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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46화 (46/272)

제46화.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 (3)

“뭐? 사절단이 에슈아에 왔다고?!”

집사의 말에 아이작을 돌보던 릴라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직접 데리러 올 줄은 몰랐는데.”

안 그래도 10년 전부터 아이작에게 오는 모든 초대장을 거절하고 있던 릴라이였다.

심지어 교황가에서는 사제품을 줄 테니 본인들의 연회에 오라고도 했다. 뭐, 의도가 빤해서 괘씸했지만 말이다.

‘아이작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듣고 일부러 조롱하려고 부른 거지.’

실제로 주겠다고 한 사제품이 ‘명예 사제품’ 이었다.

평민 어린아이들에게 축제 때 이벤트용으로 주는 체험 선물이었다. 본래 성직 가문 아이들과는 거리가 먼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아이작이 앞으로 사제가 될 수 없다고 비웃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교황청 사절단?

집사는 걱정스럽게 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도련님을 모셔가려는 걸까요? 혹 나쁜 의도가 있다거나…….”

“아니, 이번에 오셨다는 그분들은 괜찮다. 내가 잘 아는 분들이야. 그분들은 사제를 기르는 장학사이자 스카우터지.”

“스카우터요?”

“그래. 마족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사제는 하나라도 귀하니까, 인재를 직접 찾아다니시는 거지. 믿을 만한 분들이다.”

사제는 교황청 소속 엘리트 사제와 지방 수도원의 수도자로 급이 나뉘었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건 장교급의 지위를 가지는 교황청 소속의 사제였다.

그리고 사실 추기경이면 부랑자도 단번에 교황청 사제로 만들 정도의 파워가 있지만, 원칙상 직계가족을 교황청 사제로 추천할 수 없다.

그걸 어기실 아버지도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 예. 그래서인지 일단 가주께서도 만나는 것에 동의하시긴 했지만…….”

“했지만?”

“이 미친 새끼야, 초콜릿 200킬로그램이랑 당과 100킬로그램은 도대체 뭐냐, 라고 하셨습니다.”

“……!”

릴라이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니, 잘 숨겼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지?

사실은 누군가가 자꾸 아버지의 이름으로 초콜릿과 과자를 주문했다. 받는 사람은 아이작으로!

그것도 수백 킬로그램의 양으로. 심지어 매일!

범인? 모른다!

‘설마 누군가가 아이작을 해하려고 한 것인가?’

그도 그럴 만한 게, 당과류는 타락물의 상징으로 유혹과 중독에 약한 미성년자에겐 좋지 않다.

그래서 사제들은 성인이 되기 전엔 절대로 입에 대지 않을 정도의 금기.

뭐, 진실은 매일 수도승 음식만 먹는 아이작이 빡쳐서 주문한 것이긴 하지만, 릴라이가 알 턱은 없다.

‘배달 온 걸 돌려보낼 수도 없고, 주변에 기부하기 전에 아이작이 매번 다 먹어치우니…….’

해골왕의 마력으로도 분노하고 계신데, 먹을 것 간수도 못 했다는 걸 알면 분명 아버지도 폭발하실 것이다.

아이작을 포기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영단을 던지고 가시는 걸 봐선 희망 줄을 놓진 않으신 것 같으니까.

“아, 아무튼 알았다. 사제님들은 내가 맞이하러 가겠다. 모처럼 아이작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기회니…….”

“아마 무리일 것 같다만?”

“형님!”

고엘은 혀를 차면서 릴라이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아이작에게 사제품을 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만, 그분들은 추천서를 써줄 것 같지 않구나. 설령 아이작이 실력을 보여도 말이지.”

아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 장학사님들은 제가 아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불순한 목적으로 이곳에 오셨을 리…….”

그런 릴라이의 눈빛에 고엘이 가엾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신 건 세 분이다. 장학사님 두 분과 한 분의 사제님이지.”

“!”

릴라이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그 한 분의 사제라는 게.

“그래. 교황가 파벌의 엘덴 사제님이시지.”

망했다.

릴라이는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이작을 추천하기 위해 온 두 명의 장학사보다 나머지 한 명이 더 상관이란 의미다.

