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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40화 (40/272)

제40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5)

고엘은 얼어붙었다.

형태는 꽤 많이 일그러졌지만, 틀림없는 훈장. 고엘이 하인을 시켜 처리했다고 한 그 물건이 맞다.

릴라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거!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호수 밑바닥에 있더구나.”

…뭐? 호수? 에슈아의 매립지가 아니고?

모두가 고엘을 바라보았다.

아이작도 황당하다는 듯 싹퉁바가지를 보았다.

하지만 고엘은 테이블을 보며 땀만 삐질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원로들은 굉장히 못마땅한 듯 고엘을 째려보았다.

아이작을 못마땅해한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저런 거짓말까지 했을 줄은 몰랐는데.

릴라이도 좀 심하다 싶었지만, 어쨌거나 일단 찾았으니 된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그것입니다. 그 훈장과 아이작의 기운을 대조하면 확실한 증거가… 어, 그런데 녹아 있는데… 아버지께서 하신 겁니까?”

“내가 했겠냐?”

엥.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가주는 대수롭지 않게 훈장을 톡톡 쳤다.

“찾았을 때부터 이랬다. 성화의 불로 녹인 거겠지.”

“아, 그렇군요. 불로 녹였… 예?!”

잠깐, 뭐가 어째?

“교황가의 금을 녹였다고요? 아이작이?”

“추기경도, 마왕도 녹이지 못한다는 교황의 금을요?”

고엘은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릴라이는 왜 형이 기를 쓰고 훈장을 숨긴 건지, 아이작을 깎아내린 건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단순히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이변이다.

가주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비록 가장 낮은 등급의 훈장이라고는 하나, 교황의 축복이 담겨 있을 금이 녹은 것이다. 처음 느끼는 기운이라 조사해볼 생각이었는데, 전부 너였느냐.”

가주의 눈빛이 바뀌었지만, 정작 아이작의 표정은 이상했다.

그건 당연했다.

‘시발, 나도 모르겠는데, 새끼야?’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정말 모르겠다.

‘저거 왜 녹아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왜 녹아 있지?

‘교황가가 저걸 먼저 발견해서 녹였을 가능성은?’

[교황한테 쳐맞고 싶답니까?]

‘그러면 교황가 외 다른 놈이 저걸 녹였을 가능성은?’

[그럼 주인님한테 처맞아야죠. 감히 주인님도 못 녹인 걸 누가 녹입니까?]

그렇지?

아이작은 훈장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훈장은 초콜릿처럼 녹아 형태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이름도 그 탓에 지워진 듯했다.

그리고 저 녹아내린 흔적을 볼 때, 확실히 불에 녹은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거지?

‘교황의 금은 쉽게 녹일 수 없었는데.’

교황은 신과 연결된 유일한 인물.

그만큼 교황가가 축복을 건 황금, <블레스 골드>는 특수했다.

절대 녹지도, 깨지지도 않았다.

괜히 신성 진영이 중요한 보물은 교황의 금에 숨겨둔 게 아니었다.

물론 아이작의 경우 절대 녹일 수 없던 건 아니지만, 여러 비싼 재료가 필요해서 가성비가 너무 나빠 내버려 뒀다.

하지만 일부긴 해도 저게 녹았다고?

내 불에?

단순한 불인데?

‘힘이 더 강해진 건가?’

성직자들의 불이라 해도 근본은 똑같은 불이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본인의 방식대로 성화를 썼었다.

그런데 위력이 달라지다니?

‘이 몸으로 태어나면서 힘이 더 강해진 건가?’

아니, 어쩌면 성과 마가 혼합된 방식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고엘은 입술을 깨물었고, 릴라이는 눈을 반짝였다.

“아버지, 교황가의 상징을 태울 정도로 불을 잘 쓰는 아이면!”

그 말에 아이작이 기다렸다는 듯 히죽거렸다.

‘그래! 그렇지! 교황보다 우위가 될 수 있다는 물질적 증거!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증거!’

“해골왕의 불길에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가주! 타고난 해골왕 사냥꾼입니다! 안티 스켈레톤이오!”

이 망할, 해골왕 빠돌이 새끼들아!

걔 이제 없어! 걔 좀 내버려 둬!

니들부터 태워버린다!

하지만 릴라이와 원로들은 듣지도 않았다.

“얼마 전에도 숨어 있는 해골왕한테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내버려 두면 해골왕의 시대가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시발! 누구냐고! 그 짝퉁 새끼!

동시에 아이작은 분노하여 눈을 부릅떴다.

이것들이 하도 해골왕, 해골왕 해서 반쯤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갔건만.

[아무래도 진짜 사칭 중인 놈이 있긴 한 모양인데요?]

그렇지?

하지만 사실 아이작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신성 진영 놈들이 누굴 따라다니든 알 게 뭐란 말인가.

오히려 시선을 분산시켜 주니 아이작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안 그래도 70년 전. 그 해골왕이 에슈아 저택에 갑자기 다시 나타나 저주를 걸지 않았습니까. 그 원한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주? 뭔 저주!

