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60화 (60/272)

제60화. 화합해야죠? (2)

“백(白)의 신앙은 신수와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모든 성법들이 동료와 시너지를 이루죠. 그럼 백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화합>입니다.”

견습 사제들의 말에 백(白)의 사제들은 무척 흡족해했다.

아카데미에서 다들 잘 배워왔다는 의미다.

그리고 견습들은 선배 사제들과 함께 짧은 기간 동안 교황청에 머물면서 주교에게 실무를 배웠다.

견습이라고 해도 실전에 투입되기 때문에 대충하는 법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물며 올해는 뛰어난 인재가 많아서 아주 기대가 컸다.

특히 성자라니.

‘이번 대에는 마왕의 처리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백의 주교는 흐뭇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백(白)은 반려생물인 신수로 모든 걸 해냅니다. 사제 본인은 ‘언령’의 성법으로 신수에게 힘을 부여하는 마스터죠. 이처럼 친화와 합이 중요한 백의 덕목에서 신수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 질문에 견습들이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 당당하게 답했다.

“함께 하는 친구…….”

“함께 구워 먹는 갈빗살입니다.”

“……?!”

누군가의 답에 사제들 전원이 입을 떠억 벌렸다.

지, 지금 뭐라고?

갈빗살?

견습들과 사제들은 기겁한 얼굴로 대답을 한 꼬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의 아이작과 어버버 말문을 잇지 못하는 슈리, 이외 청의 팀원들이 있었다.

백의 주교는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에슈아 공자. 지금 뭐라고?”

“아 죄송합니다. 잘못 말했습니다.”

“아뇨,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갈빗살이 아니고 꽃등심인 것 같습니다.”

이 미친 놈아아아앍!!

슈리와 청의 팀원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새끼가, 어디 다른 곳도 아니고 백의 사제들 앞에서 그딴 미친 소리를!

‘백(白).’

목소리로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

그 목소리로 신수를 불러들여 권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백은 기본적으로 신수와 삶을 함께한다.

그 말이 무엇이냐면… 한마디로 하나같이 지독한 동물 애호가들이란 의미다. 신수와 관련된 문제라면 가장 먼저 나서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동물 애호가들 앞에서…….

‘가, 갈빗살…? 꽃등심?’

뒤졌다.

물론 신수 자체가 일반적으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따르기 때문에, 백의 신앙의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선했다.

그러니 아이작의 철없는 말도 그냥 넘어…가 주시기엔 백의 선배 사제들, 지금 쓰러지려고 하는데??

하지만 백의 주교는 선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가축과 닮은 신수도 많으니까요.”

“……!!”

세상에, 저걸 저렇게 받아주다니!

역시 백의 신앙이다.

청과 함께 선을 추구하는 선인들이지만, 엄격하고 금욕하며 절제하는 느낌인 청과는 달리, 너무나 유순한 이들!

그렇지! 그래도 이거면 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되진 않겠어! 만회할 수 있겠어!

아니나 다를까, 주교가 웃으며 아이작에게 물었다.

“그럼 가축과 닮지 않은 환상종이나 키메라 신수는 어떤 존재일까요?”

“희귀한 가죽 카펫입니다.”

“야!!!!!”

이번엔 청의 팀원 전원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주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대로 쓰러졌다.

쿵!

“주교니임!”

“이, 일어나십시오!”

놀란 선배 사제들이 달려와 주교를 일으켜 세웠다.

갈빗살 때까지만 해도 견뎠던 주교는 아무래도 카펫까지는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백의 사제들은 단체로 멘붕이 올 수밖에 없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그들은 아이작 에슈아가 교황청에서 견습 과정을 거친단 말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보통은 교황청과 황실로 나뉘어 견습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제들로서는 교황청이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황제가 주목한다는 말이 있었으니 황실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물론 견습에서 떨어지라고 청의 가주가 슬그머니 교황청 쪽으로 이름표를 넣는 짓을 한 거지만, 그들이 알 리는 없다.

아무튼 개인적인 기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백의 우두머리!

‘백의 추기경께서 지켜보라고 하지 않으셨나!’

성자라는 소문이 있더니, 역시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갈빗살, 카펫으로도 모자라 저리 직업 교육이 지루하단 얼굴이라니!

‘…청에서 저런 애가 나왔다고?’

그도 그럴 게, 청이 어떤 곳인가!

성전의 엄격한 도덕 교리를 따르며 인격 수련에 가장 철두철미한 신앙!

마(魔)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겨울 바다처럼 혹독하게 채찍질을 했다. 그야말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유혹에도…….

