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56화 (56/272)

제56화. 똑똑히 보았다 (3)

<해골왕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교황 성하와 추기경들에게 패하고 도망쳤다!>

<해골왕이 말한 ‘성자’라는 건 누구인가!>

서품식에서의 일은 상당한 파급을 가져왔다.

그래 봐야 환영체에 불과했지만, 무려 사제들의 서품식에 해골왕의 마력이 나타난 것이었다.

“추기경들의 수고로 무탈하게 지나갔다지만, 어떻게 이 헬라에 해골왕이 들어올 수가 있소?”

당연히 황실에서도 중요한 안건으로 꺼낼 수밖에 없는 화제였다.

의전 서열 최고석인 5대 공작들은 물론, 숱한 중앙 귀족들이 모여 논쟁을 벌였다.

“아무래도 성수 그릇에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신들과의 궁합을 보는 그 그릇 말이오?”

황제의 물음에 청의 가주 일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기에 환영 소환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릇을 들인 업자를 조사 중입니다만, 건국제로 이방인의 출입이 많아지면서 섞여 들어온 것이겠죠.”

“그것도 있지만, 제국의 결계 문제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베리트 추기경의 말에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결계 문제는 신성제국에서 빠질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베리트 추기경의 금색 눈이 사냥감을 본 맹금처럼 번득였다.

“본래라면 신성제국의 결계만으로 마족의 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알고 있소. 제국의 결계는 150년 전부터 그 힘이 약해지고 있지. 마족들이 들어오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소.”

신성제국 헬라의 결계는 신성드래곤이 책임지고 있고, 그 신성드래곤은 황실이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신성드래곤이 제국의 결계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단 것이다.

대충 교황가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꺼낸 건지 알기에 귀족들은 속으로 혀를 찼다.

‘교황청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거군.’

‘애초에 너무하는군. 지금에 와서 신성드래곤을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존재한다고.’

‘뭐, 좋은 건수지.’

신성드래곤의 힘은 황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해주는 힘이었으니까.

교황청도 황실만이 가진 그 힘 때문에 섣불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계 건으로 일부러 황실의 약점을 잡을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청의 가주가 끼어들었다.

“결계에 이상이 있었으면 해골왕이 환영만 보내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환영 마력만 겨우 흘려보냈을 정도로 견고하다는 의미죠.”

그 말에 베리트 추기경은 못마땅한 듯 청의 가주를 보았다.

황실이 예뻐해주니 중립 주제에 이젠 대놓고 황실과 짝짜꿍하겠다는 건가.

귀족파인 교황청으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소. 성자 육성을 서둘러야겠구려. 황실도 곧 신성드래곤의 사저에 방문할 것이니 걱정 마시오.”

“예!”

회의가 끝나고 귀족들과 사제들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회의에서 나온 주제치고는 의외로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슈아가 한 건 했다며?”

5대 가문의 일이면 기르던 개가 죽어도 한 달은 떠들 만한 일이었다.

“청 아직 안 죽었더라! 청의 막내가 정화의 성법으로 마물들을 쫓아냈대. 정화가 특기라나?”

“푸핫, 그거 교황가가 탐내는 성법 아냐? 의외인데? 청이?”

“게다가 해골왕 저주도 이겨내고 성장까지 했대!”

“와, 미친 교황가 얼굴 볼만하겠다. 원수잖아, 거기.”

“난 서품식이 중단 안 되고 마무리된 게 더 대단하다.”

서품식장에 나타난 해골왕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환영체긴 해도 마족의 습격이 있었던 곳이었다.

마기도 남아 있고, 과연 계속 진행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교황이 깨끗하게 해결했다.

가벼운 손짓 하나에 부서진 연회장은 곧바로 복구되었고, 마기까지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괜히 신성 진영 최고 수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그걸 보는 아이작 표정은 당연히 썩었고 사람들은 환호했었다.

“역시 교황 성하!”

“에슈아 꼬마도 대단하지만 역시 교황 성하와는 비교가 안 돼!”

모두가 그렇게 교황을 예찬하며 떠들었지만, 한 명만은 달랐다.

‘비교가 안 된다고?’

바로 키나 베리트였다.

그는 교황청으로 돌아오는 사제들의 이야기에 핏대를 세웠다. 물론 할아버님을 찬양하니 손자로서 기분이 나쁠 리가 없지만.

‘지금 장난하는 건가?’

저들은 아이작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건 분명 할아버님의 기술이었다.’

교황 성하의 은총만으로 피해자가 한 명도 안 발생해?

웃기지도 않는다.

아이작이 그곳에 있던 상급에 가까운 마족을 쫓아냈기에 서품식에서 피해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 오히려 해골왕의 침입을 역으로 선전할 수 있는 것이지.

‘눈빛만으로 마족을 쫓아내다니.’

<성스러운 혼>

강력한 성력과 위압만으로 마족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교황만이 할 수 있는 제왕의 기술.

