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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73화 (73/272)

제73화. 적의 펜타곤 (1)

사실 시험이 바뀐 이유는 두 추기경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의 추기경이 시비를 걸러 갔을 때에도 금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베리트 각하. 왜 금의 테스트에서 이 장소를 쓰려 하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심지어 금의 펜타곤 주제에 시험 항목에 대인전 항목을 집어넣으려 하시고?

-문제가 뭐요.

-듣자 하니 아이작 에슈아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던데.

-용건이나 말하시오.

-양자로 들일 거라는 소문 잘 들었습니다.

-…용건을 불게 만들어드릴까?

정말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의 추기경은 능청스레 웃으며 제 할 말만 했다.

-그 아이에게 공을 들이는 건 알겠는데, 이건 반칙입니다. 베리트 추기경.

-자꾸 억지를 부리면……

-아이작 에슈아를 죽이려는 것이잖습니까?

-!

허를 찔린 금의 추기경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러나 적의 추기경 또한 개안하듯 안광을 드러냈다. 늘 웃던 실눈이 본색을 드러내니 그 모습이 흡사 뱀 구렁이.

그의 입꼬리가 뱀눈 만큼이나 가늘게 휘었다. 역시 오만한 인간이 허를 찔렸을 때의 얼굴은 재밌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적이 금의 속내도 못 읽을 것 같습니까?

-…….

베리트 추기경은 불쾌한 듯 미간을 좁혔다.

역시 사람을 읽어내는 적의 신앙. 불쾌하고, 능구렁이 같고, 역겹다. 고문의 신앙답게 눈빛에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추기경들은 아이작의 부친을 포함해 전원 아카데미 동기였지만, 서로 얽혀서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곧 적의 추기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미소 천사로 돌아왔다.

-뭐, 됐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테스트를 바꿔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용건이 뭐냐고.

-올해 성기사 견습들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

-14년 전 그 마족이라더군요. 견습 사제들도 공격을 받을 겁니다. 예로 들면 국외로 나가는 금의 펜타곤에서라든가. 그러니 대책이 필요하겠죠?

씹새야, 그래서 진짜 용건이 뭐냐고…라고 말하려는 그때.

적의 추기경이 웃으며 말했다.

-적의 테스트를 앞당기면 훌륭한 대책이 되지 않겠습니까? 적의 펜타곤이라면 실전 훈련으로 좋으니까요.

-!

베리트 추기경은 불쾌한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쳤다.

-적의 테스트를 금보다 먼저 치르자는 소리군?

-예. 그리고 또 모르죠? 적의 테스트에서 목숨이 위험해지면 아이작 에슈아가 정말 재미있는 걸 보여줄지도요.

적의 추기경은 슈리가 가져왔던 서신을 떠올렸다. 추기경이 무서웠는지, 슈리가 바들거리며 내밀었던 아이작의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

-각하. 적의 펜타곤을 금 앞으로 당겨주시면 그 대신 진짜 재미있는 걸 보여드릴게요.

적의 추기경은 베리트 추기경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작을 이용해 금을 골탕을 먹이려 했지.

그래, 그랬는데.

“…….”

키나?

키나 베리트?!

연무장이 술렁거렸다.

키나 베리트의 등장에 나이저 세페트는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재미있는 게 이겁니까?’라는 분노가 역력하다.

적의 추기경도 웃고 있지만 내심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길래 성령이라도 내보내서 힘자랑을 하려는 줄 알았는데.

이래서는 적이 곤란하게 된 상황이 아닌가.

그쯤 되니, 그는 의심스럽게 옆자리의 베리트 추기경을 보았다.

“키나가 상대면 아들놈도 힘들 텐데, 설마 일부러 그쪽 아들을 청의 팀에 붙인 건……”

그러나 금의 추기경의 표정을 본 적의 추기경은 고개를 슥 돌렸다.

응, 그럴 리 없구나.

고관들은 물론, 황실도 신기해했다.

특히 황녀와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황태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모습에 호위기사가 대견하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래, 전하께서 특히 흥미를 가지실만도 하지.’

왜냐고?

키나 베리트는 차기 교황이 될 자였고, 교황과 황제의 관계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동맹이나, 사실은 서로의 황좌를 뺏으려는 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제들이 건방지게 키나를 프린스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관계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키나 베리트가… 청의 팀에 들어가 있다고? 뭔 짓을 해도 금(金)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권력자가?

물론 상황만 보면 ‘청이 교황의 파벌이 되었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글쎄?

그랬다면 키나가 청의 끈을 메고 있을 리가 없지.

