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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39화 (39/272)

제39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4)

“결국 볼 수 없었구나.”

릴라이는 얼굴을 움켜쥐며 절망했다.

조카에게 기어이 율리우스 과일 500개를 먹인 릴라이는 고개를 떨궜다.

해골왕의 육신?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해골왕의 육신만 안 나왔나?

“세상에, 그걸 다 드셨는데도 응아가 멀쩡하시네요. 아니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요.”

유모 아실리의 말에 릴라이는 땅을 짚으며 좌절했다.

“우리 아이작은…! 장이 매우 튼튼하구나…! 이 숙부는 이제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정말 기쁜 거 맞냐?

아이작은 젖병을 쭉쭉 빨았다.

아니, 뭐. 숙부 놈이 보름 내내 율리우스산 과일인지 뭔지를 먹인 덕분에 좋긴 좋았다.

‘신수와의 친화력을 올려준다고 했나?’

이유는 몰라도 설사를 안 하니 과일의 영양분을 100퍼센트 흡수할 수 있었다. 남들은 많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과일인데 말이다.

물론 더러운 신성 진영의 신수 따위.

마왕일 때야 애기 마족들에게 급여하던 특식 밀웜… 아니, 적 진영의 금수였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나.

신성 진영에서 신수는 진귀한 영수(靈獸)로서 싸움의 도구나 파트너가 된다고 했다.

[특히 ‘백(白)의 신앙’의 전매특허이자 밥벌이 도구라고 하더군요.]

뭐, 그러니까 대충 신앙마다 쓰는 무기와 성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친화력을 키우는 건 좋다.

‘교황, 더 나아가 신을 누르려면 필수지.’

아무튼 숙부 놈이 왜 이렇게 해골왕의 육신을 못 꺼내서 절망하나 했더니.

“도련님, 가주께서 도착하신 모양입니다. 전원 만찬 자리에 모이라 하셨습니다.”

“…젠장. 늦었나!”

아무래도 가주가 온 것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저택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릴라이의 손에 들려 홀에 가는 지금도 그랬다.

“세상에 가주께서 오신 게 정말이었어……!”

에슈아의 기사들과 사제들은 흰수염고래처럼 생긴 가주의 신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타란블룸!”

“설마 순례중에 돌아오시다니.”

왜? 집주인이 지 집에 온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할아버지 걔도 자기 집에서 발 뻗고 자고 싶은가 보지 뭐.

“솔직히 놀라긴 했구나. 해골왕을 찾을 때까진 안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시발! 다시 돌아가! 관절염으로 쓰러져버려!

하지만 가주의 귀환은 모든 이들을 바짝 긴장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게, 살아 있는 화신인 가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주인 일라이 에슈아?

그는 ‘청의 신앙’을 따르는 대륙 모든 성직자들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고작 에슈아의 막내 때문에 순례 중간에 돌아와?

“아이작 님, 가주께서 보러 오시다니 대단한 거예요! 일라이 님은 청의 신앙의 우두머리시자, 대륙의 최고 7인 중 하나세요!”

응, 최고고 자시고 마왕한텐 달갑지 않은 퇴마사다만.

실제로 추기경들은 교황 다음가는 최고 성직자들. 전대 마왕들도 줄줄이 놈들에게 퇴마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추기경?

어이구! 징글징글맞지.

‘아니지. 지금은 신성 진영의 인간이니까. 멜리사만 아니면 상관없나?’

멜리사는… 젠장.

릴라이가 뭐라고 했더라?

분명 자신이 해골왕 육신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통신구로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갈라.

-예?

-배 갈라. 꺼내.

-…애 죽어요.

-음? 안 죽어. 가르고 붙이면 오히려 더 튼튼해진다.

-그건 어머니시고요!

-괜찮다. 에슈아의 사내들은 모두 내가 지킨다. 더 튼튼하게 해주마.

그 말에 릴라이는 절망했다고 한다.

어쨌든 가른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작은 딸랑이로 뒷목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식, 성격은 여전하네. 젠장!’

원래도 ‘성녀’는 최강의 육신을 가진 성기사들이었지만, 멜리사는 특히나 강했다.

성법보단 무력의 천재여서 어떤 물건도 그녀의 무기가 되었고, 천재적인 전투 센스와 경이로운 신체 능력은 이미 반신의 경지에 오른 수준.

만약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성불. 아멘.’

릴라이는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작을 높이 들었다.

“그,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몹시 아껴주시는 분이다. 특히 에슈아의 사내아이들은…….”

아니, 또라이잖아!!

배 가르는 게 정상이냐?

하지만 뭐, 상관은 없었다.

