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적의 펜타곤 (2)
“와, 이게 무슨 일이냐.”
“아이작 공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적의 펜타곤이 개최된 황실의 제3연무장.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이 크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사제들의 펜타곤은 성기사들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된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들은 사제들과 파트너십을 맺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견습 사제 중에서 유력한 상위 후보?
미친, 당연히 눈여겨봐야지!
재능있는 사제는 무려 미래의 인맥이었다!
“아, 망할 사제 놈들. 거만해서 싫지만 합동 임무가 많단 말이지.”
“뭐, 원래도 합을 중요시하니까.”
펜타곤은 물론, 승단에서도 유리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고, 지금 당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베팅!
무엇보다 사제들의 펜타곤은 성기사들에게 좋은 베팅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선배, 이번엔 어디에 베팅하셨습니까?”
베팅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건 호전적인 적이었다. 청은 의외로 인기가 가장 없다.
“청은 안돼. 성적에 전혀 욕심이 없는 놈들이야.”
“백은 어떻고? 다 같이 평화롭게 지내요, 하는 꽃밭 놈들인데?”
“아냐, 걔들 의외로 화나면 제일 무서워. 협동이 제일 잘 돼서 결과가 늘 좋아.”
“으악! 금도 목숨보다 품위인 놈들이라 성적은 좋은데! 흑도 개인 욕심은 많아서 의외로 괜찮고!”
“그래, 청만 안 고르면 돼.”
“푸핫, 청을 고르는 멍청이들이 어디에 있겠냐! 맨날 꼴찌인데.”
적의 성기사들이 끼어들자, 청의 성기사들이 핏대를 세웠다.
“웃기고 있네, 우리 청이 왜 꼴찌야?“
“올해는 다르거든?”
물론 청은 본래 베팅 같은 도박은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매년 지명도 꼴찌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모두가 작심하고 달려든 지 몇 년!
“이번엔 아이작 님이 키나 베리트를 꼬신 거 몰라? 수완부터 다르시다고!”
“그래!! 맞아, 안 그래도 후배들한테 청의 팀에 올인하라고 했…어? 릴라이 님이시다!”
그 이름에 성기사들의 귀가 쫑긋 섰다.
“뭐? 그분이 왜?!”
성기사들에게 있어서 8계위 성기사는 하늘 같은 대선배!
하물며 최연소로 9계위를 노리는 릴라이라면 모든 성기사들의 우상…! 특히 청의 소속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릴라이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올해는 역시 청이 이기겠죠! 믿어도 되는 거죠, 그ㅊ…….”
“안 돼에!!”
슝!
“…어?”
우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안 된다는 말만 남기고…….
응? 안 돼……?!
그들은 당황했지만, 곧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분명 조카분들 상대가 적이었어!”
“뭐? 하필 적이야?!”
망했다.
“적의 팀과 맞붙은 팀은 언제나 꼴등이었는데…….”
하물며 첫 경기는 적의 펜타곤인 만큼 전통적으로 적의 팀부터 시작하는데, 그 미친놈들이 대인전 시범을 보인다고, 온갖 고문 기술을 썼다. 그렇게 당하고 나면 다음 경기는 당연히 연달아 패배……
“아…. 청이 꼴등이겠구나.”
“꼴등이겠네.”
그래서 안 된다고 하고 사라지신 거구나…….
“아씨, 나는 애정으로 올해 월급 몽땅 올인했는데… 망했다.”
“나도…….”
그 말에 적의 성기사들이 푸웁 비웃었다.
“축하한다, 너희 돈은 우리가 다 먹겠구나.”
“어디, 청 따위가 감히 적을 넘봐?”
청의 기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물론 릴라이가 외쳤던 ‘안 돼’는 그런 의미가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하필 아이작의 상대가 적의 팀이라니.”
릴라이는 성기사들의 자리 안내를 받으며 콜로세움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연무장에 올라온 적의 견습들에게 화를 냈다.
“저저, 저 아이들은 뭔데 덩치가 저 모양이냐! 사제라면서 고기만 배불리 먹인 거냐? 아, 우리 애한테 고기 좀 먹일걸! 수련이랍시고 콩물만 먹였으니!”
“리, 릴라이 님?”
안내하던 성기사들은 땀을 삐질 흘렸다.
“저 아이들과 비교하면 아이작은 작디작은 햄스터가 아니냐.”
그… 햄스터의 성격이 많이 나빠 보입니다만.
“저 못된 불독 놈들이 귀여운 조카를 뜯어 죽이겠어!”
아뇨…. 햄스터가 도리어 물 것 같습니다만?!
곧 릴라이가 앞 열로 오자, 한 여인이 릴라이를 반겼다.
그녀는 다름 아닌 아이작의 유모 아실리. 그녀는 아이작이 교황청에서 지내게 된 순간부터 수도에서 아이작을 보필하는 중이었다.
