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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62화 (62/272)

제62화. 화합해야죠 (4)

문을 연 슈리는 넋을 잃었다.

안에는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는 이들이 한가득했다.

“아이자앍! 제발!”

“형들이 이렇게 빈다! 살려줘어!”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아이작! 너 또 뭐 했어!”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별거 안 했는데.

“금환약을 먹고, 부작용이 나게 한 것뿐인데.”

…할아버지. 저 그냥 아카데미로 돌아갈래요.

슈리는 벽지를 뜯을 기세였지만, 위스퍼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이를 우드득 갈았다.

[저 따위 놈들한테 주인님의 귀한 마력을 나눠주시다니요옭!! 아깝게!]

‘거 너무 그러지 마라. 손톱의 때만큼 나눠줬다.’

사실 아이작은 금환약에 해골왕의 마력 농축 액기스를 타서 줬다.

그리고 성직자들에게 마력은 독. 위장에 들어간 순간, 장기가 뒤틀리다 못해 입 밖으로 터져나올 것 같은 끔찍한 복통을 느끼게 되겠지.

하물며 먹는 순간 온몸에 퍼져 효력을 발하는 대단한 영약과 섞였으니, 효과는 수백 배가 되었을 터.

그 결과 지금 이 상황이 된 것뿐이다.

“꺼, 꺼어억!!”

“사, 살려줘! 해독제에!”

아이작은 근성 약한 놈들이라는 듯 혀를 쯧 찼다.

‘마력 액기스라 해봐야 1000%는 희석했거늘. 겨우 그 정도로 성직자란 놈들이 왜 이리 엄살이야?’

물론 해골왕의 마력은 너무 막강해 상급 마족들도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어린 성직자들이 즉사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슈리가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도 네가 사기 안 치고 금환약을 전부 준 것만으로도 어디냐…….”

“전부를 주다니?”

…예?

“미쪘어? 그 귀한 영단을 이놈들한테 전부 주게?”

…예에에??

당황한 슈리가 아이작을 황급히 붙잡았다.

“너 쟤들한테 뭘 먹인 거야!!”

“<뉴 금환약(밀가루 90%, 해골왕 마력 추출액 5%,  설사약 1%, …머리카락추출물 0.5%, 금환약 0.0000001%)>”

……한마디로 더럽게 많이 남겨 먹었다는 의미다.

슈리의 눈이 뒤집어질 만했다.

“야! 너는 성직자가 되어가지고 거짓말을 쳐?!”

“거짓말 안 쳤어! 0.0000001%나 넣어줬다고.”

“시발! 독을 넣어도 그것보단 더 많이 처넣겠다!”

그러나 아이작은 품속에서 금환약 병을 꺼내 보이며 푸헿 웃었다.

“그래도 이거 진짜 귀하긴 한가 봐. 이거 보여주자마자 전원 단번에 ‘배신 안 할게요’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다음에 또 낚아볼까?”

아 할아버지 틀렸어요…. 이 새끼, 성직자 될 생각 1도 없어요.

동시에 그런 그들을 보며 배를 움켜쥐고 있는 견습들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에슈아아!’

‘호구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 * *

때는 투표하기 50분 전.

사실 그들은 그때만 해도 쾌재를 질렀었다.

물론 푸흐흐 웃는 얼굴로 슈리와 함께 나타났을 땐 ‘시발 들켰나?’ 싶었고, 슈리 빼고 자신들만 방으로 끌고 갔을 땐 ‘X 됐나?’ 싶었건만, 이게 웬걸.

“니들 이거랑 투표랑 교환하지 않을래?”

“!”

그들은 아이작이 내민 금환약에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화려한 금색 장식의 상자, 상자를 감싸고 있는 금색의 띠. 거기에 성법으로 새겨진 빛의 글씨.

‘미친, 교황가의 비전 영약이라니!’

가짜인가 싶었지만, 상자에 새겨진 베리트 가의 문장 《쉴드 크라운》은 어딜 봐도 진짜!

아이작은 그 반응에 입꼬리를 올렸다.

“형아들. 적가한테 우리 배신하라는 말 듣고 온 거지?”

“?!”

“괜찮아, 괜찮아. 이쪽도 제안하려고 그런 것뿐이니까.”

견습들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그는 탐나지 않냐는 듯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사용자의 수련치를 10년 치 이상 끌어올려 준다는 영약. 이거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거 알지? 그리고 적가의 후원이 꼭 필수인 것도 아니잖아? 그럼 금환약도 먹고, 킹도 따고. 이쪽이 오히려 남는 장사 아냐?”

“……!”

맞다. 남아도 너무 남는다. 솔직히 적에 붙어도 금환약까지 얻진 못한다.

“키, 키나 베리트도 저걸 먹고 천재가 됐단 소문이 있는데…….”

적의 제안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솔깃했지만, 그들은 어설프지 않았다.

“청이 금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 대륙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 귀한 비전 영약을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데?”

“아, 나는 교황가랑 사이가 좋거든. 서품식 일로 좋게 봐주셔서. 키나 베리트도 얼마 전에 같이 공부하자고 교황 성하를 뵈러 가자던데. 이건 금의 선물이고.”

