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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43화 (43/272)

제43화. 이건 또 의외군 (3)

머리를 먹힌 성령은 미쳤냐는 듯이 발버둥을 쳤다.

[이 미친 애새끼 놈아!]

릴라이와 장로들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이미 전적이 있지 않은가!

이물질(해골왕 뼈)을 먹은 전적이!

진짜 성령을 삼켜도 이상하지 않아 솔직히 무섭다.

어른들의 표정이 필사적이 될 만했다.

응급 상황이었다.

“아이자앍! 그건 먹는 게 아니다! 아니 이번엔 진짜 먹으면 안 돼!”

“저 아이가 뼈다귀로는 만족 못 하고!”

“그것까지 먹으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성령은 소화가 안 될 수도 있어!”

[아니 이 미친 새끼들아, 지금 그게 문제냐! 어?!]

릴라이도 황급히 아이작을 붙잡았다.

아이작의 입에서 버둥거리는 성령의 다리가 꼭 개구리를 닮았다.

“착하지?! 숙부가 나중에 그 개구리보다 더 좋은 개구리로 잡아다 주마! 그러니 놓자!”

[시발 놈들이 이젠 개구리 취급을 해대네!]

어른들이 급히 떼어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가주가 막았다.

“알아서 돌아가게 냅둬.”

“하지만 아버지!”

릴라이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성령도 먹히긴 싫을 테니 성령계로 돌아가려고 하겠지.

하지만 어떻게 나온 왕급 성령인데. 이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 아닌가.

이대로면 왕급 성령과 계약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영영 사라지게 될…….

[뭐야! 왜 이거 공간이동이 안 되는데!]

“!”

성령은 텔레포트가 안 된다는 듯 발버둥을 쳤다.

[뭐지? 왜 이동이 안 되지?]

당연히 안 되시겠지.

아이작은 웃음을 지으면서 성령을 보았다.

그는 입에 문 성령의 몸에 해골왕의 마력을 불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마왕의 마력은 마치 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성령의 몸 곳곳에 엉겨 붙었다.

성력을 쓸 수 없게 방해, 즉 도망가지 못하게 마력으로 꽁꽁 묶은 것이다.

그제야 성령은 뭔가 잘못된 걸 느낀 모양이었다.

[이 미친! 아까부터 웬 마기가 느껴지나 했더니. 이 자식, 왜 마왕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건데!]

그러나 놈을 옭아맨 아이작의 입꼬리는 푸흡 올라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몸, 진짜 쓸모가 있었네?’

아이작이 이 몸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꾀했던 것이 무엇인가.

《신성 진영의 방어를 뚫고 암살한다!》

《신계에 무혈입성해서 독을 뿌린다!》

한마디로 성자의 몸이면 신성 진영 놈들의 수비도 뚫고 암살이 가능할 것이란 이론이었다.

마치 면역 체계 같은 것이다.

같은 세포인 성자에게 검문?

그딴 걸 할 리 없잖아.

그리고 마력은 신성 진영의 최고의 독!

하지만 정말 마력을 쑤셔 넣을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한 상태였는데.

‘이거 진짜 그냥 통과하는데?’

왕급 성령이 바보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이놈도 보호 성법을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 역시 강한 성력을 가졌기 때문인가.

뚫렸다!

보호 성법이!

조금만 놈의 파동에 맞춰서 손을 댔을 뿐인데, 이 정도로 쉽게 보호 성법을 뚫는 게 가능하다니!

‘아니면 이 몸뚱이를 축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경계를 안 하는 건가?’

물론 이놈은 성령이고, 신한테는 안 먹힐 수도 있지만 이놈은 왕급이었다.

[하급 신급에게 통한다면 신성 진영 대다수에게 먹힐 수 있다는 소리군요.]

그래. 마력으로 암살하기 작전, 먹히겠다.

뭐, 지금은 마법 2계위밖에 안 되니까, 암살은 무리고 일시적 마비 수준밖에 안 되겠지만.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하다.

왜?

[젠장! 마력 때문에 몸에 힘이…! 두드러기가… 크윽!]

‘성령들은 최고로 고결하고 정순한 존재들이거든.’

성령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아이작이 히죽거렸다.

‘이거지.’

깨끗하다는 건, 다른 말로 더럽히기 쉽다는 뜻!

그래, 한마디로 성령들은 마기에 취약했다!

그 순결함으로 남들의 정화는 끝내주게 잘해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에겐 쥐약!

몸이 너무 깨끗해도 문제가 되는 듯했다.

‘괜히 해골왕 근처로는 수백 킬로미터 안쪽으로도 안 오려 했던 게 아니지.’

[그건 그냥 주인님 얼굴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요.]

안 닥쳐? 내 얼굴이 어때서.

아무튼 해골왕의 마력으로 성령 하나 더럽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뭐, 이놈은 계약할 생각이 없는 듯하지만 알 게 뭐람?

