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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7화 (37/272)

제37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2)

“이건……!”

주변의 놀란 탄성에 아이작은 목을 쭉 빼고 보았다.

에슈아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게 심부름꾼이 꺼낸 건 다름 아닌 훈장이었다.

금색의 상자에 담겨 있는 훈장은 금색의 끈 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후광을 형상화한 듯한 금속에 새겨진 건 교황의 상징.

‘삼중관에 방패, 교차하는 지팡이의 날개.’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제국을 영광의 길로 이끄는 승리의 관!

교황의 문장이다.

그리고 훈장에 새겨진 이름은 다름 아닌 아이작의 이름.

‘설마 교황이 아이작에게?’

덕분에 에슈아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황이 훈장을 하사한다?

신성제국에서는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담겨 있는 축복도 축복이지만, 단순히 팔기만 해도 그 값이 상당할 것이다.

솔직히 보내온 선물이 너무 크다.

아니나 다를까, 교황가의 심부름꾼이 방긋 웃었다.

“릴라이 님, 받으시죠. 아이작 님의 것입니다. 흉악한 마족을 처리하고, 성자가 될 귀한 보배들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십니다.”

아이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새끼들이 보는 눈은 있네!

그러나 정작 그걸 보는 에슈아 사람들의 표정은 걷잡을 수 없이 살벌해졌다.

특히 릴라이의 눈빛엔 살의마저 감돌았다.

“정녕 이걸, 내게 전해주라 하셨느냐?”

그 반응에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뭔데.

뭔데 화를 내?

그러나 교황가의 심부름꾼은 여전히 방긋거렸다.

“맞습니다. 아이작 님의 공훈을 표창하고자 교황 성하께서 특별히 내려 주셨습니다.”

교황?

빌어먹을, 어디서 그 새끼 걸 들고 와?

뭔지 몰라도 화낼 만하네. 그냥 찢어발겨라!

물론 아이작은 개인적 원한으로 눈을 번득인 거지만, 에슈아 사람들은 화를 낼 이유가 없다.

어쨌든 간에 표창의 의미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얘들은 왜 이러나 싶을 때, 릴라이가 살의 가득한 눈으로 재차 물었다.

“다시 묻겠다. 만일 지어내서 말하는 거라면 네놈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정말 이걸 ‘내게’ 주라고 하셨느냐? 아이작이 아니라?”

교황가의 심부름꾼은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릴라이 경께 전달 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 미친!”

결국 옆에 있던 원로들은 당장 베리트가에 쳐들어가려 했다.

“이 거만한 것들이 돌았나, 진짜! 감히 아이작의 물건을 가족한테 보낸다고?”

왜?

아직 훈장이 뭔지도 모를 젖먹이니까 가족이 대신 받을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위스퍼가 에헴, 칭찬해 달라는 듯 끼어들었다.

주인을 대신하여 신성 진영의 모든 책을 읽어두고 있는 충실한 종자였다.

[훈장을 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수령자가 문제죠.]

왜? 본인이 안 받으면 부정이라도 탄대?

하여간 성직자들은 쓸데없는 미신이나 믿는 돌대가리 새끼들…….

[신성제국에서 본인 수령이 아닌 가족에게 전달하는 건 ‘위령(慰靈)’의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의 공훈을 표창한다는 의미죠.]

저, 개 같은 새끼들!

당장 저것들 멱살 안 잡고 뭐 하냐?!

아이작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딸랑이를 내던질 기세였다.

내가 어떻게 이 몸으로 태어났는데!

저 새끼들이 재수 없게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

한마디로 교황가는 조카의 위령비를 만들어서 숙부한테 준 셈이었다.

이거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의 혈족인 릴라이는 굉장히 열 받은 얼굴이었다.

놈들이 무슨 의도로 이걸 자신에게 주라 했는지 결코 모를 리 없으니까.

그러나 교황가 심부름꾼은 왜 화를 내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이작 에슈아 님이 너무 어린 분이라 걸어드리기 힘드니, 가족분께 드리라 한 것뿐입니다.”