“…지, 진짜? 너한테?”

“맞아…. 나 목격담 듣긴 했어. 키나 베리트가 쟤 찾아갔다고.”

“…헉?!”

“못 믿겠으면 베리트 추기경한테 보증서라도 가져와 줄까?”

“……!”

“하지만 투표 시간은 앞으로 20분 남았고. 난 보증서를 가져올 시간이 없는데. 싫으면 이 거래는 없는 거고. 너희는 키나 베리트처럼 될 수 있는 평생의 기회를 놓치는 거고.”

“……!”

아이작은 마치 사람을 홀리는 유령처럼 웃었다.

“어차피 우리는 급할 거 없거든? 우리 5대 공작가 사람이야. 거기에 둘 다 조기 졸업한 사람들인데, 뭐가 아쉽고 무섭겠어? 하지만 형들은 적의 후원을 얻는답시고, 귀한 비전 영약도 못 처먹고, 배신자 이름 달고 에슈아까지 등지는 거야. 적의 사업 후원? 막말로 그게 니들한테 좋은 거야? 니들 가문이랑 부모님들한테 좋은 거지?”

“……!!”

그 말에 에슈아를 배신하려고 했던 이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때 제일 먼저 배신하자고 했던 몰렉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럼 그 금환약을 먼저 줘.”

“!”

“왜? 준다고 해놓고, 나중에 안 줄 수도 있잖아.”

몰렉은 영리하게 금환약과 적의 후원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만장일치 해준다고 하고 금환약을 먹은 후에, 투표에서는 배신을 때리면 그만이지.’

다른 아이들도 그 계획을 눈치챈 듯했다.

“맞아. <화합>이잖아. 우리도 에슈아를 믿게 해줘.”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응 좋아. 형아들이 그걸로 에슈아를 믿을 수 있다면. 대신 먼저 줄 테니까 꼭 ‘유지한다’에 투표해줘야 해?”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작의 얼굴에 그들은 병신이라는 듯 히죽거렸다.

뭐, 한편으로는 영단을 먹지 않고 숨겼다가 나중에 비싸게 팔까도 싶었지만, 배신을 한다는 전제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이작이라면 배신 후에 백 프로 도로 빼앗아가겠지.

실제로 아이작도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배신하면, 형아들 영단도 회수하고 내 손에 뒤질 거야.”

하하. 뺏길 바에야 못 가져가게 먼저 먹어버리고, 적(赤)의 후원까지 얻는 쪽이 꿩 먹고 알 먹고 일전쌍조지.

“그래! 꼭 ‘유지한다’에 투표해줄게!”

“고마워요, 형아들! 슈리 형도 기뻐할 거야!”

하하하! 역시 호구 에슈아……!

…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작에게 금환약을 얻어먹은 그들은 찢어질 듯한 배의 고통에 숨이 멎을 뻔했다.

“커, 커헉! 뭐, 뭐야! 분명 몸에 힘이 들어오는 걸 느꼈는데……!”

“왜 갑자기 배가!”

“커어억!”

아이작은 그런 그들에게 다가와 앉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천진난만하게 웃던 작은 아이는 어디에 갔는지, 눈빛이 싸늘했다.

“야. ‘유지한다’에 투표할 거지? 안 그럼 해독제는 없다? 알아서 처신 잘해라?”

“뭐 인마?!”

“참, 치료해달라고 의무실에 가려고 하면 나이저 세페트한테 전부 폭로할 거야. 니들이 영단에 눈이 멀어 적을 배신하려고 했다고. 어차피 마력핵이 들어간 거라, 우리 에슈아 말고는 해독제도 없겠지만.”

“?!”

그 말에 견습들은 땀을 주륵 흘렸다.

만약 정말로 마력핵을 먹은 거라면 마(魔)를 상대하는 청 말고는 치료할 수 있는 사제도 드물다.

교황청을 다 뒤지면 없지는 않겠지만, 해독제를 찾다가 이 고통에 먼저 죽지 않을까?

하물며 이미 먹은 이상, 나이저한테 발뺌도 하지 못한다.

‘아니, 시발. 그 전에, 청이 이런 짓을 한다고??’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던 것이다.

* * *

그리고 현재.

‘젠장, 설마 그 에슈아에서 이딴 수작을 부릴 줄은……!’

결국 아이작에게 된통 당한 그들은 만장일치 투표를 해버리고, 지금처럼 아이작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화합 통과했잖아! 해독제 줘어어얽!”

“진짜 못 참겠어!”

“흠, 어디에 뒀더라.”

“야!!”

이쯤 되니 그들은 아이작이 무섭게 느껴졌다.

‘크윽, 이 자식 분명 젖먹이 때 해골왕의 뼈를 삼켰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보다 더 심하면 심했을 텐데, 어떻게 이 고통을 견뎌낸 거야?’

배는 아파 뒤지겠는데, 오히려 그래서 이 꼬마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역시 해골왕에게 성자라고 불린 꼬마인가?

“이상하다. 약이랑 해독제는 한곳에 모아놨는데.”

