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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70화 (70/272)

제70화. 까꿍 (2)

아이작은 해골이 정말 싫었다.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거지 같은 몸뚱어리!

찬 바람이 불면 뚜뚝 풍화작용으로 갈라지고, 마법을 쓰려 하면 뽀각 부러지고!

좀만 움직일라 치면 팔이 빠져, 다리가 빠져. 멍멍이들은 좋다고 쫓아와서 겨우 맞춰둔 걸 또 분해해!

치료를 하고 싶어도 치료마법은 성법에 뿌리를 둬서 언데드에게 독! 우유로 목욕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생긴 것도 그냥 다 거지같아! 시발!!’

제일 기분 나쁜 건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 물론 생존 기원 덕분인지 ‘싫다’라는 본능적인 사고만은 건재했지.

자고로 열등한 것, 싫은 것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게 생존의 법칙이니까.

뭐, 그게 지나쳐서 손수 키운 부하가 죽을 때에도 슬픔 대신 한순간에 ‘버려야 하는 쓰레기’로 인식하던 건 소름이 돋다못해 기분이 나빠서 원.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더욱 그랬다. 인간으로서의 자아마저 박탈당한 느낌.

어디 그뿐인가?

‘언데드는 소멸해봐야 언데드로 다시 부활한다.’

그것도 그냥 부활이 아니다.

무려 최하급! 레벨 1로 되살아난다!

한마디로 그간 배운 마법과 마력핵이 초기화된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알긴, 내가 성직자 놈한테 당해서 레벨1로 부활해봤으니까 알지! 아오!

괜히 다른 고위 언데드들이 사제들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아이작은 해골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아아악!”

자신의 손을 본 아이작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엙!’

잠시 헛것을 봤나 싶었지만, 다시 보고 또 봐도 앙상한 뼈다귀였다.

위스퍼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주, 주인님? 역시 해골 몸이 그리우셨던 겁니까?! 말만 하셨으면 제가 진작 해골로 만들어드렸…….]

그럴 리가 있냐, 새끼얅!

아이작은 잠시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래, 침착하자.

<화합>도 그렇고, 입양 건도 그렇고,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잠시 헛것을 본 거야.

간만에 바보 똥 멍청이 성녀 멜리사를 봐서, 그래서…….

꿈틀꿈틀.

…시발, 헛것 아니네.

아이작은 다시 손을 확인했지만, 그리운 뼈다귀가 자기 안 보고 싶었냐며 까꿍거리고 있었다.

그쯤 되자, 미간을 짚은 아이작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그러니까, 원인은 이거군.’

아이작은 아까보다 훨씬 강해진 위스퍼를 보았다. 전보다 더욱 살벌한 얼굴이 된 위스퍼는 방 안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뭐, 간단한 문제지.’

아니,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게 너무 늦었던 것이었다.

아이작에게는 신들조차 경외하던 저주가 걸려 있지 않았던가.

해골왕이 역대 최강의 마왕이라 불릴 수밖에 없었던 공포의 상징.

⸢생사반전(生死反轉)⸥

살아있는 모든 걸 죽음으로 만드는 최강의 저주가 말이다.

그럼 저주의 힘이 기어이 이 몸을 삼켜버린 거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이 몸은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육신이었다. 괜히 최강의 마왕이 이 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왜 몸의 일부가 뼈다귀가 되었냐고?

간단한 이야기였다.

‘성력보다 마력이 더 강해져서 일시적으로 저주의 힘이 세진 거지.’

지금까지는 성력이 더 많거나 마력과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저주가 눌려있었다.

‘한마디로 밸런스가 중요하단 거지.’

그런 의미에서 해결법도 간단하다.

‘성력을 더 강하게 키워서 저주를 누르면 그만이다.’

성력을 모으면 된다는 의미였다.

뭐, 그래. 성력이야 모으면 그만이지.

그동안 아이작이 개무시하던 성자 행세를 해서, 기도를 하든 신앙 활동을 하든 어떻게든 모으면 그만인데…….

‘그 전에 이거, 들키면 끝이겠지?’

[끝이란 말로 끝나겠습니까? 처형입니다, 처형! 해골왕이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거죠!]

하하하, 그래.

성력을 모으기 전에 제일 먼저 청의 생활관 애들한테 들키겠지.

이 좁쌀만 한 신앙심으로는 성력을 모으기 전에 주변에, 아니 슈리한테 들킨다.

들키면 바로 처형이다, 이거.

[예, 성직자들이 아무리 바보 새끼들이어도 눈치채죠! 산 자의 몸이 뼈로 변하는 건 어딜 봐도 해골왕의 <죽음> 특성 아닙니까! 청도 이것만큼은 쉴드를 못 쳐줄 겁니다!]

