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69화 (69/272)

제69화. 까꿍 (1)

‘교황가가 아이작에게 입양을 제안했다라.’

고엘은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아버지가 교황가를 조사해보라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지.

하지만 입양?

입야앙?

누구를? 아이작을??

‘이건 분명 뭔가 있다.’

그게 아니고서야 미쳤다고 그딴 놈을 입양하겠다는 개소리가 나오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 서품식에서 견습들의 신 뽑기를 담당하던 사제 말입니다.

에슈아는 이번 서품식을 담당했던 교황청의 의전사제를 찾았다. 아이작이 어떤 신을 뽑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베리트 추기경 옆에서 견습들의 손을 찔러 피를 떨어트린 그라면, 문장을 똑똑히 기억할 테니까.

-그래. 서품식 이후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갔다던데. 고향에서도 행방을 모른다더니, 찾았느냐?

-예. 시체로요.

-……!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마족의 숲에서 청의 기사들과 함께 찾아냈습니다.

에슈아의 기사단을 이끄는 릴라이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문장을 보고 기록한 의전사제가 시체로 발견되다니.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설마 교황가가 입막음을 한 건가?’

목격자를 없앨 정도의 일이라고?

‘진실에 다가가는 자는 목숨을 잃는다는 건가?’

그만큼 아버지도 굉장히 조심하라고 했지만, 오랜만에 외가, 베리트가에 도착한 고엘이었다. 아이작을 입양하려는 이유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베리트 사람이 에슈아 사람을 환영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엘이 순혈 에슈아 사람이라는 전제하.

“세상에, 도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모도 잘 지내고 있던 것 같네.”

고엘을 맞이한 건 베리트가의 시녀장이었다. 한때 고엘을 돌봐줬던 유모이기도 했다.

“어떠합니까, 에슈아는?”

“어떻긴, 여전히 버러지 같지.”

“그중 제일 버러지 같은 건 도련님을 무시하는 청의 가주와 슈리님을 방해하는 악랄한 아이작 에슈아겠죠? 위선자 집단 같으니.”

“역시 잘 아네. 역겹다니까.”

고엘은 사실 베리트에서 보낸 첩자였다. 그래서 종종 외가에 들러 에슈아의 내부 동향을 뿌렸다.

실제로도 고엘은 에슈아의 권리를 빼앗아 베리트에 넘겼고 말이다.

뭐, 교황가가 간과한 게 있다면 고엘이 ‘이중 스파이’라는 점이겠지만.

고엘은 사실 청의 가주 일라이에게 포섭되어 있었다.

‘외가엔 좋은 기억이 없지.’

고엘의 유모였던 시녀장은 고엘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고엘님도 존귀하신 교황가의 핏줄이신데요. 에슈아에서 태어나지만 않으셨어도 그런 취급은 안 받으셨을 텐데.”

그런 취급이 뭔지 고엘이 모를 리 없다.

-고엘이라고 했나? 그 헨나 님의 아들이라고?

-성인식이 코앞인데 아직도 4계위라며? 교황가의 핏줄 맞아?

-세상에, 끔찍해라. 4계위면 그냥 쓰레기잖아요. 5대 공작가에서 저런 오점이라니.

-에슈아 피가 섞였잖아. 그 대단한 헨나 님의 자식도 에슈아의 저주는 못 피한 거지.

-어쩐지 아이를 보는 헨나 님의 눈빛이 좀 그렇다 했네요. 교황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아닙니까?

그래. 쓰레기지.

쓰레기 바퀴벌레지.

어릴 때부터 모친의 학대, 혐오와 멸시의 시선을 받아온 고엘은 저런 동정의 눈빛에도 익숙하다.

자식인 슈리만큼은 그런 시선을 안 받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럼에도 반반 섞인 자신들은 어디에서든 외지인 취급을 받았다. 그런 반쪽들이 무시받지 않을 방법은 하나였다.

가주가 되는 것.

뭐, 정작 슈리는 아이작하고 어울리더니 애가 좀 띨빵해진 것 같아 걱정이다만.

-아버지는 이런 말 싫어하시겠지만, 솔직히 아이작은 대단해요.

-순혈들을 너무 믿지 마라. 그러다가 너도 배신당할 뿐이니.

-아버지!

뭐, 아이작은 마음에 안 드나 슈리의 미래가 걸려 있으니 아버지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할 셈이었다.

고엘은 에슈아도 싫지만, 굳이 따지면 베리트의 파멸을 바라는 쪽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아이작의 건도 그렇다.

‘베리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물론 아이작도 에슈아 핏줄이니 그렇게 상급신을 뽑은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입양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가치가 있는 신이겠지.

‘중급신 중 하나인 행운의 신이려나?’

