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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63화 (63/272)

제63화. 내가 뭘 들은 거지? (1)

마족의 땅, 블랙필드.

해골왕이 지배하던 땅인 이곳은 뜻밖의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십사육마 중 하나가 인간들에게 처형당한다고?”

7계위 마족만 되어도 인간들은 수도를 버릴 것을 각오했고, 작은 왕국은 나라를 포기할 수준이다.

그런데 9계위, 하물며 하나하나가 이미 마왕급인 해골왕의 직속 부하가 인간에게 처형을 당해?

이는 위신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 마족들로서도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신성제국의 서품식에 해골왕의 분신을 보낸 것이다. 인간 진영의 새로운 병기인 성자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그랬는데.

“성자를 없애는데 실패했다고?”

“예, 예…….”

서품식에서 돌아온 마족들의 말에 애쉬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진짜 목적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지금 교황청에 잡혀있는 그 십사육마는 현 체제에 반대하는 쪽이었으니, 차라리 처형되는 게 좋은 건지도 모른다. 마족의 위신이야 그다음 문제지.

“서품식에서 위대하신 왕의 힘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은 크다.”

사실 그녀는 마법도구를 반입시켜 서품식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환영마법은 애쉬의 특기였으니까.

물론 평소라면 신성제국의 결계를 뚫고 마법도구를 반입하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 역시 왕의 힘은 위대하다. 고작 티끌만 한 힘으로도 이 정도라니.’

해골왕이 특별히 본신의 힘을 애쉬에게 나눠주신 것이었다. 그래서 난공불락 신성제국의 결계도 뚫고 그 환영마법을 펼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먼저 서품식에 침입했던 7계위 마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 애쉬 님. 실은 그곳에서 그분의 힘을 느꼈습니다.]

몸체가 안개인 한 마족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이작의 위압에 의해 쫓겨난 바로 그 마족이었다.

“그분?”

[위대하신 해골왕이요.]

“!”

그 말에 애쉬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서 왜 왕의 기운을… 아!”

하지만 곧 뭔가 깨달은 듯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청의 아이!’

10년 전, 위대한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미친 젖먹이가 있다 하지 않았던가! 분명 그 아이가 틀림없었다.

애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게 웬 떡이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에슈아 영지 안에 있어서, 마족들조차 지금껏 손댈 수가 없었건만!

그런데 그 꼬마가 수도로 나왔어?

심지어 사제품까지 받았다고?

‘그러면 금(金)과 청(靑)의 시험을 치르겠군!’

안 그래도 ‘펜타곤’의 5대 덕목은 어린 사제들 사냥하기 좋은 마족들의 사냥 축제. 하급 사제들이 가장 많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도 그때다.

분명 14년 전에도 즐겁게 포식하고 왔었는데.

이번엔 청의 아이까지?

‘고작 티끌만 한 마력으로도 그 정도 힘이었는데. 그분의 육신을 먹게 되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그녀는 히죽 웃으며, 한시라도 빨리 아이작을 먹어치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 * *

“너희 또 왔냐?”

슈리는 질린다는 듯 시종을 보았다.

그는 아이작을 찾아온 금(金)의 시종이었다.

“우리 이제 곧 있을 금(金)이랑 청(靑) 시험 준비해야 하는데.”

하지만 시종은 오늘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안 됩니다! 베리트 추기경 각하께서 오늘은 꼭!! 아이작 에슈아 님을 불러오라 하셨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인간이 왜 아이작을 찾냐고. 부모님들 사건 탓에 아이작을 누구보다 싫어할 인간이.

‘아니, 솔직히 추기경을 무시하고 있는 그놈이 더 대단하긴 하다만.’

슈리는 질린다는 듯이 아이작을 떠올렸다. 아이작은 추기경의 소환 명령을 받았음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뭐, 청으로서는 그편이 좋고 고맙긴 하다만, 추기경은 사제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만한 지위 사람의 명령을 무시했다간 뒷수습이 힘들어질 텐데…는 무슨. 이 새끼는 가주의 명령도 X 까는 놈이었지, 참.