옘병하네!

관짝에 넣어주라는 의미겠지!

어디 그뿐인가?

“훈장 끈에 꽃 자수까지? 지금 싸우자는 거야?”

꽃 자수?

왜? 저거 태양화 아닌가?

명예를 치하하는 꽃이라 인간들의 사치품에서 많이 봤는데.

[뜻은 맞는데, 색이 문제입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흰색은 전사자의 공훈을 치하하는 의미라고.]

이 시벌 놈들이 또 죽은 놈으로 만드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면 이거 싸우자는 건데?

어른들도 눈에 핏줄을 세우며 속닥였다.

“설마 아이작이 해골왕의 육신을 먹었다고 죽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이 정도면 죽으라고 저주하는 게지.”

“아니면 에슈아에 걸린 ‘저주’에 대해 조롱하는 거 아니냐?”

“!”

아이작은 신경 쓰이는 단어에 눈썹을 치켜떴다.

‘에슈아에 걸린 저주?’

그게 뭐지?

그러나 원로들은 해골이란 해골은 죄 분말 가루로 빻을 기세였다.

“크악! 빌어먹을 해골왕! 놈만 아니었어도옭! 이런 굴욕은!”

아니 내가 뭘 어쨌는데!

그러나 교황가의 심부름꾼이 팔이 떨어지겠다는 듯 웃었다.

“릴라이 경. 안 받으십니까?”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릴라이, 받을 것 없다.”

“그래, 맞다. 어쩐지 공물이 너무 과하다 했다. 저렇게 의도가 빤한 걸…….”

그러자 고엘이 훈수를 두었다.

“어르신들, 공연히 끼어들지 마십시오.”

“!”

애초에 훈장이면 교황의 힘이 담겼을 선물이었다.

그걸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에슈아가 교황가를 적대시하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이 됩니다. 일이 커져요.”

“넌 저 꽃 자수를 보고도 그딴 말이 나오느냐?”

“해골왕 시대엔 죽음의 의미였지만, 최근엔 구분이 희미해졌으니까요. 꼬투리를 잡긴 애매합니다. 어르신들만 알아보게 수를 쓴 겁니다.”

해골왕 시대부터 살아 있는 자들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아무튼, 나서지 마시죠.”

“아니……!”

그러니 장로와 원로는 분통 터지는 것이었다.

“치사하지 않느냐, 하필 가모님과 가주께서 부재중이실 때 이딴 걸 보내다니……!”

고엘은 대답 대신 코웃음을 쳤다.

부재중이니까 보낸 거겠지.

아마 저걸 보낸 건 베리트 추기경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그런 인간이다.

‘내 외가 피가 섞인 놈이긴 하지만 참 역겨운 놈.’

남을 괴롭히는 데 도가 튼 놈이었다.

한마디로 릴라이한테, 그리고 에슈아한테 깝치지 말란 것이다.

훈장을 통해 네 주제를 파악하라고.

미꾸라지는 하던대로 흙탕물에서나 지낼 생각을 하라고.

‘뭐, 그렇다 한들 굴욕을 입는 건 핏줄인 릴라이지.’

아이작을 생각하는 숙부로서는 열 받겠지만, 오히려 가문을 생각한다면 적당히 교황께 감사를 표하고 본인의 선에서 굴욕을 삼키면 그만.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겠지.’

고엘도 썩 기분이 좋진 않으나, 릴라이와 아이작이 탐탁지 않은 고엘로서는 오히려 이득인 상황이었다.

저 무서운 걸 모르는 녀석들도 이걸로 좀 덜 나대겠지.

가주께서 오시기 전에 이것들의 입지도 낮춰버릴 수 있고.

‘보물고의 활약도 어차피 제 어미의 힘이 발휘되었을 뿐인 요행.’

분명 슈리의 도움을 받았을 거면서 영웅은 무슨?

뭐, 그래도 일단은 조카와 동생이었다. 고분고분하게 굴면 떡고물 정도는 쥐여줄 수도 있지.

