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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53화 (53/272)

제53화. 변신 (3)

“세상에…….”

지금껏 그 어떤 서품식에서도 없었던 큰 술렁거림이었다.

서품식에 참여한 사제들도, 객빈들도 아이작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소문이 돌지 않았던가.

-명예 높은 에슈아가 드디어 망해가고 있다죠?

쉬쉬하고 있지만, 여아는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씨가 마르고 남아들은 점점 약해지고 요절하고. 그야말로 신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신을 따르는 제국에서 그 말이 어떤 의미겠는가.

-신들께서 이유 없이 미워하시겠어요?

-그래요. 미워할 짓을 했겠지.

-성녀가 저지르면 안 될 죄를 지었거나.

-외도 같은 거요? 풉.

몰락의 의미도 있지만, 누구보다 신실한 가문으로서 입에 담기도 힘든 모멸과 수치다.

하물며 그들이 그렇게 가십을 즐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모두 최전방에서 싸우는 청의 피로 쌓아진 평화 덕인데 말이다.

아무튼 현재의 청의 가주가 압도적으로 강해서 다들 찍소리 못 하고 입 닥치고 있을 뿐이지.

다른 추기경들도 이번 대의 청의 가주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판이었다.

‘지금 가주만 죽으면 에슈아를 먹을 수 있다.’

명예가 드높은 청의 신앙은 여러모로 탐스러운 먹이였다.

누구에겐 청의 병력과 비전이, 누구에겐 명성과 재물이, 누구에겐 그저 에슈아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은 앙심이. 이 모든 것들이 쌓인 빛깔 좋은 먹이 말이다.

그리고 지금 에슈아엔 후계자가 없다.

가모인 멜리사?

성녀 같은 성인들은 가문(세속)의 일에 직접 개입할 수 없었고, 자식인 7남들에겐 다양한 문제가 있다.

괜히, 다른 추기경들은 다 세대가 바뀌었는데 혼자만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 게 아니다.

-그나마 손주들이 떡잎이 괜찮긴 한데, 지금 가주랑 비교하면 아쉽지.

-애초에 손주들이라고 저주를 피해가겠어?

한마디로 누가 청을 먹게 될 것 같냐는 이야기가 은밀하게 떠도는 판이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저런 모습의 아이작?

‘세상에, 자라지 못하는 저주는 최악 등급 저주 아니었어?’

‘그걸 이겨냈다고?’

‘에슈아에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건가?’

릴라이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혀, 형님, 보이십니까.”

릴라이는 몸을 떨고 있었지만, 고엘은 먹던 샌드위치에서 두 동강 난 바퀴벌레를 발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보인다. 저게 가출하고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화장실에 있었구나. 그리고 배탈이 나서 변기통에 처박혀 있었어.”

“예?! 그게 아니죠! 저 아이가 자랐어요. 무려 제가 만들어준 사제복을 입고 나타났다구요!”

“어어. 그래, 걱정 말아라. 곧 설사하러 다시 화장실에 처박히러 갈 거다. 옷에 똥물이나 안 튀면 좋겠구나. 독이 든 새 기저귀를 사줘야겠어.”

“형님!”

고엘은 끝까지 안 보이는 척 현실을 부정했지만, 솔직히 이쯤 되니 그조차도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자라면 보통이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인정했다.

아이작은 외적으로 잘난 역대 에슈아 남아 중에서도 제일 잘났다.

안 그래도 기묘한 백금발에, 인간들 사이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붉은 보석빛 눈의 조화는 신기하고 영묘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성자처럼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라니?

‘저렇게도 웃을 수 있는 애였나?’

웃는 모습이 저렇게 소름이 돋는 건 처음 본다.

덧붙여 아버지가 저런 얼굴이 된 것도 처음 본다.

“각하. 저런 멋진 손자분을 왜 지금껏 숨기셨습니까!”

“…뭔데, 저거.”

“예?”

“해골왕 이 새끼. 성을 박살 내는 걸로는 성이 안 차서 이젠 하다 하다 애 정신까지 조종하고 있는 거냐??”

