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적의 펜타곤 (4)
사실 청과 붙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적은 누구보다 방방 날뛰었다.
-와 미친 계 탔네, 계 탔어!
-청이 상대라니 완전 누워서 떡 먹기지!
적은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수련 중인 몸들이었다.
각자 골치 아픈 성법들이 있는 다른 신앙과 비교하면, 청?
-걔네는 마족 잡는 놈들이지, 사람을 잡는 신앙이 아니잖아!
-푸핫! 인간을 지키는 게 걔네 교리라고!
-공격이나 할 수 있겠냐? 멍청한 놈들!
청은 분명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이 향하는 곳은 작은 인간이 아니라 더 크고 악한 괴물이었다.
5대 신앙 중에서 가장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걔들 또 대장 붙잡아서 가르쳐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겠지?
-허, 대장 다 잡아놓고 제발 알려달라고 말로 애원하는 애들이잖아. 그 말을 왜 들어줘?
-전투 불능만 아니면 입을 다물어도 규칙 위반이 아니라고!
-맞아, 적의 펜타곤이면 고문을 하라고! 고문을!
-등신들!
아카데미에서도 그랬다.
청의 소속인 슈리와 그 친구들?
그렇게 괴롭혀도 참기만 할 뿐, 결국 힘은 쓰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싫으면 행동으로 보일 것이지.
‘약골 놈들!’
그랬기에 청이 어떻게 나와도 적으로서는 무서울게 없……
“푸헿! 성직자 새끼들, 다 띠졌어!”
“……!”
무서울게 없… 아니 뭔데, 저 표정?!
적의 팀은 뛰쳐나온 마왕… 아니 아이작의 얼굴에 공포에 질렸다.
<고속 활보>로 뛰쳐나온 아이작이 푸헿헤후헿 괴기스럽게 웃고 있었다.
“푸헤헤후푸헿푸헤헿!(더러운 성직자를 합법적으로 패도 되는, 이런 좋은 테스트라니!)”
눈깔이 돌아가 있고 입꼬리는 귀까지 올라간 게, 입이 찢어진 마족인가 싶다.
솔직히 무섭다. 더럽게 무섭다.
생리적으로 혐오스럽다!
이단심문관 지망생인 자신들조차 움찔할 정도다.
하지만 곧 적의 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청(靑)!
그래, 청이 어떤 놈들인가!
인간을 상대할 땐 답답한 외골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돌부처 새끼들이었다. 인간을 상대로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걸 잘 알기에 적의 견습들은 아이작을 보고도 안도하며 히죽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청의 직계면 더 말 다했지!
저놈, 절대로 사람을 공격 못 한다!
적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냐! 올해의 청은 작전을 그리 가기로 했구나!”
“공격은 못 하니까, 얼굴로 속여서 경계를 사겠다? 푸웁!”
적은 가벼운 마음으로 진영을 짰다. 아이작이 홀로 적의 진영까지 쳐들어온 것에 당황하긴 했지만-
‘해봐야 결계 성법이나, 감옥 성법이지.’
청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고 공격은 그 정도의 격리 수준!
‘뭐, 키나 베리트가 나왔다면 경계했겠지만!’
‘첫타는 본인이 끊고 싶었나보지?’
‘저놈은 미끼고, 키나는 후방이겠지.’
뻔히 보인다! 대인전 최강의 적을 우습게 보다니! 속셈을 알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적은 적극 대응해줄 생각이었다.
청의 기를 꺾기 위해서! 그깟 알량한 작전에 넘어가도, 적은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빌어먹을 기사도 때문에 바보가 되는 청 따위. 그래, 그 기사도 때문에…….
그러나 적의 사제들은 곧 창백하게 굳었다.
“…야. 쟤 지금 뭐 꺼낸 거야?”
“…어? 어어?”
“이리와! 때끼들아!! 전원 통구이 되기 싫으면 이리와왉!!”
아이작이 꺼낸 건 불타오르는 흉악한 쇠사슬 모닝스타 망치!
시발!!
청! 왜 이래! 미쳤어?!
“…처, 청은 분명 기사도…….”
…기사도가 뭔가 많이 이상한데?!
“니들 대장만 데리고 오면 목숨만은 살려쭈지!!!”
…기사도하고 제일 반대되는 짓을 하고 있는데?!
“아, 빨리 오라고! 나 인내력 존X 짧다고!”
쟤들 인내의 신앙 아니었냐?!
그 광경에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딸랑이는 그리 쓰지 말라고 했거늘…….”
“뭐? 딸랑이?! 저게 딸랑이야?!”
“하다못해 채찍은 잔인성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순한 걸로 바꾸라고 했더니…….”