교황가의 심부름꾼도 방긋 웃었다.

“아, 맞습니다. 전달 드린 후 선물에 대한 답을 꼭 받아오라 하셨는데, 뭐라 전해 드릴까요?”

뭐? 답?

저딴 걸 줘놓고 답을 달라고?

이 새끼가 미쳤나.

어른들은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심부름꾼은 실실 웃었다.

“다소 규범이 어긋난 게 있지만, 훈장을 직접 못 받을 정도로 어린 아이인데 뭐 어떻게 합니까. 설마 감사의 답변도 안 드리실 건 아니시죠? 교황 성하께서 특별히 훈장에 축복을 담아 보내신 건데.”

릴라이는 대답 대신 교황가의 심부름꾼을 보았다.

한낱 심부름꾼으로 보여도 저건 교황가의 전령. 엄연히 5계위 이상 성직자이며 교황가 파벌의 귀족이다.

‘요벨 자작가의 차남인가.’

뭐, 교황가의 측근 중 하나니 작정하고 복수를 하려는 거겠지.

아이작이 키나를 귀족들 앞에서 물먹인 것에 대한.

그리고 에슈아의 굴욕을 보고 싶어 하는 한 명이리라.

감히 교황가의 전령한테 손을 대지 못할 걸 아니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저따위 태도로 나오는 것일 테고.

그때 입술을 깨무는 릴라이에게 고엘이 재촉했다.

“뭐 하느냐, 일단 감사히 받고 인사해라. 받고 처리하든가 해.”

“!”

“기껏해야 어린애 하나 문제다. 괜히 꼬투리 잡아서 소란 피울 것 없어.”

그래, 그게 정석이지.

릴라이도 알았다.

하지만 숙부로서 조카에게 모욕을 안겨줄 순 없었다. 이걸 받으면 굴복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렇다곤 해도 달리 방법이…….’

그런데 그때였다.

화륵!

“어, 어어?”

실실 웃던 심부름꾼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어어어, 으악!”

그가 들고 있던 훈장에 불이 붙은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불이 아니었다.

훈장에 치솟는 불길은 청(靑)색의 불길!

에슈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성화(聖火)!’

자연적인 불이 아닌, 성력으로 만들어낸 불을 성화라고 한다.

한마디로 성법으로 만든 불이었다.

수준이 낮으면 만져도 뜨겁지 않지만, 레벨이 높을수록 영혼까지 불태울 무자비한 불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성 진영의 축복이 걸린 물건은 이 성화가 아니면 절대 태울 수 없었다.

하물며 ‘푸른색’ 성화는 에슈아만이 낼 수 있는 색!

그리고 그 선명한 푸른 화마가 금색 훈장을 사납게 집어삼켰다.

“아악!”

그 온도가 5계위 성직자도 도저히 들고 있을 수 없는 수준. 심부름꾼은 훈장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화마에 휩싸인 상자와 자수를 포함한 훈장 끈은 한순간에 재가 되었고, 쇠는 숯검댕이가 되었다.

“아악! 교황 성하의 훈장이!”

“따야.”

아이작은 신이 난 듯 손을 흔들었다.

어른들은 놀랐다.

“설마 아이작이 쓴 거냐?”

“아이작!”

그러나 심부름꾼은 바로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감히 교황 성하께서 내려주신 훈장을 이 꼴로 만들어?! 이는 교황 성하께 반역을 꾀하는 걸로 알아도 되겠는가!”

그러자 원로들이 기다렸다는 듯 커어헑 침을 뱉었다.

“우리가 일부러 그랬어?”

“애가 그랬잖아, 애가!”

꼬장을 부리는 게 성직자인지 건달인지 알 길이 없다.

릴라이도 방긋 웃었다.

“어쩌겠습니까, 훈장을 ‘직접’ 받지도 못할 만큼 어린애인데.”

“?!”

“아, 훈장을 건네받기 전에 사고가 일어났으니, 전달은 못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뭣!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운을 뗀 릴라이가 싸늘하게 웃었다.

