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화합해야죠 (1)
아이작은 모든 마족을 본인의 손으로 기른 마왕이었다.
그야말로 어린 마수들부터 어른 마족들까지, 꽤 아끼며 길러냈다. 아이작이 마족 무리에 떨어졌을 땐 마족들은 그야말로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이 죽어가는 놈팡이들을 살려놓지 않으면, 시발, 내가 먼저 마수 새끼들한테 해체당하겠구나 싶어서 살려놓았고.
그다음엔 시벌, 문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평생 거지꼴로 살겠다 싶어서, 노동력으로 써먹으려고 성장을 시킨 거긴 하다만, 아무튼 열심히 키웠다.
어쨌거나 처음부터 손을 안 댔으면 몰라도, 직접 육성한 놈들에겐 꽤 애착을 쏟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애착을 쏟아두면 마족들은 충성을 가져왔는데.
이놈의 성직자들은 시벌, 반항기가 처오네.
“당장 갖다 버려.”
슈리의 단호한 말에 아이작은 핏대를 세웠다.
그러니까, 이 성직자 놈이 지금 뭐라고 했냐.
뭐? 버려? 버려어?
슈리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흉악한 딸랑이 채찍.
“미쪘냐, 김슈리!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그걸 아는 놈이 이걸 이렇게 만드냐!”
“왜! 멋있잖아!”
아이작의 외침에 슈리는 피가 거꾸로 쏠린 듯 뒷목을 잡았다.
멋있다고? 이 새끼는 진심인가?
아이작이 형태를 바꾼 딸랑이는 이미 무기는 둘째 치고 흉물 그 자체였다.
‘이딴 걸 휘둘렀으니 조원들 표정이 그 모양 그따위였지.’
아이작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후.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조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에슈아 가문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슈리, 우리가 잘못했어.
창백하게 질린 그들은 슈리에게 지금 당장 도망치라는 듯 붙잡았다. 아이작을 귀신 들린 사람 취급했다.
아니, 사람으로 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해골왕을 처리하지 못한 수백 년의 원념이 저렇게……!
-사이비는 안 돼! 슈리!
하씨… 어쩌다가 고귀하고 명예로운 에슈아가 이딴 사이비 취급을…….
“애초에 어느 성직자가 이딴 흉물을 쓰냐고!”
고문 기술이 특기인 적가도 이딴 건 안 쓰겠다!
그런 연유로 슈리는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중이었다.
-아이작을 잘 감시하고 있어라. 성령도 아직은 안 들키게 하고.
합숙소에 들어가기 전, 청의 가주가 슈리에게 명령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감시는 개뿔.
‘가주님, 글렀습니다.’
분명 할아버지는 아이작이 합숙소에 익숙해지기 전까진 사고 안 칠 거라고 하셨는데. 이 새끼 첫날부터 사고 쳤어요, 시발.
-첫 펜타곤 평가는… 백의 신앙의 ‘화합’이지만. 뭐, 괜찮겠지. 적당히 과자나 먹다가 놀면 되니까.
괜찮지 않아요! 할아버지! 화합인데 두들겨 팼다고요!
‘물론 다른 의미로 화합이 되긴 했지만……!’
청의 가주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슈리는 눈물이 고였다.
“다른 말 안 한다. 딸랑이부터 원상 복구해!”
“왜! 그 모습으로는 패기 힘들어지는데!”
“애초에 폐하의 진상품으로 귀족들을 패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 안 하냐!!”
그러나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문제지? 저거 하나면 애들 다 닥치는데?”
슈리는 이 이단 새끼 좀 잡아가라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너 진짜. 공포로 정치하면 나중에 X된다…….”
아이작은 더더욱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해봤는데? 효과 죽였는데?
“아이작 에슈아. 잘 들어. 성자는 힘으로만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성녀들은 힘밖에 모르던데. 하나같이 대화하다가 마왕성의 기둥을 뽑아서 내던지던데.
하지만 이 사실을 말해줄 수도 없고.
아이작은 가볍게 비웃었다.
“그래. 성자는 힘으로만 될 수 없어서 우리 형은 호구를 자처한 거구나.”
“윽……!”
슈리는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아이작이 준 손절 명단을 봤을 땐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새끼, 이렇게 정확하게 평소 쎄하게 느끼던 놈들만 딱 집어내다니.
하지만 슈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
“<화합> 덕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그래서 비위를 맞춰줬다고? 그래선 안돼.”
…패는 건 되고? 시벌 놈아?
슈리는 이것까지는 말하기 싫었지만, 할 수 없다는 듯 토해냈다.
“…청은 지지 기반이 약해. 이렇게라도 안 하면 귀족들한테 지지받지 못한다고.”