“어머니는 중간에 해골왕을 발견하셨다고 해결하고 오신다고 하셨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새끼, 명복을 빌어주마.

어쨌거나 가주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가모가 가문의 절대적인 수호신이라면 가주는 경영자.

자금, 후계, 권력 등등 실질적인 부분에서 ‘아이작 에슈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무엇보다 「생존」 기원이 오늘따라 신나서 덩실덩실, 가주의 머리와 식당 촛대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괜히 「생존」의 기원이 이곳을 강력 추천한 게 아닐 것이다.

‘생존 기원을 따라가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지.’

이번 생의 목표는 사치, 또 사치!

무엇보다 식당에서 만난 이 일라이 에슈아는 멜리사와 달리 정상인으로 보였다.

에슈아의 두 최고 지배자 중 고르라면 당연 이쪽이지!

그래, 배를 가르라는 또라이 녀석하고는 상종을 할 필요가…….

“태워.”

“예?”

“못 들었느냐? 저 아이를 불에 태워서 해골왕의 육신을 꺼내라고 했다.”

시발!! 생존 기원! 어떻게 된 거냐!

가주 이 새끼는 다른 의미로 또라이잖아!

‘빌어먹을! 차라리 멜리사가 낫겠다!’

걘 최소한 죽일 생각은 안 하지!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의 충격적인 말에 릴라이 역시 좌절한 듯했다.

“아버지. 안 됩니다.”

그래, 잘한다. 저 또라이들 어떻게든 해봐, 숙부야.

“젖먹이를 불에 넣기엔 너무 이릅니다!”

새끼야! 불에 넣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지만 가주의 말에, 이상하게 고엘은 입술을 깨무는 것이었다.

왜?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하면 오히려 저놈은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왜 마치 아이작이 큰 포상이라도 받는 눈빛이란 말인가.

하다못해 고엘이나 고엘의 세력인 듯한 장로들도 놀란 듯이 보았다.

“가주님. 저 아이에겐 너무 큰 포상입니다! 아직 서품식도 치르지 않은 아이한테 불이라니요……!”

“그보다 부모가 없지 않습니까? 소공작님을 닮지도 않은 아이가 에슈아의 핏줄이란 증거도 없는데, 어찌 그 불에!”

아씨, 그러니까 그 불이 뭔데, 새끼들아!

곧 고엘이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청의 신전에 있는 그 불에 넣으면 해골왕의 육신도 꺼낼 수 있을 겁니다. 하다못해 불의 축복을 받아 더욱 강해질 수도 있겠죠.”

뭐야, 축복?

이 새끼들 불에 처넣어서 화장시키려는 거 아니었어?

어쩐지 싹퉁바가지가 똥 씹은 얼굴이다 했다.

축복의 불에 넣는다니까 반응이 저따위지.

조카가 강해지는 걸 저놈이 바랄 리가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그 불은 아이작한테 너무 이릅니다. 최소한 서품식은 거치고…….”

서품식은 기사들의 서임식처럼 정식 성직자로 임명되는 자리다.

그러자 가주가 말했다.

“서품식? 그때가 되면 그 아이는 이미 백골이 되어 있겠지.”

아니 기껏 인간이 되니까, 저놈이 또 해골로 만들려고 하네.

“어차피 그 아이에게서 해골왕의 육신을 물리적으로 빼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느냐. 고작 뼛조각으로 보여도 최강의 마왕의 몸이다. 내버려 두면 해골왕의 마기에 생기가 빨리지.”

아니, 안 빨려.

오히려 피부가 탱탱해져서 고민이란다.

수백 년 만에 아빠 스킨을 촵촵 발라보는 이 기분을 알아?

아무튼 가주가 집에 돌아온 이유는 아무래도 해골왕의 육신 때문인 것 같았다.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빼낼 수가 없으니, 에슈아 보물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고엘은 그게 몹시 못마땅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번엔 릴라이도 고엘과 의견이 일치하는 듯했다.

“불은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아이가 들어가면 자칫 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캬, 역시 조카 사랑 릴라이.

그렇지, 그렇지. 너는 내가 챙겨주마.

“그럴 바에야 차라리 물에 빠트려 주십시오!”

시발 놈아! 화장이랑 익사랑 다를 게 뭔데!

그러나 릴라이의 말에 고엘은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넌 에슈아의 물을 해골왕의 마기로 더럽힐 셈이냐! 그곳이 어느 곳이라고 저런 애를 던져?”

미친놈들아, 그 전에 물에 던지면 죽는다고!

나 아직 수중 호흡 마법 못 쓴다고!

