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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71화 (71/272)

제71화. 까꿍 (3)

전직, 현직 마왕이 슈리에게 사기를 치고 있을 그 무렵.

베리트가에 있는 슈리의 아버지, 고엘은 그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로서는 역시 납득이 안 갔다.

‘정말 최고신이라고?’

에슈아에서? 그 꼬마가?

기밀 기록을 살피는 고엘은 눈으로 보고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최고신이라니!’

정말로 아이작이 그분을 뽑았다는 건가? 금의 사람들, 아니 교황도 뽑은 적이 없는 최고신의 존재를?

이건 단순히 이용해먹을 수 있겠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기존의 체계가 뒤집힐 만한 파급력이다.’

아니, 생각해봐라!

교황가는 으레 5대 공작가 중에서 수장 격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신들과 계약을 맺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교황가조차 계약하지 못한 신을 다른 가문이, 그것도 교황가가 천시하는 에슈아가 뽑는다고?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하물며 아이작이 뽑은 게 금의 주신이어도 난리가 날 텐데, 최고신이라니!

‘애초에 최고신은 신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취급되는 존재다.’

한마디로 유니콘. 신들 사이에서도 우상으로 취급되며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전해질 정도다.

‘그런데 그걸 뽑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존재하긴 했단 말인가.’

이는 단순히 인간들뿐이 아니라, 신들도 경황망조할 만한 일이었다.

그쯤 되자 고엘은 긴 머리를 휘저었다.

젠장, 이러니까 교황이 아이작을 죽이려 했지!

콧대 높은 베리트가 아이작에게 입양 같은 개소리를 지껄였지!

‘일단 아버지에게 알려야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만약 아이작이 최고신을 뽑았다? 이건 에슈아에 있어서도,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기회였다.

동시에 그는 확신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아, 설마 그래서 의전사제들이 시체로 발견됐던 건가?’

그 의식이 스친 순간, 고엘은 온몸에서 피가 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제들에게서 본인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메마른 침을 삼키던 고엘이 책을 도로 꽂았다.

‘들키면 죽는다.’

그 죽은 사제들도 분명 베리트 추기경의 짓이겠지.

그는 서둘러 금서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냐.”

“아, 주인님! 돌아오셨습니까!”

“?!”

금서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엘은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저놈이 왜 여기에!’

베리트 추기경이 있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던 고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히 오늘, 이 시간에 베리트 저택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추기경들이 십사육마를 보러 가는 날일 텐데.’

처형을 앞둔 십사육마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무려 그 해골왕의 부하의 처형이었으니까.

게다가 처형식엔 다른 나라의 귀빈들도 왔다. 가뜩이나 누가 십사육마를 처형하게 될지, 다른 나라에서도 올해 펜타곤에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더 큰 관심이 몰리게 됐다.

그런데 처형을 하기도 전에 십사육마가 탈출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만으로 제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점검을 버리고 저택으로 와?

‘아무리 베리트 공작령이 교황청과 코 닿을 거리라 해도.’

평소에도 일주일의 절반은 교황청에서 지내는 놈이, 이 무슨.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말은 고엘을 더욱 철렁하게 만들었다.

“서고에 누가 있었느냐?”

그 질문에 화들짝 놀란 고엘은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말하지 마! 말하지 ㅁ…….

“아, 그게… 고엘 님이 오셨습니다. 찾아달라는 책을 가져왔는데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고엘?”

저 빌어먹을 더러운 평민 새끼가앍!

하여간 베리트는 평생에 도움이 된 적이 없다!

곧 베리트 추기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거친 걸음으로 향하는 방향은 고엘이 숨어 있는 금서고 쪽!

시바알!

오지 마! 개새끼야!

고엘은 이를 갈면서 급히 출구를 찾았지만…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결국 그는 창문으로 낑낑 기어올라 밖으로 나갔다.

‘젠장, 이 내가 왜 이런!’

아이작, 이 자식!

전부 그놈 탓이다.

다음에 보면 목을 졸라버리겠노라.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역시 아이작이 최고신을 뽑았을 리 없어얽!’

뭐가 예뻐서 최고신께서 그놈을 선택하겠는가!

어차피 자신이 본 건 문장뿐!

분명 비슷한 문장이 하급신 중에 있기는 했다.

‘…뭐,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확인할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군.’

워낙 최고신에 대한 기록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베일에 쌓인 신…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가.

고엘은 다급하게 저택 쪽으로 향했다.

