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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8화 (38/272)

제38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3)

사실 아이작은 ‘해골왕의 육신’뿐만 아니라 3관의 보물도 슬쩍해 왔다.

그도 그럴 게 3관?

거기엔 무려 신화급의 보물이 모여 있었다.

‘대충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급이란 의미지.’

뭐, 그만큼 대륙의 유명한 검성이나 마도사들도 아무나 다룰 수 없다고 하지만…….

[주인님이라면 쓰실 수 있군요?]

어디 쓸 수만 있는 수준이겠냐?

애초에 마왕, 아니 해골왕의 존재 자체가 이미 신화급의 존재였다.

아무리 시대를 풍미할지라도 마족이라면 달랑 한 줄 처리되는 것이 성서. 그런 성서에 해골왕에 대한 것만 수백 권이었다.

이미 신과 맞붙는 신화급의 존재가 신화급 무기를 못 다루는 게 말이 되겠는가.

아, 물론 지금은 못 다루지.

다루기엔 팔다리가 너무 짧지.

하지만 비전은 다르다!

기술의 비전서는 눈과 머리만 있으면 당장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제일 먼저 3관에서 비전 뭉치들을 집어온 것이다!

그리고 술법을 따라 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직접 술법을 익힌 지금!

“아이고, 아이작! 교황가를 쫓아내다니! 잘했다! 잘했어!”

“가모님이 그 교황가 딸랑이 놈의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에슈아의 어른들은 아이작을 안으며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교황가의 심부름꾼을 거의 걷어차듯 쫓아낸 그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요즘 교황가에 붙어 에슈아를 떨어트리려는 놈들 때문에 열 받던 참이 아니었습니까!”

“암! 교황가 따위한테는 가위바위보조차도 지면 안 되지!”

전번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황청에서 지원 요청도 거절당하지 않았습니까? 딱 에슈아만요!”

“그것만이면 다행이게! 먼 곳에서 초청해놓고 행사가 취소된 것도 말 안 해줘서 일부러 헛걸음이나 시키고! 에슈아의 인력이 그렇게 우스워? 음침한 새끼들!”

“가주께서 똑같은 놈이 되지 말라고 하셔서 참고만 있었는데.”

하지만 그 묵은 한이 이번에 풀렸다는 듯, 원로들은 아이작을 높이 들었다.

“보물고에서도 그렇고, 이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하지만 에슈아 어른들은 알았다.

보물고도 그렇고, 교황가의 심부름꾼도 그렇고, 진짜 숨겨진 공로자가 누구인지!

아이작도 잘했지만, 진짜 공로자는 아이작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릴라이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다.

“에헤이, 릴라이 이 천재 놈! 어떻게 교황가의 치졸한 수를 그렇게 빠져나갈 생각을 했느냐!”

“예?”

“예라니, 능청 떨지 말거라. 네가 아이작에게 성화 성법을 걸어준 거 말이다. 캬, 기가 막혔다. 심지어 그 타이밍에 아이작이 정확히 훈장을 불태우게 하다니!”

릴라이는 눈을 끔뻑거렸다.

“…예? 그거 원로님들 아니셨습니까? 저도 쓰시는 걸 전혀 눈치를 못 채서 감탄을…….”

“…응?”

“…예?”

“…응?”

…엥?

그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에에에엑?!

그들은 그제야 말도 안 되는 진실을 깨달았다.

“잠깐. 그럼 이 아이가 성화를 썼단 것이냐?!”

“보, 보물고에서도 릴라이 네가 몰래 성법을 걸어준 거 아니야?!”

“그래서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온…….”

“…아니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 계속 말씀드리려 했는데, 제가 걸어준 건 평범한 투명 성법밖에 없습니다. 주최 측에서 사기를 칠 순 없잖습니까.”

그쯤 되자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장로 베인은 닦고 있던 안경을 툭 떨어트렸다.

“…그럼 그 고속 활보도?”

“…아이작 …활보도 쓸 줄 안답니까?”

“……?”

“……????”

?????????????

원로들과 장로, 릴라이는 떨리는 동공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그럼 교황의 훈장을 불태운 게 아이작이라고?!”

그래, 내가 했다, 이놈들아.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변했다.

뭐, 익히느라 좀 고생은 했다. 물론 어려워서가 아니다.

10계위 최고 고수였던 만큼 익히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신들을 찬양하는 성서이다 보니 읽는 것만으로도 빡쳐서.

아직 크기도 화력도 마왕일 때와 비교하면 한참 멀었지만, 이 정도면 뭐.

“성화는 신과 계약해야 쓸 수 있는 영혼의 성법이다! 신과 계약도 안 한 아이가 어찌!”

신과 계약을 안 했으니까 쓰지, 시발!

안 그러면 내가 이딴 더러운 성법을 쓰겠냐!

“아이작의 어미가 걸어줬을 확률은…….”

응, 그거 아냐.

“저놈의 어미는 성화를 못 씁니다! 뼛속까지 무인이에요!”