하지만 놈들이 말하는 불과 물은 굉장히 특별한 보물인 듯했다.

실제로 아이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장로들이 끼어들었다.

애초에 고엘과 그들은 아이작을 내쫓으려는 이들이었다.

“청의 신전의 불과 물은 모두 성녀를 키울 때 쓰는 에슈아의 비전 중 하나입니다.”

“그걸 사내아이를 위해, 하물며 능력이 증명도 안 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쓰시다니요.”

응, 저놈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니 좋은 거구나.

반드시 얻어야 하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릴라이가 바로 반발했다.

“능력이라면 증명했잖습니까! 보물고에서 그만한 활약을 했습니다.”

고엘이 조소를 지었다.

“슈리가 옆에 있었죠. 그 아이가 아이작을 지키느라 힘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마족을 퇴치한 것도 전부 슈리고요.”

“!”

어디서 거짓말을!

“거기에 있던 아이들이 증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이작이 마족을 퇴치했다고…….”

“아무리 성자 후보라 해도 아직 철없는 아이들입니다. 상상과 현실을 구분도 못 할 나이에 진짜 공로자가 누구인지 알 게 뭡니까. 성녀인 어미가 걸어준 힘을 아이의 힘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거지.”

저 형님이?

릴라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고엘을 보았다.

물론 여기서 아이작이 가주의 환심을 사면 고엘의 세력 쪽이 불리해진다. 슈리를 감싸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날조는 너무 치사하지.

하지만 보물고엔 아이들밖에 없었고, 마족의 난동으로 통신도 끊겼었다.

반박할 증거가 없다.

그때였다.

“가주. 아이작이 성화를 써서 교황의 물건을 태웠습니다.”

“외람되오나 저희가 보기엔 후계로서 키울 가치가 있는 아이입니다.”

원로가 진지하게 눈을 번득였다.

지금은 에슈아의 고문을 맡고 있지만, 그들은 대륙의 전설인 검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본래 후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가주는 그래서 의외란 듯 보았다.

원로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사실 그가 아이작을 보러 온 건, 딱히 아이작을 높게 평가해서가 아니다.

에슈아에서 ‘또’ 아이가 죽어 나가서 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뿐.

그리고 어떻게 가지고 나왔든, 해골왕의 육신을 가지고 나온 건 맞으니 약소한 보상이었다.

어차피 이번 일 이후엔 두 번 다시 보게 될 일도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교황가의 물건이라.

곧 가주의 눈빛이 바뀌자 고엘이 이를 갈았다.

가주는 가모와 다르게 차가운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무서운 사람이었다.

조건만 맞으면 정말 말도 못하는 젖먹이를 청의 신앙 우두머리에 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정말 태웠느냐?”

“예! 무려 푸른 성화였습니다!”

“푸른색?”

“예! 교황가가 아이작에게 선물을 가져왔는데…….”

고엘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원로님과 릴라이가 태운 것이겠죠!”

“!”

그들의 황당하단 시선이 고엘에게 향했다.

“형님! 형님도 그 자리에 있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태운 거 아니라니까!”

고엘은 한심하다는 듯 동생을 비웃었다.

“증거가 없지 않느냐. 나도 보물고의 일 때문에 아이작을 좋게 보기는 한다만, 솔직히 그 사실은 못 믿겠다. 출신도 제대로 안 밝혀진 아이를 무작정 데리고 들어온 것도 릴라이 너고. 아이작을 성자로 밀기 위해 네가 성화를 써줬을지 어찌 아느냐?”

“형님! 거기에 있던 목격자만 수십 명입니다. 아이작이 교황가의 물건을…….”

“원로님과 너다. 아이가 쓰는 척 성화를 걸어주는 건 눈감고도 쉬운 일 아니냐?”

그쯤 되자 원로와 릴라이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건 뭐, 확인을 시켜줄 수도 없고!’

에슈아에 적대 가문인 교황가의 물건을 둘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 훈장만 있었어도 증거가 됐을 텐데……!”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훈장을 버린 건 제 실책이네요.”

고엘은 죄송하다 하면서도 실실 쪼개고 있었다.

“전 또 릴라이가 한 짓인 줄 알았죠. 소중한 동생이 나중에 교황가에 책을 잡히면 안 되니 급히 처리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그래도 지금 폐기물 처리장에서 찾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런데 그때였다.

“훈장? 이거 말이냐?”

…에?

순간 고엘의 표정이 굳고, 그들의 시선이 가주에게 쏠렸다.

가주는 대수롭지 않게 테이블에 금속 물질을 올렸다.

“오는 길에 주웠다.”

그 물건에 모두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니,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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