결국 슈리는 찾아온 시종을 쫓아냈다.

“됐으니까 찾아오지 마.”

“아!”

쾅!

슈리는 바로 합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골치 아프다는 듯, 창가에 있는 아이작을 보았다.

“너, 베리트 추기경이 왜 그렇게 찾는지 이유도 몰라?”

“모르겠지만, 나 데려가려고 죽음까지 각오한 건 알겠네.”

“죽음?”

아이작은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을 본 슈리는 깜짝 놀랐다.

“시종들이 더 오고 있잖아?!”

한 명이었던 베리트가의 시종이 세 명이나 더 늘어 네 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말을 전달하는 일쯤이야 시종 한 명으로도 충분한 일. 구태여 네 명이나 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것들이 설마 강제로 끌고 갈 셈이야??”

그 증거로 새로 추가된 시종들의 덩치가 꽤 크다. 작은 체구의 아이작이라면 꼼짝없이 끌려갈 정도였다.

“이것들이 미쳐 돌았나. 지금 당장 가문에 말해서……!!”

“기다려봐, 붕붕아.”

“왜! 이건 어딜 봐도 이건 금의 행패…….”

아이작은 또다시 창가를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슈리는 더욱 식겁했다.

“나이저 세페트?!”

저 새끼는 또 왜 청의 숙소로 오고 있는 건데?

그러나 아이작은 푸흡 웃었다.

“뭐, 부하를 뺏긴 걸로는 정신을 못 차렸나 보지.”

뭐, 잘됐다.

저 멀대 놈, 이용할 수도 있겠는데.

곧 아이작이 움직였다.

* * *

‘이 빌어먹을 양아치 놈!’

가신을 뺏긴 나이저 세페트는 이를 갈며 아이작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는 조사를 하면서 의외의 사실을 알아냈다. 에슈아는 원래 아이작을 서품식에 안 보내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정교육’이란 이유로.

뭐, 그건 표면상의 이유고, 다들 자라지 않는 몸 때문일 거라고 수근거렸지만. 글쎄?

‘그때 그 눈빛.’

-죽음 앞에선 장사 없단다, 애송아.

도대체 그게 어딜 봐서 성직자의 눈빛인데? 범죄자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눈빛이었다!

하물며 동생이 아카데미 식당에서 습격을 받을 때였나. 함께 있던 견습 이단심문관이 보고를 해왔다.

-도련님. 수상합니다. 식당에 마족이 나타났던 것도 그렇고, 슈리 에슈아가 아이작 에슈아를 데리고 저를 피하려고 했던 것도 수상합니다.

비록 하찮은 견습의 말이긴 했지만, 그 말인즉-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겁니다. 이단심문관이랑 부딪치면 안 되는 뭔가가 있어요.

‘직접 정체를 까발려주마.’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 특히 이단자를 물색하는 것에 특화된 적(赤)의 신앙으로서 강한 촉이 왔다.

‘분명 신앙심에 문제가 있어. 신앙심을 조사해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리고 신앙심이 드러나면 그걸 빌미로 청을 떨어뜨리고, 부하를 되찾아오면 될 것이다.

그러나 청의 생활관에 도착한 나이저 세페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는 놈들이지?’

아무리 봐도 수상한 놈들이 청의 합숙소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어쩔 수 없지. 아이작 에슈아가 주인님의 소환 명령을 무시한 지 7일째다.”

“맞습니다. 오늘도 안 오면 강제로 기절시켜서라도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이작과 슈리의 생각대로 아이작을 납치하러 온 이들이었다. 이내 그들이 아이작을 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야. 니들 뭐야? 여기 하인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남의 합숙소에서 기웃거리지?”

“예? 아, 아니 그…….”