아이작이 본인의 짐에서 주섬주섬 꺼낸 건 다름 아닌 천 기저귀.

“아, 역시 여기 있네, 해독제.”

오! 약을 천 기저귀에 보관했다니,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구원자다!

슈리는 그런 구원자에게 한 소리 했다.

“…야. 너 그 기저귀, 서품식 때 차고 있던 거 아니냐?”

“괜찮아. 싸진 않아서 깨끗해.”

시발! 저 새끼는 성자가 아니라 악마가 틀림없어!

하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좋다. 견습들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어, 어서 줘……!”

“제발! 이제 한계야!”

“고뤠, 자.”

아이작이 작은 손으로 해독제를 내미는 그 순간이었다.

쾅!

“내 부하 안 내놔?!”

청의 생활관에 낯익은 얼굴이 쳐들어왔다.

문 쪽에서부터 씩씩대며 들어온 건 적발 남자.

견습 때는 본래 신앙을 상징하는 색은 두르면 안 되지만, 그딴 룰 따위 신경도 안 쓰는 듯 붉은색 사복을 입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아 단련된 성인, 심지어 기사처럼 보이는 그는 아이작을 찾았다.

“너 이 새끼, 무슨 뇌물을 줘서 내 부하들을 빼앗아가! 가만 안 두… 컥!”

그는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오히려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아이작한테 손대지 마! 건들면 너라도 가만 안 둬!”

“?!”

“그래, 이 미친 놈아! 왜 갑자기 나타나서 방해야! 시발! 우릴 죽일 거냐!”

“???”

붙잡힌 나이저는 당황한 표정이었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슈리는 말문을 잃었다. 나이저가 들어오자마자, 아이작이 한 행동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저 영악한 놈…….’

아이작은 들고 있는 약을 벽난로에 던져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저가 움직이면, 더 불 쪽으로 약을 움직이고. 또 움직이면 더더욱 불 쪽으로 밀어넣고.

피해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나이저를 붙잡고 있을 만했다.

아이작은 꼼짝도 못하는 나이저에게 다가갔다.

“부하? 빼앗을 생각을 했으면 빼앗길 생각도 해야지.”

“……!”

그는 나이저 세페트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네가 쟤들한테 배신하라고 할 때 말했다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이 찾는 건 압도적인 권세와 힘이라고?”

“!”

아이작의 붉은 눈과 똑바로 마주한 나이저 세페트는 흠칫 몸을 떨었다.

“틀렸단다. 아가야.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이 찾는 건 제 목숨줄이야.”

“……!”

권세? 힘?

“죽음 앞에선 장사 없어, 애송아.”

웃고 있는 아이작의 눈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눈에 비친 건 광기도, 치기도 아니다. 더 아득한, 죽음마저 초탈한 근원적인 어둠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이저 세페트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덜덜.

‘어떻게 사람이 이런 눈빛을 할 수 있지.’

적(赤)은 고문과 회개의 신앙인 만큼, 공포와 고통에 익숙해지는 교육을 받았다. 하물며 적가의 직계로서 다른 놈들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익혔다.

그런데 뭔데? 대체 뭐길래 이놈은 적가의 사람보다도 더 적가에 적합한, 아니 더한 눈을 하고 있는 건데!

그러나 아이작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알았으면, 좋은 말로 할 때 얘들한테 주려 했다던 사업후원금하고, 위자료하고, 집문서에 도장까지 다 나한테 가져와! 때끼야!”

니가 사제냐, 양아치냐.

“…아니, 다 좋으니까 해독제는 좀 주고 말해!”

견습들은 절규했다.

* * *

비슷한 시각, 교황청의 집무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금의 추기경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아이작을 데리러 갔던 시종들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아이작이 온 모양이었다.

‘고작 견습 하나 보는데 7일이나 걸리다니.’

남의 눈에 안 띄게 만나려 하다 보니 참 오래 기다렸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

짜증을 내면서도 손님을 맞이하려 했던 추기경은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없다.

문이 열렸는데, 아이작이 어디에도 안 보인다. 있는 건 땀을 주룩 흘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시종들 뿐.

“아이작 에슈아는?”

“…….”

“…교황가한테 금환약을 빌려갔잖아. 그거면 오겠다고.”

어디에 쓴다고는 안 했지만, 보나 마나 <화합> 때 쓰려 했던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청한테 만장일치가 나올 리 없으니.

그런데.

“안 와?”

“예.”

“그것만 먹고 입을 싹 닫았다고?”

“…예.”

고개 숙인 시종들은 거의 울 기색이었다.

“그, 주인님. 아이작 에슈아가 부정한 방법으로 <화합>을 통과했다고 협박할까요?”

“아니, 부정한 방법은 아니다.”

금환약은 금의 귀한 영단이었다. 그걸 대가로 팀원을 포섭했다면 거래의 수단일 뿐이지, 부정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결국 베리트 추기경은 편두통이 오는 듯 미간을 짚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

“다른 말!”

“…그! 다음엔 더 큰 금덩어리를 보내라고……!”

베리트 추기경은 어이가 없었다.

이… 미친 놈이 진짜?

결국 한계라는 듯, 깃펜이 뚝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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