‘힘만 찾으면 싫다고 해도 강제로 해줄게.’

그 보이지 않는 눈빛에 성령은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이, 일라이! 뭐 하고 있는 거냐! 얘 마력을 뿜어내잖아!]

그러나 가주는 시치미를 뚝 뗐다.

“별거 아냐. 애가 해골왕 육신을 먹어서 그래.”

[아 그렇… 뭐? 뭘 먹어!?]

“해골왕의 육신.”

이런 미친! 그건 또 어찌 먹었… 아니, 그게 아니라.

[야! 그럼 그걸 제일 먼저 말을 했어야지! 성령한테 마력이 얼마나 상극인데!]

“미안. 그거 깜빡했군.”

성령은 육두문자를 삼켰다.

[너! 왕급 성령을 다루면 너희 가문한테 좋으니까 일부러 말 안 한 거지?!]

“그럴 리 없잖아. 나도 일이 이리된 것에 마음이 아파.”

코를 후비는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할부지 거짓말쟁이.

하나도 안 미안한 표정인데.

[그럼 일단! 날 묶고 있는 이거부터 끊어봐! 네 항마의 성법이면 가능하잖아!]

그 말에 가주는 냉큼 뒤로 물러났다.

“미안하군. 해골왕의 기운은 너무 강력해서 우리로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

성령은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아니 다가갈 수 없다니, 어부가 뭔 생선을 무서워하는 소리야!

[니들 해골왕 퇴마하는 가문이잖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 뭔 소용인데!]

“미안하군. 내가 제일 실력이 떨어지는 가주라서.”

시발! 뭐라는 거야!

[역대 가주 중 가장 천재 소리 듣는 놈이 뭔 개 같은 아! 됐어! 죽여! 그냥 이 꼬맹이 죽이라고!]

“성직자한테 살생을 시키다니. 비탄을 금할 수 없군.”

[닥쳐! 너 살생, 개잘하잖아! 마족은 그냥 내장까지 뽑아 버리잖아! 특히 해골왕과 연관 되었다 하면 그냥 죽으로 갈아 버리잖아!]

“그건 마족이고. 손자를 죽이라니, 들은 것만으로 정신적 고통이 너무 크니 손해배상부터 받아야겠군.”

성령은 뒷목을 잡았다.

이게 성직자야, 양아치야!

그쯤 되자 장로들은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들도 에슈아의 사람이 왕급 성령과 계약을 하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마하니 가주가 저렇게 나올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원래라면 그냥 돌려보낼 분이 아니신가.”

“저런 농담을 싫어하시는 분이니.”

다른 아들들에게도 원칙에서 벗어난 일이면 들을 가치도 없다며 돌아서는 분이었다.

장로들은 치를 떠는 고엘을 힐끔 보았다.

고엘은 왕급 성령이 나타난 시점에서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있었다.

필시 깨달은 거겠지.

가주가 아이작에게 마음이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걸.

장로들도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에슈아는 현재 교황의 핏줄과 성녀의 핏줄로 후계 싸움을 하고 있었다.

‘가주 자리를 둔 싸움은 단순히 집안싸움이 아니다.’

5대 신앙이 대륙에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5대 가문의 후계 문제는 대륙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주목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성녀가 해골왕을 잡지 못해 에슈아가 신의 미움을 샀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시점이라는 거지.

-은발들은 역시 안 돼.

-어머나, 이번 대에 태어난 성녀 핏줄들도 전부 신의 저주를 받았다면서요?

-그래도 이번 대에 교황가의 핏줄이 섞였으니 좀 나아지겠죠.

-그럼 설마 교황가가 에슈아에 간섭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에이, 천하의 청인걸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교황 파벌이 유리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가주도 고민이 크시겠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겠죠. 그 정도로 자식들이 무력하고 줄줄이 죽어나가면.

그리고 신의 사랑을 받는 교황의 핏줄이야말로 청을 이끌 구원자라고 보고 있었건만.

‘그런데 하필 성녀의 핏줄인 아이작이 두각을 보일 줄이야.’

그래서 가주도 예뻐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장로들은 슬쩍 아이작을 보았다.

어쩌면 지지해야 할 대상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 정도면 아이작을 후계로 인정하시려고 하는 게 아니냐.”

릴라이는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아버지를 보며 땀을 흘렸다.

“아니… 아버지로서는 그냥 땡잡았다 싶으신 걸지도요.”

<청의 신앙>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항거(抗拒)의 신앙.

그리고 그런 청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주인 만큼, 뭐든 이용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핏줄까지도.

그 증거로 가주는 개구리처럼 발버둥 치는 성령을 보며 눈을 반짝일 뿐.

“뭐, 네놈이 먹힌 것도 신의 뜻일지도 모르지.”

[뭐, 인마?!]

