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똑똑히 보았다 (1)
해골왕.
그 존재를 누가 모를 수 있을까.
마왕들이 있던 수만 년의 세월보다, 해골왕이 있던 수백 년이 신들에겐 더 골치라고 불렸을 정도의 마족.
[긴 시간 동안 기다려왔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했던 멸망 직전의 마족을 부흥시켰으며, 능력으로도 역대 마왕 중 다섯 손가락에 꼽는 마귀.
모든 인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대륙의 모든 용사들과 영웅들이 나섰지만 전부 실패했다는 존재.
괜히 성녀라는 해골왕 전용 퇴마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만큼 신화적인 존재나 다름없는…은 개뿔, 시발!
내가 왜 저기 있냐고!!
아이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평범한 스켈레톤이라기엔 가슴에서 영혼석처럼 빛나는 불꽃. 검은 불꽃처럼 일렁이는 마력.
빈약해 보이는 스켈레톤이라기보단 위압적인 덩치의… 그래! 거울을 볼 때마다 쌍욕을 날렸던 그 뼈다귀 새끼가 저기 있다고, 시발!
위스퍼도 분노하고 있었다.
[뭡니까앍! 저 짝퉁!!!]
그래, 새끼야! 너도 빡치지?!
[예! 주인님은 더 빈티 나고 찐따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렇게 멋있는 말투 안 씁니다!]
시발 놈아, 너도 나가 죽어라!
동시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설마 성자를 노리고 온 건가!”
앞으로 해골왕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테니까?
하지만 해골왕이 아이작을 납치한 그 순간, 추기경들이 곧장 공격을 날렸다.
<금제금선>
<혈겁의 누>
콰직!
아군 외에 그 모든 걸 극도로 배제하고 추방하는 금(金).
피를 눈물로 바꾸는 지옥의 고통으로 적을 꿇리는 적(赤).
두 개의 강렬한 빛이 해골왕을 찢어 죽일 듯이 부딪쳤다.
쿠궁!
그 뒤를 이어 흑과 백의 빛이 해골왕을 말려 죽일 듯이 덮쳤다.
차이는 있어도 각자 영혼을 분리하거나,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최고 살상력의 파괴 살법들이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작렬하는 고위 성법들에 연회장은 비명과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제품을 받는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난생처음 보는 성법들에 혼비백산, 울음을 터트릴 기세였다.
쿵! 쿠궁!
그 수준이 거의 필살기를 때려 박을 기세라 청의 가주 일라이는 빡친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일격은 오로지 해골왕의 제거만을 위한 파괴 살법. 한마디로 조금이라도 스치면 즉사할 일격이란 의미다.
그런데 그런 일격들이 해골왕에게 붙잡혀 있는 아이작의 바로 얼굴 옆. 그리고 피하지 못한 학생들 근처에 떨어진다?
“이 대가리에 국수 가락 말아먹은 새끼들아. 내 손자 놈이랑 애들은 안 보이냐!”
욕을 읊조리는 청의 가주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동시에 뱀처럼 살아 있는 듯한 물줄기가 땅에서 치솟아 올랐다. 물줄기는 미처 피하지 못한 학생들을 휘감고 뒤로 휙휙 짐짝처럼 내던졌다.
“커헉!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먼저 구하고, 마지막으로 아이작까지 데려오기 위해 물줄기를 뻗었지만-
텅!
“!”
물줄기가 해골왕의 앞에서 얼어붙었다.
물을 그대로 얼려버린 해골왕이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청의 기술은 꿰뚫고 있다.]
“!”
[저주를 받고 힘을 잃은 놈들은 얌전히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청의 가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평소 웃는 법 없는 입꼬리가 서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지금 이 새끼가 감히 청의 앞에서 저주를 입에 담아?
“성 부쉈다고 나중에 지랄할 것 같아서 얌전히 갔더니.”
순간 연회장이 뒤흔들렸다.
쿵!
“으악!”
귀빈들과 사제들은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청의 강력한 성력이 바닥을 가르고, 연회장 바닥에 물이 급격하게 차올랐다.
“가, 각하!”
매섭게 차오른 물은 청의 가주에게 몰려들었다.
이번엔 뱀 수준이 아니다. 대륙에서 제일 크다는 폭포를 끌어와 만든 듯한 거대한 고래가 만들어졌다.
아직 얼굴의 극히 일부만 나왔음에도 연회장 전체를 뒤덮을 크기였다. 주변의 건물이 고래에 스치기만 해도 바로 기화되어 사라졌다.
한마디로, 스치면 뼈도 못 추린다는 의미다. 교황을 도와 결계를 치던 사제들이 기겁해서 거품을 물 만했다.
“각하!! 여기선 참으십시오! 수도가 날아갑니다!”
“교황 성하께서 화내실 겁니다!”