50년째 안 나오고 있어서 취급이 귀할 텐데.

그래서 고엘은 베리트가의 서고로 향했다. 고엘은 베리트의 첩자로서 베리트 추기경이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서고도 그중 하나였다.

서고의 관리자는 고엘을 보고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고엘은 종이쪽지를 툭 거만하게 내밀었다.

“이 책들을 가져오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서고 관리자가 책을 찾으러 가자, 고엘은 바로 움직였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서고 깊숙한 곳에 있는 출입 금지 구역. 오직 베리트의 가주만 들어갈 수 있는 금서고였다.

그리고 거기에 틀림없이 있겠지.

‘이번 서품식 때의 기록이.’

교황청의 기밀 자료는 모두 베리트가의 서고에 보관되니까.

들어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 만들어둔 열쇠 사본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뭐, 약간의 경보 장치가 있긴 했지만 그건 문제없었다.

[푸른스틱]

고엘은 품에서 청에서 가지고 온 긴 향을 꺼냈다. 향 끝에 성법으로 작은 불을 붙이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고엘을 감쌌다. 곧 그의 온몸이 투명해졌다.

보통은 적의 진지에 들어갈 때 냄새와 모습을 완전히 감춰주는 청의 물건이었다.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간 고엘은 최근에 채워 넣은 듯한 서류 칸을 살폈다.

‘이거다.’

교황청의 사본 기록엔 아이작이 뽑은 게 이름 없는 하급신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정말 아이작이 뽑은 게 하급신이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이 조작된 거라면, ‘원본’은 반드시 이곳에 있을 것이다.

‘아이작 에슈아… 아이작 에슈아…….’

기록 서적을 뒤지던 고엘의 손이 멈췄다. 아이작 에슈아의 이름과 그가 뽑은 신의 문장 그리고 이름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문양은……?!’

고엘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낯익다.

-<모든 것이 나와 함께 한다.>

확실했다.

어린 시절 교황가에 머물면서 관련 공부를 했기에 더욱 확신했다.

그랬기에 고엘은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교황가가 입양 이야기까지 꺼내길래 평범한 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최고신이라고??’

에슈아에서? 그 꼬마가?

이건 교황청의 문제가 아니다.

‘베리트 가문이 사라질 수도 있을 만한 수준이다.’

베리트 가문, 아니 나라가 뒤집힐 문제였던 것이다.

* * *

“아 찌바놈들, 드디어 갔네.”

아이작은 청의 생활관 앞에 흰색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성녀 놈들, 다시는 오지 마롸. 뛔뛔뛔.”

그건 다름 아닌 소금. 아이작이 자기 키만 한 소금 봉투를 마당에 몽땅 흩뿌리고 나서야 청의 팀이 돌아왔다.

그들은 레아와 멜리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와,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인데 진짜 예쁘셨어…….”

“그래 아이작이나 슈리도 그렇고, 에슈아 놈들은 전부 그렇단 걸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그분들은 이 세상 아름다움이 아니셨지…….”

“야 비교할 걸 비교해라…….”

“헤헤, 처형식 참가 인원으로 뽑히면 또 뵙게 되겠지?”

“그래, 처형식 때는 다른 나라 귀빈들도 오신다잖냐, 백 프로 성녀님 보러 오는 걸 거야.”

“글쎄, 아이작 보러 오는 거 아냐?”

“아니, 남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성녀님을 뵐 수 있을 거라 했어!”

“안 그래도 처형식 때문에 올해 펜타곤은 다른 나라에서도 최고 관심사래! 반드시 우리가 선발되어서……!”

“헤헤헤. 아니, 그럴 필요없이 아이작한테만 붙어 있으면 다음에 또 뵐 수 있을… 으악!”

“이게 뭐야!”

그들은 마당에 눈처럼 쌓여 있는 산더미 같은 소금에 기겁했다. 그리고 그게 모두 아이작의 짓임을 깨달은 사제들은 비명을 질렀다.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성녀 퇴마.”

…뭐, 인마?!

“성녀는 객사해라. 쩐부 사라져라. 다신 오지 마라.”

아이작이 미친 듯이 춤추며 소금을 뿌리자, 팀원들이 경악하며 아이작을 붙잡았다.

“야, 이 미친 자식아!!”

“하다 하다 성녀님한테 저주를 걸고 있냐!”

“성녀님들은 안 된다, 이놈아!”

슈리는 이마를 짚었다.

옛날부터 느끼는 건데, 저놈은 전생에 성녀들이랑 무슨 원수라도 졌나? 왜 저렇게 성녀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켜?

“나는 이해가 안 간다. 그분들이 너한테 뭘 했다고.”

그러자 아이작의 동공이 커졌다.