“!”

결국 에슈아 사내들의 동공이 흔들리자 유모는 도저히 한마디 안 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특히 아이작을 데려온 릴라이까지 저럴 줄은 몰랐는데.

“아이작 도련님이 섀도우 리치를 토템으로 만드셨다면서요. 그럼 성법을 쓰실 수 있는 거죠.”

그러나 그들은 새하얗게 질려서 고개를 저었다.

“재능이 있는 거랑 구체적으로 성법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그래! 말은 할 수 있지! 하지만 저 아이는 글자도 안 가르쳐 줬는데 작문을 한 거야!”

천재라 불린 멜리사도 최소한 글자는 배우고 시작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 말인즉, 저 아이가 교황의 축복을 지워 버렸다는……!

곧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들은 급히 고엘을 불렀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고엘! 아까 불탄 훈장을 다시 가져와 봐라!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고엘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거 버리라 하셔서 버렸는데요.”

“이 바보 녀석! 그걸 왜 버려! 아이작이 힘을 썼다는 증거인데!”

“어르신들이 기분 나쁘다면서 버리라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증거가 남는다고.”

“아니 우린 릴라이가 수를 쓴 줄 알았지!”

그러나 훈장을 가져다 버렸다는 고엘은 침묵했다.

‘설마 슈리가 한 말이 진짜였나.’

본인은 오히려 아이작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니.

성화 속성이 아닌 어미가 성화의 힘을 걸어줬을 린 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모든 행동이 본인의 힘이라는 건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 훈장.’

훈장을 처리하던 고엘은 하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일부분이지만 성화의 불길에 녹아버린 ‘금속’을.

‘젠장. 상자나 천은 그렇다 쳐도 금속 부위가 녹다니.’

상자나 천에도 축복이 걸려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상급 성직자라면 가능하다.

무슨 신화급 유산도 아니고, 어찌 되었든 그건 기성품이니까.

하지만 금속?

‘세상 어떤 불에도 견디는 교황가의 금속을?’

가주, 하물며 ‘마왕’조차도 교황가의 금속은 녹이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게 교황가의 금속은 ‘금(金)의 신앙’을 상징하는 것이자, 교황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불빛까지 파란색이라고?

그리고 이 사실이 가주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후계자 자리에 영향이 갈 게 틀림없다.’

그래서 고엘은 그 유일한 증거를 없애버렸다. 가주나 가모에게 보이면 안 됐으니까.

“아씨! 거기 누구 없느냐! 쓰레기통 가서 다시 찾아오너라!”

“네, 네!”

원로의 말에 시종들이 분주히 움직였지만, 고엘은 비웃었다.

‘절대 못 찾을걸?’

아무도 못 찾게 돌을 매달아 호수 제일 깊은 곳에 버려 버렸거든.

꼬맹이 따위에게 성자와 청의 신앙 최고 자리를 넘겨줄 것 같으냐.

* * *

베리트가(家).

키나 베리트는 약 보름간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보물고에서의 추태로 인한 근신 명령이었다.

동시에 근신이 풀리자마자 바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본인의 억울함을 변호하려 독기를 세우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의 눈을 보자마자 턱 막혔다.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가져온 거지.”

“…….”

번득이는 금색 눈은 어린애의 어리광과 변명 따윈 듣지 않겠다는 눈이다.

키나는 베리트 추기경이 톡톡 치는 보석 브로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게 제일 좋은 것이었어요.”

베리트 추기경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헛소리 마라. 3관은 신화급 보물고다. 해골왕 육신이 아니더라도 값진 게 수두룩한데. 기껏 성녀의 보물고에 들여보내 줬더니 가져온 게 이딴 잡동사니라고?”

“하, 하지만 진짜 없었어요!”

키나는 억울했다.

3관에 들어간 그는 분명 해골왕의 육신 외에도 강한 보물들의 기척을 느꼈다.

그래서 해골왕의 육신은 둘째 치고, 가장 좋은 보물들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슝!

-……?

보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가면 어느새 보물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슝슝!

아니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사라졌다!

그것도 키나가 좋게 여긴 건 전부!

심지어 집으려고 한 게 사라지기도 했다.

슝슝슝!

-……???

물론 이 모든 건 아이작의 짓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키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추기경은 짐작 가는 구석이 있는 듯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보물고의 드래곤 짓인가.”

“하, 하지만 드래곤이 왜……!”

“심술을 부리는 거지. 신성드래곤은 베리트가를 좋아하지 않으니.”

“!”

아니, 애초에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따르지 않는 드래곤이었다.

고대의 계약으로 연결된 황족한테조차 얼굴은 드러내지 않는 건방진 놈들이 아닌가.

“드래곤이 어느 인간을 마음에 들어 하겠느냐마는.”

“…….”

하지만 순간 키나는 땀을 흘렸다.

왜지.

왜 하필 이럴 때 보물고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오르는 거지?

-이 중에서 너만 유일한 합격이야! 세상에 경사야, 경사로다. 이런 답은 초대 이후로 처음이다!