아이작은 못마땅한 듯 해골 손을 까닥거렸다.

젠장, 금고 좀 털고, 나라 좀 없애려 했더니. 이놈의 성자 몸이 나쁜 생각 말고 착한 일만 하라고 이딴 식으로 시위를 하네.

뭐, 하지만 상관 없었다.

‘요는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오히려 이용하면 그만이지?

얼굴을 해골로 변화시키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지 않을까?

[죽은 놈인지, 산 놈인지도 모르겠죠…….]

하긴. 만약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이 마력보다 성력을 더 필요로 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성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성력을 얻는 것도 일이겠지.

‘멜리사가 때마침 로사리오를 주고 간 게 행운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 정도의 성물이면, 저주를 억누를 정도는 되겠지.

물론 더럽게 아깝다. 아무리 로사리오에 멜리사의 힘이 담겨 있다지만, 무제한인 것도 아니고.

이걸 억누르는 데 쓰면 로사리오에 담긴 힘도 언젠가는 텅텅 빌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성의 문제가 있었다.

[성녀의 성력은 기본적으로 마를 죽이는 힘 아닙니까……?]

위스퍼가 드물게 겁에 질려 있었다.

뭐, 멜리사 정도의 힘을 입에 직접 쑤셔 넣겠다는데 무섭긴 하겠지.

[…주인님보다 제가 먼저 죽는 거 아닙니까?]

그럼 내가 먼저 죽으랴?

물론 아이작도 원치는 않았다.

어쩌면 해골왕의 마력을 약화시킬지도 몰랐다.

즉, 정말 귀한 힘이고 아이작이 성법을 쓸 땐 큰 힘이 되지만, 본인의 마력에 직접 쓰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달리 강한 성력을 공수해올 수 있는 방법이…….

아이작이 붕대로 손을 감싸는 그때였다.

“아이작! 뭐 하고 있냐!”

“!!”

문을 벌컥 열고 슈리가 나타났다.

당황한 아이작이 급히 손을 뒤로 숨겼다.

“뭐야, 너 손이 왜 이래?”

아이작은 드물게 당황했다.

아니, 아무리 에슈아 놈들이 바보 호구라도 이걸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청의 가주의 귀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스윽, 뒤로 빠지는 아이작의 목소리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 무것도 아냐.”

“뭔데 너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어… 다쳤냐? 뭔데 이렇게 둘둘… 으악!!”

아이작의 손을 슬쩍 만지던 슈리가 식겁하며 물러섰다. 손을 본 건 아니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

‘뼈?’

슈리는 새하얗게 질려서 아이작을 보았다.

청의 사람으로서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

심지어 배신감에 어린 얼굴.

“뼈, 뼈라니. 서, 설마 너…….”

“!’

아이작은 낭패라는 듯 새하얗게 질렸다.

위스퍼도 갸악, 비명을 질렀다.

[기억 소거 마법…!! 아니, 아직 못 쓰시니 여기선 마족 전통 방식으로!]

전통 방식이 뭔데!

[머리를 깨겠습니다앍!]

시벌 놈아, 내 머리도 깨진다!

젠장, 어떡하지? 진짜 두들겨 패?! 강제로 기억을 잃게 만들어?!

슈리는 매서운 눈으로 아이작을 꽉 부여잡았다.

“아이작, 너!”

젠장, 눈빛 봐! 이 새끼, 역시 눈치챘어!

“설마 해골왕의 저주로 몸이 썩기 시작한 거야?!”

그래! 봐! 역시 눈치챘…….

“……?”

뭐, 인마?

“썩고 있는 거지, 맞지?!”

썩어?

왜 그런 결론이……?

하지만 슈리는 배신감에 어린 얼굴로 아이작을 흔들었다.

“너, 인성 결함 아니었던 거야?!”

인… 인성 뭐, 인마??

“세상에, 아이작의 하자가 인성이 아니라 육신이었다니!”

이 새끼는 도대체 뭔 개소리를 지껄이나 싶었지만, 아이작은 곧 아, 하고 탄식했다.

그거구나.

‘에슈아 사내놈들의 결함.’

에슈아의 남아들은 모 아니면 도다. 치명적일 정도로 재능이 없거나, 재능을 타고나는 대신 결함을 타고나거나.

그리고 그 결함이란, 신체의 결함 아니면 인성의 결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네 썩어빠진 인성 파탄도 설마 몸이 아파서 그런 거였어?”

뭐, 인마?