“…예, 예??”

그쯤 되자 교황가와 그 파벌들은 속닥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아이작이 정상적인 아이였으면, 그냥 재능이 있는 아이 수준이었으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도 않지.

확실하게 저주를 받아서 자라지 못했는데, 성장했다고?

그 증거로 지켜보던 다른 신앙의 사제들이 툭 한마디 내뱉었다.

“에슈아, 아직 살아 있네.”

“!”

키나 베리트는 놀라서 주변에서 속삭이는 기사들과 사제들을 보았다.

“누구야? 에슈아가 신한테 미움받았다고 말한 게.”

“저 모습이야말로 신에게 진정 사랑받는 모습이 아닌가.”

키나 베리트는 입술을 깨물었고, 화제의 주인공은 푸헷푸헤헿 처웃고 있었다.

그래! 그렇지!

신에게 X나게 사랑받고 있지!

칭찬해! 어서 더 칭찬하라고! 어서 성자는 나라고 해!

이래 봬도 아이작은 웃음을 참고 있는 거였다.

‘멍청한 성직자 놈들!’

시발! 하, 그래. 그래도 더럽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몸을 늘리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뼈가 갈리는 것 같았다.

‘릴라이 놈, 하필 또 옷을 크게 만들어 가지고.’

제 딴엔 아이작이 언젠가 저주가 풀려 사제복을 입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건지, 소망한 건지.

지난 10년 동안 굳이 매년 사제복을 맞춰와서 남들의 비웃음을 샀다.

뭐, 그래도 정성이 기특해서 나름 10년간의 보답 겸 일부러 교황청의 것이 아닌 릴라이의 것을 입어줬다.

그리고 사이즈가 너무 안 맞으면 볼품없잖아?

그래서 몸을 옷에 맞춘 건 좋은데…….

-시발! 뭐야, 왜 아직도 헐렁거려!

이 새끼가 조카의 미래 키를 얼마나 과대평가를 한 건지!

원래 신체 나이에서 3살 정도나 더 키워야 했다. 그래서 예상보다 팔다리가 더 길어져서 관절이 뒤지게 욱신거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잘한 듯?’

사제품을 받는 놈들은 16살이라, 성인식까지 2년이 남은 상태였다. 당연히 덩치들이 꽤 크다.

‘너무 어리게 보여도 꿀려 보이잖아.’

실제로 몸을 더 늘린 덕분에 한 방 더 먹여준 듯한 느낌이다.

그 증거로 적의 공작가인 나이저 세페트와 그 일행의 표정이 볼만했다. 보나 마나 젖먹이가 들어올 줄 알고 실컷 조롱할 생각이었겠지.

[뭐, 미의 여신이 보쌈해갈 것 같은 모습이니 감히 말도 못 꺼내겠죠.]

얼씨구, 정작 그 미의 신은 나를 벌레 취급하며 싫어한다만?

아. 생각해보니 이 몸을 정성 들여 만든 것도 그 신일 테니 나중에 볼만하겠군.

‘아무튼 아까도 말했듯이 여기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오지 마라. 힘 완전 잠가. 1mg 도 안 돼.’

[넵.]

이곳에 있는 놈들은 보통의 성직자들이 아니니까.

아이작의 번득이는 눈이 상석을 향했다. 거기엔 아이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추기경들, 그리고 교황이 있었다.

“좀 놀랐나 본데.”

아이작은 처음으로 교황과 마주했다.

얼핏 예순이 넘은 듯하지만, 신묘한 분위기 탓에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리고 교황가 특유의 저 눈빛.

그걸 본 아이작의 천사 같은 미소가 묘하게 꿈틀거렸다.

‘아씨, 왜 지금까지 싸운 교황의 얼굴이 다 있어.’

역시 교황가 핏줄 어디 안 간다.

하물며 세대가 여럿 지났을 텐데 수상할 정도로 기운이 똑같지 않은가. 게다가 아이작이 하필 가장 싫어하는 특정 세대의 놈까지 보였다.

아이작의 눈매가 사탄처럼 변했다.