-그러니 저 똑똑하고 뛰어난 젖먹이만 3관에 보낸다.

대놓고 아이작을 통과시켰던 그 목소리.

왜지? 왜 그게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키나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추기경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본인의 종자를 보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그 아이가 성화를 써서 훈장을 불태운 게 사실이냐?”

에슈아가에 도발 겸 훈장을 보낸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심부름꾼을 감시하고 있었던 추기경의 종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볼 땐 그 젖먹이가 태운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릴라이 에슈아나 원로일 가능성은?”

“그들이면 제가 기운을 알고 있으니 바로 눈치챘을 겁니다.”

베리트 추기경은 몹시 불쾌한 듯 미간을 구겼다.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면 안 된다. 심부름꾼은 처리해 버리고.”

“그럼 그 젖먹이의 훈장부터 빼돌려와야 하지 않을까요! 에슈아의 사람이 그걸 증거 삼아 수작을 부리려 하면……!”

특히 에슈아 가주가 알면 골치가 아파진다.

“만일 그걸 본 에슈아 가주가 마음까지 바꾼다면요? 에슈아의 차기 가주가 교황 쪽 피가 아니라 성녀 쪽 피가 된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괜찮다. 그 훈장은 일단 고엘이 처리했다.”

“아무리 가주님과 사촌이라 해도 에슈아 사람을 믿어도 됩니까?”

베리트 추기경은 하하 웃었다.

“그깟 젖먹이 따위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기긴 싫을 테니, 누구보다 철저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엘리세바 호수 바닥에 던져 놓았다고 하니, 회수해 와라.”

종자와 키나는 깜짝 놀랐다.

“예? 엘리세바 호수요?”

하필이면 거기라니!

“거긴 너무 깊고 위험한 곳이라 인력을 풀기보단… 차라리 그냥 묻어두시는 게…….”

“그럼 내가 갈까.”

그 싸늘한 목소리에 종자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입이 무거운 자들로 엄선하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반드시 찾아와라. 고작 젖먹이가 쓴 푸른 불꽃이 금의 황금을 녹였다는 망발 따위가 퍼지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절대 누가 찾아내면 안 된다. 상급 성직자는 더더욱 안 돼.”

베리트 추기경은 아이작이 몹시 못마땅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본래라면 교황가의 아이 외엔 신경도 안 쓸 그다.

하지만 독에서 살아남아, 보물고에서 살아남아.

하다 하다 그 해골왕의 육신까지 삼키고 살아?

그 젖먹이.

도대체 뭔 생물이지?

* * *

에슈아 공작령의 서쪽 일대.

험악한 산맥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사내가 있었다.

거대한 고래 신수를 타고 날아가던 그가 돌연 손을 들었다.

“잠깐.”

“?”

고작 그 손짓 하나에 그를 따르는 수십의 상급 기사들이 일제히 멈췄다.

곧 기사들이 술렁거렸다.

“주인님?”

이곳은 괴물이 나오는 호숫가였다.

멈추기로 한 장소가 아닌데?

그러나 에슈아의 가주, 일라이 에슈아가 어째서인지 호수 깊은 곳을 빤히 보고 있었다.

마치 평화로운 호수 깊은 곳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이.

“호수 바닥에 뭔가가 있구나. 확인해 봐야겠다.”

“예? 바, 바닥? 호수 바닥이요? 농담이시죠? 저 호수는 깊이가 수백 미터는 넘습니다. 그리고 식인 물고기가 있어 들어갈 수가… 헉! 주인님!”

에슈아 가주는 대답 대신 하늘을 나는 신수에서 뛰어내렸다.

“주인님?!”

이 높이에서 보호 장비도 없이?!

기사들이 황급히 신수를 몰아 주인을 쫓아왔다.

그러나 먼지 하나 없이 착지한 가주는 호수를 보았다.

“주인님, 뭘 하시려는…….”

가주는 대답 대신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호수를 향해 내리치는 주먹!

쩌엉!

기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마치 산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을 찍어 눌렀다.

“으악!”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 기사들은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호수를 내리찍은 힘은 순식간에 호수 가장 밑바닥까지 향하고,

“컥……!”

마치 호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듯, 물이 치솟아 올랐다. 용오름처럼 딸려가는 식인 물고기는 덤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호수의 밑바닥에 가주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동시에 호수 밑바닥에 있던 뭔가가 순식간에 가주의 손으로 날아왔다.

탁!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나 순간이고 찰나였을까.

가주가 얻은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멈춘 시간이 흐르듯 하늘로 치솟은 물과 물고기가 떨어졌다.

후두둑!

“악, 악악! 물고기! 식인 물고기!”

마치 폭풍 속 소나기와 같았다.

그야말로 무식하고 과격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기사들은 재빨리 옷을 벗어 가주를 가렸다.

그러나 정작 에슈아 가주는 호수 바닥에서 꺼낸 물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는……?”

고엘이 가져다 버린 아이작의 훈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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