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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50화 (50/272)

제50화. 시급하다 (3)

“뭐? 아이작 도련님을 아직도 못 찾았다고?”

에슈아 성이 발칵 뒤집혔다.

다름 아닌 편지 하나 때문이었다.

-시벌 놈들아, 찾지 마라.

=날 찾지 마시오.

알록달록 색연필로 쓴 것일까.

애가 쓴 듯 삐뚤빼뚤한데, 획과 철자는 묘하게 너무 정확한 글씨.

그러면서도 마치 꼰… 아니 고집스러운 노인네가 꾹꾹 눌러 쓴 듯한 글씨체.

결국 아이작의 가출 소식은 가주에게까지 알려졌다. 편지를 보는 가주는 미간을 좁혔다.

“정말 아이작이 이것만 놓고 사라졌단 거냐?”

심지어 고치기 전의 메시지가 매우 신경 쓰이긴 하다만?

가주의 질문에 불려온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고, 아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침에 깨워 드리려고 와보니, 침대에 이것만 놓고 사라지셨습니다.”

“아이작만?”

혹시 납치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자 릴라이가 끼어들었다.

“아이작에겐 제가 유괴 방지 성법을 걸어 두었습니다. 그 아이가 늘 품고 다니는 황금 딸랑이에요. 납치라면 바로 반응해서 제가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늘 쓰던 가방만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가주는 이젠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 듯했다.

“그럼 그게 진짜 지 발… 스스로 나갔다고?”

사제품을 받으려고? 정말?

한자리에 모인 장로와 원로들은 한순간에 멘붕이 온 듯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 가방 치우자고 진작 말했잖습니까! 맨날 원로님들한테 삥 뜯어가던 가방인데!”

“지금 그딴 게 문제냐?! 니들이야 말로 어떻게 아무도 눈치를 못 챌 수가 있어! 그러고도 니들이 청의 아이들을 가르쳐?”

“아니, 사부님들! 왜 저희한테 그러십니까?! 사부님들은 맨날 아이작한테 홀라당 넘어가 당과나 물려 주셨으면서! 릴라이, 추적은 할 수 없느냐?”

“그게, 추적 성법은 안 걸어 뒀습니다. 평소라면 해골왕의 기운을 쫓으면 금방 찾을 수 있는데…….”

“허어!”

아이작이 해골왕의 마력을 제어하게 된 게 이럴 때는 악재로 느껴질 줄이야!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예끼, 이놈들아! 백금발 아이가 흔한 줄 아느냐?! 만약 노예상이나 흉악범들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아니, 지금 그게 중합니까?! 아이작이 가져간 물건 중엔 에슈아의 땅문서도 있습니다!”

“!”

도대체 성녀님의 방에 있던 걸 어떻게 빼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작의 짓인 건 확실하다. 범인이란 걸 숨길 생각도 없는지, 젖먹이의 손, 발바닥 자국이 그 증거.

“그 땅문서가 만약 다른 가문이나 무뢰배들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아니, 이 미친 새끼들이! 성직자 된 놈들이 지금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해?!”

가주는 눈을 감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땅문서도, 노예상도 아냐! 차라리 그쪽이면 처리하기 쉽다.

중요한 건 그게 사제품을 받으려고 가출을 했다는 거지!

‘그 녀석은 절대 에슈아를 나가면 안 되는 것을.’

그 인성과 신앙심을 들켜봐라.

단번에 이단 심문관에게 끌려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앙심을 파악하는 놈들이다.’

애초에 만나지 못하게 해야 했다. 어떻게든 에슈아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러자 릴라이가 걱정 말라는 듯 필사적으로 눈을 반짝였다.

“어른신들! 혹시 모를 위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이작에게 여러 가지 성법을 걸어 뒀습니다! <깊은 수면>, <잘 먹기>, <노래하기>, <날붙이에 안 다치기>, <길 안 잃어버리기>, <독약 안 먹기>, <응아 잘하기>, <잘 도망치기>, <모르는 사람 안 쫓아가기>…….”

“아니이! 그딴 건 다 걸어놓고 왜 <추적> 성법만 안 걸어놨는데! 왜!”

“왜긴요! 애 인권은 지켜 주셔야죠!”

결국 릴라이까지 실랑이에 참전하자 가주는 조용히 뒷목을 잡았다. 뒷목이 쑤시는 게 오래는 못 살 것 같다.

“아버지!”

“가주!”

“가주님!”

“그냥 셋 다 꺼져라.”

가주는 무서운 눈빛으로 대기 중인 기사들에게 말했다.

“에슈아에 있는 모든 기사들과 성령을 풀어라.”

“!”

“아직 검문소에서 아이를 봤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에슈아 공작령의 블루라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에슈아의 인장이 필요하다. 에슈아 밖으로는 못 나가고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찾아서 당장 내 눈앞에 끌고 와. 시급하다.”

“명!”

“그리고.”

“예!”