그 전에 뭔 저택이야! 애초에 신성 진영에는 들어간 적도 없거든?

언데드가 성불당할 일 있냐!

“맞습니다. 해골왕이 성녀와 그 핏줄의 씨를 말리겠다면서 쳐들어와 저주를 걸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무슨 죄인지!”

아니, 씨! 핏줄이고 자시고! 성녀가 어떤 가문인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쳐들어가냐고!

환장하겠네!

[그보다 70년 전이면 주인님이 확실히 아니겠군요.]

아니지, 새끼야!

신들하고 싸운 게 150년 전이고, 그대로 눈 떠보니 지금인 건데!

애초에 성녀 쪽은 내버려 두는 게 이득이라, 부하들한테도 건들지 말라고 했었는데!

‘어떤 놈이 감히 내 이름으로 이따위 업보를.’

아무튼 그 짝퉁 새끼가 에슈아에 무슨 저주를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것들이 왜 그렇게 눈이 돌아가서 해골왕을 쳐 죽이려고 했는지!

‘핏줄에 건 저주라니. 그래서 릴라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 건가?’

-괜찮다, 아가. 이야기는 다 들었다! 설령 네가 저주를 받았어도 우리는 상관없다!

-아이에게 잘해주는 건 좋지만, 너무 정을 주진 마라. 어차피 오래 못 살 거다.

어쩌면 이 몸에 주인이 없었던 건 그 짝퉁 놈의 저주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죽었거나, 영혼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지.

뭐, 상관없었다.

저주라고 해도 그래 봐야 마족 놈의 저주.

[주인님한테는 애들 장난이지만요.]

그래, 제일 확실한 건 저주를 건 장본인을 죽이는 거지만, 자신이라면 저주를 해석해서 풀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굳이 풀지 않아도 무관했다.

애초에 해골왕의 육신을 먹지 않았는가.

‘마왕의 마력으로 눌러버리면, 목숨엔 지장이 없거든.’

어떤 건방진 놈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놈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목숨만 멀쩡하면 어지간한 저주는 용서할 수 있는 범위다.

뭐 하러 귀찮게 장본인을 찾으러 가고, 저주를 해석해?

솔직히 마왕으로서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저주…….

“대부분은 단명하지만, 단명하지 않는 경우엔 생식 능력이 떨어지거나 키가 안 자라니까요.”

“평생을 대머리로 사신 분도 계시고요…….”

시발! 반드시 분질러 죽여버린다, 그 사칭 새끼!!

[…어 …그건 저주의 영향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저주가 아니어도 죽여버린다!

“따야앍(감히 그따위 저주를 나한테 걸어)?!”

“아, 아이작 도련님!”

“갑자기 왜 이러시지?”

시종들이 급히 딸랑이를 들고 왔지만, 발버둥 치는 아이작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땨야야아앍(머리통까지 갈아서 영양제로 만들어버릴 테다)!!!”

딸랑이로 해골왕을 죽일 기세였다.

곧 가주가 눈이 돌아간 아이작의 눈을 빤히 보았다.

“가문 사람들 외엔 모르는 극비지만, 붉은 눈인 걸 보면 필시 해골왕의 저주를 받은 아이란 거겠지.”

그래에? 붉은 눈이 그런 의미였어?

개새끼가 표식까지 남기는 미친놈이었구나?

어쩐지 직계가족들을 봐도 대부분이 푸른 눈이지, 붉은 눈은 안 보인다 했다.

하지만 위스퍼는 의아해했다.

[주인님 정도의 영혼이 들어왔다면 그깟 저주의 표식 따위, 자동으로 사라졌을 텐데 신기하군요.]

그럼 원래부터 내 눈이 붉은색인가 보지 뭐!

그러나 고엘은 그런 상황에서도 영 못마땅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게, 해골왕의 저주를 받았어도 성력이 강하면 생존에는 일단 지장이 없다.

가문의 셋째가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결정적으로 교황이 되어 교황만 쓸 수 있는 신의 강림술을 쓰면 그깟 저주 따위 사라진다.

신을 몸에 받드는 순간, 반신이 되는 것이었다. 질병도, 저주도, 치명상도 사라진다.

즉 아이작이 그때까지 버텨서 성자가 되고, 차기 교황이 되기만 한다면.

해골왕의 저주 따위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고엘은 이 상황을 경계한 것이었다.

‘기껏 저게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것 때문에 죽게 되었거늘.’

그런데 아버지께서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라도 하신다면……!

‘아이작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아닌가.’

하지만 뭐, 물과 불 정도는 예상의 범주였다.

배가 아프긴 하지만, 어차피 슈리도 나이가 차면 받을 수 있는 범주의 것.

결정적으로 가주는 에슈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를 썩 탐탁지 않아 한다.

불과 물도 세지만, 다시 말하자면 가주는 그것 이상을 줄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

“불과 물로는 약할 것 같구나. 성령을 주지.”

가주의 말에 고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불과 물로는 약하… 예?”

동시에 고엘은 뭘 들은 거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옆에선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령이라니!”