그리고 모든 추천서는 반드시 그 사람을 거쳐 최종 승인자인 추기경들에게 향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교황가 파벌이다?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아무리 장학사 두 분이 추천서를 써주고 싶어도, 나머지 한 분이 막으면 휴지 조각이 된단 의미지. 그리고 교황가 파벌이 에슈아의 추천서를 잘도 통과시켜 주겠구나.”

릴라이는 드물게 이를 바드득 갈았다.

세상 참 거지 같군.

“그럼 추천서를 써줄 가능성도 없는데, 그 장관께서는 왜 몸소 여기에 오셨을까?”

“추천서를 빌미로 아이작의 모습을 확인하러 온 거겠군요.”

“역시 머리가 좋구나. 10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의 상황이 궁금한 거겠지.”

이쯤 말했으면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겠냐는 듯 고엘이 웃었다.

뭐, 고엘로서는 그저 아이작이 사제가 될 가능성을 잘라내려는 것뿐이지만, 운 좋게도 그게 에슈아의 명예와도 관련 있게 되었네?

릴라이는 폐부로부터 한숨을 끌어냈다.

“아이작을 사제님들과 못 만나게 해야겠군요.”

“그래, 어차피 슈리를 데리러 오실 겸 오시기도 한 거다. 사절단은 내가 상대할 테니 걱정 말고 아이작을…….”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대기하고 있던 시종 하나가 눈알을 굴렸다.

고엘은 건방지게 어딜 끼어드느냐는 듯 시종을 노려보았지만,

“…그,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뭐.”

“실은 아이작 도련님… 이미 사제님들을 만나러 가셨는데요!”

“…뭐?!”

“뭐?!”

릴라이와 고엘은 서로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그 아이가 언제, 아니 왜!”

“그게, 슈리 도련님이 아이작 도련님을 데려가셔서……!”

“뭐?!”

고엘은 현기증이 난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아들아,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아이작만 좋은 일을 시켜주려는 것인가!

* * *

그 무렵, 에슈아 동쪽 성.

교황청의 사제가 두 명의 장학사와 함께 별관을 걷고 있었다.

‘역시 동쪽 성은 경비가 없군.’

그는 아이작을 데려가기 위해 사절단으로 온 3명 중 1명이었다.

뭐, 2명의 장학사는 바보같이 가주에게 직접 갔다가, 성격 나쁜 가주한테 물까지 먹은 모양이다만.

‘뭐, 나한테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두 장학사는 순수하게 아이작을 데려가는 게 목적이겠지만, 함께 온 남자, 엘덴은 달랐다.

그는 교황청 신입들의 인사권을 가진 간부로, 일부러 이곳 에슈아까지 직접 왔다.

왜?

소문으로 무성한 아이작 에슈아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그래서 그 모습을 교황가에 전하기 위해?

아니, 그딴 이유가 아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차피 그는 아이작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분명 해골왕의 저주를 받고, 성법은 쓸 수 없다 했던가.’

그리고 그 사실을 들은 그가 진짜 에슈아 공작령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성령’.

그래, 성령이었다!

‘세상에, 왕급 성령이라니!’

무려 추기경과 교황 성하께서만, 그것도 일회성 계약으로나 불러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그걸 종속 계약으로 불러내?

심지어 뭐?

하필 불러낸 게 항마의 성령?!

‘그 전설을 눈으로 보게 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5대 가문 전원이 눈에 불을 켤 일이었다. 그뿐인가? 에슈아의 명예와 위신이 단번에 바뀔 일이었다.

‘에슈아에서는 그만한 걸 일부러 비밀로 하고 있는 듯하지만, 거의 확실하다.’

아이작 에슈아가 머문다는 동쪽 성을 조사해 볼수록 더욱 확실해졌다.

‘이건 최소 최상급 이상의 성령이 있다는 증거.’

물론 엘덴이 일련의 사실만으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성령을 가르치는 교수이기에 평소처럼 긁어모은 소문들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 뿐.

‘검은 머리를 가진 항마의 불의 성령이라니.’

성서에서는 이름이 지워졌지만, 몇몇 역사서에는 아직 남아 있는 강력한 존재였다.

《신계의 결계를 담당하는 자》

이유는 몰라도 온갖 성령을 수집하고 있는 교황가가 탐내지 않을 리가 없다.

