! 끙아다! 끙아야!”

“그래! 옳지, 옳지! 잘한다! 나온다! 나와!”

“릴라이! 어서 뼈를 찾아봐라. 나왔느냐? 나왔어?”

…저 똥이나 싸고 있는 애한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