“…성녀의 물건도 털렸다. 잊지 말고 젖먹이랑 같이 가져와.”

“…예, 옙!”

가주의 신음이 더욱 깊어졌다.

* * *

아이작 에슈아.

아카데미에서 아이작의 이름은 상당히 유명했다. 뭐, 에슈아 사람이기에 유명한 건 당연하고.

-뭐? 슈리, 네가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가 동생한테 도망치기 위해서였다고?

-심지어 그 동생이란 게 젖먹이? 푸핫! 천하의 슈리 에슈아도 다 죽었구만!

-7학년을 대표하는 학년장의 이름이 죽는다, 죽어. 5살 차이 나는 동생? 어이구, 무서워라!

같은 사제 졸업반 놈들이 그렇게 깔깔 포복절도할 때면 슈리는 억울했다.

하지만 동기들은 겁도 없이 이렇게 말했지.

-그 동생 보고 싶다. 꼭 한번 보여줘라.

-아니지. 에슈아 남자면 어차피 사제가 될 거 아냐? 우리 후배로 들어오겠네.

-오, 그럼 우리가 교육시켜 줄게. 윗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지.

-맞아, 이 바닥이 얼마나 예절이 중요한데. 패면 다 교정되더라.

…교정은 니들이 되겠지.

‘뭐 이해는 한다.’

마주하기 전까지는 본인들의 미래를 모르겠지.

그리고 나는 현재도 모르겠구나.

“아악!!”

슈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기숙사 전체에 울릴 정도였다. 복도에 있던 학생들은 깜짝 놀라 기숙사 방문을 열었다.

“슈리! 무슨 일이냐!”

“또 적의 신앙 놈이 저주의 편지를 처넣었냐!”

그러나 슈리는 문이 열리기 전, 재빨리 쾅 닫아버렸다.

심지어 잠갔다.

밖에서는 문을 두드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쾅쾅!

탕!

“야! 왜 그래! 뭔 일이야!”

“아니, 야! 이거 잠그면 우리가 기숙사에 못 들어가잖아! 야! 슈리 에슈아! 안 나와?”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지만, 슈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저놈 새끼들이 아니었다!

주저앉아 있는 슈리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가방을 보았다.

보고.

또다시 봐도.

가방에서 꾸물꾸물 나오는 건 젖먹이…….

“아씨, 야! 빤니 먹을 거 안 가져오냐!”

시X…….

다시 봐도 젖먹이네.

슈리는 얼굴을 짚었다.

‘저게 왜 여기에 있어!’

결국 정신이 든 슈리가 편지지를 찾았다. 저게 왜 여기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씨, 이거 빨리 반송해야… 푸억!”

슈리의 얼굴에 딸랑이를 냅다 던진 아이작이 눈썹을 치켜떴다.

“따람을 택배로 배송할 뗌이냐!”

지금 그게 문제냐!

슈리는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을 뒤로한 채 아이작을 가방에서 꺼냈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수도 아냐?”

“그래, 새끼야! 여기 수도… 어?”

“아냐?”

“…아, 아니, 맞는데.”

“째대로 왔네.”

아이작의 답에 슈리는 기가 막힌 듯 보았다.

그러면 이 자식, 처음부터 일부러 가방에 숨어 있었던 거야?

“아니, 그 전에! 언제 숨어 있었던 거야!”

“니놈이 마차에 탈 때.”

“…그럼 안에 있는 짐은?”

“당연 마차 밖으로.”

“…마차 밖이라 하면?”

“바보냐? 수풀 어딘가겠찌.”

오, 주여.

이 천ㅅ…악마의 얼굴을 한 사탄 새끼를 창밖으로 던지는 걸 부디 허락해 주소서.

슈리는 얼굴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뻔뻔했다.

“에슈아 공작령을 벗어나려면 에슈아의 인장이 필요하자나? 넌 통행증이 있고, 네 짐을 검문하진 않을 테니 이 방법이 최고지.”

그 말에 슈리는 자신의 실책이라는 듯 이마를 짚었다.

‘젠장, 눈치챘어야 했다.’

학생들의 물건을 옮겨주는 종들이 가방을 들 때 놀랐던 것을 보고.

-컥, 보기와 다르게 꽤 무겁군요.

-네놈은 그것 하나 똑바로 못 옮기나?

-죄, 죄송합니다!

-품삯이 모자라면 말을 해.

-그, 그게 아니라… 헉, 감사합니다! 공자님!

젠장. 애가 하나 들어갔으니 무거울 만도 하지!

“그래서 여긴 왜 온 거야?!”

“뭐여. 벌써 잊었냐? 사제품 받으러 왔다고 했짜나.”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이 골칫덩이가 진짜 사제품을 받으려고 온 건가?

‘가뜩이나 에슈아를 비웃고 있는데!’

나이저 세페트와 키나 베리트의 말을 떠올린 슈리는 이를 갈았다. 아이작의 지금 모습을 보면 얼마나 더 조롱하려 들지 상상도 안 갔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 그건 둘째 문제였다.