“손자 놈의 몸에 머물러. 해골왕의 마력을 전부 정화하면 집에 돌려보내 주지.”

[시발, 이 또라이 에슈아야! 지금 누굴 공짜로 부려 먹으려고!]

“그럼 계속 그렇게 먹히고 있든가.”

[뭐가 어째?!]

“…….”

아니 그냥 상급 노동력, 그것도 공짜로 얻어서 기분이 좋은 걸지도.

릴라이는 지독하다는 듯 아버지를 보았다.

성령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이 싸이코들! 이래서 난 니들이 싫어! 니들이 개 같은 해골왕을 찾으려는 가문만 아니었어도 진작 교류를 끊었는데! 이게 어딜 봐서 약자를 위한 신앙이지?]

“니가 약자는 아니잖아.”

[뭐가 어째?!]

성령은 해골왕의 마력을 몹시 싫어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이 젖먹이를 이용해서 그 개 같은 해골왕을… 악!]

아이작은 이빨 없는 입으로 우적우적 성령을 씹었다.

그 개 같은 해골왕이 나다, 짜식아.

가주는 눈을 묘하게 반짝였다.

“정화에 얼마나 걸리겠나. 역시 한 100년쯤은 걸리겠지?”

[니 소망 말하지 말래? 이놈이 죽을 때까지 에슈아에 노역시킬 셈이냐?]

성령은 왕급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4일. 이 아이와 나를 가둬라.]

“!”

[난 보름만 있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갈 거다. 애초에 마력 정화? 해골왕의 모든 힘도 아니고, 손가락뼈 정도면 4일도 안 걸려!]

그 말에 아이작의 눈이 히죽 올라갔다.

‘4일?’

이거 필터기의 성능이 생각보다 더 좋네?

고작 4일만 노동시키고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데?

가주도 쯧 혀를 찼다.

“그런가.”

아쉽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4일 동안 인계에 머무는 것조차도 인간들에겐 대단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작이 뭔가 받아먹기라도 하면 이득인 일이었다.

하다못해 아이작의 성력이 아주 약간이라도 정화된다면 그것조차도 이득.

‘성력과 마력은 순수할수록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 있지.’

교황도 그를 위해 무려 10살부터 금욕하며 수행했다고 한다.

뭐, 신들이나 가능한 경지라 인간들 사이에선 꿈의 영역이나 다름없지만.

아무튼 누구보다 ‘순수함’에 집착하고 추구하는 금의 신앙 수준 정도만 되어도 본전.

성령을 향한 가주의 눈이 미묘하게 번득였다.

“너, 교황가에도 소환된 적 있지?”

[뭐, 걔네가 순수성을 연구할 때 불려가긴 했는데, 걱정 마라. 걔네는 짜증 나서 붙잡았어도 연을 끊었거든. 너희의 정보를 그쪽에 팔거나 하진 않아요.]

아니. 딱히 그걸 우려한 건 아니다만.

이놈은 힘이 원체 강하다 보니 어느 신앙에서도 탐냈을 성령이었다.

마음을 정한 가주가 외쳤다.

“동쪽 성의 문을 열어라. 성에 있는 모두를 내보내고, 정화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고엘과 장로는 흠칫 놀랐다.

“아버지! 동쪽 성은……!”

“가주님!”

어째서인지 그들이 당황하자, 가주가 차갑게 잘랐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

“……!”

가주의 말에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휘었다.

‘솔직히 가주 놈이 내 정체를 알아볼까 경계했었는데.’

하지만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걸까.

[의외군요. 전 오히려 그렇기에 주인님을 죽일 줄 알았는데요. 역시 마음 약하고 어리숙한 놈일까요?]

그러자 아이작이 큭 웃었다.

아니? 전혀.

내가 보기엔 저거 마족조차 이용할 독한 놈으로 보인다만.

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동쪽 성?

‘뭐 하는 성인지는 몰라도, 동쪽 성은 마력핵이 있는 별관 바로 옆 아닌가?’

[예, 맞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입니다!]

잘됐네.

이거 잘만 하면 눈치 안 보고 별관에 있는 마력핵도 전부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그 별관에 처박히고 싶었고.

[바로 그겁니다! 단번에 마법 계위를 성장시킬 수 있죠!]

‘그리고 그 마력의 불순물까지 정화할 수 있다면…….’

아이작이 어째서인지 성령을 보며 히죽 웃었다.

“릴라이.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 네가 남아서 성심껏 보살펴줘라.”

가주의 말에 성령이 크게 비웃었다.

[어이고, 날 붙잡으려 수를 써도 소용없어! 왕급이 이딴 꼬맹이한테 못 벗어날 것 같아? 4일만 지나면 두 번 다신 보지 말자, 이 또라이 소시오패스 놈들아!]

하지만 4일 뒤.

성령은 에슈아에서 나올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아이작의 입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10년이 지날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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