…저게 순한 거냐고!
이단심문은 자신들이 아니라 저 새끼가 해야겠네!
그렇게 홀로 쳐들어온 아이작 때문에 적이 우왕좌왕 하고 있을 그때, 금색의 빛이 그들을 일순에 뚫고 지나갔다.
쾅!
“헉……!”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하물며 적의 진영 따위, 코흘리개들의 장난이라는 듯 단숨에 박살 내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빛의 궤적의 정체를 눈치챈 적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키나 베리트!”
“역시 양동작전이었어!”
그들은 키나를 시선으로 쫓았다.
다리로 쫓기엔 키나가 지나치게 빠르다. 자신들이 개울을 넘을 때, 저놈은 바다 하나를 쉬이 건너가는 수준.
마치 말하지 않아도 태생 자체가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모습이 아닌가.
순식간에 적의 진영의 제일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키나는 단 한 명만을 노렸다.
쿠궁!
“나이저!”
“위험해!”
그러나 달려드는 키나의 모습에 나이저는 딱 걸렸다는 듯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래, 니 새끼들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는 아이작과 키나가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저깟 놈들의 계략 따위. 보지 않았어도 예측이 가능했다.
‘평소의 청이라면 대장을 노리는 전략은 안 쓰겠지.’
물론 이 싸움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대장만 잡아서 자백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저 세페트가 누구인가!
적가의 적통 자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문 훈련을 받는 직계 자손!
하는 것도 능숙하지만, 받는 것에도 능했다.
청 따위가 자백을 시키려 해봤자 가려운 수준이란 말이었다. 하물며 청의 팀 전원이 목숨 걸고 달려들어도 잡힐까 말까다.
그딴 선택지를 고를 바에야 나머지 29명을 직접 수색하는 게 낫지.
하지만 동 나이, 아니 어쩌면 이 나라 최고의 실력자일 수도 있는 키나 베리트가 있다면?
저놈을 앞세워 대장을 노려오겠지!
‘그래, 바로 지금처럼!’
키나는 사제지만 체술, 성법 모두 천재적이었다. 뛰어난 무술로 상급 성기사 추천서를 받는 나이저조차도 버겁다.
곧 키나 베리트가 나이저에게 단련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슈욱!
“!’
키나의 손이 닿은 나이저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나이저가 나타난 곳은 뜻밖에도 청의 진영 한복판!
투명 상태로 청의 진영으로 들어가있던 나이저가 크게 웃었다.
“미쳤다고 키나 베리트랑 맞대결을 하냐!”
“!”
그건 적의 성법인 <눈 흐리기> 성법.
분신을 만들고, 본체는 투명 상태가 되어 잠복하는 성법이었다.
잠복 시간 동안 본체의 기운이 분신에게 향해있기 때문에, 적의 사람이 아니면 간별할 수 없다.
뭐, 공격을 당하면 단숨에 풀리는 만큼 지속 시간은 짧지만, 상관 없었다.
<통곡의 사죄 (5계위)>
나이저가 있던 자리에 붉은 진이 솟아올랐다.
직경이 꽤 넓은 진이었다. 적의 진영에 들어간 아이작과 키나가 쉽게 벗어날 수 없을 크기였다.
“다리 묶기 성법이군. 이런 걸로는…….”
키나가 와해시키려는 그때, 근처에 있던 적의 사제들이 나이저가 만들어준 진에 손을 얹었다.
번쩍!
“기를 쓰고 잡아앍!”
다섯 명 정도 되는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적의 팀 중에서도 나이저 다음으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 앉은뱅이라 불리는 철벽의 고문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성력을 불어넣어 진을 증폭 시키자, 아이작도 키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동시에 나이저가 슈리에게 향했다.
어차피 저놈들이 키나를 상대로 오래 못 버틸 건 알았다.
‘단 수십 초라도 좋다.’
놈들이 잠깐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슈리 에슈아를 끝장내주마!
대장전?
하! 저깟 놈이 병신놈이 대장 자리에 어울릴 것 같아?!
7년이나 한 반에 있었다.
슈리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았고, 약골이란 것도 견습들 모두가 알았다! 같은 5대 공작가 놈이기에 더 모를 수가 없지.
약하지 않으면 싸움을 왜 피하겠어!
해골왕도 못 잡는 청답게, 직접 맞붙었을 때도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다.
그러니 하는 말이었다.
‘붙잡아서 자백 성법을 쓰면 기껏해야 10초!’
동시에 나이저를 견제하러 청의 팀들이 몰려왔다. 야수화된 이들은 포악하게 나이저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나이저는 그마저도 비웃었다.