“설마 지금 교황 성하의 물건이, 고작 애가 만든 불에 녹았다는 건가?”

“……?!”

심부름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표정을 읽은 원로들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아이고, 세상에! 고작 훈장도 못 받을 만큼 어린 애가 만든 청(靑)의 불꽃이 교황가의 금(金)을 녹이다니! 이런 불경한 일이 있나!”

“아, 그렇다! 불경하다, 불경해! 이렇게 된 이상 정식으로 교황청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 사과를 표해야지!”

“아이고오,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제국 전체에 알립시다! 그래야 교황 성하께서 화가 누그러지지 않으시겠소!”

원로들의 고함에 가까운 외침에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선물을 전달하러 온 다른 귀족가의 시종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쯤 되자 심부름꾼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정말 저 꼬마가 쓴 성화인가?

‘뭐지? 성녀의 힘인가?’

쓰는 기척도 못 느꼈는데!

결국 심부름꾼은 일이 커지겠다 싶었는지 재빨리 훈장을 회수하려 했다.

“자, 잘못된 물건을 가져온 것 같으니 이건 무르고 다시 가져오겠… 아악!!”

심부름꾼의 엉덩이에서 푸른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부, 불이! 이것 좀 꺼주시오!”

성화는 보통, 같은 신앙의 사람만 끌 수 있다. 혹은 압도적으로 높은 등급 쪽이 상쇄로 끌 수 있지만, 이상하게 꺼지지 않는다.

엉덩이가 타들어갈 것 같은 열기에 심부름꾼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주변은 태연했다.

“아이고, 우리 아이작이 장난이 심하네.”

“좀만 있어 보거라. 훈장도 못 받을 만큼 어린 애가 한 짓이니 금방 꺼질 게다.”

“설마 훈장도 못 받을 만큼 어린 애가 쓴 불도 못 끄진 않겠지?”

“에이, 훈장도 못 받을 만큼 어린애인데.”

시발, 망할 에슈아!

심부름꾼은 급히 고엘을 찾았다.

이 에슈아 또라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정상인이자 아군은 교황가와 사촌인 고엘뿐!

“고, 고엘 님, 이것 좀!”

자신을 지목하고 달려오는 심부름꾼을 본 고엘은 핏대를 세웠다.

저 등신 머저리 같은.

고엘이 무시하자, 심부름꾼은 아이작을 보았다.

성화라면 시전자의 눈을 가리면 꺼지겠지!

곧 심부름꾼이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릴라이가 상대를 걷어차 에슈아의 호수에 빠트려 버렸다.

풍덩!

“원로님, 좀 꺼주시지 않고요. 그래도 교황가의 전령인데.”

“에잉, 교황가 사람이 설마 애가 만든 불도 못 끌 줄은 몰랐지.”

“교황가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구만!”

원로들은 실실 웃어댔다.

아이작은 심부름꾼이 허우적거리는 소리에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바라보는 눈은 굉장히 차가웠다.

‘섀도우 리치를 붙여라. 교황가의 심부름꾼이니 그쪽의 쓸 만한 정보를 물어오겠지.’

[그리하겠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인간에게 섀도우 리치가 들러붙으면 정신착란에 환청을 들을 텐데요…….]

그러게 어디 교황가의 이름을 달고 내 앞에 오래?

[성화는 3관 보물고에서 몰래 들고 온 비전을 읽으신 거죠?]

그래, 화염계 마법사인 내 불보단 약하지만 쓸 만하다!

[비전은 계속 숨기셔도 되겠습니까? 이 가문 사람들 놀라서 뒤집어질 텐데요.]

닥쳐! 내 비자금이야!

뭐, 릴라이는 그래도 예쁜 짓을 하니까 조금 키워줘도 될 것 같다만…….

“자, 아이작! 어서 이 과일 먹고 끙아 하자! 200개만 먹으면 돼!”

“따얅(시발 놈아, 개수는 왜 늘어)!!!”

역시 이놈의 가문, 빨리 팔아버리고 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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