“그래. 최소 해골왕의 마력을 정화할 수 있을 놈으로는 줘야겠군.”

“가주!”

이번엔 아이작도 알아들었다.

‘이 예쁜 가주 놈!’

아이작은 성공했다는 듯 만세를 했다.

성령?

뜯어낼 생각은 했지만 최소 말문은 트이고, 성장한 후에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온 대가로 요구할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성령은 감의 영역이라 어릴 때 쓸수록 유리하지. 지금 받아두면 더, 아니 최고로 좋아.’

교황가 심부름꾼 놈을 쫓아낸 보람이 있었다. 설마 교황가 놈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물론 정작 고엘은 이를 갈았지만 말이다.

‘성령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히거늘.’

성령은 보통 하사품으로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사품이라고 해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청화(靑火)>! 에슈아의 기둥들만 받을 수 있는 물건인데!’

그런데 그걸 누구한테 준다고?

“감사합니다! 아이작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니! 지나치게 과분합니다! 물과 불하고는 비교도 안 됩니다!”

릴라이는 기뻐했고, 고엘은 배알이 뒤틀려 참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아이작을 다른 가문에 양자로 팔아 버리려고 준비 중인 고엘이었다.

에슈아 사내놈들은 유전자가 좋아 정략결혼이나 양자로 인기가 높았으니까. 하물며 이번일로 아이작을 원하는 곳은 더 넘쳤다.

그러니 가주의 눈에 들기 전에 치워야 한다.

“예, 아이작은 슈리만큼의 재능이 있습니다. 이 에슈아에서, 그것도 사내놈이 싹이 보이니 귀여운 손자에게 보상을 주시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

“성령은 에슈아를 위해 피를 흘리고 명예를 드높인 숭고한 이들에게 갔던 물건입니다. 그 아이가 정녕 가문을 위한 일을 했습니까?”

“형님, 아이작은…….”

고엘은 화를 참는 릴라이의 말을 잘랐다.

“막말로 저 아이가 정말 훈장을 불태웠다 해도, 그건 교황가에 시비를 건 행동입니다. 교황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결과적으로는 에슈아를 위험하게 만든 행동입니다.”

“!”

“그뿐입니까? 저 아이가 보물고에서 해골왕의 육신을 가져왔다지만, 결국 먹었습니다. 그걸 빼내기 위해 수많은 약과 인력이 소모되어 결국 가문에 민폐가 아닙니까!”

많은 약과 인력?

약은 전부 아이작 앞으로 온 선물이었고, 인력은 릴라이랑 할배들이 끙아대기조로 있던 기억밖에 없는데.

아이작은 코를 후볐지만, 고엘은 꿋꿋했다.

“그런 아이에게 성령을 주신다니, 장남의 아이란 이유로 그러신 거라면 가주께서 너무 팔이 안으로 굽으신 것 같습니다. 에슈아의 명예를 생각하는 다른 후계들을 좀 더 생각해 주십시오.”

가주는 긍정했다.

“그래? 실수했구나.”

가주의 말에 고엘은 안도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듯했다.

“역시 아버님이라면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릴라이도 원로님들도, 어찌나 그리 완고해서 말을 안 듣는지…….”

“네가 실수했단 거다. 고엘 에슈아.”

엑.

고엘은 당황한 듯 가주를 보았다.

그러나 가주와 눈이 마주친 고엘은 흠칫 굳었다.

가주의 날카로운 푸른 눈에서 노여움이 느껴졌다.

“너는 교황가가 그딴 선물을 보내왔을 때 무얼 하고 있었느냐?”

“……!”

“감히 에슈아의 땅에서 싸움을 걸어온 놈들을 그냥 돌려보내려고 해?”

뭔가 잘못됐다. 가주의 분노를 느낀 고엘은 다급해졌다.

“그, 그건…! 교황가와 괜한 싸움이 붙으면 에슈아가 위험해지니……!”

가주의 눈빛은 더욱 살벌해졌다.

“조카를 깎아내리는 네놈이야말로 정녕 가문을 위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아니면 그따위 일에 휘청일 만큼 이 에슈아가 만만하게 보였느냐?”

“……!!”

고엘은 식은땀을 흘렸다.

“본인이 먹지 못한다고, 남의 밥그릇까지 깨버릴 생각을 해? 능력이 없으면 그 입이나 닥치고 있거라. 에슈아의 위험을 멋대로 판단한 네놈이 오히려 에슈아를 위험에 빠트리게 하고 있고, 정당한 포상을 받아야 할 아이에게 빌어먹을 민폐를 부리고 있구나.”

“…….”

고엘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짐승도 무리의 새끼는 보호하려는 법이다. 그런데 넌 뭐냐? 하물며 에슈아는 가장 작은 것들을 지키는 가문. 우리가 지켜줘야 할 가장 약한 존재가 도리어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이게 에슈아의 명예를 드높인 숭고한 일이 아니면 뭐냐?”

고엘은 삐질 땀만 흘렸고,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거거, 애 울겠네. 뭘 그러냐.

감질나니까 좀 더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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