“상황은?”
“역시 아이작 도련님 쪽이 불리할 것 같습니다. 적의 신앙은 대인전의 달인들이니까요.”
그건 맞다.
사제들은 국가의 병력이기도 했다.
당연히 기본 소양으로 체술을 익혔고, 청 역시 싸움에 특화된 신앙이었다.
하지만 적의 신앙은 내부에서 변절자를 찾아내며 사람을 심판하는 데 극도로 특화된 신앙.
‘대인전투와 고문 기술은 적의 주특기다.’
반면 청은 마족 등 괴물을 잡는데 특화된 신앙. 사람을 지키는 기술이라면 있지만, 사람을 해하는 기술은 없다.
지키는 방식의 차이긴 하지만, 아무튼 저놈들을 봐라!
“저 못된 적가 놈들이 벌써부터 <폐인> 성법을 쓰지 않았느냐! 저딴 비겁한 짓을!”
“폐인 성법이요?”
“그래!”
릴라이는 크르륵거리고 있는 청의 팀 아이들을 가리켰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이작과 슈리만 빼고 전원 짐승처럼 굴러다니거나 이빨과 손톱을 세우고 있다.
“아무리 적의 펜타곤이어도 정도를 알아야지. 견습 사제들한테 저딴 되지도 않는 양아치 짓거리를……!”
그러자 안내해주던 성기사들이 흠칫 놀랐다. 되지도 않는 양아치 짓거리라니.
“…저, 저거 청의 성법 아니었습니까?!”
릴라이는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저런 악마 같은 성법은 청에 없는데?”
“…예?!”
성기사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하, 하지만 분명 아이작 도련님이 청의 팀에게 버프 성법을…….”
그 말에 릴라이가 침묵했다.
버프 성법이라니. 아이작이?
“…아실리. 짐작 가는 원인이 있느냐?”
“그러고 보니 보름 전 성기사들의 <정신 고양> 성법을 가르쳐달라 하셔서 알려드리긴 했는데, 그것 같은…….”
…고양?
“고양? 저게요?!”
<정신 고양>이란, 쉽게 말해 미지의 생물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게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흥분을 끌어올리는 성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리 짐승이 되지는…….
성기사들은 기겁하며 아이작과 청의 팀을 보았다.
아이작은 크르릉거리는 청의 팀을 향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앉아!”
“크릉!”
“일어서!”
“크르르륵!!”
“물기 준비!”
“으우왕라컹컹!!!!”
지켜보던 성기사들은 땀을 삐질 흘렸다. 저 정도면 이미 ‘정신 고양’이 아니라 ‘야수화’가 아닌가?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푸헿 웃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모르겠지!
정신 고양 성법에 특정한 약초를 함께 쓰면, 애들 정신이 헤까닥… 아니 야수화가 된다는 사실을!
‘내가 괜히 이것들의 체력을 올린 줄 아냐?’
그는 처음부터 이러려고 이놈들의 체력을 올린 것이었다. 이 상태로 돌입하면 평소보다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니까.
뭐,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청의 팀은 훈련하면서 기뻐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이작 덕분에 적하고도 싸워볼 만해졌다! 확실히 강해졌어!
-그래! 맞아! 아이작만 믿자!
-좋아! 중요한 건 정신력과 끈끈한 믿음이다!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허어, 쬐금 특훈했다고 적을 상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니. 순진한 아가들.’
아직 대열 훈련이며 전술훈련이며, 교육이 안 된 게 산더미 같은데, 고작 한 달 만에 적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아?!
우정과 노오력?
웃기고 앉았네!
햇병아리들이 고작 체력 훈련 좀 했다고 수년을 노력해온 애들을 그냥 이겨버리면, 그거야말로 불공평하지.
그래, 그러니까 불공평하지 않게 이쪽도 수백 년 쌓인 내공으로 꺾어줘야지.
마왕의 눈이 푸웁 웃었다.
아이작은 성직자들을 야수화시켜서 직접 조종하려고 한 것이었다.
동시에 백의 사제들이 뭔가 눈치챈 듯 항의했다. 청의 아이들이 뭔가를 씹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저건 백의 정원에서 키우는 기력초가 아닙니까!”
“얼마 전에 도둑맞았다는데!”
도… 도둑?
청이 도둑질?
모두가 기겁해서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원래는 백의 신앙 신수들에게 써서 우리에서 탈출시키려고 한 건데. 뭐, 사람에게 쓰는 게 더 남는 게 많긴 하지.”
…뭐, 인마? 탈출?!
“신수들은 우리에서 꺼내 봐야 통구이 행이니까.”
백의 신앙의 사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쓰러졌다.
“아…! 주교님! 주교님이 또 쓰러지셨어!”
“저 천인공노할 놈!”