일단 금서고에 들어간 일 자체로도 걸리면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거고.

그런데 그때였다.

“파필리오(papilio).”

“?!”

고엘은 심장이 떨어질 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저택 입구에 베리트 추기경이 서 있었다.

“아이작 에슈아의 정보를 살피러 왔나, 파필리오.”

그 단어에 고엘의 푸른 눈이 독기를 쏘았다.

“…추기경이 되면 뇌가 퇴화해서 사람 이름도 기억 못 하나 보지? 히레이 베리트.”

파필리오는 ‘나비’란 의미다.

보통 여아에게 붙일 만한 이름이지만, 저 사촌이 굳이 어린 시절에 붙인 모욕적인 멸칭이었다.

뜻은 관상용.

교황가의 핏줄을 받았으면서 아무 능력도 없는 미천한 벌레 새끼란 의미였다.

소가주의 입으로 구데기 새끼라 말하긴 싫었는지, 교황가답게 참으로 고상하게 씹는 것이 역겨웠다.

베리트 추기경은 고엘이 제일 싫어하는 멸칭에 눈이 변하는 걸 확인하곤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베리트 추기경은 더욱더 고엘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네가 뭘 봤든, 뭘 보게 되든 달라지는 건 없어. 넌 여전히 에슈아와 교황가의 쓰레기고. 네 아들 슈리는 아이작이 가주가 되는 데 발판이 될 가여운 아이지. 힘없는 아버지로서 어디에 붙는 게 현명한지 잘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그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처신 잘해라.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아이작을 돕는 일은 하지 마라.

본 게 있어도 닥치란 의미였다.

뭐, 애초에 핏줄에 열등감이 있는 고엘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듣고 폭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 닥쳐?! 네놈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나는 우리 아들을 반드시 에슈아 가주 자리에 올릴 거야! 아이작 에슈아 따위!”

그래. 그래야지.

아들을 가주 자리에 올린다고 할 만큼 자식 사랑이 끔찍한 놈이, 아이작에게 유리할 정보를 에슈아에 전할 리 없다.

“버러지는 버러지답게 굴어. 파필리오. 네가 에슈아에 충성을 바친다 한들, 청이 교황가의 핏줄을 생각해줄 것 같아?”

고엘은 기분이 더러워진 듯 욕을 하며 정문으로 향했다.

시녀장이 놀라 뛰쳐나왔다.

“고엘 도련님!”

“잡지 마라.”

“……!”

베리트 추기경이 싸늘하게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고엘은 언제 아이작의 욕을 했냐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최고신이 나왔구나?’

아이작이 최고신을 뽑았어!

고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문장을 보고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베리트 추기경의 저 태도를 보고 고엘은 완전히 확신했다.

베리트 추기경이 고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고엘 역시 저놈의 성격을 잘 알았다.

정말 하급신이 나왔는데, 저놈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자극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착각하게끔 내버려 뒀겠지.

설령 그게 아닐지라도 저 반응은 오히려 진짜로 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신?

그러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아이작을 잘만 키우면 베리트를 역으로 먹어치울 수도 있지 않나?’

고엘은 바로 청의 가주에게 향했다.

그리고 한편. 저택으로 돌아온 베리트 추기경은 귀찮다는 듯 집무실로 향했다.

사실 베리트 추기경이 집에 찾아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듣자 하니 아이작 에슈아가 서품식에서 아주 귀한 분을 뽑은 것 같다던데. 금(金)은 그걸 가로채가실 셈인가?

적의 추기경이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작이 어떤 신을 뽑았는지 알면, 청이고 적이고 나발이고 모든 곳에서 눈이 뒤집혀서 아이작을 탐하겠지.

그는 아이작이 제 어미와 똑같은 얼굴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교황가로는 절대로 안 갑니다.

베리트 추기경은 서랍에서 작은 청색 주머니를 꺼냈다. 그건 다름 아닌 10년 전에 행방불명된 아이작의 모친, 성녀의 물건.

그는 미간을 좁혔다.

‘가질 수 없다면, 없애는 것도 방법이지.’

* * *

“…이건 뭐냐?”

생활관 앞에 모인 청의 팀은 제 눈을 의심했다.

그러니까 생활관 운동장에 탑처럼 쌓여 있는 게……

“모래주머니?”

“뭐야, 이 촌스러운 거?”

슈리가 갑자기 집합하라고 하길래 뭔가하고 왔더니.