시종들은 상대가 적의 공작가의 순혈, 나이저 세페트인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젠장, 왜 하필 적의 공작가가……!’

5대 신앙, 5대 가문끼리는 서로 금도 안 밟으려고 하는 예민한 관계였다. 조금만 틀어져도 신앙끼리 전쟁이 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으니까.

특히 적과 금은 철천지원 사이. 입조심을 해야 했다.

“아, 그, 그게, 여기 공자님께 볼일이 있어서…….”

“누구.”

“아, 아이작 에슈아 님이요.”

금만큼은 아니지만, 청 또한 싫어하는 적이기에, 이름만 들어도 재수 없다며 관심을 끌 줄 알고 솔직히 말했거늘. 그는 오히려 눈을 번득였다.

“니들 뭔데? 어디 소속이야? 걔한테 무슨 볼일인데?”

당황한 추기경의 부하들은 눈알을 굴렸다.

‘이, 이게 아닌데??’

‘뭐야, 원래 붉은사슬 놈들 안 이랬잖아?’

‘젠장, 주인님이 에슈아 인간을 부른 게 퍼지면 괜히 골치 아파진다.’

분명 이상한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아이작 에슈아가 나타났다.

“내가 ‘다과회’ 때문에 부른 사람들이야. 넌 끼어들지 마.”

“!”

시종들은 당황한 듯, 그러면서도 밝아진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드디어 부름에 응해 주셨구나! 하물며 적과 금의 관계성을 알고 도와주시는 건가?

‘역시 호ㄱ… 아니 정직한 에슈아……!’

‘금하고는 사이가 안 좋아도 이런 부분의 매너는 지켜주시는 분이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

“마, 맞습니다. 저희는 에슈아 사람입니다! ‘다과회’로 도련님한테 챙겨드릴 물건이 있어서……!”

상황에 맞는 적당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입꼬리를 올리는 나이저 세페트의 눈은 더욱 험악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에? ‘다과회’ 물건?”

하필 제일 건드리면 안 되는 단어를 꺼내버렸다. 가뜩이나 그 ‘다과회’란 것 때문에 부하를 뺏긴 나이저였다. 눈깔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상관하지 않고 시종에게 말했다.

“아무튼 오늘 다과회에 쓸 거니까, 오늘까지는 가져와.”

“아…! 예!”

그래, 드디어! 오늘이면 만나주겠다는 말씀이구나! 그리고 다과회에 쓸 만한 걸 가져오면 만나 주겠다는 걸 힌트로 주신 거구나!

시종들은 기뻐했다.

‘상냥하신 분. 저런 분을 함정 속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라 가슴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눈치 빠른 금의 시종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작이 합숙소로 먼저 들어갔다.

그 광경에 나이저의 황혼빛 눈동자가 험악하게 꿈틀거렸다.

저 꼬맹이가 당당하게 앞에서 엿을 먹이네?

“그, 그럼 저희는 그만…….”

금의 부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이저 세페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회개지옥> (5계위)

“으악!”

붉은빛과 함께 베리트 추기경의 시종들이 마비되어 기절했다.

결국 아이작 에슈아의 손발(?)을 몽땅 없앤 나이저 세페트는 흡족해하며 의기양양 합숙소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합숙소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나이저 세페트가 왜??”

“뭐지?”

동시에 견습들은 몸을 움찔 떨었다.

사실상 적을 배신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슈리는 아예 기겁을 했다.

‘미친, 저게 진짜로 들어왔어?’

심지어 베리트가의 시종들을 처리하면서까지?

아이작은 저놈이 베리트가의 시종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못 들어올 거라 했는데!

‘설마 저게 눈깔이 돌아서 직접 맞짱이라도 뜨러 온 건가? 안 돼!’

저 새끼는 아이작과 체격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이저는 타고난 적가의 신체와 검 솜씨 덕에 성기사과에서도 눈독을 들이던 놈이었다.