만약 그걸 훔쳐서 교황가에 가져간다면?

‘좋은 자리를 받을 수 있지.’

그의 목표는 교황가에 잘 보여서 한자리를 받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요직에 있는 놈들의 뒤치다꺼리나 할 순 없었으니까.

실력만 놓고 보면 자신이 더 우월하건만.

‘고작 신입 사제들의 교육이라니, 말도 안 되지.’

그래서 엘덴은 성령을 무력화시켜 준다는 풀을 구해왔다.

하물며 신성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귀한 물건이라 에슈아 사람한테도 들키지 않을 만한 좋은 풀.

그리고 작업도 이미 끝내놓았다.

‘설마 이만한 효력의 풀이 존재하는 줄은 몰랐다만.’

그리고 그 풀이 성법도 못 쓰는 아이작을 만난다?

그러면 성령의 힘은 약해지고, 성령이 눌러놓고 있는 해골왕 힘은 더욱 폭주! 저택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겠지.

‘안 그래도 해골왕의 마력 때문에 매일 성이 터져 나간다고 했으니 더욱 잘됐군!’

그 혼란을 이용해 무력화된 왕급 성령을 빼돌린다. 그러니 어서 폭주해!

‘청의 가주가 올 때쯤이면 이미 일은 다 끝나 있을 거다.’

그렇게 아이작을 만나러 온 엘덴은 눈을 번득…이려고 했었다.

“아, 아이작? 인사드려라. 교황청에서 온 사제님들이시다.”

자신들을 응접실로 안내한 슈리 에슈아가 어째서인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뭐지? 왜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온 이 아이는 이리도 눈치를 보는 거지?

“나, 낡은 건물에 모셔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동생이 동쪽 성이 아니면 낯을 많이 가려서요. 다른 곳은 아이작의 물건으로 좀 더럽답니다.”

“어… 아니. 괜찮습니다, 에슈아. 아니 여기선 공자라고 해야겠군요.”

아카데미에서도 평생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모범생 아인데.

뭐지? 왜 꼭 이 건물이 폭발할 것처럼 주변을 살피는 거지?

“그! 동생의 모습에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어. 아니…….”

놀라긴 했지. 교황가의 사자로부터 직접 듣긴 했지만, 정말 젖먹이의 모습일 줄이야.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오히려 저런 모습이기에 성령을 훔칠 계획을 준비한 것이기도 하니까. 또 저런 애이기에 힘을 제어하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단지…….

“따야.”

‘왜지?’

왜 자신을 꼬나보는 거지?

장학사들은 아이작을 보고 소문의 주인공이시냐며 감탄했지만, 엘덴은 달랐다.

‘이 아이, 뭔가 이상하다.’

어째 아이… 아니, 성직 가문의 아이치고는 눈초리가 심하게 썩어 있다. 신앙심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눈이 썩어 있는 새끼는 큭큭 웃고 있었다.

‘이놈들이 내 추천서를 써주러 온 놈들인가.’

몸의 성장이나 성법 사용이야 지금도 마음대로 가능하지만, 사제품만은 아이작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즉 이놈들이 필요하단 의미다.

물론 아이작도 슈리에게 들었다.

-그냥 아카데미 들어가서 6년 기다려. 장학사들이 추천서를 써주려 해도 쉽게 통과하진 못할 거야.

-왜?

-듣자 하니 추천서를 통과시키는 중간 간부가 교황의 파벌인가 봐. 뭔 추천서든 에슈아면 통과 안 시킬걸?

-아. 그러니까 중간 간부 놈이 가려먹는다 이거지?

-그래. 그리고 그 간부는 오늘 온 3명 중 1명, 엘덴 교수지. 왜 교황가 파벌이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만.

-그럼 그 승인자를 없애면 계류가 안 되겠네?

-…네?

-음. 쪼아.

-아니, 잠깐. 뭐가 좋은데?

그리고 굳이 2주 뒤 만나는 황녀를 구하는 게 아니라, 이걸 구하면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지겠네?

‘목격자 겸 추천서 작성자 2명. 구조 대상자 1명.’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휘어졌다.

어쨌든 사제는 사람을 구하기만 하면 될 수 있는 거 맞지?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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