오히려 이놈의 실력을 보면 다들 입을 닥치게 되겠지. 사제품을 명예로 샀네, 동정이네 어쩌네, 그딴 말은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하물며 아이작이 왕급 항마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에슈아와 장학사 정도밖에 모르는 일. 그것까지 알게 되면 난리가 나겠지.

그래서 그 점에서는 오히려 좋다지만, 이 새끼가 여기서 뭔 일을 벌일지가 무섭다!

괜히 할아버지께서 이놈을 성인 때까지 영지에 가두려는 게 아닌데!

‘사제품 수여는 바로 내일.’

무엇보다 내일 있을 서품식엔 교황도 온다.

만약 거기서 아이작의 신앙심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혹시 몰라서.”

“뭘 몰라?”

“사제품 명딴에 안 올라갔을 수도 있으니까, 확실하게 인명 구조를 해두려고.”

“이…인… 뭐?”

“학교에 황녀가 있다고 들었거든. 그리고 이만한 인원수까지 합쳐지면 확실하게 인정받지 않을까? 적당히 학교를 폭발시켜서…….”

이 미친놈아!

그건 이미 구조가 아니라 테러야!

“릴라이가 자꾸 성인이 되어야 사제가 될 수 있다니까, 쭈천서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해서. 확실하게 해뚜려고. 역시 사람이 아닌 성령을 구해서 자격 부족인가…….”

아니! 안 부족해!

사실 문제 전혀 없어!

‘그냥 거짓말을 했을 뿐인데!’

젠장, 숙부니임! 역시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됐어요!

아니, 애초에 서품식에 이 젖먹이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안 그래도 벼르고 있을 텐데.

가문이 조롱당할 그 모습이 생생해진 슈리는 새하얗게 질려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조용히 돌아가! 시종을 붙여줄 테니까!”

“내가 왜?”

“안 가면 신고할 거… 푸컥!”

“에쓔아에 알리면 디진다.”

“!”

딸랑이로 슈리의 얼굴을 후려친 아이작이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말 안 해도 디진다.”

“…그, 뭐? 왜!”

“왜? 왜에??? 지금 왜라고 했어?”

딸랑이를 들고 있는 아이작의 눈이 섬뜩하게 번득였다.

그 붉은 안광이 맹수, 아니 마왕에 가까워서 슈리는 순간 딸꾹질을 할 뻔했다.

“저, 저기?”

아이작은 우득우득 목을 꺾었다.

“너는, 내 뿡뿡이라는 놈이 아주 맞고만 다니지, 디질래?”

“뭐? 내가 맞긴 뭘 맞았다고! 푸컥!”

“별것도 아닌 꼬맹이들한테 쪼롱당하고! 말로 처맞은 것도 처맞은 거지! 니가 평소에 행동거지를 어찌하고 다니면 시종 이야기나 나오냐고, 때끼야! 심지어 조롱받은 게 교황가? 아오, 그냥 디져!”

“푸헉!”

결국 황금 딸랑이로 연타를 맞은 슈리는 쓰러졌다.

도대체 이 꼬맹이는 왜 교황가 이야기만 나오면 교황청이 있는 곳으로 침을 뱉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씩씩거리는 아이작은 진지했다. 사실 그는 가방에 있는 동안 섀도우 리치를 슈리에게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간 마력을 키우며 섀도우 리치를 성장시켰기에 섀도우 리치의 능력으로 무려 밀청.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도청까지도 가능해졌단 이야기다.

그러니 슈리에게 시비 거는 놈들의 이야기부터 대충 에슈아가 받는 취급까지 당연히 들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래는 방 안에서 룸서비스를 시키며 얌전히 몸을 키우고 있을 생각이었건만.

“개때끼들. 감히 에쓔아를 농락해?”

그 말에 슈리는 내심 놀란 듯 아이작을 보았다.

이 자식, 그래도 철들었나? 에슈아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때면 에슈아 죽으라고 그렇게 펄펄 날뛰더니.

-따야랴야얅!!!(이 새끼들은 날 천하의 개호로 쓰레기 도둑놈으로 만드네! 훔쳐간 지갑은 1,082개가 아니라 1,081개라고! 찌발!)

“그래. 네놈이 뭔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에슈아에 충정을 느끼다니. 숙부께서 들으시면 몹시 기뻐하실…….”

“에쓔아는 욕해도 내가 욕하고, 멸망시켜도 내가 멸망시켜! 찌들이 뭔데 없어지네 마네 지랄이야? 에쓔아는 내가 불살라버릴 거야!”

…오, 주여.

역시 이 새끼는 갱생이 불가능한가 봅니다.

“아무튼, 가자.”

슈리는 사나운 눈매를 찌푸렸다.

“어딜.”

“너 건든 새끼들 조지러.”

아이작이 아장아장 근엄하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슈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미치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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