“아이작, 초콜릿 먹을래?”

“머글래.”

…어떤 유혹에도!

“아이작, 생활관 돌아가면 예쁜 누나 소개해줄까? 고깃집 점원인데 죽여준다?”

“쪼아, (고기) 머글래.”

…어떤 유혹에도!!!

“아이작, 생활관 가면 카드게임 할래?”

“쪼아. 이번엔 돈 걸어.”

세상에. 뭐, 저딴 이단아가……!!

‘이봐라, 이미 이건 청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예! 탐욕, 색욕, 물욕! 사제의 3대 금기를 그냥 한번에 싹 다 어기려 하고 있어요!’

그쯤 되니 백의 사제들은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펜타곤 달성은 못 하겠군.’

‘뭐, 에슈아 가문에서 사정 봐주지 말고 꼭 좀 탈락시켜달라고 하긴 했는데……’

에슈아 사람들이 왜 그런 부탁을 하나 했더니.

그렇게 한숨 쉬는 사제들이 손을 올렸다.

“그럼 <화합>의 펜타곤을 시작하겠습니다.”

“!”

자리에 모인 견습 사제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특히 나이저 세페트와 그를 따르는 적의 사제들의 눈빛들이 돌변했다.

‘여기서 청의 팀은 탈락이겠지.’

펜타곤 덕목에서 하나라도 실패하면 평가는 탈락. 아카데미로 돌아가 재교육을 받고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

해골왕 부하의 처형식을 진행할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백의 사제들이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투표함.

“백의 신앙은 목소리의 힘인 언령을 통해 기적을 행하고, 기록을 쌓습니다(구전성전). 신의 권능을 노래나 글로 전파하는 백의 힘은 전승이 끊이지 않는 한 무적에 가깝지만, 반대로 말하면 전승이 끊기면 모든 게 끝이란 의미죠.”

“마족들과 다른 나라들도 그걸 알기에 끊임없이 구전자들을 살해하고 첩자들을 심었지만, 결국 동료들 간의 믿음과 협력으로 지켜냈습니다.”

“그렇기에 백이 강조하는 건 화합과 믿음!”

그들은 투표 용지를 꺼내 보였다. 칸이 두 개가 그려진 종이였다.

“우리 백(白)은 <투표>. 이것으로 화합을 평가합니다.”

“!”

“만약 <팀을 유지한다.(O)>로 만장일치면, 화합의 덕목은 통과. 단 한 명이라도 <팀을 유지하지 않는다.(X)>가 나오면, 화합 덕목은 실패입니다. 회의 시간은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견습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것만 하면 되는 거야?”

“더럽게 쉽잖아?”

동시에 슈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괜히 할아버지가 애들과 과자 먹으면서 잠자면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 게 아니지.

‘사전에 합의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이깟 투표 따위. 누워서 떡 먹기…는 개뿔이!

이게 맹점이 있었다.

‘펜타곤은 성적이 좋을수록 좋은 곳이 배치된다.’

5가지 덕목의 성적 평가 등급은 다음과 같았다.

-[킹 (대체 불가능한)]

-[퀸 (나라를 지킬 만한)]

-[비숍 (모범이 될 만한)]

-[나이트 (사람을 지킬 만한)]

-[시민 (평범한)]

-[스켈레톤 (사제 자격이 없는)]

스켈레톤이면 탈락이고, 킹을 5개 소유해야 완벽한 파이브 스타.

게다가 올해는 특별 보상으로 무려 해골왕의 부하인 십사육마의 처형 진행까지 걸려 있었다.

‘최소 킹 4개는 확보해야 하지.’

어쨌든 첫 번째인 <화합>은 성적순 방식이 아니라 합격/불합격 방식이었다. 때문에 합격만 하면 모두가 킹을 받는다 쳐도 그 이후로는?

‘다른 신앙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

백이야 ‘우리 귀여운 후배님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훌륭하신 분들입니다!’라고 지껄이는 녀석들이지만……

‘흑(黑)은 괴짜라 까다롭고. 금(金)과 적(赤)은 올해 역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할걸?’

금과 적에서 킹을 받았다는 전례는 거의 없다. 천재인 릴라이 숙부조차도 킹 4개로 끝냈다고 한다.

보통은 퀸을 1개 따내도 대단한 정도고, 대부분은 나이트 수준에서 성적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다들 그만큼 우수한 팀원을 얻어 성적을 좋게 받으려 했다.