“에슈아 어른 중에 천재셨지만 이렇게 몸이 썩어서 돌아가신 걸 봤어. 셋째 숙부님도 지금 몸이 안 좋으신데……!”

슈리는 마치 시한부 환자를 보듯 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몰려오는 큰 배신감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듯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당연히 인성 파탄 쪽인 줄 알았는데! 왜 너 같은 인성 파탄자한테 이딴 불치병이!”

이 새끼가 자꾸 인성 파탄, 파탄 거릴래?

도대체 욕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에, 아이작의 얼굴이 씰룩거렸지만 그쯤 되자 아이작은 눈알을 또르륵 굴렸다.

묘하게 열은 받는데, 이거 잘 된 거…지?

아무튼 이 새끼, 해골왕의 특성이 아니라 시한부로 생각하는 거 맞지? 그치?

그 생각에 미친 아이작은 아예 자리에 드러누웠다.

“맞아, 형! 손이 갑자기 너무 아파서, 방에 들어왔는데 몸이 썩기 시작했어! 나 무서워!”

사실 썩은 게 아니라 뼈로 변한 거지만, 그건 비밀이다. 아무리 그래도 뼈로 변한 건 해골왕의 고유능력인 ⸢생사반전⸥이라는 게 너무 티가 난다.

그건 어느 대륙의 아카데미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내용이다.

아이작은 붕대를 더욱 칭칭 감으며 어린아이처럼 두려운 척 떨었다.

“어떡하지, 형? 나, 이대로 죽는 걸까?”

인간이 되었음에도 아직 눈물 흘리는 법을 익히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일지도 모른다.

“나, 이제 저주받았다고 이단심문관한테 끌려가는 거야? 설마 아니지?”

“……!”

뭐라고 하려던 슈리는 움찔했다.

아니. 가능성은 크다.

예전에도 몸이 썩어간 에슈아 어른이 있었는데, 적의 신앙에서 전염병 환자 취급하며 결국 감옥으로 데려간 적이 있다.

‘젠장, 할아버지는 아이작이 인성 파탄 쪽인 줄 알고 안심하고 계셨는데.’

그래, 생각해보면 진작 이상한 걸 알아야했다.

어린놈이 해골왕의 뼈를 먹고 그렇게 갑자기 성장했는데, 몸에 아무 이상이 없을 리가 없었는데.

“이, 일단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려서 치료부터……”

턱!

아이작은 단호하게 슈리의 팔을 붙잡았다.

‘시발 놈아, 말하면 뒤진다’라는 말이 입술 밖까지 나왔지만, 아이작은 최대한 숨이 넘어가는 척을 했다.

이놈이 선한 에슈아라서 다행이다만, 어린애들은 몰라도 어른들은 단번에 눈치챈다.

“할아버지랑 숙부님한테는 말하지 마…! 형만 알고 있어.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

“……!”

슈리는 놀란 듯했다.

티는 안내도 할아버지가 아이작을 남몰래 아끼는 건 슈리가 더 잘 알고 있다. 거기에 다른 에슈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한부라니, 받으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 하지만……”

“게다가 내가 빠지면 펜타곤은 어떡해. 나도 청의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해골왕의 부하만큼은 처형하고 죽고 싶어.”

“아이작……!”

이 자식, 그렇게 청의 사명에 진심이었다니.

그래. 누가 뭐래도 청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정당한 분노 그리고 퇴마.

이 자식은 그 어떤 누구보다 청의 본질과 가까웠다. 이런 녀석을 인성 파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젠장, 빌어먹을 해골왕! 그 더럽고 역겨운 새끼… 커헉!”

해골왕을 욕하던 슈리는 아이작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아, 아이작?”

본인의 욕에 자신도 모르게 손부터 날아간 아이작은 아차 싶었지만, 곧 어색하게 웃었다.

“그… 남탓 해봐야 변하는 건 없으니까.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자고.”

“!”

“그리고 걱정 마, 형. 나도 쉽게는 죽을 생각 없어.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방법? 방법이 있어?”

“시도는 해봐야겠지만, 아마 맞을 거야. 그러니 형.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어. 부탁할 게 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그래 젠장, 이거 이단심문관들한테 들키면 끝장이야! 아이작! 내가 도와줄게, 죽지 마라!”

슈리가 눈물을 훔치며 아이작의 팔을 꽉 붙잡자, 아이작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걸렸구나, 이놈.

“그런 의미에서, 청의 팀원들을 불러와.”

그리고.

“적의 추기경한테 형이 전달해야 할 게 있어.”

동생을 안아주던 슈리는 되레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갑자기 그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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