뭘 해?

뭘 했냐고?

시벌, 뭘 했는지 하나하나 회포를 뜯어줘?!!

대충 말해도 100년은 날밤을 까야 하는데, 진짜 말해줘?!

아이작의 맛 간 눈빛에 슈리는 질색하며 넌더리를 쳤다.

“…아니, 말 안 해줘도 된다. 뭔진 몰라도 하나도 안 궁금해.”

시벌! 내가 걔들 때문에 얼마나 죽을 뻔했는데!

물론 성녀들도 자신과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덕분에 성녀의 힘과 직접 부딪쳤던 마력, 위스퍼로서는 침을 튀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성녀들을 제일 먼저 없앨까요?!]

하…. 됐다.

그거 감당할 바에야 차라리 성녀를 마왕 편으로 만들든가 타락시키는 게 천만 배 효율적이란다.

게다가 아이작으로서는 사실 성녀가 성직자들중에서는 가장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 몸의 조상님이니까. 내 짝퉁 때문에 고생하는 건 에슈아에 빨대 꼽으면서 갚아주마.’

그런 의미에서 방으로 들어온 아이작이 꺼낸 것은 마력핵.

‘공격 성법은 일단 멜리사의 로자리오로 해결됐어.’

성녀들의 힘은 아이작이 제일 잘 알았다.

분명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쪽이지.

[마력핵을 드실 생각이시군요!]

오냐. 그러실 생각이다.

‘부하를 구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키워둘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일단 눈앞에 닥친 금의 펜타곤부터가 그렇다.

‘금의 펜타곤의 주제는 <탈환>’

그리고 ‘탈환’이란, 빼앗긴 것을 도로 빼앗아온다는 의미다.

그 말이 무슨 의미다?

목표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과의 싸움을 준비해야한다는 의미였다. 시험장은 높은 확률로 신성제국의 치외법권일 것이고.

‘한 명이든 만 명이든, 인간이든 무생물이든 반드시 전투가 있겠지.’

즉 마력을 올려두면 좋았다.

‘곧 보게 될 빌어먹을 천사들을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푸헿!’

별관에서 가져온 마력핵을 계속 아껴뒀던 이유는 이게 9계위 이상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별관의 모든 핵을 먹고도 아직 광역 마법을 못 쓰는 게 실화냐.’

얼마나 힘을 압축하고 또 정화하고 있길래.

거, 초월계위 가기 더럽게 힘들구만.

아이작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9계위 이상의 마력핵이라면 필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겠지.

뭐, 꼬맹이 성녀가 마력핵 이야기를 했을 땐 놀랐지만, 괜찮았다.

‘봉인을 풀 수 있게 해주다니, 역시 성녀는 좋은 지갑이다.’

그렇게 히죽거리는 아이작이 손짓했다.

<푸른고래의 가호 (5계위)>

마기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치는 결계 성법이었다.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성녀의 물건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아이작이 입가를 씰룩이며 로자리오를 발동하자 결계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번쩍!

[오오! 대단하십니다! 이정도면 8계위는 되겠어요!]

‘뭐, 바보 성녀들은 내가 이렇게 활용할 줄은 몰랐겠지만.’

이 몸이 누구냐!

어차피 마력은 사제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전부 먹어치우면 그만이다.

‘여차하면 정화 성법을 훈련하고 있었다고 하면 돼.’

동시에 아이작이 히죽거리며 레아의 목걸이를 마력핵에 가져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목걸이의 빛이 마력핵을 둘러싼 봉인의 글자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력핵에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하는 검은 마력.

[오! 봉인이 풀리고 있습니다!]

옳지!

‘마기가 밖으로 새어나가기 전에 전부 먹어 치워!’

[예!]

위스퍼는 신이 난 듯 새어나오는 강력한 마력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반응은 바로 왔다.

전직, 현직 마왕은 바로 직감했다.

이 정도면 계위를 올릴 수 있는 수준의 막대한 마력이라는 걸!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마력이었다!

쿠구구구궁!

온몸이 오싹오싹한 마력에 아이작은 신이 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좋아! 안 팔고 가지고 있던 보람이 있었어!’

이거면 신성력 총량보다 마력의 총량 훨씬 많아지겠어! 상급 마법도 펑펑 쓸 수 있겠다!

아이작의 웃는 눈이 초승달에서 아예 실눈으로 변했다.

하여간 바보 성녀들. 내 마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줘버리다니. 푸헿!

‘누가 호구들 아니랄까 봐! 나라를 없애는데 알아서 일조를… 컥?!’

나라는 당장이라도 없앨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주 약간 문제가 생겨버렸다.

[주인님! 그 모습은!]

아이작은 자신의 오른손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뼈, 뼈다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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