“!”
“알아? 우리는 세속을 멀리해야 하는 성직자들이지만 결국 파벌 싸움이라, 우릴 지지해줄 사람이 없으면 힘을 잃는다고.”
아무래도 차기 가주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할아버지와 가모님이 사라지면 청은 한순간에 먹잇감이 될 테니까.
그러자 아이작은 형이 가엾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건 가진 게 없는 놈들 이야기고.”
“!”
“에슈아는 크고 세. 괜히 대륙의 메이저 신앙이야? 5대 공작가가 남의 눈치 따위를 봐야 할 정돈 아닐 텐데?”
“아니. 내가 괜히 그러는 게 아냐. 에슈아는 비전을 잃은 순간부터 코웃음을 당하고 있다고.”
“!”
아이작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비전?’
혹시 보물고에서 가져온 그 비전서와 연관이 있는 건가?
“아무튼 청의 비전만 부활하면 다시 최강이 되어서 찍소리도 못 하게 해줄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니까.”
“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뭐?”
“아냐.”
“아무튼 다른 사촌들이 그 비전을 대신할 것을 찾아오고 있다고! 적어도 그 사람들보다 못 한 건 안돼!”
“왜?”
왜긴 왜야!
“라이벌들 성적보다 못 한 게 말이 되냐!”
다른 사촌들은 임무로 흩어져 있어 아이작도 아직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들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지금도 누구는 벌써 청의 기사들인 <범고래>들을 이끌고 있고…….’
“아무튼 펜타곤 상위 성적이면 교황청에서 받을 수 있는 물건이 있어. 큰 실적이 되는 만큼 가주 자리에도 유리하다고. 그러니 <화합>도 중요해.”
“음, 그래. 뭐, 알았어. 형이 날 생각해서 호구 짓을 한 건 잘 알겠어.”
“호… 호구라니.”
뭐, 지금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다.
“그렇게 퍼줬는데, 정작 그 우호 가문들은 에슈아에 배신을 때리고 있군.”
“뭐? 배신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 화합 부분이라면 이미 생각해뒀어.”
이 새끼가 말을 씹네.
“…생각해두다니 뭘!”
이 새끼는 그렇게 두들겨 패놓고 이제 와 새삼 약 주면서 사과라도 할 셈인가?
그러나 슈리의 표정에 아이작은 웃으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곧 아이작이 슈리를 데리고 간 곳은 합숙소에 있는 빈방의 옷장.
‘옷장?’
이놈은 왜 이런 곳으로 온 거지?
곧 아이작이 옷장 문을 벌컥 열자 슈리는 어디 보자는 듯 팔짱을 끼었다.
‘뭐, 돈을 좋아하는 놈이니 견습 기간 동안 쓸 돈이라도 꿍쳐둔…….’
“으으읍! 읍읍!”
“…….”
돈은 돈인데, 인신매매 돈이구나. 시발.
슈리는 옷장 안에 갇혀 있는 소년을 보며 핏기를 잃었다.
통통한 소년의 주둥이는 수건으로 틀어막혀 있었고, 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데, 입은 옷을 보니 같은 방 견습 사제… 이 미친?!
“이 미친 새끼야! 이게 뭔 짓이야!! 얜 우리 팀이잖아!”
이 새끼가 화합은커녕 분열을 일으키고 있네!!
소년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듯,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래, 성직자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겁에 질린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작도 청의 사람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랬을……
“얘, 돈 많은 백작가 자식이래. 몸값 좀 나가겠지?”
…주여. 제발 이 새끼 좀 데려가 주십쇼.
아니, 그보다 이놈은 이 사제가 누구인지는 알고 이러는 건가?
“얘는 에이지 백작가의 후계자라고!”
“누구?”
“릴라이 숙부님의 친구, 시몬 백작님의 외동아들! 제국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부자 가문!!”
“역시 팔아야 하나?”
“야!!!”
하지만 아이작이 말했다.
“벌써 펜타곤 건으로 수작을 걸어오는 팀이 있더라고.”
“수작?”
“어제 이놈이 수상한 편지를 들고 몰래 어딜 가더라고. 편지에 뭐라 쓰여 있었더라? 이제 스파이 짓은 그만두겠다는 내용이었는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회전이 빠른 슈리의 눈이 단번에 험악해졌다.
“나이저 세페트의 사주냐!”
슈리의 언성에 아몬 에이지는 맞을까 봐 몸을 웅크렸다.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나이저 세페트가 우리 팀원들의 사이를 망치라고 지시했다며?”
그 말에 슈리와 친한 아몬 에이지는 눈을 질끈 감았고, 슈리는 배신감이 치밀어올랐다.