‘무엇보다 금의 추기경의 표정이 저럴 리 없다.’

그만큼 사제들과 귀족들에게 있어 색의 상징성은 중요한 것. 저건 왕권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금을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황태자의 입장에선 무려 그의 원수를 길들인 것이다. 황태자에겐 아이작의 행동이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사실에 놀라고 흥미롭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

“반칙이라고!”

나이저였다.

그는 아이작에게 찰싹 붙어 자신들을 노리는 키나의 모습에 기가 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키나 베리트?

‘장난해?’

인정하기 싫지만, 저놈은 가장 유력한 성자 후보이자 어떤 말로도 수식할 수 없는 희대의 천재였다!

이미 작은 교황이라고 불리는 놈이 무슨!

이런 말까진 하긴 싫지만, 지금 적의 팀에 100명이 붙는다 한들 저놈 한 명한테 모두 쓸려버리겠지.

그런데 거기에 아이작의 힘까지 붙어?

나이저로서는 웃음도 안 나올 일이다.

‘잘못하다간 우리가 펜타곤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나이저가 미친 듯이 반박할 만했다.

“야! 너는 견습도 아니잖아! 이미 상급 사제로 인정 받은 놈이 왜 견습들 노는 데 끼고 지랄이냐고! 남을 가르치는 애가 견습이라 할 수 있어? 그러니 저놈의 참가는 무효인……”

“상급 사제로 인정받은 건 포기했어.”

“그래! 포기했지! 포기했으니까… 뭐?”

뭐 인마?!

다들 제 귀를 의심하듯 바라보았지만, 팔짱을 낀 키나 베리트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내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고, 나도 오늘부터 아이작 에슈아처럼 견습으로 지내려 한다고.”

“…뭐?!”

모두가 경악한 듯 금의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그걸 허락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몸을 떨며 바로 고개를 돌렸다. 적의 추기경만이 옆에서 끅끅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나이저는 기가 찬 듯 키나 베리트를 노려보았다.

“누구처럼… 뭐?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견습 사제가 되셨다고?”

“그래. 아이작 에슈아와 함께하도록 하지.”

다른 신앙의 아이들도 경악 섞인 비명을 질렀다.

왜?

저만한 애가 왜 굳이 강등을 자처하면서까지 아이작에게?

그쯤 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 모든 일의 원흉에게 향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아이작일 수밖에 없다.

‘저 꼬맹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교황가 손자가 저 꼬맹이한테 매달리는데?’

하물며 나이저는 키나가 누구의 대타로 나온 건지 바로 파악했다.

‘몰렉.’

자신이 심어뒀던 스파이였고, 계속 적으로 오고 싶어 했던 놈.

설마 저 새끼, 일부러 스파이를 못 나오게 만들고 키나 베리트를…….

그러자 아이작이 이제 깨달았냐는 듯 푸헿 웃었다.

“아이고오, 미안해서 어쩌지! 내 기미시종이 내 아침밥을 기미하다가 그만 배탈이 나 쓰러져서!”

…그럼 그렇지… 아니, 그보다 기미시종이라니? 귀족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나 그 눈빛에 아이작은 초승달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오, 신성력이 빵빵한 적하고는 꼭 한번 싸워보고 싶었는데, 설마 대전표를 이리 짜주시다니! 추기경 각하의 은혜에 감읍하여 눈물이 다 나네!”

뒷목을 잡은 나이저가 심판을 노려보았다.

“이건 반칙이야! 빨리 저 반칙 대리인 끌어내! 우리 팀에서 한 명 빌려줄 테니까!”

“반칙 아닌데? 조항 다 살피고 구해왔는데. 그쵸? 맞죠?”

아이작의 웃음에 적의 사제는 나이저의 눈치를 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예…. 키나 님은 정식적으로는 하급사제 신분이시며, 펜타곤을 치르지 않으신 분… 즉, 견습 신분이시기 때문에… 규율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그 말이 떨어지자 키나 베리트는 오만하게 적의 팀을 보았다.

“의문이 해결됐으면 진행을 해도 상관 없겠군.”

나이저는 입술을 악물었다.

시발!

* * *

“타도, 적!”

“크르륵!”

“타도 적!”

“컹크커엉크륵!”

“쪼아.”

적의 시험 시작 10분 전.

작전 타임 시간에 들어간 아이작은 각자에게 버프 성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물론 무슨 성법을 건 것인지, 청의 팀들이 의욕이 솟다못해 짐승이 되어가는 듯했지만, 아이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다른 쪽이었다.

“형은 표정이 왜 그래?”