‘역시 여기서 목을 따버려?’

아이작의 손이, 유일한 무기인 주머니 속 황금 딸랑이로 슥 향했다.

그 손길에 가장 기겁한 건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퍽!

쾅!

와장창!

으악!

갑자기 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아수라장에 아이작은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사람들도 당황해서 동시에 난 소리의 근원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릴라이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투명 신수로 아이작의 바짓자락을 붙잡았고-

“…….”

청의 가주는 손짓으로 일부러 본인 테이블의 다리를 두 동강 내버리고-

쿵!

“꺄악! 각하. 괜찮으세요!”

“테이블이 갑자기!”

에슈아의 원로는 본인의 검을 내던지고-

“악, 검날이!”

“아이쿠, 늙으니 손에 힘이 없어서.”

에슈아 장로는 천장과 연결된 거대한 천막의 끈을 툭 잘라버리고-

“으악! 천막이, 어풉!”

슈리는 단추에 성력을 실어 아이작의 허리에 던진 뒤, 현기증이 난 듯 일부러 쓰러졌고-

“슈리이!”

고엘은 의식 도구를 들고 지나가던 사제의 발을 걸어 일부러 넘어트렸다.

“으악! 푸하우으악!”

“……?”

가족들의 소동에 아이작의 표정이 이상해질 만했다.

“……??”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벌떡 일어난 슈리가 아이작의 뒤로 슥 나타났다.

그러곤 허리끈을 다시 묶어주는 척, 주머니에서 딸랑이를 꺼내 갔다.

“이건 압수다.”

“…….”

…이 시바 놈들이?

아이작은 핏대를 세웠지만, 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부가 잠시 소란스러워졌지만, 금방 가라앉았다.

‘저 새끼들 나중에 다 뒤졌어.’

얼마나 딸랑이를 사람 면상에 던지고 다녔으면, 그 낌새만으로 저리 나올까 싶다만. 아이작은 신경 쓰지 않고 교황 앞으로 향했다.

이어서 다른 아이들도 호명되었다. 모두가 열을 맞춰서 자리에 서자, 주교가 성수 그릇을 가져왔다.

그 그릇이 나오니 서품식에 온 모두의 눈빛이 바뀌었다.

“신께 인사드리는 의식을 치르겠습니다.”

한마디로 궁합 테스트. 이 서품식에서 가장 중요한 본론이며,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좋은 것이었다.

‘어울리는 신을 알아보는 거라 들었다만.’

쉽게 말하자면 어떤 신에게 관심을 받는지, 어떤 신과 잘 어울리는지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신 중에서 어느 신에게 간택을 받는지는 서품식의 초관심사였다.

물론 에슈아는 다른 의미로 조마조마한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슈리야 뭐, 걱정 없다지만.

“아이작한테… 맞는 신이 있긴 할까요?”

신앙심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과연 반응하는 신이 있을까?

“에잉, 아무리 그래도 저 모양이어도 청의 사람이다. 청의 신께서 붙겠지.”

“…아버지께서는 지금 성수 그릇 깰 준비 하고 계신데요?”

거짓말 아니고, 여차하면 진짜 깰 기세인데? 이상한 게 나올까 봐 눈에 불을 켜고 계신데?

그러자 고엘이 혀를 찼다.

“품위 없이 불안해하지 마라. 걱정 안 해도 5대 공작가는 예외 없이 해당 가문의 신이 붙지 않느냐. 해골왕의 저주도 이겨낸 몸이다. 아이작도 에슈아 사람이니 문제없겠지.”

“…….”

아니, 고엘 형님이 좋게 말하니까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데?!

릴라이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고, 장로는 끙 외안경을 올렸다.

“또 모른다…. 옛날에 흑의 가문 아이가 사제품을 받을 때, 하필 다른 주신이 점을 찍어서 싸움이 났었다. 그 아이를 양자로 보내라고.”

“뭐, 그 애는 사생아였잖습니까. 아이작하고는 연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서 나선 아이들이 결과를 보며 기뻐하거나 아쉬워했다.