백이 분노하며 항의하고 모두가 괜찮냐는 듯 청의 대표인 릴라이를 보았다. 하지만 릴라이는 웃었다.
“…아직 통구이가 안 됐으니 됐지 않습니까.”
“릴라이 경!!”
다른 신앙에서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저런 효과를 낸 거냐 궁금해했지만, 청의 기사들은 땀을 삐질 흘렸다.
“그보다 팀원분들이 전원 귀족 도련님들인데… 저리 막 다뤄도 되시는 겁니까……?”
릴라이는 대답 대신 웃었다.
‘아버지가 여기 없으시길 다행이다.’
계셨으면 뒷목 잡고 쓰러지셨겠지.
아실리도 방긋 웃었다.
“그나마 대귀족이 없는 게 다행이네요.”
주변 사람들은 땀을 삐질 흘렸다.
‘백작가도 충분히 대귀족인 듯한데……’
특히 아이작의 팀원인 몰렉의 아버지. 몰렉 백작이라면 난리를 쳤을 것이다.
‘만약 집안싸움으로 안 번지게 하려고 일부러 몰렉을 배탈로 빼낸 거라면, 머리가 굉장히 좋은 것이다.’
정치적 감각이 존재한다는 뜻.
릴라이도 그 부분엔 긍정했다.
“몰렉을 빼다니, 잘했다. 백작가는 건들면 좀 골치 아프지.”
“…시몬 백작님은 괜찮고요…?”
시몬의 아들, 아몬 에이지도 완전히 야수화되었다. 하물며 백작가의 후계자가 짐승처럼 한 발을 들고 경기장에 오줌을…….
“아악! 말려! 말려얽!”
“다행이다! 바지 안 내려갔어! 행동만 그랬다!”
그 광경에 기사들이 릴라이를 슬쩍 보았지만, 릴라이는 크흠 시선을 돌렸다.
“시몬은… 굴려도 괜찮다.”
…정말?
“음, 괜찮다. 저 정도면 전략이란다.”
전략? 저게 전략?
“예, 이기는 게 중요하죠.”
…청(靑), 이 새끼들 정말 괜찮은 거 맞나?
동료를 가족처럼 여기는 놈들 아니었나?
동료를 개무시하다 못해 개로 만들고 있는데??
다른 신앙의 사제들과 기사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지만, 곧 땅이 뒤흔들렸다.
쿠궁!
“!”
연무장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동서남북에 서 있던 적의 사제들이 수신호를 그리며 소환 성법을 쓰고 있었다.
쿠구구구!
아무것도 없던 드넓은 콜로세움 경기장에 자연물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석을 담은 듯한 연못이며 폭포, 연못을 둘러싼 기암들과 나무들. 아름답고 거대한 조각상과 동상들까지.
그런데 식물들이나 돌이나, 그 모양새가 좀 기이했다.
인간의 대륙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종류의 모양들이었다.
“오오, 저것이 신계의 정원인가……!”
“적(赤)의 신께서 허락해주신 모습이군요!”
곳곳에서 진심 어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소환된 대자연물은 모두 신계에서 소환한 것이었다. 사제들은 모시는 신에게 허락을 받고, 신이 허락한 장소를 일부 빌려올 수 있었다.
오직 펜타곤에서만 볼 수 있는 황홀하고도 경건한 장면이었다.
나이저와 적의 견습들은 주변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곧 적의 추기경이 구(句)를 읊자, 땅에서 거대한 동상이 솟아올랐다.
“오! 저것을 소환해주시다니!”
적의 주교가 먼저 손짓을 했다.
“장소를 빌려주신 적(赤)의 주신께 모두 감사의 인사를!”
사람들은 신앙 구분 없이 정원에 올라온 ≪형법의 신≫의 동상에 기도를 했다.
모든 신들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하물며 주신급이면 어느 신앙이든지 숭배의 대상이다.
적의 견습들 역시 눈이 달라져서 손을 모았다. 저건 평범한 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서 신앙심을 담아 기도해! 신앙심이 높을수록 적의 주신께서 축복을 부여해주신다! 경기에서 유리해져!”
“오!”
손을 모은 슈리 역시 그 장엄한 광경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려 저 아이작이 나한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저 녀석을 믿고 이 시험에서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 보이…….
쾅!!!!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원에 딸려 올라왔던 주신의 석상 얼굴이 박살이 났다. 주신께 기도를 하던 모두가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슈리는 기겁해서 성법을 날린 범인을 보았다.
‘아이자아아아앍!’
아이작이 그걸 못 참고 주신의 얼굴을 날려버린 것이다.
아이작은 아차 실수했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도 모르게 조건 반사로…….”
이 미친놈아아!
모두의 경악한 시선이 아이작에게 향했다.
슈리는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이 새끼… 정말 믿어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