바로 슈리였다.

대장을 맡은 슈리의 표정이 유독 좋지 않았다. 슈리는 왜 그러냐는 아이작의 말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대련을 하면 신성력이 올라갈 거라 했지?”

“엉.”

슈리는 아이작의 아픈 손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이작의 저 손은 누구에게도 비밀이었다. 특히 이단심문관은 안됐다.

물론 적의 펜타곤인 만큼, 심판부터 연무장에 깔린 사제들이 하나같이 이단심문관들이라 겁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성력이 많아지면 해골왕의 저주를 억누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대련은 특히나 신성력을 올리기에 좋았다.

사제가 위험해지면, 간택한 신이 도우면서 신성력이 올라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슈리도 아이작의 손 치료를 위해 적의 추기경에게 서신을 전달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설마 대전 포지션이 이렇게 짜일 줄은 몰랐다…….”

아이작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설마 대장이 된 게 무서운 거야?”

“다른 팀은 괜찮아…. 근데 하필 상대가 적의 팀이라니. 민폐만 될 거야.”

슈리는 자신의 실력에 불안한 것이었다.

하물며 이 경기는 대장전이 중요했다. 결국 상대의 보물을 빼앗아와야 하는 건 대장이었으니까.

그러자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뭘 걱정하나 했떠니. 형은 월반에 학년장까지 맡은 놈이야. 대장 자리에 충분하지. 적의 추기경이 잘 넣은 거 가튼데?”

슈리는 그게 아니라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말 너한테는 진짜 하기 싫었는데.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반장이 된 것도, 월반도, 사제 시험도… 하다못해 화합까지. 전부 네 덕이지, 내 실력은 아니야.”

“……!”

아이작은 굉장히 의외라는 듯 슈리를 보았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냐는 얼굴.

하지만 슈리는 진심이었다.

아이작이 자신을 통해서 아카데미의 정보를 알아내려는 건 알았다. 그래서 아이작은 슈리를 가르쳤고, 학년장 시험과 월반 시험, 사제 시험까지 아이작의 속성 강의를 받았다.

그래서 하다못해 펜타곤에서만큼은 형으로서 자신이 이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화합도 네 도움으로 통과한 거지, 정작 난 한 게 없어. 한 거라고는 동생 앞에서 질질 짠 거밖에 없지.”

오히려 동기들에게 호구 취급당하는 부끄러운 장면만 들키지 않았는가.

그마저도 아이작이 없었으면, 화합은 실패하고 아카데미로 돌아갔겠지. 그것 하나 수습 못 해서 자신을 따르는 친구들을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청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형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자 아이작이 한숨을 푹 쉬더니, 슈리를 토닥였다.

“형, 속성 강의라고 했는데, 그거 속성 강의 아냐.”

“!”

“그래. 내가 핵심만 뽑아서 지나치게 잘 가르치긴 하지, 근데 그거 보통의 스케줄 아니야. 알려줘도 못 따라오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

“결국 그 자리까지 올라온 건 네 실력이고. 네 힘으로 거기까지 간 거 맞으니까, 널 믿어.”

<화합>때 도 그렇다.

“질질 짜기만 했다고 했는데, 그만큼 형이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더 억울했던 거야. 진심을 다한 증거라고. 그렇게 못났다고 생각할 거 없어.”

슈리는 놀란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설마 아이작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내 말만 믿어. 선생이 천재면 수업받는 학생들도 다 천재가 될 수 있대?”

“하지만… 나이저한테는 한 번도 이긴 적 없는데. 그 자식 그래 보여도 진짜 미치도록 강해. 솔직히 말이 견습이지, 이미 상급을 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하급사제 중에선 걜 이길 수 있는 애가 없는걸?”

괜히 성법으로는 톱 자리를 달린 것이 아니었다. 학년장 자리도 관심 없으니까 자신이 차지한 거지, 실질적인 힘만 보면 나이저가 압도적이다.

그러자 아이작이 픽 웃었다.

뭐, 슈리가 묘하게 마음이 약하고 착하긴 하지. 그래서 마음에 들기도 하고.

“괜찮아. 형은 한 번도 제 실력을 보인 적이 없어. 아마 내 말대로만 하면 그 싸가지 붉은 머리랑 싸울 때도 놀라운 일이 벌어질걸? 난 형을 믿어.”

“아이작……!”

슈리는 가슴이 뭉클해진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이작은 슈리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응, 그리고?”

“지면 나한테 먼저 뒤지는 거야. 씹새야.”

“……”

슈리는 입술을 꽉 물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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