“슈리 에슈아. 빛의 신.”

“오! 무려 청의 주신이 직접 붙으시다니!”

“여윽시 우리 아들!”

교황이 슈리의 팔에 인장을 내려주었다. 그게 있으면 이제 정식으로 신과 계약을 할 수 있다.

슈리가 손을 움켜쥐면서 다음 순서인 아이작을 걱정하듯 보았다.

‘아무 신도 안 붙으면 어떡하냐.’

인성 테스트 결과만 보면 붙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자신은 교황가의 신이 아니라 한시름 놨다. 솔직히 이 이상 에슈아에서 외지인 취급 받기는 싫었으니까.

“아이작 에슈아.”

아이작이 나서자 연회장의 공기가 바로 바뀐 게 느껴졌다.

키나 베리트도 관심 있게 보았다.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술렁거렸다.

“누가 붙을까?”

“설마 최초로 주신이 동시에 붙는다거나!”

고엘은 이미 끝났다는 듯 허 웃었다.

‘슈리가 이미 제일 좋은 걸 뽑았는데, 더 좋은 걸 뽑을 수가 있겠어?’

다들 어떤 신의 화답이 있을까,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가주는 여차하면 결과까지 조작할 기세다.

하지만 손가락을 슥 내미는 아이작은 심드렁했다.

‘아. 청이 섬기는 신이 그 빛의 신이었냐?’

그러니까 청의 애들이 그 모양 그 꼴이지.

그리고 빛의 신은 뭐,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청렴결백의 신답게 빌어먹을 신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의적인 신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니 그쪽이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뭐, 어떤 축복이냐가 중요하다만.’

이왕이면 생명력이나 전투력이 강한 놈이 좋겠는데.

그때, 주교가 성력으로 아이작의 손가락을 살짝 찔렀다. 아이작이 손가락에 맺힌 피를 성수 그릇에 떨어트리는 그 순간.

번쩍!

붉은 피가 깨끗한 성수에 흩어졌다. 피는 살아서 움직이듯 어떤 형태를 만들어갔다. 궁합이 맞는 신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침내 피가 문양을 이루었을 때. 뒤에서 무심하게 지켜보던 교황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타난 문양은 다름 아닌 <금>의 신앙.

‘에슈아 사람이 금의 신앙과 궁합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타난 문양은 수천 년의 역사 중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문자.

그리고 이건 금의 신앙의 신이자, 금이 수천 년 동안 연결되길 고대하며 바랐지만 실패했던…….

‘…최고신?’

5대 주신보다 우위에 있는 그 최고신?

그 철벽의 신이 관심을 보인다고?

그리고 그 모습을 놓칠 키나 베리트도 아니다.

‘무슨 일이시지?’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문양은 신과 연결된 교황과 그에 대한 교육을 배운 금의 추기경만 해독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싸한 분위기를 느낀 청의 가주는 기사의 검을 슬쩍 들었다.

역시, 깨야 해?

역시 악신이 나왔어?

“이 아이에게 관심을 주신 신은…….”

그런데 그때였다.

쾅!

“으악!”

“꺄악!”

성수 그릇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연기가 만들어낸 형상에 사제들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해골왕!”

해골왕의 형상을 한 연기였다. 문장은 해골왕의 연기로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릴라이나, 청의 사람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해골왕!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하지만 연기는 가차 없이 아이작을 죽일 듯 낚아채 갔다.

“아이작!”

“해골왕이 에슈아의 아이를!”

“해골왕의 저주를 이겨낸 아이를 잡아가려는 건가!”

모두가 경악해서 마기에 붙잡힌 아이작을 보았다.

[이 성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뭐라고?!”

납치당한 아이작은 눈을 끔뻑였다.

시발, 뭐지?

하지만 해골왕은 오늘만을 기다린 듯 아이작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러곤 마치 전쟁을 선포하듯 말했다.

[이놈을 없애는 걸 시작으로 신성제국의 모든 씨를 말리겠다.]

빠직.

아이작은 핏대를 세웠다.

이 시바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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