하물며 올해는 무려 해골왕의 부하를 처형할 수 있는 명예에 보물까지 걸려 있지 않나. 성적에 눈깔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무엇보다 이 <화합> 덕목의 가장 큰 맹점은 이것이었다.

‘룰 자체가 배신자를 유도하는 형태란 거지.’

그도 그럴 게, <팀을 유지하지 않는다.(X)>가 한 표라도 나오면, 곧바로 실패, 전원 아카데미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이런 룰이니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당연히 만장일치를 고르지 않겠나 싶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팀을 유지하지 않는다.(X)>를 낸 장본인들은 복귀가 가능하단 거지.’

심지어 그들은 ‘자발적 양심 신고자’로서 교황청에서 위자료 차원에서 좋은 물건까지 지원받는다.

한마디로 배신하면 물건도 지원받고 팀도 갈아탈 수 있는데, 어떤 불이익도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야, 너희 팀 배신하면 우리 팀으로 받아줄게. 덤으로 교황청에서 얻은 물건으로 우리 팀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자.

…란 뒷거래가 오가는 광경이?

하지만 백의 신앙이나 교황청은 이 말도 안 되는 뒷거래를 묵인했다. 아니, 오히려 장려했다.

왜?

이 <화합> 덕목의 진짜 목적은 ‘배신자’를 잡아내는 거니까!

괜히 이 시험이 합격/불합격 방식인 게 아니다.

‘더 좋은 조건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고, 팀을 유지하는 것.’

그게 진짜 평가 과제.

‘뒷거래가 의미가 없을 만큼의 진짜 리더십과 믿음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 원래는 그게 정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슈리는 이 <화합> 덕목에서 탈락할 생각이 없었다.

‘에슈아 직계가 1차부터 아카데미로 돌아가다니. 그럼 가주가 될 수 있는 자격도 사라지겠지.’

가주를 노리는 다른 사촌들에게 질 수는 없었다.

아이작도 어째서인지 해골왕 부하의 처형식에 참여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아니 펜타곤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 같으니 마침 잘됐지.

‘최고의 성적을!’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나이저 세페트는 실소를 흘리고 있었다.

‘에슈아가 뭔 리더십이고 믿음이야.’

솔직히 이번 견습 팀의 파벌 게임은 이미 끝났다. 가장 하찮은 구성이 청이었던 것이다.

구성원이 하찮다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 어긋나 있어서 절대 합심할 리 없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에슈아는 줄 게 없거든.’

다른 공작가들만큼의 압도적인 재력도, 권력도 없다. 그들을 따라봤자 해골왕을 잡지도 못한 성녀와 똑같은 취급을 당할 뿐이지.

아마 견습 후반에 택하게 될 신앙 선택 때도 청은 올해도 꼴찌일걸?

‘뭐, 슈리 에슈아는 본인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동기들의 비위를 맞추며 지낸 거겠지만.’

하지만 우정? 호의?

빵 셔틀하며 그깟 수고와 품을 들이면 뭘 하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찾는 건 압도적인 권세와 힘인데.

‘정보 빼돌리기는 실패했지만, 팀 해체만큼은 못 피해갈 거다.’

뭐, 아이작 에슈아가 다과회에서 눈물로 동정심이라도 호소해 정보 빼돌리기만큼은 막은 모양인데.

‘니들 팀에는 우리 가문의 가신이 될 이들이 있다고.’

정확히 3명. 일부러 <팀을 유지하지 않는다.(X)>에 투표를 할 놈들이었다. 그리고 교황청에서 보상까지 받아 적가로 돌아올 유용한 부하들.

사실 나이저는 이를 위해 아버지에게 팀 배정에서 힘을 써달라 요청해 충신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건방지게 성자를 노려? 우리 가신들이 에슈아랑 함께 할 것 같아?’

“심지어 한 명은 어릴 적부터 함께한 나이저 님의 직속 시종이잖아요.”

그 말에 나이저는 킥 웃었다.

“그래, 슈리 에슈아. 그 등신은 그 능력 좋은 녀석들만 포섭하면 처형식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들떠 있을 텐데. 어쩌냐?”

“청은 가망이 없겠죠.”

“아이고, 서품식에서 그리 주목받았는데. 펜타곤에서 탈락당해서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개쪽이겠어요. 풉.”

그래. 여기서 청은 탈락한다.

자, 이제 백의 주교가 투표 결과 용지를 열면……

“청의 팀, <팀을 유지한다.(O)>로 만장일치!”

그래! 봐라! 유지한다에 만장일치……!

“…….”

…뭐?

팀 유지에 만장일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