‘야수화? 알게 뭐야. 그래봐야 오합지졸들의 임시 방안!’
능력이 안 되니까, 저딴 꼼수를 부린 것 같은데.
‘이딴 거에 우리가 질 거 같아?’
“붙잡아!”
“우오!”
나이저의 명령에 적의 견습들이 청의 팀들을 하나씩 도맡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들이라 그런지, 적의 성법이 잘 안 먹혀서 힘으로 하나씩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래봐야 체력만 좋아진 거지!’
곧 나이저가 슈리의 앞에 빠르게 도달했다.
‘!’
나이저의 동공이 마치 사냥개처럼 변했다. 마치 도사견이 사냥감을 노리듯이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실수도 없다.
다른 게 있다면 입가에 피어오르는 괴롭힘의 미소뿐.
‘아이작 에슈아, 이 멍청한 놈. 방어를 키나 베리트로 했어야지!’
저런 걸 형이라고 믿고 중책을 맡긴 게 잘못이다!
그 광경에 지켜보는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쓰려는 성법을 보니 완전히 불구로 만들어 놓겠군.’
팔을 절단하여 고통을 주는 성법!
미래의 결과가 너무 훤하다.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릴라이도 사색이 되어 급히 일어났다.
“릴라이 님?”
“심판한테 중지하라고 해야겠다.”
슈리한테는 너무 버겁다.
나이저가 왜 저리 흥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급 사제들의 테스트에서 쓸 만한 성법이 아니었다.
슈리도 나이저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번개를 보고 움찔 떨었다. 저 성법이 어떤 성법인지, 어떤 위력인지 명확하게 보이는 탓이었다.
그리고 저 일격에 당하면 팔이 날아가겠지.
하지만 그때, 슈리는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경기 전, 아이작이 한 말을 떠올렸다.
-괜찮아. 형.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아이작은 이렇게 말했다.
-붉은 싸가지 놈은 이번 시험에서 직접 움직이진 않을 거야.
-뭐? 나이저가 안 움직인다고?
-그래. 놈은 십사육마의 처형식을 노리고 있어. 높은 점수를 따야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문을 이끄는 자로서 혼자 점수를 다 처먹으면 부하들이 따르겠어? 부하들한테도 기회를 줘서 점수를 따게 하겠지. 당연히 시험은 팀원들에게 맡길 거야. 놈은 원한 관계인 나만 노리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왜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내가 교황 손자 놈을 데려왔으니까.
-!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더럽게 쫄리시겠지. 교황 손자 놈이 들어온 이상, 한가롭게 팀원을 시켜서 찾을 시간은 없다고 볼 거야. 그렇다고 본인이 상대하기는 더 싫겠지. 그래서 형을 속전속결로 노릴 거야.
-!
하지만 그거야말로 아이작이 나이저를 적의 진영에서 빼내기 위한 첫 번째 전략.
키나 베리트가 도움이 되면 더없이 좋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참여만 해도 아이작에겐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팀원 전체를 야수화시켰는 줄 알아?
-그거야 다들 능력치가 떨어지니까. 전투 능력치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려고…….
-형, 적의 성법은 ‘인간’을 상대로 하는 거야. 짐승한테는 잘 안 걸려. 정신 세뇌가 안 통하거든.
-!!!
숱한 성직자들을 상대해온 마왕은 히죽 웃었다.
-그럼 야수화가 안 걸린 사람, 특히 그중에서도 속전속결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대장을 노려올 확률이 크겠지?
야수화에 걸린 청팀들은 부하에게 맡기고 말이다.
이것이 나이저가 딴생각을 못 하고 대장만 노리도록 유도한 두 번째 전략.
-즉 나이저는 반드시 일대일로 승부를 보려 할 거야. 가뜩이나 형을 더 우습게 보고 있을 테니까, 더욱더.
그 말에 슈리는 기겁했다.
-너 설마, 경기전에 심판한테 ‘대장직을 사퇴하고 싶다’고 말하고 오게 한 이유도……!!
아이작은 푸웁 웃었다.
그래, 나이저가 보고 있길래 일부러 슈리에게 시켰다. 그래야 나이저가 더 딴생각 안 하고 슈리만을 노려올 테니까.
아이작은 피붙이 형에게 제대로 판을 깔아주려는 것이다.
-그럼 그때 모두의 앞에서 보여줘. 형이 졸개가 아니란 걸!
그 순간, 나이저가 입꼬리를 올리며 슈리에게 주먹을 날려왔다.
“이 병신, 끝이다!”
그 고함에 슈리는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아이작한테 맞아가면서 수련했던 그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슈리는 나이저의 멱살을 잡았다.
“병신은 너다, 새끼야!!”