다른 건 다 가능해도 그것만은 키나도 할 수 없는 기술이다. 어릴 때부터 그 경지에 닿고 싶어 얼마나 발버둥을 쳐왔던가.

하물며 그 직후, 키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는 말을 똑똑히 엿들었다.

-그 아이를 잘 지켜봐라.

분명 할아버지께선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역시 뭔가 있다.

그럴 때 금의 장로가 키나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나, 키나. 의뢰가 들어왔다. 후작가의… 어디 가느냐. 키나! 키나!!?”

* * *

“와, 조카야. 정말 축하한다. 사제품 받아서 정말 축하한다. 와와.”

“…….”

와, 이토록 성의 없는 축하 멘트는 진짜 처음이네. 아이작은 고엘의 영혼 없는 축하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유는 몰라도 이놈이 예의로라도 영혼을 1도 담기 싫어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우리 아이작이, 이렇게 말까지 유창하게 하게 되다니…! 이거면 이제 해골왕 저주 편지도 읊게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릴라이 이 자식은 이제 답이 없단 것도 잘 알겠어.

서품식 이후, 그들은 황궁과 마주 보고 있는 교황청에 도착해 있었다. 서품식을 치른 사제들은 교황청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되는 건 아니었다.

“사제품을 받았지만, 너희는 이제 막 졸업했을 뿐인 견습들이다.”

뭐, 의사 자격증을 땄다고 바로 의사가 될 수 있나? 한마디로 수련의, 즉 견습 사제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뭐 최종 테스트나 다름없지. 짧지만 견습 때는 선배들의 곁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본인의 적성과 아카데미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진짜 사제의 일을 배우게 되겠지. 평가에 따라 소속처와 대우가 바뀔 테니 잘하거라.”

어째 갓 입사한 인턴이 된 느낌이군.

그래서 견습 사제들은 5대 신앙 중 어디도 선택하지 않은 무소속 사제다. 각 신앙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이때였으니까.

함께 온 릴라이는 나름 추억이라는 듯 웃었다.

“별거 아니다. 입소하는 형식이라 힘들 수도 있지만 나중에 가면 즐거운 기억이 되겠지.”

그렇게 즐거우면 니 새끼가 대신 들어갈래?

“견습 기간이 끝날 땐 신과 계약을 할 것이다.”

아, 그러니까 그때가 드디어 빌어먹을 신들과 만나게 되는 때란 의미군?

뭐, 궁금하긴 하네. 그 새끼들이 자신을 알아볼지 못 알아볼지.

그래서 아이작이 물었다.

“숙부님들.”

그 호칭에 릴라이는 눈물이 핑 도는 듯 미간을 짚었고, 고엘은 뭐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때 가면 꼭 서품식에서 간택받은 신과 계약해야 하나요?”

그 질문에 어째서인지 고엘도 릴라이도 흠칫 놀랐다. 고엘이 당혹스러워하자 슈리조차 이상하게 보았지만, 정작 두 숙부는 땀만 삐질삐질 흘릴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이 뽑은 신이 아무래도 악신인 듯하다.

-예?!

서품식 직후.

사건 조사를 위해 성수 그릇을 조사했던 청의 가주가 심각한 얼굴로 고엘과 릴라이를 불렀었다.

-악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이작이 뽑은 신이 일반적인 신이 아니란 의미다.

-예?!

청의 가주는 성수 그릇을 보며 생각보다 더 골치가 아프게 됐다고 했다.

-조사해보니 여태껏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신의 문장이 나온 모양이야.

-…어떤 문장인지는 모르시죠?

-그걸 알 수 있는 건 교황과 금의 추기경뿐이다. 하지만 아이작이 뽑은 문장을 보고 교황은 아이작을 없애려 했지.

-예? 교황 성하께서요?!

-그래. 악신이라도 나온 게 아닌 이상, 나올 리 없는 태도야.

릴라이는 그건 또 그렇다며 긍정했지만, 고엘은 똥이라도 씹은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런 거라면 그저 금의 신앙 쪽 신의 문장이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금의 신이요?

-네. 그 인간들은 불순물, 그리고 섞인 걸 집착 수준으로 싫어합니다. 다른 가문, 하물며 에슈아가 금의 신앙 쪽 신을 뽑은 걸 용납할 리가 없죠. 아무튼 금의 주신은 교황 성하와 추기경이 계약하고 있고… 그 정도 반응이면 금의 직계들만 계약하는 신이라도 뽑았나 본데요.

그러나 뒷짐을 진 청의 가주의 눈빛은 달랐다.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문장이라니까?

-금의 신앙에서도 아직 소환 안 된 신이 많습니다. 최고신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편입된 신이라든가…….

그 말에 가주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며 변했다.

-넌 그 아이가 제대로 된 신을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

-물론 상식적인 범주에선 금의 신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하지만 그 아이다.

-…아.

고엘은 왜인지 굉장히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확실히 그거는 사제만 봤다 하면, 심지어 위대한 신들의 이야기만 했다 하면 딸랑이를 내던지며 성서를 찢던 아이가 아닌가.