“왜 냄새나는 성기사들 훈련소에나 있을 만한 게 여기에 있냐?”

“왜긴 왜야. 형들이 짊어지고 달려야 하니까 있지.”

“???”

청의 팀원들은 뭔 개소리냐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한 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아이작은 목을 까닥거렸다.

“자자 형들도 알껬지만, 얼마 안 있으면 펜타곤 시험이야. <화합>이야 투표로 통과했다지만, 화합은 끼껏해야 우리가 한 팀이 된 것에 불과하고 진짜는 찌금부터. 이 뒤로는 실력이 없으면 씨알도 안 먹히는 거 알지?”

“알기는 아는데. 왜 이런 촌스러운 짓을 하냐고. 몸 쓰는 건 성기사들을 고용하면 그만인데.”

“맞아. 사제한테 중요한 건 성법! 서품식 때 나온 신과의 교류야! 매일 기도를 드리면서 신앙심을 올리면……”

아이작은 허어 뒷통수를 매만졌다.

아, 아아!

철없는 귀족 도련님들 답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뒷목이 빠지려고 한다!

뭐? 기도오?

몸 쓰는 건 성기사를 고용하면 그마안?

“띱때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십사육마의 처형을 논해?”

“!”

아이작의 눈이 광견처럼 번득였다.

“해골왕의 부하가 그렇게 만만해? 해골왕이 만만하냐고!!”

“??!”

뭐, 사제가 성기사를 고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마법사가 용병검사를 고용하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도 <성법과>는 <성기사과>와 교류가 활발히 이어지는 듯하고.

졸업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금의 펜타곤에서 성기사와 파트너를 맺는 <계약> 시간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전쟁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다!

왜?

해골왕도 알거든!

너무 잘 알아서 일부러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신나게 분리해놓고 시작하거든!

마족들한테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조져놓으라고 가르쳤거든!

내가 아는데, 걔들 그거 더럽게 잘할걸?

나 아니면 멍청한 성직자 놈들 속수무책일걸?

괜히 마족과 직접 싸우는 청이 스스로의 수련을 강조하는 줄 아나?

“야, 아이작. 넌 무슨 신 뽑았냐? 아 됐다, 지금까지 말 안 한 거 보면 빤하지. 금방 알게 되겠지. 다 됐으니까 걱정 말고 형만 믿어라. 이 형이 이번에 그래도 좋은 신 뽑았어. 기도만 잘 드려도 그만… 악!”

아이작은 모래주머니로 개소리를 하는 사제들을 후들겨 팼다.

“기도만 잘 드려서 되면, 파리는 이미 교황이고 매일 기도실에 있는 변태 추기경 때끼들은 이미 신이지! 띱때들아! 시험이 우습냐?!”

“하, 하지만 다음 차례인 금의 펜타곤에서 직접 전투는 성기사들이 맡을 거야. 금은 머리를 쓰는 임무라서……”

“아, 니들이 말하는 그 머리 쓰는 금의 펜타곤, 뒤로 밀려났음. 적의 펜타곤을 먼저 할 거야.”

“뭐?!”

그들은 크게 당황했다.

적의 펜타곤은 대인전이 과제. 몸을 쓰는 시험이다.

“일정이 바뀐 거야?”

“응, 개인 사정으로 내가 적의 펜타곤을 앞당기게 할 거거든. 시험 과제도 바꿔버릴 거야.”

…뭐, 인마?

개인 사정으로 앞당…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일정이 네 맘대로 돼?

심지어 과제를 바꾸다니?

그러나 견습들의 시선에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손을 원래대로 돌리는 데 필요한 성력?

그까짓 걸 모으는데, 기도를 왜 해?

‘빼앗으면 그만이지! 푸헿!’

그리고 자고로 대인전이란 합법적으로 두드려 패고 힘을 갈취해오는 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전혀 아니긴 하지만, 아이작은 목을 우득거렸다.

“자! 그런 의미로 형들은 전원 50바퀴씩 생활관을 뛰고 온다. 실시!”

“뭐어?!”

“지금까지 교황청에서 일하고 왔는데?”

“그보다 네가 뭔데…….”

아이작은 딸랑이를 스윽 꺼냈다.

“…뛰어야죠. 네.”

“청이면 50바퀴가 아니라, 100바퀴는 뛰어야죠.”

청의 팀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늘이 뿌옇게 느껴지는 건 분명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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