“닥쳐.”
먼저 시작한 건 저거라는 듯 고래를 움직였다.
그 광경에 해골왕은 슬쩍 아이작을 앞에 내세웠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이 성자 꼬마가 위험할 텐데.]
잡혀 있는 아이작은 핏대를 세웠다.
아, 이 새끼 누구인지 파악하려고 일부러 잡혀 있긴 한데, 이놈 말하는 본새 보소? 점점 기어오르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술렁거렸다.
“역시 또 말했지?”
“어…! 성자라고……!”
“그럼 설마 아이작 공자가 성자라고?!”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발, 이거는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뭐, 그래도 저거에 맞으면 나도 뼈를 못 추릴 것 같으니 지금은 응원하마.
할부지, 지금 손자가 잡혀 있어요.
이거 내가 처리할 테니까 일단 진정 좀 하고 그것 좀 내려놔 봐.
솔직히 할부지가 강한 건 알겠고, 성질도 더러운 거 잘 알겠어. 그러니까 멈춰봐! 진짜 무서워지려고 해!
[이 아이가 무사하지 못해도 좋다는 거냐?]
그래! 할부지, 나 아끼잖아. 잘 때 몰래 영단도 놓고 갔잖아! 내용물은 원수여도 귀여운 손자가 다치면 안 되잖아!
그러나 가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성자는 튼튼해서,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아니!
죽어! 죽는다고!!! 시발!
연회장 크기의 고래가 사정없이 해골왕과 아이작에게 작렬했다. 거대한 충돌과 함께 청의 성력이 해골왕의 마력을 소멸시켜 버리고,
후웅!
남은 몸체는 무자비하게 힘으로 부딪쳤다.
쿠웅!
눈부신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으악!”
풍압과 충격이 뒤엉켜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내부에 있던 사제들은 종이 인형처럼 날아갈 뻔했다.
사제들이 친 결계 덕분에 건물이 무너지는 건 막았지만, 역시 상식을 초월한 힘이다.
순간 모든 게 조용해졌다. 해골왕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 빠져나오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세상에 해골왕이 또 나타나다니!”
“70년 전에 에슈아에 저주를 내리고 간 이후론 안 보이지 않았나요……?”
아니, 저주 안 내렸다고.
“150년 전에 신께 패배한 이후로 영혼만 쥐새끼처럼 도망쳤다더니.”
아니, 패배 안 했다고옭!
“신께 싸움을 건 이유도 신계를 먹어치우기 위해서였다고 하고요.”
그딴 냄새나는 신계, 줘도 안 먹는다고옭!
“드디어 힘을 비축하고 돌아오려는 건가!”
아니라고! 저 새끼 짝퉁이라고!!!!
건물에 깔린 아이작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그걸 맞고 용케도 살아 계시네요.]
“…….”
[과연 성녀 가문 핏줄이라 몸이 괴물 통뼈 수준이군요. 그걸 맞고도 긁힌 상처뿐이라니. 앞으로 전투 시 참고하겠습니다.]
…에슈아 놈들. 역시 다 죽여 버리겠어.
그때 릴라이가 급하게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아이작, 괜찮으냐.”
니 눈엔 괜찮아 보이냐, 새끼야?
슈리도 놀란 듯 친한 동기들과 함께 다가왔다.
“세상에, 아무리 에슈아 사람이라지만, 그걸 맞고도 멀쩡하다니, 어떻게 된 몸이냐.”
안 멀쩡하거든? 성력 맞아서 정신이 빠개질 것 같거든?
“성자 후보라더니! 몸까지 튼튼하구나.”
“이 정도면 사제들이 고용하는 호위 성기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될 수준 아냐?”
“역시 성자…! 미리 사인 받아 둘까?”
“의사는 굳이 안 불러도 되겠지……?”
“그렇지. 성자인데, 뭐.”
시발! 그냥 성직자 전원을 죽여버리겠어얽!
“그래, 아이작! 이 숙부의 수련이 도움이 되었구나. 상급 수련도 도와주마. 같이 해골왕의 대가리를 깨는 거다!”
일단 네 대가리부터 좀 깨자!
하지만 그런 릴라이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놀란 눈치였다.
“해골왕은 청의 추기경님의 공격으로 죽은 게 아닌가요?”
“사라졌는데……!”
“그걸로 죽을 리 없지. 그건 진짜 해골왕이 아니었으니까.”
뭐?!
모두가 놀라며 아이작을 바라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빡친 듯 웃었다.
그래. 방금 나타난 그 해골은 분신. 마력으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아이작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물론 완전히 만들어낸 허상은 아냐.’
어딘가에 해골왕의 본체가 있고, 그걸 그대로 그림자처럼 복제해서 이곳에 보낸 것이다.
하물며 사용되고 있던 그 마력.
‘내 마력이다.’