괜히 동기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했던 것이 아니다.

하물며 적의 가문은 반사 성법을 역으로 되돌리는 기술이 있었다! 어린 아이작을 사정없이 후려 팰 것이다!

‘담, 담당 선배님을 불러와야.’

하지만 나이저 세페트는 웃으면서 종이를 꺼냈다.

“재미 삼아서 신앙심 테스트해 보려고 가져왔는데. 신앙심이 높을수록 황실과 중앙에 어필하기도 좋잖아?”

겁먹었던 다른 견습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환영했지만, 슈리는 얼어붙었다.

시발! 더 안 돼!!

‘차라리 맞짱을 떠!!! 새끼야! 두드려 패라고!’

아이작은 뭔 생각을 하는지 보인다는 듯 슈리를 도끼눈으로 보았지만, 슈리는 진지했다.

‘저 새끼, 신앙심 테스트지라니. 설마 뭔가 알고 왔나?’

밝혀지면 전부 끝장난다!

“손만 대도 반응하는 게 있으니까, 우선 편하게 이걸로…….”

그런데 그때였다.

“내 명령이 우습나?”

“엉?”

나이저 세페트는 등 뒤에서 들린 싸늘한 음성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 인물의 등장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놀고 있느라 소환에 응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는데.”

“???”

나이저 세페트의 등 뒤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베리트 추기경.

사제들의 수장이 나타나자 견습들은 고개도 못 들고 숨도 못 쉴 만했다. 일병들 앞에 난데없이 대장이 나타난 셈이었다.

그는 나이저 세페트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하물며 적(赤)하고 친하게 지낼 줄은 몰랐군. 적의 사람이 설마 내 부하까지 쓰러트릴 줄이야.”

“……???”

나이저 세페트는 얼빠진 얼굴로 머리에 물음표를 그렸다.

“무, 무슨… 아?!”

그제야 나이저 세페트는 자신이 쓰러트린 시종들을 보았다.

‘아니, 에슈아의 사람이라며?!’

금의 사람이었어?!

어딜 봐도 X 됐다는 얼굴이었지만, 아이작은 픽 웃었다.

아무래도 소환 명령을 7일이나 무시하자 베리트 추기경이 참다못해 빡쳐서 직접 온 듯했다.

뭐, 이것도 노림수의 하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는데.

어쩔까 싶던 아이작은 방긋 웃으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각하. 나이저 공자가 금하고는 절대 어울리지 말라고 계속 붙잡아서요. 각하께서 부르셔도 못 가고 있었습니다.”

“……?”

“……??”

뭐, 인마?!!

내가 언제!

아니 그보다, 너 왜 갑자기 말을 잘해?

“그보다 추기경이 견습 사제를 따로 부르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신앙을 선택하기 전의 견습 단계에서는 어느 신앙에서도 개입을 할 수가 없다. 선택 과정에 외부 개입이 생길 수 있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신앙의 주교들도 거리를 두는데, 신앙의 최고 책임자인 추기경이 직접 찾아온다고?

“추기경이 그런 비겁한 짓을…….”

그러나 나이저 세페트는 말문을 이을 수 없었다.

“아. 그래?”

“?!”

얼음장처럼 얼어붙은 추기경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원래도 웃음기가 없는 베리트 추기경은 그 자체로도 무섭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무섭다.

사람이 분노하면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게 바로 이런 건가 싶다.

“그래. 분명 적의 삼남이었던가. 네놈은 견습 일이 너무 심심해서 이러고 있나 보군.”

“예? 아, 아니……!”

“팀원들과 화합을 하라 일부러 시간을 내줬더니.”

아니, 아닌데.

이거 진짜 억울한데??

“네 부친을 봐서 일부러 내버려 두고 있었거늘. 적의 팀에는 특별히 교황청의 일거리를 더 늘려줘야겠어.”

시발!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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