그런 애가 신 중에서도 특히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금의 신앙을……?

상상이 안 된다.

아무리 봐도 악신이 나왔다는 쪽이 맞지.

-그렇게 되었으니, 고엘. 네가 교황가와 접촉해서 은밀히 조사해봐라. 뭐가 나왔는지.

-예? 하지만 제가 왜…….

-때마침 좋은 성물들이 들어왔다. 성공하면 슈리에게 좋은 걸로 주지.

반은 교황 핏줄이라 교황가와 가까운 고엘은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걱정되는 게 있긴 했다.

-견습 기간이 끝나면 모든 사제들은 본인의 진로를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괜찮다. 까짓거 어지간한 쓰레기가 아니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구나.

시발. 어지간한 기준으로 생각하다가 테스트에서 이미 뒤통수를 처맞았지.

그리고 그 신앙심 테스트 결과대로라고 한다면…….

‘암흑 사제지.’

‘암흑 사제야.’

‘암흑 사제네.’

세 명의 에슈아의 표정이 썩을 만하다.

무엇보다 성녀 가문은 암흑사제, 정확히는 타락이란 단어에 누구보다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가 그러셨지.’

서품식 때의 일로 다른 추기경들이 아이작을 데려가려고 탐내는 것 같다고.

그래, 뭐. 감히 어디서 눈독 들이냐고 뭐라 할 생각이긴 하지만, 새삼 놀라지도 않았다. 서품식 이후 파티 때 몰려온 사람들만 봐도 그랬으니까.

애초에 세간의 관심을 받아본 적 없는 에슈아 사내놈들이었건만……!

-역시 해골왕을 없앨 분이시군요! 꼭! 저희 아이와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저희 아이 수업 좀!!!

응응, 그래! 약혼이고 과외고, 다 좋지!

그런데 정작 그 내용물이…….

아이작을 보는 두 숙부의 표정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쑥부님들?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암흑 사제 시발……!

고엘로서는 딱히 아이작이 예쁠 리가 없지만, 암흑 사제 문제는 좀 크다.

암흑 사제는 신성제국에선 배반자에 가깝기에 추적 처형은 물론, 암흑 사제를 배출한 가문은 연좌제로 끌려간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문의 파멸!!’

물론 릴라이는 조카가 타락할 게 신경 쓰이는 거겠지만, 슈리는 뭔 죄란 말인가!

“그보다 쑥부님들. 꿍금한 게 있는데요.”

그 말에 듣다 못한 슈리가 끼어들었다.

“너 성장했잖아. 혀는 왜 여전히 짧은 거야?”

아.

숙부들도 의아한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몸이 급격하게 큰 부작용인가 봐.”

“…서품식장에선 멀쩡하지 않았어?”

“집중하지 않으면 까끔 이래. 신경 쓰는 대상이 아니면 특히. 머, 너무 신경 쓰지 마.”

아, 그러니까 나는 신경 쓰는 대상도 아니란 거군.

눈썹을 꿈틀거리는 슈리는 기가 차다는 듯 보았지만, 아이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기 때문이었다. 사제품을 받은 이유도 사실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꽁양제>라는 거 언제 참여 가능해요?”

그 질문에 릴라이의 표정이 굉장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설마 공양제에 관심이 있었느냐?!”

“예. 특히 해골왕의 부하 처형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요.”

됐다! 됐어어!

없던 신앙심이 생겼구나!

릴라이는 기쁜 듯 입을 틀어막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큭큭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뭐? 이번 공양제엔 신들의 권속들이 온다고?’

신들의 권속.

즉 하급신이나 천사 같은 놈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놈들은 엄연히 신과 인간들을 연결해주는 존재지만, 콧대가 높아 어지간해서는 인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 마족 하나 처형한다고 나타난다고?

‘시벌 놈들. 감히 내 부하를 처형하러 와??’

아주 신났지? 어??

아이작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뭐, 잘됐지. 힘을 키우면서 동시에 그 힘이 어디까지 컸는지, 제대로 시험해볼 수 있겠어.’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릴라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해골왕의 부하를 처형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걸 맡게 되는 건 견습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이란다.”

“팀이요?”

“그래. 곧 알게 되겠지만 견습 사제는 팀 단위로 움직이고 평가를 받거든.”

아, 잘은 모르겠지만 숱한 모임 중에서도 제일 거지 같은 조별 모임이 시작된다는 의미군??

“그리고 네 능력을 낮게 보는 건 아니나,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팀원의 실력도 좋아야 하지. 무엇보다 십사육마는 네겐 너무 일러.”

그 말을 하는 릴라이는 쓰게 웃었다.

‘뭐, 사실은 아이작에게 십사육마의 처형식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긴 했지만, 역시 너무 이르다.’

그러나 그걸 알 리 없는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어쨌거나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거군?

아, 하지만 혼자면 몰라도 팀전이면 좀 골치 아파지는데.

아이작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쑤 없죠.”

다른 팀을 죽이고 구하러 가는 수밖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