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61화 (61/272)

제61화. 화합해야죠 (3)

시바. 진짜 잘못하면 X 될지도.

사실 슈리는 누구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바로 <화합> 평가 때문이었다.

물론 이 시험은 평소엔 할아버지 말처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직자들 사이에서 배신자 낙인이 찍히는 게 뭐가 좋겠으며, 무엇보다 유일하게 킹을 쉽게 딸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고 싶을까?

배신자들은 통과는 해도, 킹은 받지 못했다. 그럼 아무리 노력해도 킹 4개가 최대란 이야기였다.

‘문제는 권세가가 끼어들었을 때지.’

애매한 수준의 가문들끼리는 배신해도 큰 이득이 없다. 하지만 배신했을 때 이득이 너무 크다면?

‘이번엔 하필 적가의 순혈이 끼어있다.’

적의 가문은 특히나 교황가와 박치기를 시도하려 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한 권세가였다.

그래서 슈리가 그렇게 이래저래 개인별로 맞춰가며 공을 들인 것이었다. 최소한 <화합>에서 통수를 치는 일은 안 생기게끔.

물론 아이작은 ‘이새끼들, 빨대 꼽을 녀석들’이라며 처신을 잘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슈리는 믿었다.

‘우린 10살부터 함께 해온 사이다. 사이가 안 좋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전장에서 함께할 하나뿐인 동료야. 녀석들도 동료의 눈에서 피를 쏟게 할 짓은 안 할 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우리가 피눈물을 쏟게 하겠냐는 생각 따윌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순진한 슈리 에슈아.”

“……!!”

투표하기 50분 전.

슈리는 회의 중 화장실에서 도로롱 잠든 아이작을 질질 끌고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조원들에게 가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다.

“야, 투표는 어떻게 할 거야?”

“너희도 나이저한테 제안받았지? 슈리 배신하라고.”

“……!”

슈리는 움찔했다.

복도에서 말하고 있는 건 같은 팀, 청의 팀원들이었다.

그들은 나이저의 제안이 곤란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도 제안받긴 했는데, 올해는 그래도 킹을 하나라도 따두는 게 좋지 않겠냐? 해골왕 부하를 처형하고 싶기도 하고.”

“맞아. 그리고 무엇보다 배신하면 아이작 에슈아가 딸랑이 들고 집까지 쫓아올 것 같다…….”

몇몇은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지만, 다른 인원들은 푸핫 웃었다.

“병신들아! 그 아이작 에슈아도 적가한테는 힘 못 써. 적가에 들어가고 나면 지가 어쩔 건데? 그냥 배신 때려.”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슈리가 우리한테 그간 해준 게 있는데, ‘화합’에서 통수 치는 건 좀 심하지 않냐?”

사실 <화합>만큼은 암묵적으로 좋게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다른 부문에선 개인평가 영역이 있다 쳐도, <화합>은 재수 없으면 본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바로 아카데미 행이 아닌가.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키자는 의미다. 서로 개쪽이니까.

하지만 배신하자는 쪽이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러니까 더 해야지. 우리가 언제 에슈아나 되는 놈들을 바닥에 떨어트려 보겠냐?”

“뭐?”

“나이저가 사업 후원과 1만 달라크짜리 사업을 해주겠다 했다고! 고작 투표용지 한 장으로 무려 5대 공작가의 비호가 생기는 거야!”

“1… 1만! 영지 하나 값이잖아! 역시 적가 차기 가주…! 통이 크다!”

“그렇지? 하지만 슈리 에슈아는? 걔가 우리한테 그런 걸 해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너희도 가자.”

“…몰렉, 너 슈리한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어?”

“지난번엔 내 부탁 안 들어줬어!”

“그때 슈리 아팠잖아.”

“그런데 어쩌라고? 필요할 때 도움이 안 되면 의미 없는 거지! 처아프질 말든가. 아픈 것도 지 잘못이야. 어쨌든 제가 찾을 때 도움을 못 받았으니 친구 관계는 쫑 났습니다.”

그 말을 엿듣던 슈리는 주먹을 파르르 떨었고, 아이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니까 붕붕아. 호의가 무조건 답은 아니라니까.’

호의를 베풀어서 고마워하는 놈들이 있고, 더 만만하게 보는 놈들이 있다고.

하지만 뭐, 이해는 한다.

‘가진 패가 없는데, 뭐 어쨌겠어.’

하루 이틀 본 놈들도 아니고, 7년을 봐온 동기라는데 이 꼴이면 해탈이 올 만하지. 사람으로 대했는데 그게 짐승 새끼였으면 서러울 만하지.

아이작은 입술을 짓이기는 슈리한테 잘못한 것 없다는 듯 토닥였다.

“울지 마라. 나도 이대로 탈락해서 집에 돌아갈 생각 없으니깐.”

이 형이 다 해결해줄게.

하여간 도리가 아닌 걸 알면서도 빼가려는 적가 놈이나, 배신하자는 놈이나. 어린 놈의 시키들이 벌써부터 못된 것만 처배워서.

아이작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현재.

“청의 팀, <팀을 유지한다.(O)>로 만장일치! <화합> 덕목 통과입니다!”

“…어?”

“어어??!”

“뭐라고?!”

“정말 통과한 거야? 지, 진짜로?”

슈리가 몹시 기뻐했다.