틀림없었다.
‘설마 내 마력핵도 어딘가에 떨어진 건가?’
뭐, 육신도 성녀 보물고에 보관되어 있던 참이었다. 마력핵이라고 없을 것 같은가. 물론 자폭시켰으니 원래의 상태보다 하자가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딘가에 해골왕 사칭범이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의 사칭?
마족 세계에서도 중범죄인 사칭범을 가만둘 것 같으냐? 하물며 척 봐도 그 새끼가 이 몸에 저주를 건 것 같고.
‘만약이지만 내 마력핵까지 가지고 있다면 일석이조다.’
아이작의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릴라이의 눈도 번득였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하셨습니다. 처음부터 허상인 걸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렇게 과격한 성법을 쓰시다니요. 아이작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릴라이가 한마디 했지만, 청의 가주는 목을 우득거렸다.
“경고한 거지. 감히 서품 수여식을 노리고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그 말을 하는 청의 가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석을 보았다. 그는 빡쳐서 큰 성법을 날린 듯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청의 가주는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아이작을 붙들고 있는 해골왕을 향해 교황이 손짓하는 것을.
‘틀림없다. 아이작까지 같이 죽이려 했어.’
가주가 괜히 해골왕의 말에 아이작을 믿지도 않는 ‘성자’라고 받아준 것이 아니었다.
전부 이목을 집중시켜 교황이 헛된 짓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더욱 이상했다.
‘설마 해골왕이 아이작을 고작 성자로 불렀다는 이유로 그럴 리는 없고.’
도대체 성수 그릇에서 뭐가 나왔길래.
아무튼 손자를 죽게 할 수 없었던 그가 먼저 선수를, 그것도 크게 친 것뿐이다.
다른 추기경들도 상대가 분신이란 걸 알면서도 과격하게 움직인 건, 과시의 목적도 있지만 그만큼 해골왕의 존재가 위협적이란 의미였고 말이다.
그리고 성자 후보들이 사제가 되는 올해를 노리고 뭔가 크게 벌여올 거라 예상은 했다만.
‘설마 아이작의 순번에서 나타날 줄이야.’
손자가 갑자기 성장해서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인데, 간이 떨어질 뻔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손자 놈도 찾았겠다. 일단 저놈, 저거부터 끌고 간다.’
이유는 몰라도 교황이 아이작을 처리하려고 했다.
‘설마 신앙심을 엿본 건가?’
그래서 설마 해골왕을 소환했다고 의심을 하는 건 아니겠지?
뭐, 설마 그것만으로 교황이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할 리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아이작의 존재가 교황가의 눈에 거슬린다는 의미.
그러니 아이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교황가의 힘이 닿는 수도가 아닌, 에슈아의 영지에 가두는 게 최선이었다.
아무튼 가둬놓고, 성녀 교육을 기반으로 한 도덕 교육부터 시키자!
“아이작, 이리 와라. 이 할아비가 상을 주마.”
가주가 손짓하며 다가오자 아이작은 슬금 뒤로 빠졌다.
시발, 뭔데 돈가스 사주겠다고 하고 치과로 끌고 갈 것 같은 얼굴인데.
하지만 청의 가주가 얌전히 물러날 리가 없다.
“손자가 해골왕의 저주를 이겨내고 이리 멋지게 성장하지 않았느냐. 할아비가 맛있는 당과를 사주마.”
이 새끼, 진짜 이빨이라도 뽑을 셈이냐!
하지만 그런 아이작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는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
구원자는 다름 아닌 키나 베리트였다.
청의 가주는 왜 방해하냐는 듯 키나를 보았지만, 키나 베리트가 연회장 밖을 가리켰다.
연회장 밖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해골왕의 마력이 있었다. 그리고 마력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마수들까지.
“만약 저놈들이 성자를 노리고 온 거면, 응당 성자 후보들이 처리를 해야 본보기가 되겠죠.”
청의 가주는 미간을 좁혔다.
이놈이?
하지만 키나 베리트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렇게 나오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분명 청의 막내한테 그랬지?
-어어. ‘이 성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라고.
-굳이 청의 막내를 납치한 것도 그렇고, 그 말도 그렇고. 해골왕 정도 되는 놈이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해?
-근거가 없더라도 이 중에서 제일 뛰어나니까 잡은 거 아냐?
-야, 정체도 모를 마족이 지껄이는 말에 뭘 그리 신경을 써! 결계나 똑바로 쳐!
교황의 손자로서는 사제들이 하는 말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누가 진짜 성자인지 확인시켜 주는 수밖에.
가주와 키나 베리트의 계략을 눈치챈 위스퍼도 나섰다.
[주인님, 어쩔까요? 둘 다 죽일까요?!]
‘아니.’
더 좋은 방법이 있거든.
아이작이 씩 웃으며 뭔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