“아무리 너희가 적의 공작가의 가신 가문이긴 하다만, 너희 가주님이 숙부님의 단짝 친구기도 하고. 에슈아하고는 허물이 없는 사이라 생각했다…. 그런 너희가 에슈아를 배신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자 아몬 에이지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읍읍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아이작은 얼굴 치우라는 듯 머리통을 치며 재갈을 풀어주었다.
“미아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우리도 사정이 있어서… 컥!”
“니 사정은 안 궁금하니까. 나이저인가 그 때끼가 지시한 것만 말해.”
아이작에게 한 대 맞은 아몬 에이지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이저가 에슈아 팀을 확실히 조지랬어. 슈리 너라면 화합 덕목을 위해서 다른 귀족들 똥꼬까지 빨아줄 테니까, 계속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해서 우리 팀을 분열시키라고.”
슈리는 기가 찬 듯 입을 벌렸고, 아이작은 뭔가 납득한 듯했다.
“아, 그럼 그 이상한 환영식도 그놈 짓이었구나?”
“어, 어어…! 전부 나이저가 심어놓은 애들이야. 화합 덕목을 실패시키라고.”
그러니까 초면부터 밧줄에 매다네 어쩌네, 개소리를 했던 거구만?
그거라면 절대 화합이 될 수가 없지.
“아이작 넌 특히 서품식에서 주목받았으니까 더 그럴 거야. 다른 팀도 그렇지만 나이저는 해골왕 부하 처형을 독차지하려고 하거든. 성자로서 다른 나라에까지 본인을 알릴 수 있는, 가장 돋보이는 자리니까.”
그래서 아이작은 귀엽다는 듯 웃었다.
‘감히 누구 부하를 처형한다고.’
붕붕이를 건들더니, 이젠 부하까지?
욕심도 많아.
가뜩이나 ‘적(赤)’의 신앙?
‘안 그래도 내 부하가 갇힌 감옥의 고문 기술자들이라 해서 좋게 봐줄 수가 없건만.’
하여간 자신을 계속 부르는 금의 추기경이나 이놈이나. 신들의 앞잡이 놈들이 귀찮게 하네.
“한꺼번에 쩌리(처리)해야껬어.”
“…….”
그 말에 슈리는 얼굴을 짚었다.
됐으니까 니 혀부터 어떻게 처리해봐.
* * *
“뭐? 스파이가 또 못 하겠다고 했다고??”
나이저 세페트는 열이 뻗친 듯 핏대를 세웠다.
견습 사제 4일 차.
그는 첫 번째 펜타곤인 <화합> 덕목의 라이벌을 없애기 위해 청(靑)에 스파이를 심어놓았다.
가뜩이나 서품식에 나타난 빌어먹을 해골 때문에 아이작이 주목을 받고있는 판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분열을 일으키는 김에 아이작 에슈아의 정보를 빼 오라고 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정보만큼은 못 빼 오겠다고 하고.
-미, 미안. 다과회만 생각하면… 역시 안 되겠어!
-다과회를 해서… 그건 안 될 것 같다.
다과회??
‘설마 청이 다과회에서 뇌물을 뿌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서품식의 일 때문에 청이 주목받고 있으니, 괜히 가문에 해가 될 짓은 안 하려는 건가?
그리 생각하니 나이저 세페트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품식, 서품식, 서품식!
‘눈깔도 없는 해골 놈이 무슨 보는 눈이 있다고?’
그리고 뭐? 정화 성법이 대단해?!
그래 봐야 적(赤)의 비전과 비교하면 기껏해야 일반 성법이 아닌가! 그런데 무려 황제 폐하께서도 그 아이가 성자라며 기뻐했다고 하시고!
‘젠장.’
애초에 그런 놈의 추천서를 받아주면 안 됐다.
그 일로 아버지에게 따졌더니, 적의 추기경은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고.
-그 아이가 가지게 된 힘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아오, 뭔 소리야!
에슈아의 힘이 걍 거기서 거기지!
‘해골왕도 못 잡는 병신 새끼들.’
-그러니 그 아이를 적(赤)에 초대해 오려무나.
초대!? 초대에에?!
미쳤다고 청 따위한테 알랑거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이 바로 화합 주제의 날이다.’
정보 빼 오는 건 가문에 해가 될 수 있으니 거절했다고 해도, 오늘 평가 때는 달랐다.
평가 때는 믿을 만한 이들이 아이작의 팀에 있었다. 펜타곤 평가 때 반드시 에슈아를 배신할 놈들이.
‘뭐, 해골왕의 부하를 처형하는 영광은 적(赤)이 가져가마.’
나이저는 기대에 찬 얼굴로 평가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