여유롭게 비웃던 적의 견습 사제들은 얼어붙었고, 나이저 세페트는 기가 찬 듯 눈을 부릅떴다.

“청이 만장일치?! 어떻게 된 거야!”

나이저 세페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자신이 심어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이저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손만 꼼지락거렸다.

그 의미를 눈치챈 적의 견습 사제들은 충격을 받은 듯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으로 매수당했어?!’

청한테?!

…그런데 잠깐.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청의 팀은 다 기뻐하는데, 아이작 에슈아는 왜 저리 빡친 표정인 거지?

“이 때끼들이. 마지막까지 고민을 해? 띠질래?”

아.

빨리 안 내서구나.

그러자 나이저 세페트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할 얼굴이 되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찔러둔 다른 놈들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자신이 심어둔 3명! 그 녀석들만큼은 배신을 해야 했다.

아니, 정말 하다못해 1명! 자신의 직속 시종 만큼은……!

그가 눈을 부라리며 심어둔 시종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이작에게 쪼르륵 향하는 것이었다.

“……!!”

얼어붙은 나이저 세페트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시발, 이게 뭔 상황이야 진짜?

* * *

“와, 자식 대단하다. 아이작! 너 역시 대단해!”

<화합> 투표 후, 슈리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 아버지처럼 늘 퉁명스러운 표정만 짓는 녀석이라, 방긋 웃는 모습이 징그럽다 못해… 교황이 처웃는 것 같아서 개 빡치지만. 아이작은 그러려니 했다.

“어유, 요 예쁜 꼬맹아! 그 짧은 회의 시간 동안 어떻게 전원의 마음을 돌려놓은 거냐!”

슈리는 솔직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배신하겠다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화합>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

청의 직계가 아카데미로 돌아가 비웃음을 당할 준비를.

뭐, 그래도 친구들까지 비웃음을 사게 할 순 없어서 배신하겠다는 애들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자신은 <화합>이 끝나면 자진해서 아카데미로 돌아갈 테니, 다른 친구들은 통과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아이작이 그런 슈리를 막았다.

-낌슈리. 네가 무릎을 꿇는 건 한 번이면 족해.

-뭐?

-나한테 맞을 때.

-……???

뭐, 인마?!

뭔 소리인가 했지만, 아이작은 자신이 해결하고 오겠다며 슈리만 빼고 팀원들을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방에 들어간 지 20분 후.

-미… 미안하다. 슈리, 아이작. 팀을 유지하마.

어찌 된 건지, 전원 고개를 땅에 박으며 배신을 안 하겠다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드는 합법적인 생각.

“…너, 또 다과회 2탄 저질렀지?”

“아니? 폭력 수단은 일시적인 거라, 근본적인 걸 바꾸는 데에는 도움이 안 대. 투표 때 마음을 바꾸면 그만이니까. 형은 그런 것도 몰라?”

알고 있으니 눈물겹다만, 형에 대한 존중은 도대체 어디다 팔아 처먹은 걸까?

“그래서 평범하게 거래를 했어.”

…왜 평범하게 했다는 말이 폭력보다 더 불안한 거지??

“금의 추기경이 자꾸 나 찾았잖아. 그래서 날 정말 보고 싶으면 《금환약》을 내놓으라 했어.”

“금환약?!”

미간을 짚고 있던 슈리는 크게 놀랐다.

그건 대륙에서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영단으로, 금의 신앙의 비전이었다.

능력 상승부터 육체강화 기능까지. 그것 한 알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버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귀하고 효험이 좋다.

‘그건 금의 직계들만 먹을 수 있는 건데……!’

그리고 그 말은 설마……?

“설마 그걸로 딜 한 거야? 애들이랑?!”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슈리는 대단하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걸 금한테서 뜯어낸 것도 대단하지만, 와… 생각 잘했다. 그래, 그거면 확실한 거래 가치가 있지!”

왜 만장일치가 나왔나 했더니.

적의 가문에 붙는 것보다 그 영단을 먹는 게 천만 배 이득이라고 생각한 거였구나!

하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까!

“그럼 당연히 애들한테 아직 안 줬겠네?”

“아니? 투표 전에 이미 나눠 줬는데?”

“아.”

아이작의 표정에 슈리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얘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애구나.’

보통은 목적을 이룬 다음에 보상으로 지급해야 뒤통수를 안 맞는데. 슈리는 아무래도 이 형이 인생을 가르쳐줘야겠다는 듯 혀를 찼다.

“야.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너 진짜 큰일 날 뻔한 거야. 그런 걸 미리 주면, 영약만 먹어치우고 중요한 순간에 배신을 때린다고. 목적을 이루고 줘야지.”

“아니? 걔들 절대 배신 안 때려.”

“??”

슈리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이놈은 담이 큰 건지, 순진한 건지.’

그래도 동료를 믿는 모습을 보라. 청으로서는 이쪽이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좋다. 성직자에 가까워지고 있어! 이거면 아이작도 분명 훌륭한 사제가……’

그러나 슈리가 생활관의 문을 연 그 순간. 앞서 한 모든 생각은 싹 사라졌다.

꾸룩……!

“으윽!!”

“야, 아직 멀었냐! 아이자아악!”

“야! 시키는 대로 했잖아! 어서 해독제를 줘얽!!!”

“…….”

시발.

이번엔 또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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